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우파', 오징어 게임 판에서도 이들은 모두 우승자였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종영했다. 최종 우승은 홀리뱅 크루. 2위는 훅 크루에게 돌아갔다. Mnet 서바이벌 오디션으로서 오랜만에 마지막 회까지 집중하게 한 프로그램이었지만, 그건 누가 우승을 할 것인가가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들의 멋진 무대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픈 마음이 컸다. 그 무대에서는 멋진 춤이 있고, 춤을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가 있고, 치열하지만 그 경쟁마저 무화시키는 애티튜드와 그 어떤 강연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인사이트 가득한 명언들이 쏟아졌으니 말이다. 최근 2년 넘게 고개를 숙였던 Mnet을 화제의 중심에 놓게 해준 <스트릿 우먼 파이터>. 하지만 그 공은 온전히 댄서들에 있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도 그 시작은 여타의 Mnet 오디션 서바이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등장부터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이기려는 크루들의 노골적인 욕망들의 부딪침을 보기 불편할 정도로 각을 세웠다. 미션 자체가 그랬다. 첫 번째 미션이 ‘약자 지목 배틀’이었다. 걸 그룹 출신이라는 이유로 원트의 이채연은 다른 크루들이 물어뜯는 먹잇감으로 연출되었다. 같은 팀에서 활동하다 갈라져 골이 생긴 홀리뱅의 허니제이와 코카앤버터 리헤이의 대결을 세웠고, 라치카 가비와 훅 아이키의 대결은 환불원정대의 안무를 두고 이들이 벌였던 대결을 끌어들여 각을 세웠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정복과 굴욕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면서 제작진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일종의 ‘오징어 게임’이라는 걸 강조했다. 이미 <언프리티 랩스타> 같은 서바이벌 오디션을 통해 보여주곤 했던 자극적인 경쟁구도를 내세웠고, 판정이 나는 순간에 여지없이 인터뷰 목소리로 들어간 양자에게서 자신들이 반드시 이긴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보기 불편한 지점까지 끌고 올라가는 대결구도는 Mnet이 과거 <슈퍼스타K> 시즌3에서 ‘악마의 편집’이라고까지 불리게 됐던 그 자극점을 재연해 보여줬다. 

 

하지만 이 ‘오징어 게임’ 판을 명승부의 무대로 바꾼 건 다름 아닌 댄서들이었다. 허니제이와 리헤이의 살벌하기까지 했던 댄스 배틀은, 승부가 끝난 후 허니제이가 본인이 패배했으면서도 양팔을 벌려 리헤이를 안아주는 모습으로 한편의 드라마를 썼다. 그 순간 서로 자신들이 훨씬 낫다고 주장하고,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하겠다고 한 이들의 욕망은 절실함으로 바뀌었고, 승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상대에 대한 예우라는 걸 보여줬다. 

 

그래서 이기기 위해 무대 위에서 바지를 벗기까지 했던 가비는 프로그램 시작점에서는 최고의 빌런이 될 것처럼 보였지만 갈수록 그 승부욕이 하나의 캐릭터가 되었고, 유튜브를 통해 가비의 다른 모습들을 발견한 시청자들은 승부의 세계에서 이기고픈 욕망을 끝까지 드러내지만, 그 바깥에서는 상대방을 리스펙트하는 그의 솔직함에 매료됐다. 

 

제작진이 첫 회에서부터 프라우드먼의 모니카나 립제이를 다른 크루들의 ‘선생님’ 격이라고 내세운 후, 마치 사제 간의 대결처럼 무대를 몰아간 부분도 전형적인 Mnet 서바이벌 오디션의 자극적인 선택 중 하나였다. 승부에서는 위아래도 없다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댄서들 특히 모니카 같은 선배들이 오히려 나이를 뛰어넘어 후배들을 예우하는 모습으로 명승부를 이끌어냈다. 오히려 승부에서 나이와 서열 따지는 기성세대의 치졸한 면모들을 여지없이 깨버리는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제작진들이 던진 미션들 중에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취지와 맞지 않는 것들도 존재했다. 이를 테면 ‘메인 댄서 선발전’은 대놓고 이 댄서들이 가수들 뒤에 서서 잘 드러나지 않던 그 존재감을 대결의 화력으로 활용했고, 메가크루 미션에서는 이른바 ‘연예인 지인 찬스’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맨 오브 우먼’ 미션도 자칫 그 중심에 다시 남성을 세울 수도 있는 문제의 소지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 때마다 댄서들은 제작진이 내놓은 오징어 게임을 명승부로 되돌려 놓는 선택들을 보여줬다. ‘메인 댄서 선발전’에서는 선발 과정까지 치열했지만 함께 할 때는 척척 맞아 돌아가는 합을 보여줬고, 메가크루 미션에서의 ‘연예인 지인 찬스’에 대해서는 모니카가 “자존심도 없냐”는 일갈로 상황을 반전시켰다. 또 ‘맨 오브 우먼’ 미션에서 댄서들은 남녀의 성을 뒤바꿔 놓거나, 성을 무화시켜버리는 의상을 입고, 박재범 같은 연예인을 데려와서도 그저 크루의 한 부분처럼 활용하는 방식으로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잘 모르겠고 우리가 제일 잘했고 제일 멋있었어. 그럼 된 거야!” 파이널 무대에서 아쉽게 3등에 그친 라치카의 가비는 그렇게 외쳤다. 최종 우승자에서 멀어졌지만 그들은 이미 우승자였다. 최종 우승자가 된 홀리뱅의 허니제이는 우승소감으로 한국의 댄서들 전부를 상찬했다. “대한민국 댄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다”며 “이미 멋있기 때문에 자부심 가져도 된다”고 한 것. 2등에 그친 훅의 아이키는 “스우파 댄서들 XX 멋있다!”고 모든 댄서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들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의 성취가 자신들이 아닌 한국의 댄서 전체의 성취라고 강변하고 있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열풍을 불러온 것은 어찌 보면 그 살벌한 생존경쟁의 무대는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과 같았지만 그와는 정반대의 드라마를 써낸 댄서들이 있어서다. 이 과정이 감동적이었던 건 우리 모두 어쩌면 비슷한 저마다의 오징어 게임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고, 그 속에서 그 현실을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승부에 뛰어들고 욕망을 드러내고 그것을 실현시키려 노력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또 그렇게 승패가 갈린 후 그러한 경쟁의 판 자체를 무화시키는 상대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세상은 생존경쟁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고 그래서 생존과 동시에 이기고픈 욕망이 만들어지지만, 그럼에도 다 함께 이기는 경쟁을 향해 나간 댄서들이 있어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빛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모두 우승자였다.(사진:Mnet)

‘팬텀싱어2’, 파이널 경쟁보다 돋보였던 화합의 풍경

JTBC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2>의 최종 우승은 강형호, 조민규, 고우림, 배두훈의 포레스텔라팀에게 돌아갔다. 정필립, 박강현, 김주택, 한태인의 미라클라스팀은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고 조형균, 안세권, 이충주, 김동현의 에델 라인클랑팀이 3위를 차지했다. 

'팬텀싱어2(사진출처:JTBC)'

이번 <팬텀싱어2>의 파이널 무대의 최종 우승자는 100% 문자투표로 인해 결정됐다. 2차에 걸쳐 치러진 결승전에서 1차전은 심사위원과 관객의 점수를 합산해 순위가 결정되었고, 2차전은 온전히 100% 문자투표로 진행됐다는 건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특히 시청자들의 판단에 더 무게중심을 두었다는 걸 말해준다. 

그래서 파이널 무대에서는 프로듀서들이 할 일이 거의 없었다. MC인 전현무는 그래서 “편안히 즐기시면 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실제로 프로듀서들은 무대를 즐기며 때론 폭풍눈물을 쏟아내기도 했고, 기립박수를 치기도 하는 등 관객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시간을 보냈다. 

이처럼 프로듀서들이 파이널에서 당락 결정에서 빠져 있는 건, 그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하는 역할을 명확히 보여줬다. 각각으로 모인 이들이 듀엣이 되고 트리오가 되며 그리고 궁극적으로 4중창단이 되어가는 그 과정에서 최적의 하모니를 구성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다. 그러니 세 팀 모두 그들에게는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우승자 자리를 차지하든 사실상 모두가 완전체라 여겨질 만큼.

포레스텔라가 결국 최종 우승을 하게 된 건 그래서 그 파이널 무대에서 월등했다는 걸 뜻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실력이 다른 경쟁팀과 비교해 남달랐다는 걸 의미하는 것도 아닐 게다. 문자투표는 그것보다는 그간 프로그램 속에서 이들이 걸어왔던 과정들과 그로 인해 생겨난 저마다의 팬덤이 더 크게 좌우할 수밖에 없다. 

포레스텔라가 더 많은 팬덤을 가져갈 수 있었고, 그래서 최종우승을 할 수 있었다는 건 시청자들이 이번 시즌에서 이 프로그램에 요구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잘 말해준다. 물론 객관적인 실력으로는(물론 이들의 실력을 순위로 나누긴 어렵지만) 미라클라스나 에델 라인클랑 그 누구도 빠지지 않는다. 다만 크로스오버라는 <팬텀싱어>만의 특징 속에서 이미 시즌1을 경험했던 시청자들은 좀 더 새로운 무대를 더 희구했다고 볼 수 있다. 

포레스텔라가 우승을 했지만 이날 파이널 무대에서 미라클라스가 두 번째 무대에서 부른 ‘필링스’는 큰 감동을 주었다. 그것은 하모니가 주는 감동은 물론이고, 그 노래가 가진 가사의 의미들이 이 프로그램의 파이널 무대와 공명하며 만들어낸 울림이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이별을 아쉬워하며 거기서 삶의 의미까지를 얘기하는 이 노래는 그래서 파이널 무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으로 남았다. 

3위에 그쳤지만 에델 라인클랑이 부른 ‘Senza parole’ 역시 그간 아껴뒀던 비장의 무기인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김동현의 목소리가 돋보이는 이 곡에 안세권의 폭풍성량과 조형균의 피를 토하듯 불러내는 고음 그리고 감성 가득한 이충주의 목소리가 더해져 마지막 하나의 하모니로 묶여지는 그 순간은 전율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 현장에서 본 파이널 무대에서, 이러한 극강의 하모니 무대보다, 또 누가 우승자인가로 가려지는 그 순간보다 더 강렬하게 필자를 뭉클하게 한 풍경은 다른 것이었다. 마지막 최종결정을 하기 위해 세 팀이 한 무대에 올랐을 때 최종 우승자 발표 직전 ‘광고’가 흘러나올 때 무대 위에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세 팀이 누가 팀이랄 것도 없이 서로 다가가 마지막 무대를 수고했다면 껴안아주고 격려하는 풍경. 그 풍경을 바라보던 현장의 관객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아마도 그것이 <팬텀싱어2>가 보여준 최고의 하모니가 아니었을까. 누가 우승자가 되는 것이 무에 그리 중요한 일일까. 그것보다는 서로 경쟁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상생시켰던 그들이, 또 경쟁을 떠나 모두가 형제가 되어버린 그 시간들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으로 수고했다 격려해주는 그들 모두가 위너라는 걸 그 한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시즌은 끝났어도 이 세 팀이 또 이번 시즌을 통해 발견됐던 많은 좋은 싱어들이 다른 무대에서도 계속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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