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뭐하니’, 1인 미디어 시대의 또 다른 ‘무한도전’

 

유재석이 말 많다고 방송 중 컷을 당했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EBS를 처음 방문했다가 뜬금없이 <최고의 요리비결>에 셰프(?)로 출연하게 된 유재석은 방송 중 요리는 않고 토크를 길게 이어가다 결국 ‘끊으라’는 제작진의 말을 들었다. 그 누구보다 토크에 있어서 자유자재의 능력을 보여주던 유재석이지만 요리방송이라는 새로운 상황은 그를 시종일관 난감하게 만들었다.

 

애초 EBS를 방문한 유재석은 펭수를 다시 만난다는 기대감에 한껏 들떠 있었다. 하지만 대기실에는 펭수가 없었고 난데없이 <최고의 요리비결> PD와 작가가 찾아와 당일 방송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다고 통보했다. 김태호 PD와 사전에 약속이 되었다는 것. 얼떨결에 건네받는 대본을 받아들고 본능적으로 읽어가면서 유재석은 갑자기 밀려드는 ‘현타’(현실자각 타임)에 황당해 했다.

 

방송이 익숙한 유재석이라도 <최고의 요리비결> 같은 프로그램은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EBS를 찾은 것조차 처음이었다. 그 날의 요리로 유재석은 유산슬라면과 유산슬덮밥을 선보여야 했는데, 본래 ‘인생라면’ 분식집에서는 미리 준비된 재료들을 갖고 요리만 하면 됐지만 이 방송에서는 재료들까지 손수 잘라 요리를 해야 했다.

 

유재석의 부족한 요리 실력은 재료를 칼질하는 그 모습에서부터 여지없이 드러났다. 인생라면 분식집에서는 라면을 끓여내는 그럴 듯한 모습이 연출되었지만, 죽순을 마치 깍두기 썰 듯 썰어버리고, 팽이버섯을 반을 뚝 잘라내는 바람에 나중에 요리에서는 그 형태를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또 해삼 역시 잘게 다져야 하는데 두툼하게 썰어 유산슬 고유의 형체가 되지 못했다.

 

방송 내내 유재석은 진땀을 흘렸다. 재료 손질하는 데만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시간을 썼고 부족한 요리 실력을 토크로 메워 넣느라 이런 저런 변명(?)을 해서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결국 제작진은 ‘끊으라’는 사인을 보냈다. 정확히 계량된 레시피를 알려주기 위해 FD가 들고 있는 종이에 적힌 걸 읽으면서도 T(한 큰 술)와 t(한 작은 술)을 읽지 못해 버벅댔고, 식용유와 맛술도 구분하지 못했으며 참기름을 찾기 위해 일일이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늘 방송이 익숙하고 또 능숙했던 유재석이 요리 방송이라는 전혀 다른 성격의 프로그램에 투입되어 당황하고 실수 연발하는 모습은 웃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의 유재석과는 너무나 다른 면면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인생라면’이란 콘셉트로 ‘라섹(라면 끓이는 섹시한 남자)’이라는 새로운 부캐릭터를 갖게 된 유재석은 그렇게 EBS 요리방송에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이런 짠내 나는 방송은 펭수를 만나는 즐거운 시간으로 바뀌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펭수는 유재석은 물론이고 김태호 PD에게 자신이 만든 붕어빵을 선물했고, 유재석은 “대충대충 하라”는 남다른 펭수의 방송 스타일에 만족스러워했다. 지금껏 김태호 PD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던 유재석은 펭수가 필요할 때마다 “매니저!”하고 부르는 그 모습에서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방송 앞에서는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스스로 “컷”을 외치며 실제 일은 제작진들을 시키는 모습에 매료됐다.

 

<놀면 뭐하니>는 지난주 <맛있는 녀석들>과의 콜라보로 두 개의 방송이 겹쳐지는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EBS를 방문해 유재석이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 요리방송 <최고의 요리비결>을 통해 지금껏 보지 못했던 유재석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해주었다. 여기에 유재석의 상황과는 전혀 다른 펭수와의 만남 또한 그 비교점으로 웃음을 주었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이제 <놀면 뭐하니>를 보면 슬쩍 지나치는 어떤 이야기조차 주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유재석이 가끔씩 나중에 은퇴하면 카페 하나 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 어쩌면 그가 바리스타에 도전하고 카페를 여는 새로운 부캐릭터를 또 하나 가질 수도 있겠다고 상상하게 된다. 또 펭수가 유튜브 100만 구독자를 돌파해 받은 골드버튼을 부러워하는 걸 보며 김태호 PD가 “부러우세요?”라고 묻는 대목에서도 혹시 저걸 또 도전하는 것일까 예감하게 된다.

 

<무한도전>에서는 여러 캐릭터들이 서로 협업하고 관계를 이어가면서 만들어가는 성장스토리가 그려졌다면,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이라는 한 인물이 얼마나 다양한 것들을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인가를 그려내고 있는 느낌이다. 유재석이고 김태호 PD가 기획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1인 미디어의 시대에 사실 이런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게다. 그런 점에서 보면 <놀면 뭐하니>는 1인 미디어 시대에 새롭게 그려내는 또 다른 <무한도전>이라고 읽혀진다.(사진:MBC)

펭수와 유산슬, 같은 듯 다른 신드롬의 주역들

 

펭수의 존재감은 역시 그냥 생긴 게 아니었다. MBC <놀면 뭐하니?>에서 <2019 MBC 방송연예대상>에 시상자로 참석한 펭수와 유산슬(유재석)의 만남은 2019년을 들썩거리게 만든 신드롬들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천하의 김태호 PD가 펭수의 대기실을 찾아 공손하게 유산슬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이에 설렌다는 듯 ‘합정역 5번출구’를 흥얼거리며 유산슬의 대기실을 찾는 모습부터 펭수의 예능감은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포토라인에서 기자들을 만나는 사이 유산슬을 기다리는 펭수는 “유산슬 왜 안와!”하고 소리치며 다소 긴장과 설렘이 오가는 모습으로도 웃음을 줬다.

 

놀라운 건 유산슬과 마주하면서 펭수가 맞받아치며 하는 토크가 예사롭지 않았다는 점이다. “진짜 올 줄 몰랐다”는 유산슬의 말에 “PD가 오라고 하던데.”라고 응수하고, “올해의 인물” 선정을 축하하자 “유산슬도 올해의 인물 됐다”고 했다. 또 유산슬이 펭수의 랩을 재밌게 봤다고 하자 펭수 역시 유산슬의 트로트를 재밌게 봤다 응수했다. 유산슬이 “내 말 따라하는 거 같은데”라고 하자 “일절 아니다”라며 “마음이 겹친 것”이라고 말해 만만찮은 토크 실력을 보여줬다.

 

펭수는 유산슬의 요구에 댄스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고 유산슬과 함께 ‘사랑의 재개발’ 춤을 배워 함께 추기도 했다. 우연히 참석하게 된 ‘프로불참러’ 조세호는 펭수와 유산슬의 놀라운 토크와 예능감을 보며 놀라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야기를 끼워 넣으려 휴가 받아 “부모님 뵈러 안가냐?”고 했다가 남극에 계신 부모님 생각에 멍한 듯한 모습을 보이며 “컷컷. 촬영 그만해”라고 외치는 펭수의 응수에 당황했다.

 

<놀면 뭐하니?>는 지금 대세라고 할 수 있는 펭수와 유산슬을 통해 ‘성공시대’의 비법을 담아내는 연출을 더했다. 올해 계획을 묻는 유산슬에게 “그런 거 없다”며 “그냥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펭수. 그러자 유산슬 역시 자신도 그렇다고 말했고, 쉬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도 “지금이 휴가”라고 말해 큰 계획을 세우기도보다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일하는 것이 성공의 비법이라는 걸 드러냈다.

 

신드롬의 주역이 된 유산슬과 펭수는 비슷한 점이 많은 인물들이다. 둘 다 캐릭터라는 점이 그렇고 유튜브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주목을 끌었다는 점이 그렇다. 또 방송사를 넘나들며 ‘대통합’을 이룬 캐릭터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게다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일들을 즐겁게 소화해내고 있다는 성공 비결도 비슷했던 것.

 

하지만 두 인물의 다른 점도 뚜렷했다. 그것은 펭수가 “매니저!”라고 부르며 이것저것 PD들에게 잔심부름을 시키며 주도적으로 하고픈 일들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유산슬은 김태호 PD가 깔아놓은 판 위에 어쩌다 보니 일을 하게 되고 또 성장하게 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펭수는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고, 유산슬은 김태호 PD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특정 분야에 뛰어들어 일하는 것.

 

유산슬의 굿바이 콘서트 말미에도 김태호 PD는 향후 유산슬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하게 될 지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 넣었다. 라면집 할머니는 어서 와서 라면 끓이라고 했고, 하프 도전을 종용하는 영상은 물론이고 엑소가 제안하는 아이돌그룹 활동, 송가인이 제안하는 듀엣 콘서트 등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어디로 튈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만들었다. 결국 유산슬은 무대를 내려가며 “아 정말 싫다 김태호 정말 싫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펭수와 유산슬이 다른 행보를 보이는 건 두 인물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펭수는 신인으로서의 패기를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주는 것이고, 유산슬은 이미 최고의 예능인이 오히려 겪는 황당하고 당황스런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주는 것이니 말이다. 결국 이렇게 쌓인 유산슬의 울분은 펭수가 풀어주었다. 김태호 PD에게 유산슬의 EBS 프로그램 출연이 가능하냐고 물으면서 “PD님도 출연해!”라고 소리친 것. 머뭇거리는 김태호 PD에게 펭수는 “해!”라고 쐐기를 박음으로써 유산슬을 통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스태프나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모습은 펭수나 유산슬이나 똑같이 닮은 점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나가며 펭수는 일일이 스탭들과 고생했다며 악수를 나눴고 유산슬 팬이라는 <자이언트펭TV> 편집감독을 데려와 유산슬과 사진을 찍게 배려해주기도 했다. 역시 신드롬의 주역들은 뭔가 비슷하게 통하는 면들이 있어 보였다. 남다른 토크 능력에 끼, 순발력 게다가 배려심까지.(사진:MBC)

예능화 된 EBS 콘텐츠, 이젠 걸맞는 감수성이 요구된다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이하 보니하니)>는 2003년부터 지금껏 방영되어 온 EBS의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이다. 보니와 하니 역할을 맡은 MC들은 계속 바뀌었지만, 그렇게 오래 방송을 하면서도 논란을 일으킨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연달아 논란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무엇이 이 아이들 프로그램, 그것도 교육방송의 프로그램에 논란을 만들어냈을까.

 

그 발단은 지난 10일 <보니하니>의 유튜브 채널 라이브 방송에서 비롯됐다. 개그맨 최영수가 자신의 팔을 붙잡는 MC 하니 역할의 채연을 뿌리치며 때리는 모습이 방송에 나간 것.

온라인에서는 즉각적으로 ‘최영수 폭행 논란’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그 행동이 보기 불편했다는 것이다. 어른이 미성년자를 때리는 듯한 모습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최영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결코 때린 적이 없고, 자신에게 채연은 조카, 친동생 같은 아이라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의심을 벗은 눈으로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상황극”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이 무섭다”고도 했다. “요즘 펭수가 떠서 화살이 EBS로 쏠렸나” 하는 의혹까지 얘기했다.

 

실제로 채연 측은 폭행은 없었다고 했다. 결국 그 장면은 최영수의 말대로 그런 상황이 연출된 것뿐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아이들이 보는 프로그램에서 친하다고 아이를 때리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는 건 과연 괜찮은 일일까. 또 대중들이 불편함을 느낀 것이 꼭 진짜 때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런 연출 자체가 너무 시대착오적이어서는 아니고?

 

이 문제는 같은 프로그램의 다른 출연자인 박동근에게로 불똥이 튀었다. 과거 방송에서 박동근은 채연에게 다가와 너에게서 리스테린 냄새가 난다며 “리스테린 소독한 X”라고 농담 섞인 얘기를 던졌다. 또 “채연이는 의웅(보니 역할의 남자 MC)이와 방송해서 좋겠다. 의웅이는 잘생겼지, 착하지, 그런데 너는...”이라고 했고, 채연이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냐”고 묻자 박동근은 재차 “리스테린 소독한 X”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것 역시 박동근에게는 그저 농담이었을 게다. 그만큼 친하기 때문에 툭툭 던지는 농담. 하지만 그것을 듣는 시청자들도 그저 농담으로 들을 수 있었을까. 본래 성희롱이란 당사자가 불편하게 느끼는 것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당사자는 그게 익숙해져서 그냥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판정할 때 제3자의 객관적인 시선이 반드시 들어간다. 당사자들은 그게 익숙하고 친해서 한 행동들이라고 해도 제3자인 대중들이 봤을 때 그건 불편한 성희롱이자 폭력처럼 여겨졌다는 점이 그래서 중요하다.

 

결국 EBS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김명중 사장이 직접 공식 사과문을 내놨다. 사과문에서 김명중 사장은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이번 사고가 “출연자 개인의 문제이기에 앞서 EBS 프로그램 관리 책임이 크다”고 명시했다. 공식 사과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커지자 EBS는 초강수를 뒀다. <보니하니> 제작진을 전면 교체하고 방송을 잠정 중단키로 결정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과 대처방식은 옳았다고 볼 수 있다.

 

개그맨들 개인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이 일차적인 책임이고, 그것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관리하지 못한 제자진과 EBS 경영진들의 책임 또한 피할 수 없다는 걸 거듭된 사과에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펭수가 신드롬급 인기를 끌면서 EBS의 방송사 이미지는 상당한 변화를 만들고 있다. 교육방송으로서 교육적이고 교양적인 방송사의 이미지만 갖고 있던 데서, 이제는 예능적인 재미까지 더한 방송사로 이미지가 바뀌어가고 있는 것. 실제로 최근 몇 년 간 EBS에 상당히 많은 개그맨들이 출연하고 있고, 타 방송사에서 활동하던 예능인들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이번 사태는 지금껏 지상파들이 달라진 시대의 감수성 때문에 무수히 논란과 질타를 받으며 변화해온 그 과정들을 이제 EBS도 겪게 됐다는 걸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건 다름 아닌 예능화가 진행되면서 생겨난 일들이다. 교육과 교양에 재미와 웃음을 주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 재미와 웃음이 지금의 달라진 감수성에 과연 합당한가를 이제는 EBS도 관리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사진:EBS)

유튜브 시대의 스타, 유산슬과 펭수의 평행이론

 

최근 최고의 스타 캐릭터로 등장한 유산슬과 펭수는 유사한 점들이 많다. 언론에서 가장 많이 지목하고 있는 건 이들이 방송사의 경계를 허문 방송사 대통합의 주인공들이라는 점이다. 유산슬은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이 ‘뽕포유’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트로트 신인가수로 탄생하며 만들어진 캐릭터지만, tbs <배칠수, 박희진의 9595쇼>, WBS <조은형의 가요세상> 같은 라디오 방송에 이어 KBS <아침마당>에도 출연해 큰 화제를 만들었다.

 

펭수 역시 EBS 캐릭터지만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V2>, SBS <정글의 법칙>, JTBC <아는 형님> 등에 출연했다. 물론 라디오는 더 많고 지금도 펭수를 섭외하려는 방송들은 넘쳐난다. 최근에는 방송가뿐만 아니라 광고와 마케팅 또한 들썩이고 있다. 광고 모델 섭외가 폭주하고 있고 이랜드 스파오는 펭수 나이와 같은 10주년을 맞아 내달 펭수 콜렉션을 선보인다고 한다.

 

이것은 유산슬도 마찬가지다. 유산슬이란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트로트업계가 활기를 띠고 있다. <놀면 뭐하니?>에 등장한 박현우 작곡가, 정경천 편곡자, 이건우 작사가는 물론이고 연주자와 코러스 게다가 뮤직비디오 제작자까지 다양한 트로트업계 사람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사라의 재개발’은 특유의 휴게소풍의 빠른 템포가 특징이라 이제 휴게소에도 바람을 일으킬 전망이다.

 

유산슬과 펭수가 유사한 건 이들이 캐릭터라는 점이다. 유산슬은 유재석이 트로트가수로 나서면서 쓰게 된 캐릭터이고, 펭수는 남극 ‘펭’씨에 빼어날 ‘수’를 쓰는 남극에서 온 유일한 자이언트 펭귄이다. 누가 그 탈을 쓰고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중들은 암묵적으로 그 탈 안의 얼굴을 알려 하지 않는다. “펭수는 펭수일 뿐”이라는 것. 이들이 캐릭터라는 점은 지금의 대중들이 자신의 감성과 정서를 투영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지금의 대중들은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캐릭터를 자기 식으로 소비하길 원한다. 펭수가 기본적인 캐릭터와 이야기가 설정되어 있지만(그것이 허구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그를 보는 직장인들은 펭수의 거침없는 사이다 발언과 공감 가는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보다 어린 세대들은 이 캐릭터가 특정 상황에 들어가 보여주는 순발력에 빵빵 터진다. 유산슬도 마찬가지다. 트로트를 좋아하는 중년 세대들에게는 그 음악 자체에 빠져들지만, 젊은 세대들에게는 트로트의 매력을 이 B급 감성을 자극하는 캐릭터를 통해 조금씩 알아간다.

 

유산슬과 펭수 캐릭터가 가진 이런 유사한 성격들은 유튜브라는 새로운 채널이 주는 감성들이 더해져 있다는데서 나온다. 펭수가 기존 EBS 캐릭터들과 차별화될 수 있었던 건 유튜브에 채널을 개설하고 마치 1인 크리에이터처럼 활동하며 그 저변을 넓혀갔기 때문이다. 이 점은 펭수가 다양한 방송사와 협업하는데 있어 훨씬 유리한 지점으로 작용했다. EBS 스타라기보다는 유튜브 스타라는 지점이 더 캐릭터에 부여되어 있어 타 방송사의 접근성이 용이했던 것이다.

 

유산슬은 MBC <놀면 뭐하니?>가 배출한 스타지만, 이 프로그램은 애초에 유튜브에서 이른바 릴레이 카메라를 통해 시작했다. 그 일련의 실험들이 모여 지금의 ‘뽕포유’ 프로젝트까지 이어졌던 것. 유산슬의 행보와 <놀면 뭐하니?>의 카메라 실험은 그래서 역시 유튜브 채널의 1인 크리에이터들과 비슷하다. 유재석이 어떤 낯선 곳에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던져지고 그 곳에서 겪는 해프닝들로 유산슬이 탄생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 과정이 얼마나 현장에 부딪치는 1인 크리에이터들을 닮았는가를 알 수 있다.

 

유산슬과 펭수는 그래서 유튜브 시대의 새로운 스타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 같다. 유튜브, 아니 네트워크의 특성이 산재한 정보들 속에 어느 한 지점을 콕 찍어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작동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유산슬과 펭수가 어떤 지점을 찍었는가가 눈에 들어온다. 유산슬은 이제 막 피어나고 있던 트로트 업계를 콕 찍어 그 업계를 부흥하는 캐릭터로서 모두의 지지를 얻었다. 펭수도 마찬가지다. 이제 너무 교훈적인 캐릭터에 식상해하는 유튜브를 먼저 경험하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캐릭터에 익숙한 키덜트 어른들을 모두 끌어안고 그들의 공감대를 콕콕 찌르는 지점에서 펭수에 대한 지지가 이어졌다.

 

과거 지상파나 케이블 등이 어떤 캐릭터를 스타로 만드는 방식은 방송사가 만들어낸 캐릭터를 지속적으로 노출하고 홍보하는 방식에 의존했다. 하지만 유튜브 시대의 캐릭터는 대중이나 업계가 가진 갈증들을 대변하는 존재로서 그 자체로 지지를 받아 스타가 된다. 사실 유산슬의 가창력이 대단하다 할 수 없고, 펭수의 캐릭터 플레이가 굉장히 놀라운 프로페셔널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대중들(업계)이 가진 욕망을 대변해주는 캐릭터들로 지지받으며 무얼 해도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다.

 

최근 들어 방송가는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시대가 열리고 있고 유튜브 같은 채널의 감성이 우리네 대중들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제 지상파 같은 플랫폼이 우위를 갖던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그러니 이 달라진 시대에 주목받는 스타 캐릭터 역시 그 탄생과 행보 자체가 달라졌다. 펭수와 유산슬을 보면 유튜브 시대의 스타 캐릭터가 어떤 양상을 갖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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