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씨부인전’, 추영우라는 색다른 이야기꾼 남성상의 등장

옥씨부인전

“너는 네가 방금 먹은 게 주먹밥 같고 여기가 폐가 같으냐?” 불법으로 금광을 채굴하는 이들을 찾아내고 그 작업에 동원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산을 헤매다 폐가에서 하룻밤을 기거하게 된 옥태영(임지연)이 뭐가 그리 즐겁냐고 묻자 천승휘(추영우)는 그렇게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전기수 답게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는 아늑한 주막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로 그 주막이 어떤 곳인지 그 곳을 그 두 사람이 함께 찾아오면 주모가 부부로 생각해서 한 방을 주고 커다란 암탉을 잡아 저녁을 먹는 풍경을 풀어 놓는다. “어떠냐? 지금도 네가 먹은 게 주먹밥 같으냐?” 그 이야기와 더불어 두 사람 저편으로 그림자극처럼 상상의 영화관이 펼쳐진다. 깔깔 웃으며 함께 암탉을 나눠 먹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다. 옥태영은 말한다. “도련님은 참으로 대단한 이야기꾼이십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를 웃게 만들고 시름을 잊게 하시니까요.” 그러자 천승휘가 답한다. “내가 오늘은 너만의 전기수가 돼 주마.”

 

색다른 남성상의 등장이다. 송서인이라는 본래 이름을 버리고 천승휘라는 가명으로 전기수의 삶을 살아가는 남자. 이 남자는 그간 사극에서 봐온 남자주인공들과는 사뭇 다르다. 먼저 왕이나 권세가의 권력을 쥔 인물이 아니다. 또 공부 깨나 해서 장원급제한 선비도 아니다. 송씨네 가문의 아들로 살아왔지만 자신이 기생의 몸에서 난 서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 곳을 떠나 자신이 원하던 전기수라는 삶을 선택한 인물이다. 신분을 오히려 낮춰서 얻은 자신의 삶이다. 

 

전기수로서 이야기를 들려주며 연기도 하기 때문에 몸은 잘 쓰지만 그렇다고 무공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적들이 나타났을 때 몇 명 정도는 쉽게 해치우고 여인을 보호해주는 그런 능력이 없다. 대신 연기를 한다. 칼을 쓰는 듯한 연기를 하지만 그건 사실은 춤에 가깝다. 옥태영과 한께 그 험한 산에서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마주하는 위험 속에서 이 남자는 별 힘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천승휘는 이야기를 할 줄 안다. 남들이 못하는 상상을 한다. 폐가에 주먹밥 하나 들고 있어도 이 인물이 해주는 이야기는 그 곳을 주막으로 바꾸고 주먹밥을 암탉으로 바꾼다. 금광을 이끄는 지동춘(신승환)과 그 무리들의 공격을 피해 불도 못피우고 한데서 밤을 지새우게 됐을 때도 이 인물은 이야기로 그 어려운 상황들을 반전시키려 한다. “불을 못 피우니까 별이 보인다. 왠지 오늘은 쉽사리 잠들지 못할 거 같아.” 그 두려움과 긴장감을 설렘으로 바꿔 놓는다. 

 

천승휘라는 이 새로운 남성상은 옥태영를 연모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소유하려 하지는 않는다. 이미 혼인을 한 유부녀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천승휘는 옥태영이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그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고 응원해준다. 이상화된 캐릭터지만 천승휘라는 남성상은 그래서 기존 드라마들이 세우고 있는 남성들의 클리셰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옥씨부인전’이 이러한 남성상을 이상형으로 세워 놓은 건, 이 작품의 성격과도 맞닿아 있다. 이항복이 실화를 바탕으로 쓴 ‘유연전’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이야기와 상상력이 가진 힘을 주제의식으로 가져온 점이 도드라진다. 노비였던 구덕이가 옥태영이 되고, 양반 자제였던 송서인이 천승휘가 되어 한 바탕 살아가는 그 과정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새롭게 스토리텔링하는 과정을 닮았다. 새로운 자신을 상상하고 그래서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나가는 힘. 그것이 바로 스토리의 힘이 아닌가. 

 

레오 리오니의 동화책 ‘프레드릭’에는 시인에 가까운 쥐 프레드릭이 등장한다. 겨울이 다가오자 모두가 먹을 걸 준비할 때 프레드릭은 일을 안하고 햇볕을 쬐면서 놀지만, 겨울이 되고 동굴에서 버텨내며 먹이가 떨어졌을 때 프레드릭의 진가가 발휘된다. 그는 모두 눈을 감게 하고 햇볕이 내리쬐던 바깥 세상에서의 날들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모두를 버텨내게 해준다. 스토리가 가진 힘을 말해주는 이 작품처럼, ‘옥씨부인전’은 전기수 천승휘를 통해 이야기와 상상력의 힘을 그리고 있다. 

 

천승휘 역할에 그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옥태영의 남편 성윤겸까지 1인2역을 소화하는 추영우는 그래서 ‘옥씨부인전’을 통해 대중들의 눈도장을 찍는 중이다. 그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나 어딘지 어설퍼도 매력적인 행동들 하나하나가 극중 스토리와 엮어져 그의 존재감을 한껏 높여주고 있다. ‘오아시스’로 주목을 받았지만 ‘옥씨부인전’으로 이제 여성들의 새로운 이상형을 그려나가고 있는 추영우는 그래서 이 작품 최대의 수혜자가 아닐까 싶다. (사진:JTBC)

‘옥씨부인전’, 임지연이 보여주는 사람의 진가

옥씨부인전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다.” 손자는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병법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손자병법이 사회생활에서의 처세술이면서 동시에 삶의 철학으로도 읽히듯이, 이 말은 우리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대해야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론으로도 읽힌다. 그런데 이 말에서 우리는 흔히 ‘상대를 안다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즉 대적해야할 상대를 분석하는 일이 승리의 첫걸음이라 여기곤 한다. 그런데 상대에 대한 분석만큼 중요한 것이 ‘나를 아는 것’이다. 진짜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알지 못한다면 엉뚱한 길에서 시간만 낭비할 수 있고, 나아가 진짜 자신 안에 있는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배우 임지연이 최근 몇 년 간 성장해온 과정을 보면 바로 이 잠재력이 느껴진다. 온전한 자신을 찾아냄으로써 거기서 비롯되어 무한정 튀어나오는 잠재력이.

 

사실 임지연이라는 배우를 대중들 앞에 각인시킨 작품은 영화 ‘인간중독’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임지연의 진가를 끄집어낸 작품은 아니다. 베트남전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남편의 상사와 불륜을 저지르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임지연은 가녀리면서도 때론 대담한 모습을 그려냈지만 그건 그녀의 진가를 오히려 가려버렸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과 더불어 ‘간신’에서도 관습적인 역할이 주어지면서 그녀의 이미지는 고정되고 한정되는 듯 보였다. 드라마를 통해 임지연은 그 이미지를 벗어버리려 애썼다. ‘상류사회’, ‘대박’, ‘닥터스’, ‘불어라 미풍아’, ‘웰컴2라이프’, ‘장미맨션’ 등등 다양한 작품에서 액션은 물론이고 코미디, 사극, 청춘물, 스릴러까지 도전했지만 이 초반의 굳어진 이미지의 변신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끝없는 노력과 도전은 ‘더 글로리’의 박연진을 만나면서 결국 성취로 돌아왔다. 학교폭력을 스스럼없이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이 희대의 악역은 드디어 과거의 그 관습적인 이미지를 깨버리고 임지연의 연기자로서의 잠재력을 끄집어냈다. 물론 ‘더 글로리’의 주인공은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문동은(송혜교)이고 그래서 그녀가 하나하나 실행해가는 복수극이 이 작품의 매력이지만, 그 동력을 만든 건 다름 아닌 박연진이라는 악역 캐릭터였다. 그녀를 미워하면 할수록 이 작품의 복수극은 시원해졌고, 그건 또한 임지연에게 덧씌워져 있던 껍질을 벗겨주었다. 대중들은 송혜교만큼 임지연에게도 열광했다. 

 

그리고 이어진 ‘마당이 있는 집’은 드디어 잠재력이 열린 임지연의 가능성들이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걸 보여줬다. 이 작품을 통해 임지연이 만난 추상은이라는 인물은 ‘더 글로리’의 박연진과는 정반대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박연진이 가해자라면 추상은은 피해자이고, 박연진이 분노를 불러일으켰다면 추상은은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지독한 폭력 앞에 덜덜 떨던 이 인물이 드디어 벼랑 끝에서 ‘선택’을 하고 실행을 한 후 빗속에서 덜덜 떨며 보여주는 장면은 거의 접신한 듯한 몰입감을 만들었다. 특히 그 후 이 인물이 보여주는 먹방 장면은 심지어 삶의 허기까지 느껴지는 명장면으로 남았다. 

 

임지연의 이런 행보를 염두에 두고 보면 ‘옥씨부인전’이 작품이 새삼스럽게 보인다. 구덕이라는 노비가 도망쳐 우연히 만난 옥태영이라는 양반집 아씨의 삶을 대신 살게 된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가진 이 사극에서, 임지연은 바로 그 구덕이였다가 옥태영이 된 인물을 연기했다. 노비와 양반으로 나뉘는 반상의 법도가 엄연한 조선사회에서 그 정체를 숨긴 채 양반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인물의 생존기를 그린 작품이지만, 이 작품은 또한 연기와 삶에 대한 통찰이 엿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노비의 삶에서 벗어나 양반집 아씨가 된 옥태영은 그 가짜 신분의 삶에서 오히려 그 진가를 드러낸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항변할 기회조차 없는 민초들을 대변하는 외지부(당대의 변호인) 일을 하게 되면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진짜 양반집 아씨로 살아왔다면 알 수 없었을 민초들의 삶을 옥태영이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진짜가 아닌 가짜의 삶을 선택한 이가 바로 거기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는 아이러니다. 

여기서 들여다 봐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가 하는 점이다. 구덕이라는 노비로서의 삶은 스스로 선택한 삶이 아니다. 그저 주어진 운명에 의해(외부의 힘에 의해) 정해진 삶일 뿐이다. 하지만 옥태영으로서의 삶은 자신이 선택한 삶이다. 그래서 구덕이가 선택하고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옥태영의 삶은 진짜 옥태영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구덕이는 옥태영이라는 자신이 선택한 제2의 삶을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옥씨부인전’이 보여주는 구덕이가 옥태영이라는 인물이 되어 제2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연기자들이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과정과 그리 다르지 않다. 임지연은 박연진도 아니고 추상은도 아니며 그렇다고 구덕이도 또 옥태영도 아니다. 하지만 그 역할을 맡아 임지연은 자신의 안에 숨겨져 있는 박연진, 추상은, 구덕이, 옥태영을 끄집어낸다. 그것이 바로 연기의 세계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특정한 역할이 그 연기자의 진짜 잠재력을 꺼내주기도 한다. 임지연이 소화했던 박연진, 추상은 같은 역할들이 그것이다. 

 

결국 삶에서 중요한 건 진정성이 아닐까. 온전히 나를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저 주어진대로 누군가 원하는대로 휘둘리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보다 나은 삶은 그래서 먼저 진짜 나를 아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옥씨부인전’에서 구덕이가 온전히 옥태영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진가를 찾아낸 것처럼. 또 ‘더 글로리’를 만난 후 진가를 알게 된 임지연처럼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글:국방일보, 사진:JTBC)

옥씨부인전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이라는 사극이 그리는 건 왕이나 장군 같은 영웅이 아니다. 그렇다고 양반 자제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도 아니고, 중인들의 성장드라마도 아니다. 이 사극의 주인공은 구덕이(임지연)라는 노비다. 구더기처럼 살라고 주인이 지어준 이 참혹한 이름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눈앞에서 병든 어미가, 바로 그 병들었다는 이유로 주인의 명에 의해 아버지의 손에 버려지는 걸 봤다. 그리고 그녀 역시 주인인 김낙수(이서환)의 딸 김소혜(하율리)와 혼담이 오가던 송서인(추영우)과 놀아났다는 누명을 뒤집어쓴 채 멍석말이를 당하고 급기야 김낙수의 수청을 들게 되자 그를 해하고 도망 노비의 신세가 된다. 

 

사극이 노비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는 건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그 첫 번째는 역사가 소외시킨 노비들의 삶을 사극이라는 허구적 장치를 통해 조명한다는 의미다. 역사는 노비들이 어떤 처참한 삶을 살아왔는가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고, 또 이름을 남긴 이들도 거의 없다. 왕 같은 권력자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에 허구를 덧대는 장치를 가진 사극은 이처럼 소외됐던 이들을 담기 시작한다. ‘대장금’ 같은 작품이 궁녀이자 의녀의 삶을 재조명했고, ‘추노’가 노비들의 역사를 다시 그렸다. ‘육룡이 나르샤’ 같은 작품은 조선 건국에 이성계나 이방원, 정도전 같은 역사적 인물만이 아니라, 분이나 땅새 무휼 같은 민초들의 역할이 있었다는 ‘육룡’에 그들을 참여시키는 것으로 그려냈다. 마찬가지로 ‘옥씨부인전’은 조선사회에서 소외되고 핍박받았던 구덕이라는 노비의 삶을 따라간다. 

 

노비의 삶을 다루는 사극이 갖는 두 번째 의미는 그것이 현재적 관점에서 우리의 삶과 연결되고 또 공감대를 갖는다는 것이다. 조선이라는 계급 사회 속에서 태생적으로 노비의 삶을 살게 되는 이들의 아픈 이야기는, 현재의 자본으로 계급이 결정되어 살게 된 낮은 서민들의 삶과 공명한다. 그래서 이토록 핍박받는 구덕이가 양반가의 딸 옥태영(손나은)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그녀의 삶을 대신 살게 되는 서사는 지금의 서민들에게도 강력한 흡인력을 갖는다. 비록 거짓이고 가짜의 삶이지만 그렇게라도 다른 신분의 삶을 열망하게 되는 건 모든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현실에서 인지상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옥씨부인전’이 극적 몰입감을 갖는 이유다. 

 

하지만 ‘옥씨부인전’은 그렇게 거짓으로라도 신분의 상승 욕구만을 그려내는 사극은 아니다. 구덕이와 연인 관계로 발전해갈 송서인은 정반대로 양반집 자제에서 벗어나 저잣거리 전기수의 삶을 욕망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기생에게서 난 서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집을 떠나 예인의 삶을 선택한다. 아버지 송병근(허준석)은 그런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송서인은 천승휘라는 예인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구덕이가 노비라는 개돼지보다 못한 삶을 벗어남으로써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으려 한다면, 송서인은 껍데기에 불과한 양반이라는 계급을 벗어버리고 저잣거리로 나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진짜 삶을 찾으려 한다. 결국 ‘옥씨부인전’이 구덕이와 송서인을 통해 그리려는 건, 신분 상승 욕구 같은 것이 아니라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주체적인 삶’이다. 그리고 이건 지금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단한 부귀영화가 아니라 나로써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삶.

 

‘옥씨부인전’의 이 만만찮은 서사는 1542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남편이 뒤바뀐 실제 사기 사건을 판사 장드코라스가 기록한 ‘마르텡게르의 귀환’과 1607년 조선 선조 때 실제 벌어진 가짜 남편 사건을 모티브로 백사 이항복이 쓴 소설 ‘유연전’을 재해석해 탄생했다. 고전이지만 그 사건들이 모두 실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라 그만큼 생생한데다, 이를 또다시 현재적 관점으로 재해석해낸 지점에서 작가의 만만찮은 야심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구덕이 역할에 미친 몰입감을 만들어내는 임지연의 연기가 압권이다. 진짜 노비 그 자체가 된 듯한 임지연의 연기는 사극이 처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보는 이들을 울리고 웃게 만든다. 상대역할로 1인2역을 선보이는 추영우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매력적인 연기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연민’의 감정을 파고들게 만들고 그들을 응원하게 만든다. 이들의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허락해 달라고. (글:일간스포츠, 사진:JTBC)

‘옥씨부인전’, 시작부터 시청자들 뒤흔든 감정의 정체

옥씨부인전

“제 이름은... 구덕입니다. 구더기처럼 살라고 제 주인이 지어 준 이름입니다.”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 구덕이(임지연)는 이름을 묻는 옥태영(손나은)에게 그렇게 말한다. 구덕이. 사람 이름을 어찌 구더기라 지을까. 그것도 구더기처럼 살라고. 하지만 이건 ‘옥씨부인전’이 그리는 조선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서사의 현실이다. 노비들의 이름을 그러했다. 구덕이의 아버지는 개죽이(이상희)였고, 송서인(추영우)의 몸종도 쇠똥이(이재원)였다. 구더기, 개죽, 쇠똥 같은 미천한 존재들. 심지어 ‘몸종’이라 불리던 그들의 이름이다. 

 

‘옥씨부인전’은 바로 그 역사의 기록 따위는 남아 있지 않은 채 구더기처럼 때론 개죽처럼 길가에 널린 쇠똥처럼 살다간 이들의 기록이다. 어쩌다 운명에 이끌려 옥태영의 삶을 대신 살게 된 구덕이가 자신을 추적하는 추노꾼들을 피해 살면서도 자신 같은 억울한 처지에 놓인 힘없는 민초들의 편에 서서 그 입장을 대변해주는 외지부(변호사)로 활약하는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진짜 자신이 아니라 옥태영이라는 가면을 쓰고 하는 삶이고, 따라서 진짜 자신의 삶을 애써 찾아가는 이야기가 그려질 참이다. 

 

그런 구덕이의 진가를 알아보고 첫 눈에 큰 깨달음과 더불어 사랑에 빠지는 송서인(추영우)의 처지도 만만찮다. 명문 송 대감댁 맏아들인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기녀에게서 태어난 서자였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며 길 떠나는 길동이처럼 집을 나선 송서인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가 있던 기방에 갔다가 그 곳에서 예인의 길에 들어선다. 자기도 모르게 예인들의 소리와 춤을 좋아했던 그였지만 그가 예인이 되기로 작심한 건 다름아닌 구덕이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사는 게 힘드니까요. 이런 걸 보는 동안에 한 시름 잊는 겁니다. 눈먼 아비가 어미도 없이 젖동냥으로 키운 심청이가 왕비마마가 되다니요. 현실에서 가당키나 합니까?” 멀찍이 심청전 한 마당을 내려다보며 소리가 별로니 품평이나 하는 그에게 구덕이는 그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그냥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이야기가 좋은 겁니다. 우리한테는 오지 않을 행복한 날들을 상상하면서 대리만족 하는 게지요.” 그 때 송서인은 알게 된다. 하루하루 수고한 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잠시나마 시름을 잊게 해주는 것이 예인들이 가진 힘이라는 것을. 

 

직접 소설을 쓰고 그걸 춤과 연기를 곁들여 전하는 전기수로서 유명해졌지만 그가 예인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안 송대감(허준석)은 집안을 욕보인다며 질책한다. 그래서 그는 송서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대신 천승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구덕이도 송서인도 자신의 이름 석자를 갖고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다. 구덕이는 옥태영이라는 이름을 갖고 평생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린 채 살아가야하고, 송서인 역시 천승휘라는 이름으로 얼굴을 가린 채 살아간다. 

 

두 개의 이름. 진짜와 가짜. 무대 밖의 삶과 무대 위의 삶. ‘옥씨부인전’은 조선사회라는 배경을 끄집어와 이 양자를 뒤엎는다. 구덕이와 송서인의 삶이 태생적으로 정해진 운명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처절한 진짜 삶이고 현실이라면, 옥태영과 천승휘의 삶은 비록 가짜지만 그걸 뒤집고 그 운명과 맞서는 삶이다. 그들은 모두 그래서 각자의 무대 위에 오른다. 타인의 삶을 연기한다. 그런데 그 연기하는 삶은 그대로 그들의 삶이 되어간다. 참으로 전복적인 서사가 아닐 수 없다. 

 

‘옥씨부인전’은 1542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남편이 뒤바뀐 실제 사기 사건을 판사 장드코라스가 기록한 ‘마르팅게르의 귀환’과, 1607년 조선 선조 때 실제 벌어진 가짜 남편 사건을 모티브로 백사 이항복이 쓴 소설 ‘유연전’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시대가 다르고 공간이 달라도 사람 사는 이야기는 어찌 이리 다르지 않을까. 그런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이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토록 가슴을 후벼파는 감정의 파고가 느껴지니 말이다. 

 

노비와 양반으로 나뉘어져 노비들은 개돼지처럼 살다 죽어야 하고 양반들은 그 위에 군림하는 사회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현재에도 고스란히 울림을 준다. 그건 우리가 사는 삶이 반상으로 나뉘어진 계급사회는 아니지만, 여전히 가진 자들과 못 가진 자들의 삶이 태생적으로 정해져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 속에 있어서다. 그래서 구덕이와 송서인에게서는 지금의 아픈 현실 앞에 서 있는 이름 모를 낮은 자들의 얼굴들이 겹쳐진다. 때로는 억울하게 죽어가면서도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네 가슴을 뜨겁게 하는 건 뭐냐? 그래그래 네 꿈은 무엇이냐?” 송서인이 물었을 때 구덕이가 하는 말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꿈.. 아 제 꿈은 늙어 죽는 것입니다. 맞아 죽거나 굶어 죽지 않고 곱게 늙어 죽는 것이요. 발목이 잘리거나 머리채가 잘리지 않고.. 그저 사는 것이요.” 그렇다. 이들의 꿈은 대단한 성공도 아니고 부귀영화도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늙어 죽는 것이다. 이것 역시 현재의 우리들이 꾸는 꿈이 아니던가. 

 

그래서 ‘옥씨부인전’이 주는 위로와 공감은 크다. 사극의 틀을 갖고 반상이 나뉘어진 조선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들의 아픔과 행복과 위로가 공감된다. 연기 잘 하는 건 이미 ‘더 글로리’, ‘마당이 있는 집’을 통해 확실히 알고 있었지만 거의 작두를 탄 듯 그 연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임지연과 ‘오아시스’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이토록 멋진 조선 사내의 모습으로 돌아온 추영우는 물론이고 다른 사극이었다면 장삼이사로 나왔다 사라지곤 했을 막심, 도끼, 백이 같은 인물에도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김재화, 오대환, 윤서아에게도 ‘예인들의 힘’이 느껴진다. 이제 막 시작한 드라마지만 기분좋게 심상찮다. (사진:JTBC)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