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 <육룡>, 수목 <태후>, 금토 <시그널>

 

드라마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월화에 SBS <육룡이 나르샤>가 있다면 수목에는 KBS <태양의 후예>가 있고 금토에는 tvN <시그널>이 있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나오는 얘기. 어떻게 일주일을 또 기다리느냐는 얘기가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그만큼 완성도도 높고 몰입감도 그 어느 때보다 깊은 명품드라마들이다.

 


'시그널(사진출처:tvN)'

이들 명품드라마들은 확실히 과거의 드라마들과는 다르다. <육룡이 나르샤>는 사극이지만 이전의 사극이 아니며, <태양의 후예>는 멜로드라마지만 그저 그랬던 과거의 멜로가 아니다. <시그널>은 드라마인지 영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완성도와 깊이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들이 화제성은 물론이고 시청률까지 가져가고 있다는 건 주목할 일이다.

 

과거의 경우 드라마는 막연하게 성공 공식 같은 것들이 있다고 여겨졌다. 이를 종합선물세트로 차려놓고 자극적인 설정으로 시청률을 가져간 게 막장드라마들이다. 또한 지상파는 그 주시청층이 정해져 있어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어도(어쩌면 그것이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더더욱) 그것이 시청률을 담보하지는 못한다고 믿어져 왔다. 그래서 드라마들은 한 마디로 적당(?)히 만들어졌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태양의 후예>처럼 스케일과 디테일을 모두 담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가 6회만에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다는 것이 그렇고, <시그널>처럼 멜로도 없는 본격 장르물(그것도 형사물은 시청률에서 안 된다는 금기를 깨고)이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를 가져갔다는 것도 그렇다. 무려 50부작에 이르는 사극이지만 한 회 한 회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밀도가 높은 <육룡이 나르샤>의 선전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 걸까.

 

확언하긴 어렵지만 추정할 수 있는 건 드라마의 시청층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40대 드라마 시청층은 30대부터 우리네 드라마와 미드, 일드를 함께 즐기며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대한 갈증을 키워왔던 세대다. 이들은 기성의 드라마 주시청층이 좋아하던 가족드라마, 멜로드라마, 복수극을 담은 막장드라마 같은 공식적인 드라마도 보지만 동시에 본격 장르물에 대한 선호도도 높은 시청층이다. 그 누구보다 막장드라마를 개탄해하고 완성도 높은 명품드라마가 등장하기를 기다려온 시청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점에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막장드라마 논란을 일으킨 MBC <내 딸 금사월>에 관계자 징계와 주의라는 법정 제재 같은 이례적인 조치를 내린 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미 막장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피로가 극에 달해 있다는 것을 방심위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시청률이면 얼토당토않은 개연성에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담아내던 막장드라마는 조금씩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드라마의 새로운 판도가 열리고 있다. 변화의 시점에 그 헤게모니를 누가 잡는가는 방송사들의 사활을 건 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전쟁의 방식이 과거처럼 시청률을 확보하려는 막장드라마 경쟁 같은 퇴행으로 흘러갈 것 같지는 않다. 제 아무리 시청률을 가져간다고 해도 대중들이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바 있고, 또 새로움을 요구하는 시청층을 잡지 않으면 광고 매출 같은 직접적인 수익에도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한 때는 주중에까지 침투해 들어왔던 막장드라마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었지만 이제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명품드라마들을 기다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 풍경이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기를.

풍경이 스토리를 압도하는 <사랑비>의 문제점

 

파란 담쟁이 넝쿨이 주는 청춘(靑春)의 파릇파릇함, 촉촉이 내리는 비의 질감, 그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는 노란 우산, 그 우산 속의 연인... <사랑비>의 첫 장면은 이 드라마가 얼마나 감성을 자극하는 예쁜 그림에 집착하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미대 앞 작업실 안에서 창밖으로 처음 인하(장근석)가 윤희(윤아)를 발견하는 장면도 그렇다. 미대 앞 벤치에 앉아있는 윤희에게서는 광채가 흐른다.

 

 

'사랑비'(사진출처:KBS)

아마도 첫 만남의 그 강렬하고도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내려는 윤석호 PD의 연출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인하와 윤희가 만나는 70년대 교정의 풍경에 머무르지 않고, 2012년 두 사람의 자식인 서준(장근석)과 하나(윤아)의 첫 만남으로도 이어진다.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설경은 그 순백의 배경 위에 선 인물들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이른바 다이아몬드 스노(흩날리는 눈가루가 빛에 간섭되어 마치 다이아몬드가 떨어지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것)나 몽환적인 느낌의 온천도 마찬가지다.

 

<사랑비>는 분명 압도적인 색과 빛의 대비로 이루어진 영상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것은 스토리상으로도 이미 의도된 것들이다. 왜 굳이 인하가 미대생이며 그 아들인 서준이 포토그래퍼인가가 그것을 설명해준다. 이 두 인물은 <사랑비>의 영상을 상당부분 만들어내는 그림과 사진을 표상한다. 70년대의 풍경이 인하가 그려내는 그림이라면(그가 생각하는 추억처럼 아련한), 2012년의 풍경은 서준이 찍어낸 사진이다.

 

물론 이들 캐릭터는 그림이 주는 아날로그적인 느낌과 사진이 주는 디지털적인 느낌으로 대비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 풍경의 차이는 70년대의 3초와 2012년의 3초의 대비를 통해 제시되는데, 전자가 3초 만에 빠지는 사랑을 얘기한다면, 후자는 3초 만의 누군가의 마음을 빼앗는 사랑을 얘기한다. 전자가 운명적이고 수동적인 3초라면, 후자는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3초다. <사랑비>는 캐릭터의 대비를 통해 70년대와 2012년의 다른 사랑을(그러면서도 같은)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런데 막상 이 '3초'의 대비로 대변되는 두 캐릭터의 성격적인 차이를 빼놓고 보면 이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태도는 그다지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70년대 인하가 친구인 동욱(김시후)과의 우정 때문에 윤희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2012년 서준도 자신의 아버지가 하나의 어머니를 좋아한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70년대와 2012년, 무려 3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들은 헤어짐의 이유를 당사자에게 직접 말하지 못한다. 그림에서 사진으로, 수동적인 3초가 능동적인 3초로, 순정 캐릭터가 까도남 캐릭터로 바뀌었음에도 이들의 사랑을 하는 방식은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서준이나 하나 같은 요즘 세대가 부모 세대의 사랑을 반복하고 있는 이 상황은 과연 현실적인 것일까. 부모들의 빗나간 사랑의 수레바퀴에 억눌려 뭐 하나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 이 풍경은 그래서 지나치게 작가의 의도가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즉 <사랑비>는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사랑도 바뀌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사랑을 보여주려는 드라마다. 그래서 그 과도한 의도 속에서는 지금 세대의 어떤 톡톡 튀는 캐릭터라고 해도 그저 과거의 사랑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이야기가 변하지 않고 반복되는 이유는 이미 강한 주제의식 속에 스토리가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랑비>의 그림들이 예쁘긴 하지만 어딘지 꾸며진 듯한 '살롱사진'의 느낌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토리가 주제의식 속에 갇혀 있듯이, <사랑비>는 예쁜 그림이라는 미적인 연출 속에 드라마가 갇혀 있다.

 

그림과 사진으로 대변되는 캐릭터 설정, 파릇파릇한 청춘의 캠퍼스 교정의 풍경, 예쁜 정원, 카페, 미술 작업실, 동해 바다, 홋카이도의 이국적 풍경, 수목원이라는 공간 등등, 이 작품은 윤석호 PD가 축조해 놓은 풍경화나 정물화를 먼저 상정해놓은 듯한 인상이 짙다. 그리고 그 위에 이 그림의 최고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모델이 서 있다. 장근석과 윤아다. 바다를 배경으로 윤아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재현하고, 장근석이 그녀를 사진에 담는 장면은 그래서 윤석호 PD의 영상에 대한 욕망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예쁘긴 하지만 어딘지 꾸며진 듯한.

 

이것은 스토리가 이 압도적인 풍경화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거꾸로 압도적인 풍경화에 대한 매혹이 스토리를 부수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일까. 오랜 세월을 지나 중년의 인하(정진영)가 홍대 앞에서 비를 맞으며 윤희(이미숙)를 다시 만나는 그 장면이나, 여행을 떠난 서준과 하나가 그 여행지에서 인하와 윤희를 만나는 그 장면이 극적이고 미적인 느낌을 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그런 공간에서 갑자기 만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스토리적인 부실은 어쩔 수 없다.

 

살롱사진에 대한 매혹은 그것이 미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적으로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미적인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미적인 특징은 물론 영상 연출이 차지하는 바가 적지 않지만 결국 스토리적인 정교함과 디테일에서 나오는 것이다. 스토리의 디테일을 영상을 통해 심리적인 것까지 포착해내면서 그 이야기의 힘을 부여해주는 영상연출이야말로 진정으로 미적인 것이 아닐까. 마치 문장의 유려함에 빠졌을 때 자칫 글이라는 매체의 본분을 잊을 위험이 있듯이, 영상의 아름다움 또한 스토리를 종속화하고 가둬버리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70년대 사랑과 2012년의 사랑, 그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변주라는 괜찮은 기획의도를 갖고 있는 <사랑비>. 거기에 맞는 새로운 스토리의 부재가 이 작품을 살롱그림처럼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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