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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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뚫고...', 이 시트콤이 불황을 담는 방식

D.H.Jung 2009. 11. 1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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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뚫고...', 웃음을 넘어 공감까지 하이킥!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이순재는 김자옥을 위한 이벤트로 3천만 원 가까운 엄청난 비용을 쓰고는 그것을 벌충하기 위해 가족들을 모아놓고 비상시국선언을 한다.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절반으로 줄이라는 것. 그러자 그 집에 얹혀사는 세경과 신애는 쫓겨나는 건 아닌가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세경은 스스로 월 60만원 받던 것을 깎겠다고까지 말하며 앞장서서 비용절감에 나선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이순재는 홈쇼핑으로 김자옥을 위해 고가의 코트를 선물한다.

이 때 이순재의 양심이 하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네가 저지른 일로 왜 가족들이 고생을 해야 하냐. 너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이 양심의 말은 그의 행동과 비교되면서 보는 이들을 웃게 만들지만, 이 전체 이야기는 절대 웃지만은 못할 뉘앙스를 갖고 있다. 이 시트콤 속에서의 가족은 한 나라로도 읽히고, 그 가계살림의 파탄은 나라경제의 파탄으로도 읽힌다. 이순재의 생각 없는 낭비가 가족들의 쪼들림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일은 엄한 데서 저질렀지만 늘 국민들이 고통분담을 해야하는 상황을 떠올리게 하고, 그래도 열심히 절약하려는 세경의 모습은 눈물겨운 서민들의 건강함을 떠올리게 한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이전에도 이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를 통해 나라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순재의 공언으로 시작된 '만 마리 학접기 사건'이다. 김자옥에게 접지도 않는 학을 접고 있다고 말하고 만 마리를 접어 선사하겠다고 공언한 이순재는 그 말을 책임지려고 정보석에게 회사도 나오지 말고 학을 접으라고 시킨다. 정보석은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 일을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하기 시작하는데, 그 파급효과가 미국, 인도 등 점점 세계적으로 퍼져나가 나중에는 개성공단에서 학을 접는 상황까지 커져나간다는 이야기다.

학을 접기 위해 전 세계인이 들썩거린다는 그 이야기가 웃음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네 경제가 어떻게 굴러가는가를 에둘러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가진 자들에게는 별거 아닌 일로 비롯된 소비가 전체 경제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 물론 학 한 마리 접는데 백 원씩 받기 위해 여기저기서 달려드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이야기에는 씁쓸한 구석도 있다. 거기에서 청년들의 취업문제가 떠오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런 경제 불황 속에서 사회가 웃음을 잃어가는 것은 당연지사. '지붕 뚫고 하이킥'이 가볍게 던지는 웃음 한 방에 잠시 동안 시름을 잊게 되다가도, 그 시대를 공감하는 이야기가 짠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웃음을 넘어 공감까지 갖게 되는 것. 이것은 '지붕 뚫고 하이킥'의 웃음 코드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지붕 뚫고 하이킥'은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그것은 시트콤의 본분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들 어려운 시국에 지나치게 가벼운 것도 그다지 좋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지붕 뚫고 하이킥'이 서 있는 지점은 실로 절묘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시트콤은 웃음은 물론이고 공감을 통한 흐뭇함이나 감동까지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여느 심각한 드라마도 하지 못하는 것을 이 시트콤은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