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의 늪에 빠진 ‘부암동 복수자들’, 초반 기세 어디 갔나

tvN 수목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은 그 시작이 좋았다. 첫 회에 2.9%(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한데 이어 2회에는 4.6%로 반등한 건 이 드라마의 초반 기세가 만만찮았다는 걸 말해준다. 그것도 tvN이 주중드라마 9시 30분이라는 새로운 편성시간을 세우고 월화에 이어 수목에도 편성한 첫 타자가 거둔 승기라는 점에서 <부암동 복수자들>의 선전은 큰 의미가 있었다. 

'부암동 복수자들(사진출처:tvN)'

이렇게 된 건 이른바 ‘복자클럽’으로 모인 4인방의 면면이 현실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재벌가의 딸이지만 남편이 외도로 가진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들어오는 아픔을 겪은 정혜(이요원), 교수의 아내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을 일삼는 맞는 여자 미숙(명세빈), 시장통에서 생선가게를 하며 살아가면서 가진 이들의 갑질을 버텨내는 도희(라미란) 그리고 정혜가 사는 집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그렇게 자기를 이용하려고만 하는 아버지에게 복수하려는 수겸(준). 불륜과 가정폭력, 갑질 그리고 잘못된 어른들이라는 현실의 문제들을 담은 4인방 캐릭터가 모여 연대하고 복수를 꿈꾸는 이야기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부암동 복수자들>은 이렇게 복자클럽 4인방이 뭉치게 된 이후부터 이야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어떤 패턴을 반복하는 느낌이다. 그 패턴은 이렇다. 공분을 일으키는 인물들, 이를테면 교장 홍상만(김형일)이나 교육감 선거에 나선 백영표(정석용) 그리고 이들과 공조하는 이병수(최병모)가 어떤 일들을 도모하면 복자클럽이 그 일을 방해하거나 혹은 망치거나 하는 식으로 ‘소극적인 복수’를 한다. 그 과정에서 복자클럽의 정혜, 미숙, 도희는 남다른 우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이 클럽의 존재가 누군가에 의해 미행당하고 남편들에게 밝혀질 위기에 놓인다. 물론 그런 위기로 끝난 상황 때문에 다음 회를 들여다보면 의외로 별 문제없이 위기를 넘기지만.

이 패턴이 3회 가까이 반복되면서 초반 드라마가 주었던 큰 기대감은 한 풀 꺾일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가 무언가 다채롭지 못하고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뱅뱅 돌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복자클럽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는 과정도 너무 지지부진하고, 사실상 그렇게 드러난다고 해도 이 클럽이 그간 해온 복수의 양태가 그리 대단하다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위기감 역시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된 건 복수의 대상들이 보여주는 공분의 행태가 가진 무게감에 비해, 이를 응징하는 복자클럽의 복수방식이 너무 소극적으로 다뤄지기 때문이다. 중심을 치고 들어가지 못하고 대산 변죽만 울리는 것 같은 복수들의 연속. 즉 상대방의 행사를 방해하거나 혹은 굴욕을 주거나 하는 방식은 그들이 해온 공분의 행태를 근본적으로 꺾는 복수방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본격적인 전면전이 시작이 되어야 이야기 전개에 속도가 붙고 또 반전도 가능하지만 7회가 진행되는 동안 주변만 서성대고 있는 느낌이다. 

이 드라마는 12부작이다. 그러니 이미 중간 터닝 포인트를 지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시작에서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 그나마 전개된 건 복자클럽이 생겼다는 정도. 정혜-도희-미숙의 연대와 그들과 자식관계로 얽힌 수겸-서연(김보라)-희수(최규진) 그리고 이들과 대결구도를 갖는 홍상만-이병수-백영표 같은 흥미로운 인물관계 역시 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전개로까지는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는 수목에 드라마 라인업을 가지려는 tvN의 전략적 편성이 효과를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왕사'도 빠져버린 퓨전사극의 늪

어린 시절 겪은 사건과 성장해서 다시 재회해 인연을 이어가는 남녀. 세자와 신하로 만났지만 서로 우정을 키워온 남남. 그리고 이 세 남녀가 미묘하게 얽히는 삼각관계. 세자이긴 하지만 원나라 왕비에게서 태어나 오랑캐의 피가 섞였다 왕으로부터 천대받는 세자. 대부호의 딸로 태어났지만 그 권세를 얻기 위해 정략적으로 다가오는 남자들에 둘러싸인 여인. 그로 인해 어머니마저 죽음을 맞는 비극을 겪은 여인. 두 남녀의 운명적인 사랑....

'왕은 사랑한다(사진출처:MBC)'

MBC 월화드라마 <왕은 사랑한다>의 첫 회는 최근 퓨전사극의 공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의 포석을 깔아놓았다. 세자 왕원(임시완)과 고려 최고의 거부 은영백(이기영)의 외동딸 은산(임윤아)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의 절절한 사랑과 그 사랑을 가로막는 권력자들의 암투가 이어지고 이를 지키면서 한편으로는 그녀를 바라볼 왕린(홍종현)의 짝사랑이 또 한 축을 이룬다. 

퓨전사극하면 늘 등장하는 무협 액션과 삼각 멜로 그리고 적당한 정치적 상황과 복수극. <왕은 사랑한다>는 이 모든 걸 갖추고 있지만, 그래서인지 너무 뻔한 느낌이다. 상투적인 장면들도 넘쳐난다. 7년 만에 재회하게 된 왕원과 은산이 툭탁대다가 “나 너 알아”하고 과거 회상으로 넘어가는 장면이나, 왕원을 오히려 압도하는 무술이나 격구 실력 같은 것으로 드러나는 은산의 캐릭터가 그렇다.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이승휴(엄효섭)를 찾았다가 술독을 깨버리고 그것 때문에 술을 구하기 위해 세 사람이 산꼭대기에 올라가 구름다리에서 벌이는 모험 역시 너무 뻔하다. 구하려다 서로 껴안게 되는 그런 장면은 너무 흔해져 버렸다. 

고려 충렬왕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퓨전사극이기 때문에 역사적 상황을 배경 정도로 그려진다고 해도 너무 역사적인 사건들이 별로 없다는 건 이야기를 너무 가볍게 만든다. 물론 <구르미 그린 달빛> 같은 작품이 역사적 사건을 배제하고도 퓨전사극으로서 충분히 성공을 거두었지만, 거기에는 사극을 빌어 건드린 우리네 현재의 청춘들의 현실 같은 것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공감대가 있었다. <왕은 사랑한다>는 어떤 공감대를 그려낼까. 첫 회만으로는 아직 느끼기 어려운 대목이다. 

역사적 사건이 사라지고 남는 자리를 채우는 건 무협 액션과 멜로다. 물론 무협 액션과 멜로 역시 신선한 스토리와 엮어지면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지만, <왕은 사랑한다>의 첫 회는 적어도 그런 흥미로움이 있을 것이라는 걸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키지는 못했다. 그래서 마치 중국 무협드라마를 보는 듯한 이질적인 느낌이 남았다. 토착적인 정서를 잘 부각시키지 못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허공에 붕 뜬 듯한 느낌이 드는 것. 

물론 원작이 있는 작품이지만 <왕은 사랑한다>의 삼각 멜로는 송지나 작가의 오래전 작품인 <모래시계>에서 봐왔던(어쩌면 이게 1990년대 드라마의 공식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관계를 변주하는 느낌이다. 보디가드가 호위무사 같은 친구로 바뀐 듯한 그런 구도. 송지나 작가 정도의 경륜이 있는 작가가 왜 이런 뻔한 평작을 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물론 이건 <왕은 사랑한다>만의 문제가 아니라 최근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 퓨전 사극들의 문제다. 아마도 중국을 겨냥한 듯한 작품들이 만든 이야기성에 지나치게 천착하다보니 나온 결과겠지만 깊이 있는 성찰이나 현재를 관통하는 메시지 같은 것들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SBS <엽기적인 그녀>가 그렇고, 잘 나가다 범작으로 끝을 맺은 MBC <군주>가 그렇다. 

역사 바깥으로 나와 상상력을 한껏 펼치는 것에 무슨 잘못이 있으랴. 다만 그 상상력이라는 것이 너무 성공 공식들만 반복하는 건 굳이 역사 바깥으로 나온 그 이유마저 퇴색시킨다. 사극이 그저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의 배경 정도로 다뤄지기 시작한다면 굳이 퓨전사극처럼 ‘사극’이라는 지칭 자체가 의미 없어질 것이다. 이러다 우리네 드라마의 독특한 색깔일 수 있는 사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흐릿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보이스’, 고통스런 고구마 전개에 점점 더 민감해진다

OCN 주말드라마 <보이스>가 만들어내는 몰입감은 놀랍다. 거의 영화에 가까운 긴장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등장하는 사건들이 너무나 끔찍하고 잔혹하다. 첫 회부터 등장해 주인공들인 무진혁(장혁)의 아내와 강권주(이하나)의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는 해머처럼 생긴 철퇴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차례 피해자를 가격해 죽인다. 2회에는 칼로 찌르고 죽이려는 계모를 피해 세탁기 속에 숨어 경찰의 구조를 기다리는 아이의 이야기가 방영됐다. 4회에서는 범인을 홀로 추격하던 강권주가 오히려 범인들에게 잡혀 산채로 매장당하는 장면이 마지막에 흘러나왔다. 시청자들로서는 다음 회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보이스(사진출처:OCN)'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끔찍한 장면들이 거의 공포영화 수준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 보면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볼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 워낙 현실에서 사건사고를 많이 접하며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더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케이블 채널에서 시청률이 5%를 넘어섰다는 건 이런 간절한 마음이 얼마나 깊게 자리하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하지만 이런 몰입감에도 불구하고 너무 고구마 전개를 이어가고 해결시간을 지연하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낚고 있다는 비판 역시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 <보이스>는 워낙 강렬한 사건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어서인지, 한 회에 그것이 마무리되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 끝을 맺은 후 다음 회를 기약하는 방식으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 시청자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특히 지난 주 4회에서 마지막에 강권주가 포대자루에 묶여진 채 구덩이에 던져져 땅에 묻히는 장면을 보여주고 끝난 건 다음 주 5회까지 1주일 간의 잔상을 남긴다. 

물론 그건 시청자들의 시선을 계속 묶어두기 위한 드라마의 정당한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치 영화의 극적인 상황 속에서 갑자기 뚝 끊어버린 듯한 그 전개방식은 시청자들에게는 깊은 이물감으로 남을 수 있다. 아마도 5%라는 시청률에는 이런 불편함이 만들어내는 어쩔 수 없는 기다림이 작용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사실상 드라마가 늘 해오던 방식이다. 한 주에 2회를 방영하면 2회째에는 늘 다음 주를 위한 떡밥이 던져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이른바 ‘고구마 전개’를 통한 떡밥에 대해 시청자들은 몹시 민감해진 모양새다.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이 지성의 연기호평과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전개에도 불구하고 ‘고구마 전개’의 불편함을 호소하게 된 건, 그가 계속해서 당하는 장면만을 보고 있어야 하는 답답함 때문이다. 

<보이스>는 물론 계속 새로운 사건들이 등장하고 그것이 약 2회분에 걸쳐 해결되면서 범인이 잡히는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큰 틀의 이야기를 보면 주인공인 무진혁과 강권주가 그들의 가족을 무참하게 살해한 진범의 손아귀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5회에서도 결국 붙잡게 된 범인이 갑자기 과거 아버지의 살해 현장을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를 던져 강권주를 광분하게 만드는 장면은 그래서 사이다로 끝난 것처럼 여겨졌던 상황을 다시 고구마로 만들어버린다. 

이것은 <보이스> 같은 진범을 찾거나 진실을 찾는 드라마들이 늘 사용하는 방식이다. 사건 해결을 뒤로 지연시킴으로써 계속해서 보게 만드는 방식. <보이스>의 연출을 보면 그것이 상당히 의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범인을 찾기 위해 학교로 간 무진혁과 강권주가 갑자기 나뉘어 수색을 하게 되고 누구나 예감했던 것처럼 강권주 앞에 범인이 나타나 사투를 벌이는 장면과 엉뚱한 곳에서 범인을 찾고 있는 무진혁을 교차해 보여주는 식은 이제 <보이스> 연출의 한 패턴으로 자리하고 있다. 

물론 그건 드라마의 효과를 위해 차용한 방식이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고구마 전개의 지연방식에 대한 시청자들의 참을성은 갈수록 없어지는 형국이다. 그건 아무래도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 워낙 현실의 전개 자체가 답답한 형국인지라 드라마 속에서도 그런 전개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까닭이다. 물론 정당한 사유들이 있어 사건 전개가 지연되는 건 개연성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명쾌하게 제시되지 않는 지연은 자칫 불편함을 불러올 수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보이스>가 조심해야 될 부분이다.

비슷한 패턴 반복, <막영애> 역량 이어가려면

 

일터에서 각종 편견으로 시달리며 살아가는 영애씨(김현숙). 그녀에게 사랑이 나타나고 알콩달콩한 사랑이 익어가며 이번에는 영애씨가 결혼할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갑자기 이를 가로막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결국 전전긍긍하던 영애씨는 결혼에 골인하지 못하고 드라마는 다음 시즌으로 넘어간다. tvN <막돼먹은 영애씨>는 지금 이 패턴의 스토리에 갇혀 있다.

 

'막돼먹은 영애씨(사진출처:tvN)'

이번 시즌15는 그래서 시작할 때부터 고정 팬들에게는 영애씨가 제발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기를 바라게 만들었다. 지난 시즌에서 부모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결혼하지 못했던 승준이 중국에서 사업에 성공한 후 돌아와 영애씨와 여전한 사랑을 확인하게 만든 드라마 초반에만 해도 그런 바람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혹시나역시나였다. 엄마의 반대를 간신히 이겨내고 승준을 집으로 초대해 정식으로 인사를 하려던 날 승준이 친구 상갓집에 간다며 나타나지 않은 것. 알고 보니 상갓집 간다는 것도 거짓이었고 그게 밝혀지자 승준은 쫓아오는 영애씨를 뒤로 하고 줄행랑을 쳤다. 전화도 받지 않는 승준 때문에 하루 종일 사고만 내던 영애씨에게 승준은 전화를 걸어 그간의 사정을 설명한다. 아버지가 낙원사 건물 판 돈으로 친구 빚을 갚아줘 무일푼이 되었다는 것. 그래서 아버지에게 돈을 타내려고 다녔다는 것.

 

결국 돈 때문에 영애씨에게 소식도 없이 잠수를 탔다는 사실은 그녀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허탈함을 느낀 건 영애씨만 아니었다. 드라마를 애청하던 시청자들도 똑같은 허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승준이 잠수 타고 전전긍긍하는 영애씨를 담은 2회 분의 이야기가 너무 작가의 자의적인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의도적으로 영애씨의 결혼을 가로막는 설정처럼 보였다.

 

tvN <막돼먹은 영애씨>는 패턴을 반복하며 본래 하려던 이야기를 벗어나 산으로 가고 있다. 이 드라마가 하려던 이야기가 고작 결혼 못해 안달 난영애씨의 이야기던가? 그렇지 않다. ‘막돼먹은현실에 대한 블랙코미디다. 영애씨의 일터인 낙원사가 실제 낙원이 아닌 찌질하기 그지없는 초라한 현실인 것처럼, 막돼먹은 건 영애씨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걸 이야기하려던 드라마는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연애와 결혼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물론 이 드라마의 멜로가 그 자체로 우리네 사회의 편견을 깨는 요소가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즉 막돼먹은 건 영애씨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인간미가 넘치는 영애씨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가 나타나 알콩달콩한 사랑을 이어가는 대목은 현실의 냉혹한 편견을 깨는 시원스러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애씨가 결혼에 집착하게 되는 순간부터 이런 현실의 뒤통수를 치는 속 시원함은 사라지게 되었다.

 

애초에 다큐드라마라는 새로운 형식을 내세웠던 <막돼먹은 영애씨>는 사실은 6mm 카메라로 찍을 수밖에 없는 저예산의 현실을 역발상한 것이었다. 그러니 조금은 조악한 영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런 조악한 영상의 <막돼먹은 영애씨>막돼먹은 드라마로 보지는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영애씨라는 캐릭터와 저예산으로 찍혀졌지만 진솔함을 담은 이 드라마의 형식이 잘 어울린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월화드라마의 편성 시간대로 들어온 <막돼먹은 영애씨>는 이제 그런 조악한 영상은 뛰어넘었다. 시즌15를 하고 있는 어찌 보면 레전드 시즌제 드라마라는 명성에 걸맞는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 하지만 어째 이야기는 퇴보하고 있는 느낌이다. 차라리 다큐드라마 시절의 그 헝그리한 느낌이 그리워진다.

 

드라마가 결혼에 대한 집착을 하게 되면 이야기는 더 이상 확장될 수 없다.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집착만으로 어떻게 드라마가 더 다양한 스토리를 이어갈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되면 결혼 하는 것과 동시에 드라마도 끝내야 한다. 하지만 그걸 뛰어넘는 막돼먹은 현실의 다양한 문제들을 영애씨라는 캐릭터를 통해 계속 끌어갈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차라리 결혼을 하게 해주고, 그 이후에 벌어질 사건들을 이어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우리네 현실은 결혼 후에도 막돼먹은 상황들이 너무나 많으니(어쩌면 갈수록 더 많아진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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