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시대, 채널은 백화점보다 전문점이 되어야 산다

 

새롭게 방영되고 있는 OCN 토일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은 겨우 2%대 시청률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이 드라마가 대중들의 보편적인 선택을 받고 있다 말하긴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의 거짓말>은 미스터리한 사건들과 스릴러가 엮여져 있어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이야기를 놓치기 십상인 드라마다. 이건 기존 TV 시대의 드라마 시청 패턴과는 다르다. 차라리 영화에 가까운 몰입을 요구하는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이라는 모호한 제목은 도대체 드라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알아채기가 어렵다. 한 저명한 정치인이 사고로 위장된 채 죽음을 맞이했고, 그 사위가 실종되었다. 그 죽은 정치인의 딸이자 실종된 자의 아내인 김서희(이유영)는 남편을 살리고 싶다면 아버지를 대신해 국회의원이 되라는 협박메시지를 받고 원치 않은 선거에 나서게 된다.

 

한가롭게 시골로 내려가 지내려던 조태식(이민기)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경위는 처음에는 이 사건을 귀찮아 하다가 점점 모든 게 거짓으로 위장되어 있다는 의심을 품으며 사건 깊숙이 들어간다. 실종된 김서희의 남편과 사망한 그의 아버지가 사건을 당하기 전 함께 호텔에 묵으며 무언가를 계획했었고, 그들의 사건에 정치적 적들이 개입되었을 거라는 심증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시청자들은 궁금해진다. 도대체 무슨 사건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이 드라마는 그 사건으로 무얼 얘기하려는 걸까.

 

<모두의 거짓말>은 이제 하나의 패턴이 되어 어느 정도의 고정적인 시청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이른바 OCN표 드라마의 색깔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OCN드라마는 대부분이 스릴러와 추리가 더해진 장르물들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OCN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으로 ‘무비 드라마’를 시도해왔고, 최근에는 ‘드라마틱 시네마’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걸기 시작했다.

 

최근 종영한 <타인은 지옥이다>나 <트랩>이 ‘드라마틱 시네마’라는 타이틀로 방영된 드라마들이다. 3번째 드라마틱 시네마는 <번외수사>라는 작품으로 역시 OCN이 추구하는 스릴러 장르가 이어질 전망이다. 과연 이게 드라마가 맞아 하는 질문이 나올 정도로 유혈이 낭자하고 잔인한 장면들이 쏟아져 나오며, 그래서 때론 19금을 거는 일이 잦기는 하지만 바로 그래서 OCN은 채널의 색깔을 분명하게 만들었다.

 

시즌제로 만들어진 <보이스>나 <구해줘> 같은 드라마는 그래서 미처 어디서 하는 드라마인지 확인하지 않고도 딱 OCN표 드라마라는 걸 시청자들이 어느 정도 인지하게 됐다. 다소 잔인하고 자극적인 스릴러와 장르물이지만 영화에 가까울 정도로 연출이나 대본에 있어 완성도가 높고 게다가 죽고 죽이는 이야기 속에 저마다의 선명한 메시지도 담겨 있다.

 

넷플릭스 같은 거대 공룡들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경험한 시청자들이라면 OCN표 스릴러가 저 해외의 스릴러들과 비교해 전혀 빠지지 않는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예를 들어 <손 더 게스트> 같은 작품은 미드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토속적이지만 해외에서도 보편적으로 통할 한국적 스릴러의 맛을 보여준다. <타인은 지옥이다> 같은 작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항간에는 이제 막 열리고 있는 OTT 시장으로 채널들이 전반적인 위기상황을 맞고 있지만 OCN만큼은 여기서 빗겨나 있다 말하기도 한다.

 

OTT 시장이 열리는 상황에 채널들이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보면, OCN이라는 채널이 하나의 답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제 백화점식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채널이 차려놓고 모든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끌어 모으겠다는 건 점점 무모한 전략이 되어가고 있다. 대신 한 가지에 충실한 전문점들이 콘텐츠 맛집으로 세워질 때 오히려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OCN표 드라마는 향후 채널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한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사진:OCN)

‘트랩’의 묵직한 질문, 당신은 사냥감의 삶을 살아가는가

“너넨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 아니? 남조선은 하나의 커다란 사냥터고, 너는 그냥 사육되는 사냥감에 불과하다.” OCN 드라마 <트랩>에서 한 조선족 출신 청부살인자는 자신을 붙잡아둔 형사들에게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 속에 살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외부인’인 그의 시선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보이더라는 것. 그리고 이건 아마도 이 드라마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려는 한국이라는 지옥도의 풍경일 게다. 


<트랩>은 그 제목처럼 덫에 대한 이야기고 사냥에 대한 이야기다. 거기에는 사냥꾼이 있고 사냥감이 있으며 미끼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사냥꾼이고 누가 사냥감이며 미끼는 또 누구인가. 처음 드라마는 그 사냥감이 바로 국민앵커로까지 불리는 유명 언론인이자 이제는 정치를 하려는 강우현(이서진)인 것처럼 보여준다. 어느 날 산장에 가족이 함께 갔다가 알 수 없는 사냥꾼들에게 ‘토끼몰이’를 당했다는 것. 아이는 사체로 발견되고 아내는 실종되었으며 강우현 또한 온 몸에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구조된다. 

하지만 이건 일종의 트릭이었다. 그 사건은 강우현의 진술 내용을 보여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는 강우현이라는 인물의 말대로 그가 피해자라는 걸 믿게 만들어놓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그것이 모두 그의 자작극이었다는 사실을 소름끼치는 반전으로 드러내준다. 강우현은 사이코패스였고, 대한민국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아내 신연수(서영희)마저 이용하다 결국 죽였으며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아이까지 죽이며 자작극을 벌였던 것. 

여기서 중요한 건 그 권력자들이 대한민국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가 하는 점이다. 그들은 우리 사회를 커다란 사냥터로 만들고 보통 사람들을 사육시키며 필요에 따라 사냥감이 되는 걸 그저 버티며 살아가게 만드는 그런 인물들이다. 강우현은 피해자가 아니라 바로 그들 같은 사냥꾼의 삶을 선택한 사이코패스다. 놀라운 건 이 인물은 저 친일파의 자손을 위시해 공고한 권력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조폭과 정치인과 경제인 의사 그리고 법조인들보다 더 영악하다는 점이다. 

권력의 카르텔의 얼굴마담 격으로 세워졌던 기업인 홍원태(오륭)를 왜 강우현으로 교체해야만 하느냐는 친일파 3세(이시훈)의 질문에 카르텔의 머리격인 김의원(변희봉)은 그가 이미 그 자격을 충분히 증명했다며 이렇게 말한다. “한 개인이 단 한 건의 사건으로 대한민국 전체를 덫으로 몰아넣었죠. 정의, 신뢰, 동정, 연민이란 우리가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아주 교묘한 미끼로 말이죠. 그만한 사냥꾼이 어디 있겠습니까?”

실제로 강우현은 정치 행보를 본격화하며 나선 TV토론에서 정의를 묻는 질문에 자신이 사지로 몰아넣은 프로파일러 윤서영의 절규어린 이야기를 그대로 이용하며 그 뱀의 혀로 대중들을 설득시킨다. “그렇게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힘들어야 되는 거냐구요 왜?” 항상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힘들게 살아가야 되는 현실을 개탄했던 윤서영의 그런 질문을 교묘하게 강우현이 대중들을 격동시키는 소재로 이용하는 것. 그는 말한다.

“제 정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입니다. 작전정당이냐구요? 작전 필요하면 하겠습니다. 언론인 출신이 사실과 진실을 호도한다구요? 네 저 언론인 출신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인입니다. 전 앞으로도 제 일에 모든 감정을 쏟아서 할 예정입니다. 국민들의 분노, 좌절, 슬픔, 고통 제가 다 안고 가겠습니다. 옳은 일을 위해서 싸우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게 것. 이게 제가 생각하는 정의에 대한 정의입니다.” 그리고 그의 TV 토론을 보던 친일파 재벌은 “새 시대 백년반도의 왕이 나왔구나!”하고 강우현의 언변을 경탄한다. 

<트랩>의 엔딩은 속 시원한 사이다가 아니다. 물론 고동국(성동일) 형사가 저 권력의 사냥꾼들과 강우현을 대결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권력자들을 제거하며 강우현은 ‘트랩’이라는 탄저균에 중독시켜 해독제를 찾아 나서게 만드는 복수를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이 드라마를 통해 봐온 커다란 사냥터가 된 우리네 사회의 진면목이 주는 씁쓸함과 끔찍함을 지워내지는 못해주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이 드라마를 통해 중대한 질문 하나를 화두처럼 갖게 됐다. 과연 나는 누군가의 사냥감이 아닌 나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도처에 숨어 있는 권력의 사냥꾼들이 헌팅그라운드를 조성하고 그 안에서 미끼에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늘 힘들지만 문제의 근원을 찾기 보다는 그냥 원래 사는 게 그렇다며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누군가 던져주는 거짓 희망이라는 미끼에 휘둘리는 건 아닌가. 

제 혀를 잘라 뱀의 혀로 만들어 놓고 끔찍하게 웃는 강우현이라는 인물의 거짓말은 그래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평범한 서민들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많아서 그 답을 일일이 찾을 시간이 없다고. 먹고 자고 그저 버티면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믿으면서 그저 견디는 수밖에 없다고.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버티고 견디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어쩌면 저들은 거짓희망을 얘기하면서 평범한 서민들은 늘 그렇게 사냥감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트랩>의 강우현의 실체가 더더욱 소름끼치게 다가온 건 그래서다.(사진:OCN)


‘트랩’, 이서진은 ‘예능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최근 들어 이서진 하면 먼저 드라마나 영화 같은 작품보다는 예능 프로그램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이서진은 2003년 방영됐던 <다모>로 스타덤에 오른 후 지금껏 연기를 쉰 적은 없었다. 2007년 <이산>, 2011년 <계백> 같은 대작 사극에 출연했었고, 2014년에는 <참 좋은 시절>로 KBS 주말극에 등장하기도 했다. 2016년 <결혼계약>으로 MBC 연기대상에서 특별기획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기도 했으며, 특히 지난해 그가 출연했던 영화 <완벽한 타인>은 500만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서진 하면 예능이 먼저 떠오르게 된 건 이른바 ‘나영석 사단’으로 불리며 출연해왔던 일련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모두 대박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과거 <1박2일>에서 나영석 PD와 맺은 인연이 이어져,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윤식당> 시리즈로 이서진은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했다. 특유의 툴툴대면서도 할 건 또 제대로 다 하는 그의 캐릭터는 나영석 사단의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을 늘 미소 짓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완벽한 타인>에 이어 OCN 주말드라마 <트랩>으로 돌아왔다. <완벽한 타인>이야 코미디물인데다가 원 톱이 아니라 유해진, 조진웅, 염정아, 김지수, 송하윤, 윤경호 등등 여러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 것이니 이서진에게 큰 부담은 아니었을 게다. 하지만 본격 스릴러 장르물인 <트랩>은 다르다. 이 7부작 무비드라마에서 이서진은 작품의 중심이 되는 중대한 역할을 맡았다. 

국민앵커로 불리며 사직한 후에도 대중과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 강우현이 바로 이서진이 해내야 하는 역할. 드라마는 그가 아내 신연수(서영희)와 아들 강시우(오한결)와 함께 어느 산장에 가게 되면서 의문의 사냥꾼들에게 ‘토끼몰이 사냥’을 당하게 되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아내와 아이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온몸에 부상을 당한 채 병원에 실려 온 강우현은 자신이 산에서 겪었던 일들을 힘겹게 털어놓지만 동시에 그 충격으로 인한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흥미로운 건 강우현이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공수특전여단에서 장교로 복무한 인물. 강우현을 덫에 빠뜨린 산장지기 마스터 윤(윤경호)을 오히려 공격하며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의 만만찮은 반격이 이어질 거라는 걸 예감케 했다. 실제로 그는 아내와 아들을 붙잡고 있는 사냥꾼들과 석궁과 총 그리고 맨주먹으로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트랩>이 제목에 담아놓은 ‘덫’은 산장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냥만을 의미하는 건 아닌 듯 보인다. 어딘가 의심스러운 주변인물들이 하나 둘 등장하면서 그를 둘러싼 숨겨진 거대한 덫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가 운영하는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최대투자자인 홍원태(오륭)가 그렇고, 비서지만 어딘지 숨기는 구석이 있어 보이는 김시현(이주빈)이 그렇다. 심지어 아내 신연수도 어딘가 의심스러운 느낌을 준다. 국민 앵커라는 위치가 만들어냈을 것으로 보이는 위협요소들이 강우현을 둘러싼 덫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어딘지 부드럽고 신뢰가 가는 인물이었다가 하루아침에 덫에 걸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물로의 변신을 이서진은 연기해야 한다. 투박하게 이어지는 액션과 가족을 잃고 절규하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절박함 같은 감정들은 결코 쉬운 연기라 보긴 어렵지만 이서진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정도의 연기 도전이어야 우리가 늘 이서진하면 떠올리던 예능의 잔상을 떨쳐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이서진에게 어찌 보면 예능의 덫(?)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안간힘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과연 이서진은 이 도전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1999년 데뷔한 이서진이 예능과 연기 사이의 시험대에 올랐다.(사진:OCN)


<치인트>, 그 어떤 멜로보다 공감 큰 까닭

 

저것은 치즈일까 트랩일까. 아마도 사랑이든 현실이든 첫 발을 내딛는 청춘들에게는 그것이 치즈처럼도 보이고 트랩처럼도 보이기 마련이 아닐까. tvN <치즈 인 더 트랩>이라는 드라마의 제목은 이 청춘들의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의 두 가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한 것일 게다. 홍설(김고은)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선배 유정(박해진)이나, 가난한 형편에 어떻게든 장학금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하는 학업, 그리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는 갖가지 아르바이트가 모두 말 그대로 덫 속에 놓인 치즈로 보일 테니.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꿀 알바로 알려진 대학원 조교실 일자리는 그녀의 생각과는 영 다르다. 일찍 출근해도 또 조금 늦게 출근해도 뭐라고 하고, 커피를 타와도 안타와도 뭐라 하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조교는 쉬워 보여 치즈 같던 이 일자리 속에 놓여진 트랩이다. 어느 날 갑자기 집까지 바래다 주던 유정이 사귀자고 한 그 말은 그녀에게 달콤한 치즈처럼 그녀를 설레게 하지만, 그 후로 어쩐 일인지 연락을 하지 않는 그의 냉담한 모습은 그녀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를 믿지 말라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나, 그녀가 위험에 처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도 그냥 무시했다는 주연(차주영)의 거짓말은 유정이 혹시 덫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강교수(황석정)가 낸 팀 과제에서 팀원들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혼자 밤을 새워가며 과제를 모두 한 홍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팀원들 때문에 공동책임으로 D를 맞게 되자 혼란스러워진다. 강교수를 찾아가 사정을 해보지만, 그녀는 사회생활에서는 힘들어도 팀과 함께 해나가는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 예외는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만일 학교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온전한 교육의 장이라면 강교수의 예외 없는 교육방식이 옳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홍설에게 학교생활은 학점을 잘 받아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현실로 다가온다. 교육적 효과를 위해 잘못한 일도 없이 낮은 학점을 받고 그렇게 되면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러니라니.

 

<치즈 인 더 트랩>은 우리가 봐왔던 청춘 멜로의 전형적 구조를 갖고 있지만, 그 안에서 다뤄지는 이야기의 질감이 그리 가벼운 건 아니다. 거기에는 지금의 청춘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깔려 있고, 그 기반 위에 달콤한 그들만의 사랑 이야기가 얹어져 있다. 사랑은 치즈처럼 달콤하지만 현실은 그들에겐 덫처럼 위험하기 이를 데 없다.

 

막상 홍설이 유정과 사귀기로 하고 첫 데이트를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과 와인을 척척 시켜먹는 유정이 그녀는 낯설다. 심지어 차로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내려서 차문을 열어주는 유정의 모습 앞에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한다. 늘 덫 같은 현실 속에서 함부로 대해져왔던 그녀는 당황한다. 그녀에게 유정은 그래서 그 현실과 동일시되는 인물이다. 그토록 차갑게 느껴지고, 심지어 두렵게까지 여겨지던 유정이 아닌가. 그런 그가 자신 앞에서 달콤한 미소를 보낸다니.

 

멜로와 현실의 세계는 종종 병치된다. 예를 들어 멜로 속 백마 탄 왕자님은 넘을 수 없는 빈부 격차의 현실을 판타지로 보여주는 캐릭터다. 하지만 유정이란 백마 탄 왕자님은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멜로드라마 속의 그 판타지와는 사뭇 다르다. 과거 멜로 속 왕자님들이 잘 살아도 사실은 착한 존재로 판타지화되었다면, 유정은 종을 잡을 수가 없다. 때론 달콤해서 설레게 만들지만 냉랭한 이성으로 돌아가면 두려울 정도의 차가움을 보여준다.

 

유정이란 존재는 그래서 이 시대의 사랑의 실체를 보여주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행복한 판타지와 냉정한 현실을 동시에 품고 있는 지금의 세상을 표징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사랑도 학업도 일도 현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우리 시대에 청춘들은 그것들이 모두 치즈처럼도 보이지만 동시에 트랩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비슷해져버린 두려움과 설렘 사이에서 그 감정을 종잡을 수 없어 당황해한다.

 

실로 사랑과 현실을 이렇게 제대로 엮어 보여주는 멜로드라마는 결코 흔치 않다. <치즈 인 더 트랩>이라는 드라마의 인기가 김고은이나 박해진 같은 단지 멋진 배우들의 호연과 이윤정 PD 같은 베테랑 연출자의 감성적인 연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 이 드라마가 사랑에 있어서도 현실에 있어서도 지금의 청춘들(아마도 중년들까지)에게 주는 공감은 그 어떤 것보다 크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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