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드라마보다 더 큰 문제는 식상한 패턴이다

 

문영남 작가의 신작 <눈물로 피는 꽃>SBS에 이어 KBS에서도 편성이 불발됐다는 소식에 의외로 대중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것이 마치 막장드라마의 패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KBS연기대상(사진출처:KBS)

그도 그럴 것이 문영남 작가라고 하면 몇 년 전만해도 방송사들이 잡기 위해 줄을 서는 작가였다. <수상한 삼형제>, <조강지처 클럽>, <왕가네 식구들> 같은 그녀가 쓴 일련의 드라마들은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다. 드라마가 나올 때마다 막장 논란이 터졌지만 이 막강한 시청률은 모든 걸 덮어버릴 정도의 힘을 발휘했다.

 

바로 그런 문영남 작가이기 때문에 방송사들이 줄줄이 편성을 시키지 않았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부여가 되는 것일 게다. 지난 4MBC가 임성한 작가와 더 이상 작품을 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에 이어 문영남 작가에 대한 SBS, KBS의 편성 불발은 그래서 마치 막장드라마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처럼 확대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엄밀히 얘기하면 막장드라마의 종언은 섣부른 이야기다. 드라마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치열해질수록 강한 자극은 언제고 다시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중요한 건 막장드라마의 문제가 아니라 식상할 정도로 패턴화된 드라마들의 문제다. 사실 문영남 작가의 드라마를 막자이라고 부르는 건 그 완성도의 엉성함 때문이나 비윤리적인 설정들 때문이 아니다. 고부갈등이나 무능한 남편, 외도 같은 늘 봐왔던 패턴들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식상을 넘어 짜증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문영남 작가의 신작, <눈물로 피는 꽃>이 어떤 드라마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그 드라마를 막장드라마라고 말하는 건 성급하다. 다만 그 이야기가 여성으로서 삶과 어머니 역할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데서 그 내용을 유추해볼 수 있을 뿐이다. 방송사 관계자는 이 드라마의 편성불발이 막장 요소 때문이 아니라 드라마의 타깃층이 너무 나이가 많아 주중 드라마로 편성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물론 여전히 문영남 작가의 패턴화된 드라마를 즐기는 시청자들도 있다. 그것은 대부분 5,60대 이상의 옛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층들이다. 하지만 최근 젊은 세대에 소구하지 못하는 드라마는 제 아무리 높은 시청률이 나와도 광고가 안 팔리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드라마가 젊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은 KBS 같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시청층을 가진 방송사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KBS에서 방영되고 있는 <너를 기억해><어셈블리>를 보면 KBS 역시 얼마나 젊은 시청층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다. 두 드라마 모두 기존의 KBS가 해왔던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른 장르와 전문직을 내세우고 있고 그 드라마의 몰입도 또한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너를 기억해>가 잠깐 한 눈 팔면 이야기의 맥락을 놓치기 일쑤인 추리물을 보여주고 있고, <어셈블리> 역시 멜로 없는 정치판 이야기를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KBS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른 도전의식이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막장드라마보다 더 설 자리가 없는 건 어디선가 늘 봐왔던 패턴들만 가득한 그런 드라마들이다. 적당한 가족이 등장하고 그 안에 지지고 볶는 이야기들. 거기에 자극제로서의 불륜이나 폭력에 가까운 고부갈등이 나오고 암 유발자 캐릭터가 극의 중심을 이끌어가는 그런 드라마. 이제 이런 드라마들의 식상함에 젊은 시청자들은 진저리를 치고 있다. 제 아무리 중견작가라도 그래서 시청률 정도는 언제든 낚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새로움이 없다면 퇴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 이것이 지금의 드라마판이다



<아빠>, 아이라 한계라던 우려 어떻게 씻었나

 

<아빠 어디가>는 처음 화제가 되던 그 시점부터 줄곧 제기된 우려가 있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함께 하기 때문에 어른들의 예능과는 달리 할 수 있는 미션에 한계가 있을 거라는 거였다. 사실이었다. 초반 <아빠 어디가>는 그 날 잠을 잘 집 선택과 저녁거리를 아이들이 구해오는 미션 그리고 저녁을 해먹고 잠을 자면서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또 아침을 해먹는 미션 등을 반복했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이러한 패턴의 반복은 금세 식상해질 위험성이 있었다. 이것을 모를 리 없는 제작진은 아이들의 속내를 알아보는 몰래 카메라 설정이나 한밤중에 폐가를 다녀오는 담력 테스트 등을 미션으로 넣기도 했다. 그 자체로는 훨씬 높은 수위의 재미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여기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았다. 미션 자체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몰래 카메라는 아이들의 사적인 내면을 끄집어내는데다 자칫 어른들의 몰취미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도 잠시, 몇 개월이 지난 현재 뒤돌아보면 <아빠 어디가>의 성장이 꽤 성공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토리텔링의 단조로움은 사라졌고 매 회 예상치 못한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이들의 첫 두발 자전거 타기 같은 소재나 어른들이 즉석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준 흥부놀부전 같은 소재는 <아빠 어디가>의 이런 성취가 어떻게 이뤄졌는가를 잘 말해준다.

 

이것은 아이이기 때문에 한계라는 시각을 극복하고 오히려 아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소재들을 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찾아낸 결과다. 즉 어른들에게 자전거 타기라는 소재는 그다지 매력적일 수 없지만, 아이들의 첫 자전거 타기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저 스스로 패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의 그 모습은 아이에게도 아빠에게도 커다란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아빠 어디가>는 그 아이들이 성장할 때 하나씩 보여주는 순간들을 소재화하는 기지를 발휘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낯선 농작물을 밤에 함께 찾아다니는 미션도 또 농촌 일손 돕기에 참여하는 미션도 마찬가지다. <6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른들이 농촌에 가서 하는 이런 방송들을 흔하디 흔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하는 새로운 경험이라는 차원에서 다가가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어찌 보면 기존에 어른들이 했던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의 소재들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다고 해도, <아빠 어디가>는 완전히 다른 결의 이야기를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이나 무인도 체험, 또는 아빠가 아이들에게 하는 흥부놀부전 같은 즉석 상황극은 이미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흔해진 아이템들이지만 그래도 <아빠 어디가>에서는 특별해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아이가 하나하나 체험해가면서 성장하는 모습은 아빠들에게도 일종의 성장을 만들어준다. 아이들이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며 아빠들은 아마도 훌쩍 커버린 모습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제 여기 나오는 아이들이 이제는 시청자들에게도 한 가족 같은 존재로 자리했다는 점이다. 든든한 맏형 민국이와, 겁은 많아도 솔직하고 순수한 윤후, 나이에 비해 의젓한 성선비 준이와 장난꾸러기 상남자 준수 그리고 효심 가득한 홍일점 지아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보게 되는 반가운 얼굴들이 된 것. 바로 이 정서적인 유대감은 <아빠 어디가>가 취하는 소재가 제 아무리 소박해도 그 스토리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밑바탕이다.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이지 않은가.

 

아이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어쩌면 이것은 어른들이 가진 잘못된 편견인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시선으로만 아이들을 바라본다면 아이들이 가진 잠재력을 우리는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거꾸로 아이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한하다는 시선만이 아이들의 가능성을 더 확장시킬 수 있다. <아빠 어디가>가 프로그램의 성장을 통해 보여준 이 아이에 대한 다른 시선은 그래서 우리네 틀에 박힌 교육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하게 해준다. 어른들의 틀에 가두지 말고 틀 밖의 가능성을 보라고 이 프로그램은 말하고 있다.

<무도>와 <개콘> 그리고 일인자 패러독스

 

우리네 예능 프로그램 중 대표격을 꼽으라면 아마도 <무한도전(이하 무도)>과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를 지목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재미의 차원이나 시청률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네 전체 예능에 끼친 영향력이나 꽤 오랜 세월을 지켜낸 저력(<무도>는 8년, <개콘>은 무려 14년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 위치까지를 모두 두고 봤을 때 이 두 예능은 확실히 우리 예능의 대표선수들임이 분명하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물론 여전히 이 두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뜨겁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약간 다른 징후들도 포착된다. 그것은 과거에는 좀체 없었던 비판적인 시선들이 등장했고, 식상해졌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시청률도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제작진들이나 출연진들 또한 어떤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무도>의 하와이 특집은 그 시작에서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길을 탈락시키는 것으로 충격적인 반전을 만들었다. 또 2편에서는 박명수와 길, 유재석, 노홍철이 글라이더를 타고 활강을 하면서 돈을 세는 강도 높은 미션을 수행하기도 했다. 특히 고소공포증을 호소했던 유재석은 글라이더에서 내리자 다리가 풀려 주저앉기도 했다. 하지만 <무도>의 이런 미션들은 과거만큼의 흥미와 팽팽한 긴장감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하와이 특집에 이어 시작한 술래잡기 특집도 긴장감이 떨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제 <무도>의 추격전 미션이 갖고 있는 스토리를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홍철은 늘 반전의 키를 쥔 배신자 역할을 자임할 것이고, 박명수는 고군분투하다 짜증을 폭발시킬 것이고, 그 와중에서도 유재석은 누구보다 열심히 뛰면서 미션을 수행해나갈 것이다. 물론 조금씩 다른 상황들이 생겨나지만 그다지 큰 변화는 잘 보이지 않는다. 패턴이 조금씩 읽힌다고나 할까.

 

이런 사정은 <개콘>도 마찬가지다. 서수민 PD가 자리한 이후 <개콘>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거의 1년 넘게 전체 예능 시청률 1위를 한 번도 내주지 않았고, 출연 개그맨들은 심지어 광고계에서도 블루칩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개콘>은 새로운 코너들을 꽤 선보였지만 과거만큼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미 뜬 코너와 개그맨들에 대한 피로도도 높아졌다.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개그맨들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면서 <개콘>의 핵심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적당한 시기의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김기리나 김대성, 이문재, 이희경 같은 친구들이 새 코너들을 통해 중심으로 들어오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 존재감이 확실히 생기지는 못했다. 새 코너에 대한 화제도 그다지 높지 않고 시청률도 많이 추락했다.

 

<무도>나 <개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필자 같은 고정 팬들의 여전한 성원 덕분이 아닐까. 그것조차 경쟁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현재가 불안하다는 것은 프로그램으로서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하긴 이렇게 오랜 세월을 정상에 머무르면서 계속 새로울 수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것일 게다. 그 기적의 길을 <무도> 같은 프로그램은 분명 걸어왔다.

 

<무도>나 <개콘>의 위기는 외부적인 것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꽤 오랜 세월동안 줄곧 일인자로 서왔던 것에서 비롯되는 힘겨움이다. 밑에 있을 때는 위로 올라갈 수 있지만 제일 꼭대기에 오르면 할 수 있는 게 지키는 것이나 내려오는 길밖에 없게 된다. 이른바 일인자 패러독스다. <개콘>의 서수민 PD는 그 일인자의 고충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때로는 2등이었으면 할 때가 있다”고.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는 개그맨이나 예능인의 위치는 분명 낮은 위치에 있을 때 더 큰 폭발력을 내는 것이 사실이다. <무도>의 힘은 확실히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위치에 있을 때 더 폭발적이었다. <개콘>도 개그맨들이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어려울 때 더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무도>의 출연자들은 모두 지금 현재 예능계의 최정상의 위치에 서게 되었고, <개콘>의 개그맨들도 이제는 생계 걱정하지 않고 개그만을 해도 먹고 살만큼 위상이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정상의 위치를 오래도록 유지하면서 그만큼 주목도도 높아진 만큼 소비도 빨라진 면이 있다. 이제 과거랑 똑같은 강도의 웃음을 주어도 그 힘이 약하게 느껴진다. <무도>처럼 아예 형식의 무한도전을 해온 프로그램도 꽤 오래 지속되면서 패턴이 읽히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예능이든 패턴이 생기고 일찌감치 이야기가 노출되기 시작하면 요즘처럼 반전과 새로움에 목말라 있는 대중들에게는 흥미를 끌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

 

<무도>든 <개콘>이든 그 노력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겨운 지 아는 입장에서 이들이 처한 일인자 패러독스는 진정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쩌랴. 일인자라는 위치가 갖는 무게감이 만들어내는 일인 것을. 의외로 이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만큼 대중들의 기대치가 조금 낮아지게 되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상승의 기회도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기적적인 노력으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반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이든 힘겨워도 끊임없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그나마 가능한 일이다.

 

물론 팬의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워도 기다려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싶다. 하지만 보통의 시청자들에게는 이 시간이 달리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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