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리프 판타지가 오히려 현실을 더 껴안아야 하는 까닭

이제 타임리프가 없으면 어딘지 심심하다? 아니 너무 타임리프가 많이 등장해 식상할 지경이다. 드라마를 보는 취향에 따라 최근 쏟아져 나오는 타임리프 설정에 대한 호불호는 나눠질 것이다. 종영한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조선시대에서 이어진 인연이 현재로까지 이어졌고,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는 고려시대의 무장 김신(공유)이 도깨비로 부활해 무려 7백여 년을 산 이야기를 다뤘다. 그리고 현재 방영되고 있는 <사임당, 빛의 일기> 역시 조선시대와 현재를 넘나드는 타임리프 판타지 설정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또 이러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타임리프 설정의 드라마들은 올해도 계속 나올 전망이다. 3일 첫 방송되는 <내일 그대와>는 지하철을 매개로 하는 타임리프 판타지 설정이 되어 있다. 오는 3월 방송 예정인 <터널>은 ‘3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에서 현재로 온 아재 형사의 新문물 표류 수사기’를 다룰 것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이미 훨씬 이전부터 타임리프라는 판타지는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에서 다뤄진 바 있고, <시그널> 같은 작품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무전기라는 설정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별에서 온 그대> 같은 경우에는 죽지 않는 외계인이라는 설정으로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가 가능해졌다. 타임리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래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폭넓은 시간대를 다루는 설정으로 인해 사극과 현대극은 이제 완전히 구별되는 장르가 아닌 게 되었다. 

이러한 타임리프 설정의 드라마가 많아지는 것은 시간의 혼재가 주는 흥미로움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이 설정이 모두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신의> 같은 고려시대의 최영 장군이 현재를 넘나들며 여의사와 시공을 초월한 사랑을 하는 드라마는 생각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 또 조선시대와 현재의 전생과 이생을 뛰어넘는 <푸른 바다의 전설> 역시 스토리적으로 성공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이른바 순환우주의 세계관을 끌어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사임당> 역시 아직까지 그 성공을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무전기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 <시그널>이나 고려시대의 전생과 현재의 이생을 도깨비와 도깨비신부, 저승사자의 이야기로 풀어낸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는 대중적인 성공은 물론이고 작품성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똑같은 타임리프라고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이런 성패를 가르게 된 것일까. 

흔히들 타임리프라는 시간을 넘나드는 판타지 설정은 그 자체의 흥미로움에 시청자들이 빠져들 것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타임리프라는 판타지 설정은 그 허구를 이어주는 강력한 현실적인 동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저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전락할 위험을 지닌다. 현재에서 갑자기 과거로 소환됐다면 그런 판타지가 왜 필요한가를 그 작품은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시그널>의 판타지가 성공했던 건 무전기 설정 그 자체 때문이 아니고 그런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과거로 돌아가 미제사건을 해결하고픈 강렬한 현실적 열망이 그 동인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그널>의 김원석 감독은 무전기라는 판타지 설정에 대한 현실적 근거를 자세히 넣으려고 굳이 애쓰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중요한 건 판타지 설정 자체가 아니라, 이런 이야기가 하려는 현실적인 정서나 갈망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는 것. 

<도깨비>가 성공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는 심지어 도깨비나 저승사자 같은 초월적 존재를 등장시키고 있지만 이들을 통해 실제 하려는 이야기는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것이었다. 사랑과 기억이 있다면 죽음은 그저 불행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 마찬가지로 영생한다는 것이 행복을 뜻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이 드라마는 판타지 설정을 통해 이야기해줬다. 물론 이 이야기는 지금의 힘겨운 현실상황에 처한 대중들에게 위로를 주기에 충분했다. 

타임리프라는 설정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설정이 건드리는 현실적인 정서가 더 중요하다. 타임리프는 그저 그림을 멋지게 만들기 위함이거나 과거와 현재를 뛰어넘는 상상력의 자유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다. 그래서 항상 그것이 왜 필요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면 그 드라마의 타임리프가 성공적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

‘푸른 바다’, 멜로와 현실은 어떻게 공명했을까

잊지 말아야 될 기억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까.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허준재(이민호)의 기억을 지우고 바다로 돌아간 인어 심청(전지현)이 다시 돌아와 사랑을 이어가는 것으로 해피엔딩을 그렸다. 허준재는 청이 자신의 기억을 지웠지만 자신의 심장에 새겨진 사랑은 지울 수 없었다며 그녀를 기억하고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그런데 여기서 허준재가 지웠졌던 기억을 다시 복원하는 그 방식이 흥미롭다. 그는 훨씬 이전부터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걸 예감이라도 한 듯, 청이와의 일들을 일기로 기록해놨다고 했다. 결국 청이가 그의 기억을 지웠어도 그는 다시금 그 일기를 통해 그녀와의 추억들을 되새길 수 있었다. 

이건 전형적인 멜로물의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그간 기억에 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뤄왔던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는 조금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엔딩이다. 물론 멜로물로서 바다와 육지로 각각 태어난 서로 다른 존재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지만 다시금 돌아와 둘 사이에 생명을 잉태하고 그 존재가 바다와 육지 사이의 소통자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는 로맨스 판타지물의 이야기로도 충분히 완결성이 있는 엔딩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작금의 우리네 현실과 마주하면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바다와 기억으로 환기되는 세월호 참사의 이미지들은 이 엔딩이 ‘진실을 담은 아픈 기억’에 대한 메시지로 다가오게 하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조난당했다 살아 돌아온 이들의 소식이 들릴 때마다 그것이 인어 심청의 도움이라고 생각하며 바다를 찾았던 허준재의 그 마음은 어쩌면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희생자들의 가족들이나 그들을 위해 기도해온 많은 대중들의 바람과 똑같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희미해지는 기억을 아파도 애써 기억해내려는 허준재의 사랑 또한 남다르게 느껴지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절대 잊지 않으려는 노력은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기억의 기록’이 갖는 무게감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사랑의 기억 같은 진실을 잊지 않고 보존한다면 그 애끓는 사랑은 영원할 수 있다고 마치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 기록으로 영원히 남을 기억은 차츰 그 아픈 상처들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사랑이라는 걸 말해준다. 드라마 속 지나가는 듯한 에피소드의 대사로 등장했던 “아파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기억하겠다던 한 엄마의 절규처럼, 아픔은 사랑의 증명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영원한 벌로서의 기억 또한 존재한다. 계모 강서희(황신혜)의 기억에 잊혀지지 않을 아들의 자살이 그것이다. 강서희의 기억은 사랑이 아니라 죄의 기억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다르다. 우리에게 기록으로 남는 기억이란 이처럼 어떤 것은 바람직한 사랑으로, 어떤 것은 또 다시 벌어져서는 안될 반면교사로서의 죄로 남겨진다.

허준재는 전생에서 바닷가 마을에 지방관으로 부임했던 담령으로 인어를 만났던 그 때의 기억 그대로 이생에서의 심청과의 미래를 준비한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 함께 살 집을 마련하고, 검사가 되어 지방검찰청에서 일하며 심청과 ‘소소한 삶’을 꿈꾼다. 사실 우리네 삶이 꿈꾸는 것들은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소박하고 소소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그런 기억들을 많이 남기는 것일 테니. 그것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은 그래서 더더욱 아픔으로 다가오지만.

<도깨비> 김병철, <푸른바다> 황신혜, <낭만닥터> 최진호의 유사점은

 

사실상 드라마의 반은 악역들이 만들어낸다. 악역이 있어야 갈등이 생기고 드라마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갈등유발자로서의 악역은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 그 시대가 밟고 있는 지평 위에서 가장 민심을 건드릴 수 있는 악이 캐릭터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주제의식은 주인공만큼 악역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그런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들을 보면 악역들의 유사점들이 발견된다. 그들은 멀쩡한 얼굴로 거짓말을 일삼는 자들이고, ‘세치 혀를 놀려 사실상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서서 전횡을 일삼는 인물들이다. 대중들 앞에서는 선한 척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실체는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괴물들. 이 시대가 이른바 비선실세라고 부르는 그들.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 간신 박중헌(김병철)은 어린 왕을 세우고 그 왕을 조종해 세상에 군림하려는 자다. 알고 보면 이 <도깨비>의 모든 갈등의 근원은 바로 이 박중헌이라는 악역으로부터 비롯된 일들이다. 그의 세치 혀에 의해 외세를 물리친 김신(공유)은 왕을 위협하는 역적으로 몰아세워지고 결국 그와 그의 여동생까지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에 힘입어 부활한 도깨비 김신은 그렇게 9백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며 자신을 영원히 무()로 보내줄 도깨비 신부를 기다리지만 막상 만난 그녀를 김신은 사랑하게 된다.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나 세치 혀를 놀려 파국을 노리는 자가 바로 박중헌이다. 그는 김신과 함께 지내는 저승사자(이동욱)가 바로 그들을 죽게 만든 왕이었다고 말한다. 등장하면서 검은 세치 혀를 날름대는 장면은 박중헌이라는 악의 근원은 바로 그 말이라는 걸 말해준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계모로 들어와 단란했던 가족을 붕괴시켜버린 강서희(황신혜) 역시 입만 열면 거짓말을 일삼는 악역이다. 자신이 함께 살았던 이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 희대의 악녀는 결국 허준재(이민호)의 부친이자 그녀의 남편인 허일중(최정우)의 시력을 점점 잃게 만들더니 결국은 살해한다. 허준재를 만난 후 그녀를 의심하게 된 허일중이 그녀가 주는 약을 먹지 않고 버릴 때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 장면은 마치 공포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소름을 돋게 만든다.

 

누군가의 눈을 멀게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역이란, 여러모로 허수아비를 세워 놓고 눈과 귀를 가리며 결국은 파국으로 이끄는 비선실세의 캐릭터 그대로다. 허일중의 죽음은 그래서 허준재를 각성하게 만든다. 가짜 행세를 해온 강서희와 그녀의 아들 허치현(이지훈)을 몰아내고 제 자리를 찾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대한 사안으로 다가오는 것. 이만큼 현 시국과 닮은 상황이 있을까.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악의 근원은 도윤완(최진호) 거대병원 원장이다. 그는 과거 김사부(한석규)의 대리 수술을 실제로 주도한 인물이지만 그 문제가 불거지자 모든 죄를 김사부에게 뒤집어씌운다. 그는 실질적인 권력을 갖고 병원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병원의 주인은 아니다. 실제 주인은 신회장(주현)과 그의 딸(김혜은)이지만 도윤완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격.

 

그는 권력을 이용해 어떻게든 김사부를 내쫓고 자신의 입지를 지켜내려 한다. 그러면서 실제로 김사부가 그 어려운 인공심장 교체 수술을 해낸 걸 마치 자신의 치적인 양 가로챈다. 신 회장은 자신의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병원 경영에서 한 발 물러서 있었지만 차츰 이런 현실을 알아차린다. 그 잘난 세치 혀로 사실상 비선실세의 역할을 해온 도윤완의 전횡을 김사부가 어떻게 저지하고 무너뜨리느냐가 이 드라마가 꿈꾸고 있는 사이다 결말이다.

 

드라마 악역들이 이처럼 비선실세들로 넘쳐난다는 사실은 어쩌다 겹친 우연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악의 근원이라는 걸 드라마들은 놓치지 않고 꺼내놓고 있다는 것. 그들의 세치 혀가 농단한 세상을 다시 본래 자리로 돌리는 것이 드라마들이 꿈꾸는 결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네 서민들이 꿈꾸는 결말이기도 하다

<푸른바다>의 눈 먼 어른은 진실에 눈 뜰 수 있을까

 

과연 그는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SBS <푸른바다의 전설>이 진실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라진 아버지를 찾기 위해 몰래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와 마주친 허준재(이민호)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시력을 잃어가며 죽어가고 있는 아버지에게 소리쳤다. “도대체 여기서 뭘 보고 계신 거냐구요? 여기 더 있다간 아버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구요.”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허준재의 이 외침은 어째 예사롭지가 않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며 앞을 보지 못하는 그의 아버지 허일중(최정우)이란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심청전의 심봉사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캐릭터처럼 보였지만, 거기에는 또한 눈이 있어도 앞을 보지 못하는 어른들을 표상하는 의미가 담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일중은 아들의 그런 이야기가 다 거짓말이고 사기 같다. “여긴 내 집이야. 내 집에서 내가 무슨 일을 당한다고 그래.” 자신이 있는 곳이 바로 집이기에 자신이 거기 감금되어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허준재는 허일중의 비서 남부장(박지일)이 사고를 당한 것도 또 아버지가 이렇게 된 것도 모두 새 어머니 강서희(황신혜) 때문이라고 폭로한다.

 

하지만 허일중은 그걸 믿으려 하지 않는다. “니가 지금 여기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10년 만에 집에 들어와서 한다는 짓이 어머니를 모함하는 거냐?”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허일중 자신의 과거 선택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 아버지 선택은 잘못됐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렇게 허준재는 얘기하지만 허일중은 그걸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

 

니가 뭔데 그걸 판단해. 내 선택이야. 내 인생이고. 잘못 되지 않았어. 난 행복했다. 겨우 시력이 조금 떨어지는 걸 가지고 내 선택이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이 눈, 수술하면 다 나아져. 내 몸 상태가 나빠서 수술 못하고 있을 뿐이야. 수술만 하면은.” 그는 여전히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자신의 인생이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것이 사실은 강서희에게 농단된 삶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눈앞에 있는 저만 못 보시는 게 아니네요. 아무것도 못 보시네요. 아버지 인생이 어디로 떨어지고 있는지 볼 생각조차 없으시네요.” 허준재의 이 말은 사실이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인정하지 못하는 허일중은 진실을 모른다기보다는 진실을 바라볼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무화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애써 부정한다. “17년을 같이 산자신이 강서희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고 싶다.

 

어째서 이들의 대화는 드라마 속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을까. 허일중이라는 눈 먼 어른의 캐릭터를 통해 담아내고 있는 이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일부 눈 먼 어른 세대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눈 앞에 이미 저들에 의해 농단된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그것이 모두 거짓이라고 말하는 일부 눈 먼 어른들. 그들이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않고 생각했던 그들.

 

하지만 그렇게 진실을 바로 바라본다는 건 실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푸른바다의 전설>은 에둘러 말해준다. 그 선택은 분명 잘못됐었지만 그걸 인정하는 건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일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이미 알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걸 인정하지 않는 한 멀어가던 눈을 다시 뜰 수는 없다는 걸 말이다. 과연 <푸른바다의 전설>은 어떤 결말을 보여줄까. 그들은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 흥미로워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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