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의사의 윤리를 묻다

 

병사.’ 사망진단서에 적혀 있는 이 글자가 예사롭지 않다. 군대 내에서의 구타가 의심되는 환자임에 분명하지만 거대병원 원장인 도윤완(최진호)은 주치의인 강동주(유연석)에게 병사라 적힌 사망진단서를 내밀었다. 그 사망진단서 맨 밑에는 강동주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거기에 사인만 하면 환자는 병사로 처리되어버린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물론 이런 양심 없는 행위에는 도윤완 원장이 말하는 보상이 따른다. 병원 내에서의 지위나 지원금 같은 것들. 의사로서의 성공을 목표로 갖고 있던 강동주는 흔들린다. 물론 돌담병원으로 오게 되면서 김사부(한석규)를 만나고 진정한 의사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지만 돈과 권력 앞에 그는 여전히 갈등한다.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는 의사의 양심과 윤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사회에 그토록 많은 의문사가 말 그대로 의문사가 되는 건 의사의 사망진단서가 의혹을 남길 때다. 모든 죽음 앞에는 의사가 있기 마련이고, 그래서 그 죽음의 사인은 의사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릴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이런 조작된 사망진단서에 대한 이야기는 드라마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벌어졌던 백남기 농민의 사망에 대해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가 내놓은 병사라는 사망진단에 의혹이 제기되고 학생과 노조가 나서 해임을 촉구하고 있는 사안이 그렇다. 의사는 이처럼 죽음과 가까이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선택을 해야 될 입장에 놓인다.

 

하지만 한 생명 앞에서 종종 그 선택은 윤리가 아닌 돈의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음주운전으로 6중 추돌사고를 낸 가해자의 부모가 오히려 사전 동의를 받지 않고 아들의 채혈을 했다는 이유로 윤서정(서현진)을 고소하겠다고 나서는 뻔뻔한 상황. 알고 보니 그 가해자는 강원도 도지사의 최측근이자 도의원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아픈 상처라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건 그들이 그 진상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돈과 법은 심지어 그들이 저지른 일조차 가리는 마법을 발휘한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지만 <낭만닥터 김사부>는 역시 낭만적인이야기를 보여준다. 가해자가 자신으로 인해 다리를 잃게 된 피해자와 가족들을 보고는 그들 앞에 나서 사과하는 것.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래서 현실에서 벌어지는 갑질 행태에 대한 사이다 일침을 담는다. “똑바로 쳐다봐!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똑바로 알아야 반성도 할 거 아니야. 돈이 실력이고 부자 엄마가 스펙이고 다 좋은데, 그래도 최소한 양심이 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니.” 윤서정의 이 대사는 드라마 속에서만 울리는 목소리가 아니다. 드라마 바깥 현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갑질과 그를 통한 진실 은폐로 또 한 번의 죽음을 안기는 가해자들에 대한 날선 비판이다. 외인에 의한 사망이 분명하지만 병사라고 기록하고 사인했던 어떤 이들의 비양심에 대한.

<낭만닥터>의 낭만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들

 

도로 위로 사고가 난 자동차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 사고 현장에는 차에 끼인 사람, 차가 뒤집혀 거꾸로 매달려 있는 사람, 차에 튕겨져 나가 다리를 다친 사람, 충격으로 내상을 입은 아이 등등.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한다.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의사들, 강동주(유연석)와 윤서정(서현진) 그리고 도인범(양세종)이 응급조치를 하고 급한 환자부터 돌담병원으로 이송한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돌담병원의 콘트롤 타워는 다름 아닌 김사부(한석규). 본원에서 내려온 감사팀에 의해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김사부지만 그는 쏟아져 들어오는 환자와 바로 처치하지 않으면 위험한 환자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그럼에도 감사팀에서 파견 온 직원은 규정을 내세우며 김사부를 가로막는다. 마침 그 사고현장에서 그 감사팀 직원의 딸이 위급한 상황으로 실려 오지만 그 앞에서도 그는 바보처럼 규정만을 얘기한다. 김사부는 결국 자신의 룰을 이야기한다. 그 병원에서의 룰이란 반드시 살린다라고.

 

<낭만닥터 김사부>의 이 도로 위 연쇄교통사고와 이에 대처하는 김사부의 이야기에서 어떤 뭉클함을 느꼈다면 그건 우리가 이미 이런 일들을 겪었지만 그 속에서 김사부 같은 리더십을 보지 못했다는 회한 때문일 게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위중한 상황, 김사부의 선택은 즉각적이고도 명쾌했다. 자신은 의사이고 그러니 사람을 살리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걸 명확히 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라고? 글쎄 우리에게는 안타깝게도 이런 이야기가 당연한 것이 되지 않았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환자를 끝까지 살리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한 윤서정은 과잉진료혐의로 감사팀의 조사를 받았고, 심지어 과거의 사고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받았다. 갖가지 이유를 들어 감사팀이 김사부의 의료 행위 자체를 막아버린 건 그를 제거하려는 거대병원 도윤완(최진호) 원장의 지시 때문이다. 정략적으로 움직이는 도윤완의 행태 앞에서 김사부의 선택은 그래도 결국 환자의 생명이었다.

 

돌담병원이 바로 우리가 사는 현실의 축소판이라면 그 병원을 좌지우지하려는 도윤완 원장 같은 인물들이 그 피폐한 현실을 만들어내는 장본인이다. 돈이 없어 심지어 치료를 포기하는 서민들을 바로 돈이 없기 때문에 규정을 내세워 밖으로 내모는 인물. 그래서 병원이 본래 목적인 사람을 살리는 곳이 아니라 돈을 버는 곳이라는 걸 공공연히 내세우는 그런 인물이 도윤완이다.

 

그 속에서 뜻있는 의사 김사부 같은 리더의 일갈은 그래서 그저 드라마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우리네 마음을 건드린다. 결국 딸을 살려낸 김사부에게 감사팀 직원은 어떤 대가를 바라고 딸을 치료해줬는지 원하는 게 뭔지를 묻는다. 그에게 김사부는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살려는 건 좋은데 못나게 살진 맙시다. 무엇 때문에 사는지는 알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그렇다. 결국 가장 소중한 건 생명이고 사람이다. 그런데 열심히 산다는 이유로, 또 성공하겠다는 이유로 그 본질을 잃어버리는 순간 못난 삶이 되어버린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왜 낭만적인 이야기를 던지면서도 이토록 시청자들의 마음을 휘어잡는가는 이 우화 같은 드라마가 환기시키는 리더십 부재의 현실이 이 이야기에 대한 판타지를 더욱 강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기의 상황에 우리를 끝까지 지켜줄 수 있는 리더가 있는가. 아니 최소한 콘트롤 타워는 존재하는가. <낭만닥터 김사부>의 진중한 질문이다

현실을 꼬집는 비현실, <낭만닥터>의 판타지

 

출세 만능의 시대. 출세를 위해서라면 양심도 생명도 이해타산에 밀려버리는 시대.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타인의 희생조차 정당화해버리는 사람들. 힘이 없다는 이유로 힘 있는 자들에게 찍히고 싶지 않아서 반쯤 눈감은 채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 그러한 이들의 비겁한 결속력이 기득권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군림하고 있었으니.”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 강동주(유연석)의 목소리로 깔리는 이 내레이션은 요즘 같은 시국에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병원을 다루는 의학드라마에서 진실이니 비겁한 결속력이니 기득권이니 또 군림이니 하는 단어들이 등장한다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날선 현실 인식을 드러낸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병원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과거 천재적 외과의사로 세간의 시선을 받던 부용주(한석규)는 현 거대병원 원장 도윤완(최진호)이 꾸민 계략에 의해 철저히 추락하게 됐다. 송현철(장혁진)이 수술 중 사망한 환자를 그가 수술한 것으로 둔갑시키고 병원의 의사들과 간호사들까지 입막음함으로써 결국 병원을 떠나게 만들었던 것. 이후 부용주는 김사부라는 이름으로 돌담병원에 들어와 신분을 속인 채 살아가게 되었다. 결국 그렇게 거짓과 비겁으로 결속된 그들이 기득권이 되어 세상에 군림하고 있다는 것.

 

<낭만닥터 김사부>는 거대병원이라는 부패한 시스템을 표징하는 공간을 통해 출세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양심도 생명도 버리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냉엄한 비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그 현실 비판의 방식이 독특하다. 그것은 비현실적 공간인 돌담병원이라는 이상적 병원을 통해서다. 도윤완으로 대변되는 거대병원이 우리네 부패한 시스템의 현실을 드러낸다면, 김사부로 대변되는 돌담병원은 그 정반대의 비현실적인 이상적 시스템을 그려낸다.

 

돌담병원은 우리가 흔히 겪었던 자본화된 병원들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시설이나 의료기기, 의료진의 수 같은 규모는 조악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이곳은 적어도 수술비 문제 같은 것은 전혀 우선시되는 분위기가 아니고 전공과를 두고 벌어지는 병원 내 알력이나 권력 투쟁 같은 것들은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오롯이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에만 맞춰진 진짜 병원’. 하지만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비현실이 되어버린 이상이 바로 돌담병원인 셈이다.

 

그래서 <낭만닥터 김사부>가 보여주는 건 비현실을 통해 현실을 꼬집는 우화 같은 것이다. 거대병원에서 저 마다의 상처를 안고 돌담병원으로 온 강동주나 윤서정(서현진)은 그래서 김사부를 만나면서 새로운 대안적인 시스템을 경험하고 성장해간다. 그들이 그 과정을 통해 거대병원 같은 부패한 시스템에서 겪었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은 그래서 시청자들에게는 마치 지금 현실이 주는 허탈함과 황망함 같은 것들을 어루만져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물론 이건 지극히 낭만적인생각이다. 하지만 그 낭만이 현실을 꼬집는 힘은 의외로 강력하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계란으로 바위치기같은 짓은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성을 뛰어넘어 바위를 향해 계란을 던지는 그 낭만은 그 비현실적 행위를 통해 현실의 남루함을 드러내게 해준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낭만은 그래서 그저 심쿵하고 달달한 남녀 간의 사랑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그 날선 비판의식으로 작금에 우리가 처한 시국에도 충분한 울림을 전해주는 그런 낭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