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팀장님은 피곤하시겠어요. 남들보다 많은 게 보이는 사람은 모른 척 할 게 그만큼 많아지는 거잖아요.” 신입 프로파일러 이어진(한예리)의 이 말은 장태수(한석규) 팀장이 처한 난감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설명해준다. 늘 사건을 대하며 범죄행동을 분석하는 게 일인 그는 딸 장하빈(채원빈)이 하는 말이나 어떤 행동 하다못해 그녀가 가방에 매달고 다니는 팬던트 하나도 그냥 지나쳐 지지가 않는다. 그것들이 말해주는 의미들이 프로파일러인 그에게는 남다르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서 자꾸만 범죄의 냄새가 난다. 그것도 자신이 지금 수사하고 있는 살인사건과 연루된 냄새가.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프로파일러 장태수가 사건을 추적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딜레마를 그려낸다. 그의 이런 직업병(?)은 이미 그를 비극의 수렁 속에 빠뜨린 바 있다. 과거 캠핑을 갔다가 어린 하빈과 그의 동생 하준이 산에서 실종됐고 수색 끝에 발견된 건 죽은 하준과 피투성이가 된 하빈이었다. 장태수는 직업적 감각으로 하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추궁했고 그녀를 의심하게 됐다. 그의 아내 윤지수(오연수)는 그런 장태수를 못견뎌하다 이혼했고, 그녀에게 덥친 비극 속에 서서히 무너져 결국 자살했다. 장태수는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하빈과 어떻게든 잘 지내보려 애쓰지만, 어찌된 일인지 자신이 수사하는 범죄와 자꾸만 연루된다.

 

직업적으로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파고 들어야 하는 게 그의 직업이다. 장태수는 딸이 설혹 범인이라고 해도 결코 물러서거나 포기할 그런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하빈 역시 만만치가 않다. 범죄현장에 자꾸만 하빈이 있던 정황과 증거들이 발견되고, 하빈 역시 그것들을 은폐하려는 것 같은 행동을 한다. 프로파일러의 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너무나 숨막히는 일이 아니냐고 친구가 말했을 때 그녀는 “거짓말을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진실을 파고드는 프로파일러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며 더 정교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 딸과의 대결구도가 생겨난다. 

 

그래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장태수가 진실을 추적하는 범죄스릴러이면서, 동시에 그의 가족에 닥친 비극의 진실을 풀어가는 이야기가 된다. 문제는 그 의심의 대상이 가족이라는 점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그래서 끝없이 가족 간의 갈등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과연 장태수는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감내하며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까. 가족이면 무조건 믿어줘야 한다는 죽은 아내 윤지수의 말이 자꾸만 그의 귓가에 울려퍼지지만, 장태수는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또한 이 드라마는 프로파일러들이 사건을 봐야 하는가 아니면 사람을 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던져 놓는다. 이를 대변하는 두 인물은 장태수의 팀에 들어온 이어진과 구대홍(노재원)이다. 이어진은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사건만을 봐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구대홍은 피해자든 가해자든 그 마음을 들여다봐야 사건의 진실이 보인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 프로파일링의 선택지가 아니다. 사건과 동시에 사람도 봐야 하는 게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장태수처럼 그 사건이 가족과 관계되어 있다고 여겨질 때 이런 직업적인 균형감각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장태수는 과연 의심하면서도 가족이라 회피했던 딸을 이제 마주하고, 그녀의 굳게 닫힌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바로 이 딜레마에 빠져 있는 장태수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갈수록 미로 속에 갇혀 버린다. 딸을 끝까지 의심해야 하는 장태수의 그 미칠 것 같은 갑갑함과 궁금증이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이된다. 그래서 시청자들의 추리가 시작된다. 갑자기 자살하기 전 윤지수가 백골사체로 발견된 수연을 땅에 묻는 장면까지 떡밥으로 제시되자 시청자들은 또다시 충격에 빠진다. 하빈만이 아니라 윤지수 또한 과거 사건들과 연루된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장태수가 어서 딸 하빈의 굳게 닫힌 방을 열고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주기를 바라게 된다. 또 이 가족의 비극과 맞닿아 있을 것 같은 윤지수에게 과거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밝혀주기를 바라게 된다. (글:일간스포츠, 사진:MBC)

한석규의 고통 가득 인간적인 얼굴에 대책없이 빠져든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어두운 밤 구불구불한 도로 위를 차 한 대가 달려나간다. 부감으로 비춰지는 그 광경 속에서 이 차는 어떤 방향으로 갈 지를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헤드라이트의 불빛만이 거기 차가 있고 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 차가 한 참을 지났을 때 저 편에 온통 불빛들이 모여 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그건 딱 봐도 사건 현장이다. 어둠 속을 뚫고 그 차들이 모여 빛이 겹쳐져 있는 사건 현장을 향해 달려가는 차의 모습은 앞으로 이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펼쳐 나갈 것인가를 가늠하게 해준다.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진실을 향해 어둡지만 계속 나아가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첫 회의 오프닝 시퀀스다. 그 차를 몰고 진실을 향해 가는 인물은 바로 베테랑 프로파일러 장태수(한석규)다. 현장을 슬쩍 훑어 보기만 해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척척 알아보는 이 인물은 어딘가 이 일이 고통스러운 모습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오정환(윤경호) 강력1팀 팀장이 투덜대게 만들 정도로 퉁명스럽게 현장을 훑어본 후 곧바로 귀가한다. 그의 마음에는 아내가 죽고 하나 남은 유일한 가족인 딸 장하빈(채원빈)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 담겨 있다. 딸이니 챙겨야 한다는 부성애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는 딸을 의심한다. 

 

장태수가 딸을 의심하게 된 건 하빈이 어려서 겪은 비극적인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 캠핑을 갔다가 남동생과 함께 산으로 들어간 어린 하빈이 동생의 시신과 함께 발견된 것이다. 벼랑에서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남동생과 피투성이로 나타난 하빈. 장태수는 하빈이 하는 말들이 거짓말이라는 걸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적 감각으로 알아차린다. 그래서 왜 거짓말을 했냐고 닦달하지만 끝내 하빈은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고, 이 일로 장태수는 아내 윤지수(오연수)와 틀어지게 된다. 결국 이혼하고 윤지수는 자살하고 마는데, 그렇게 남겨진 장태수와 장하빈은 결코 원만한 부녀 관계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마침 산 속의 어느 허름한 집에서 발견된 2리터에 가까운 피로 사체 없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그 곳에 무슨 일인지 장하빈이 왔다 간 흔적들이 발견된다. 마지막 핸드폰이 켜졌던 위치가 바로 그 사건이 발생한 대화산 부근으로 찍혔고, 현장에서 발견된 빨간 섬유가 장하빈이 가방에 매달고 다니던 팬던트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다시 장태수는 딸을 의심하게 된다. 그 곳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만난 인물이 바로 딸이었다는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이처럼 프로파일러인 장태수가 사건을 추적하면서 그 용의자가 자꾸만 딸 장하빈으로 좁혀지는 상황을 마주하면서 갖게 되는 복잡한 심리를 다루고 있다. 공적으로는 프로파일러로서 진실을 추적하는 것이 그의 일이지만, 그 화살이 자신의 가족을 향할 때 갖게 되는 고통이 그것이다. “범죄자 마음을 귀신 같이 읽으면서 애 마음을 그렇게 몰라?” 아내 윤지수가 아들의 죽음에 딸을 의심한 장태수를 나무란다. “무조건 믿어야지. 그게 그렇게 어려워?” 아내는 그렇게 말했지만 장태수는 도무지 모르겠다며 괴로워한다. 

 

아들의 죽음이 딸 때문이라고 의심하고, 그것 때문에 이혼한 아내가 자살하게 된 것까지 장태수는 모두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자책감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에게 또다시 딸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딸을 믿고 싶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너무나 잘 보이는 프로파일러라는 직업 앞에서 장태수는 괴로워한다. 

 

“팀장님은 피곤하시겠어요. 남들보다 많은 게 보이는 사람은 모른 척 할 게 그만큼 많아지는 거잖아요.” 신입으로 들어온 프로파일러 이어진(한예리)가 하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보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들여다보고 진실을 보기 위해 의심하는 게 일이 되어버린 장태수는 범죄 현장에서는 베테랑이지만 가족까지 의심하게 되는 사건을 마주하면서 가족은 물론이고 자신마저 파탄지경의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또 한 명의 신입으로 들어온 구대홍(노재원)은 장태수와도 또 그를 롤모델로 삼는 이어진과도 다른 따뜻한 성품의 프로파일러다. 사람보다 사건을 우선시하는 저들과 달리, 그는 피해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제대로 진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이 사건에 장태수와 그 딸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도 쉽게 그 일을 발설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사건 이면에 무언가 저들이 겪었을 아픔이나 고통을 들여다보려 한다. “가출한 아이들이요. 어떻게든 범죄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요. 열악한 환경에 피해자가 되거나 아니면 가해자로 생존하려는 거죠.” 가출팸을 그저 잠재적 범법자로 보는 시선과 달리 그는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들여다보려 한다. 

 

그래서 장태수는 그의 신입들인 이어진과 구대홍의 서로 다른 사건에 대한 접근방식을 통해 자신 또한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사건 현장의 증거들이나 정황을 통해 합리적으로 딸을 의심하지만, 딸이 어떤 일을 겪었고 그로 인해 어떤 심리적 고통이나 아픔을 갖고 있는가는 아직 잘 모르고 있다. 그건 장하빈이 아버지 장태수를 한 집안에서 함께 있는 것조차 힘겹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하준이 말야 정말 사고였을까? 엄마는? 엄마가 정말 자살했다고 생각해?” 장하빈의 그 말은 장태수에게는 마치 그들의 죽음에 장하빈이 연루된 것처럼 들리지만, 그건 어쩌면 장하빈에게는 그들의 죽음이 아빠의 가족에 대한 소홀함이 만든 것이라는 토로일 수 있다. 

 

깜깜한 어둠 속에 헤드라이트 하나를 켜고 달려나가는 자동차처럼, 장태수는 막막한 어둠 속에 놓여 있다. 그건 도무지 진실을 알 수 없는 범죄현장 앞에 서 있는 모습이면서, 동시에 도무지 알 수 없는 딸의 마음을 마주하고 그 문앞에 서서 문을 열까 말까 고심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서도 끝내 진실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장태수의 모습은 그래서 인간적이고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그러져 있지만 고통을 감내하면서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어두운 공간 속에 놓여진 장태수의 모습을 연출적으로 보여주는 건 그의 심리를 이만큼 정확하게 담아내는 미장센이 없어서다. 여기에 그 역할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한석규의 내면 연기가 묻어난 얼굴과 표정이 대책없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음영에 도드라진 고통스러운 얼굴이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다. 과연 이 인물은 가시덤불 가득한 그 어둠의 길들을 헤치고 끝내 진실을 향해 나아가 그걸 마주하게 될까. 그것이 어떤 고통과 두려움을 줄 거라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까.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가진 매력적인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사진:MBC)

SBS 금토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 담은 프로파일러 탄생기

최근 몇 년 간 범죄스릴러는 드라마의 한 분파를 형성할 만큼 쏟아져 나왔다. 이 작품들을 통해 프로파일러라는 범죄 분석 전문가를 우리는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바로 그들의 탄생 과정을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우리에게 익숙한 강압수사의 그늘

1993년에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끈 강우석 감독의 영화 <투캅스>에는 강압적으로 용의자의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베테랑인 조형사(안성기)가 자기 스스로를 마구 때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마치 심문 과정에서 형사가 용의자에게 맞은 것처럼 꾸밈으로써 겁을 집어먹은 용의자가 진술을 털어놓게 하는 수법이다. 이 장면은 수사에서 폭력이 자주 벌어지고, 그런 일들을 그리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90년대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당대만 해도 형사들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버티는 범인에게 진술을 강요하며 주먹질을 하는 장면은 흔하게 등장했다. 

 

2003년 방영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서는 이러한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수사를 풍자적으로 담아낸다. 육감으로 수사하는 형사 박두만(송강호)은 연쇄살인범을 어떻게든 잡겠다는 일념으로 동네 양아치들을 잡아다 족치며 자백을 강요한다. 바보 용의자 백광호(박노식)는 향숙이를 좋아해 연쇄살인범으로 오인되고 처절할 정도로 고문당하는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에게 과학수사라는 개념은 2000년대 넘어서야 비로소 어느 정도 생겨난 일이다. 이전에는 강압수사 장면들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 범죄물에 등장할 정도로.

 

SBS 금토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바로 그 강압수사에서 과학수사로 넘어가는 시점을 그린다. 동부경찰서 강력반 반장 박대웅(정만식)은 그 강압수사의 표본 같은 인물. 살해된 후 옷이 벗겨진 여성의 범인으로 그의 애인 방기훈(오경주)를 체포한 그는 그를 폭력을 동원한 강압수사로 범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런 그에게 방기훈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송하영(김남길)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런 새끼들 인간 아니야. 인간 아닌 새끼들은 매질이 제일 빠르고 쉬워.” 그는 심지어 방기훈을 당시 세간을 공포에 몰아넣은 성폭행 살인범인 ‘빨간 모자’ 사건의 범인으로 몰아세운다.

 

아직 프로파일링 같은 과학수사의 개념이 자리 잡지 못했던 시절, 박대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감수성을 가진 송하영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증거를 찾기 위한 수사를 계속한다. 사건이 벌어진 집 현관에 숫자로 가족구성원을 일일이 표시해놓은 걸 발견한 송하영은 그런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는 배달원을 탐문 수사하고, 방기훈이 범인을 지목된 사건 현장에서도 신원을 알 수 없는 지문을 발견한다. 그리고 범인의 마음을 읽어내기 위해, 감옥에 있는 연쇄 성폭행범인 양용철(고건한)을 찾아가 조언을 듣는다. 결국 가택침입죄로 끌려온 조강무(오승훈)가 진범이라는 사실을 송하영은 심리적인 압박을 통해 밝혀낸다. 강압수사가 만들어내는 제2, 제3의 피해자들을 막기 위해 과학수사가 절실하다는 걸 드라마는 박대웅과 송하영의 대결구도를 통해 그려낸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 담긴 진정성

강압수사가 아닌 과학수사의 필요성을 전제하고, 우리네 사법 현실에서 드디어 프로파일링이라는 개념이 탄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색다른 관전 포인트를 만든다. 보통의 범죄스릴러들이 잔혹한 범인들이 만들어내는 공포와 공분을 화력으로 삼아 그들을 추적해 잡는 과정의 카타르시스를 담는다면, 이 드라마는 그 과정이 과연 과학적이었고 증거에 근거했으며 나아가 합법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는가에 대한 질문을 더한다. 

 

물론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사건들 역시 엽기적이고 보기 불편할 정도의 끔찍함을 보여준다. 그것은 드라마가 상정하고 있는 세기말과 2000년대의 실제 범죄들이 점점 잔혹해졌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도 서구에서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살인 자체의 자극을 즐기는 연쇄살인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 실제로 이런 범죄양상의 변화들 때문에 프로파일링 개념의 과학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이유가 되기도 했다. 과거처럼 원한 관계 같은 걸 아무리 들여다봐도 범인을 찾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대신 필요해진 건 그 ‘악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이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의 실제 경험들을 바탕으로 쓴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이나 <알쓸신잡> 등을 통해 잘 알려진 권일용 교수의 진심이 묻어난다. 방송을 통해 누구보다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어떻게든 범인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과학수사를 절실하게 공부하고 현장에서 활용해온 권일용 교수가 아닌가. 창작된 이야기로 ‘인물, 기관,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라는 사전고지로 시작하는 드라마지만, 송하영이라는 가상의 인물에서 권일용 교수의 그림자가 겹쳐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 같은 과학수사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진정성은 그래서 이 범죄스릴러가 자극보다 공감을 더 불러일으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살벌한 범죄가 전개되지만, 그보다 과학적인 방법을 총동원해 어떻게든 진범을 잡겠다는 의지에 더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더할 나위 없는 미친 연기의 향연

연기는 단지 표현이 아니라, 실제 상황에 대한 분석과 해석에 의해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연기의 몰입감은 연기자가 사전에 얼마나 그 역할을 제대로 들여다봤는가와 비례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논픽션 원작을 통한 인물 분석이나 권일용 교수와의 교감이 충분했을 디테일한 캐릭터와 사건이 구현된 이 작품의 대본은 연기자들의 연기를 더 빛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됐을 성 싶다. 

 

주인공 송하영 역할을 연기하는 김남길은 <열혈사제>의 그 흥분 가득한 과장 캐릭터와는 너무나 다른 디테일한 연기를 보여준다.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범인을 추적하면서,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나아가 범죄자의 마음까지 읽어내는 감수성의 소유자가 바로 송하영이다. 심지어 양용철 같은 범죄자의 도움을 청하고 그래서 면담을 통해 그의 이야기에 몰입하지만 동시에 그는 자신과 범죄자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는 인물이기도 하다. 김남길의 차분하지만 내적 열정이 가득한 연기를 통해 구현된 송하영이라는 인물의 이런 면모는 그가 얼마나 제대로 된 방식으로 진범을 잡고 싶어 하는가를 잘 표현해낸다. 

 

여기에 이제 직접 범죄행동분석팀을 만들어 송하영에게 날개를 달아줄 국영수 팀장 역할의 진선규나, 만만찮은 카리스마가 예상되는 윤태구 역할의 김소진 같은 배우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들을 통해 당대 과학수사가 피어나고 빛을 발하는 그 과정 속에서 강력범죄를 해결하려 애쓴 형사들의 마음도 전해지지 않을까. 

 

물론 워낙 많은 범죄스릴러를 접해와서인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 등장하는 범죄의 사례들이 새롭게만 느껴지지 않는 면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범죄 사례보다 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그 범죄를 저지른 악의 마음은 물론이고 이를 수사해가는 형사들의 절실한 마음까지 읽어가는 것이란 점에서 이 특별한 범죄스릴러가 주는 기대는 그 어느 작품보다 높다. (글:매일신문,사진:SBS)

'유퀴즈', 이들이 끔찍한 범죄를 보고 또 보는 까닭

 

조두순, 이춘재, 정남규, 유영철... 이름만 들어도 분노하게 되는 끔찍한 범죄자들을 마주한 채 면담하고, 살인 현장을 찾아 그 범인의 동기와 동선을 찾으려 범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며, 심지어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범죄자와의 심리적 유대관계까지 갖는 범죄심리학자나 프로파일러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고 또 어떤 마음을 갖고 그 일을 대할까.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이 '그것이 알고 싶다' 2탄 특집으로 마련한 방송에는 범죄심리를 연구하는 이수정 교수, 국내 1호 여성 프로파일러인 인천지방경찰청 이진숙 경위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 프로파일러 권일용 같은 분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상상하기도 싫은 연쇄살인범들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며 때론 함께 밥을 먹기도 해야 하는 그들이 '범죄를 연구하는' 공통적인 이유는 그래야 범죄가 더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수정 교수는 범죄심리학이 범죄자의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며, 왜 그 마음을 연구하느냐는 질문에 "범죄자가 형이 만기 돼서 출소를 해도 사회로 돌아갔을 때 또 다시 재범을 할 거냐 안할 거냐는 전적으로 그 사람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마음을 연구 안하면 이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조두순 출소에 대해서 당시의 피해자가 그 곳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사법 정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단지 엄벌만 하는 게 정의가 아니고 피해자를 회복시키는 것이 사법 정의의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는 현재의 형사사법제가 무조건 범죄자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중심으로 되어야 하는 세상이 왔다고 강조했다.

 

이춘재나 고유정 같은 이들과의 면담을 해 자백을 받아내기도 했다는 국내 1호 여성 프로파일러인 이진숙 경위는 범죄자들과의 면담이 얼마나 쉽지 않은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보통사람들이라면 그 범죄 과정들을 들으며 경악하거나 분노할 수밖에 없는 면담 과정에서 프로파일러들은 그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해 '라포르'라 불리는 범죄자들과의 친근한 유대관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즉 그들 앞에서는 친밀하게 대화하면서, 그걸 통해 드러난 사건들을 처리할 때는 냉철하게 해야 하는 게 그들이 하는 일이었다.

 

국내 최초 프로파일러 권일용은 이 상황을 살인범과 마주해 함께 밥을 먹어야 했던 경험을 통해 토로했다. 그는 그 경험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 같았다며 "범죄자들은 범행을 저지르고 남을 해치기 위해 열심히 먹고 살고" 자신은 "범죄자들을 검거하기 위해 열심히 먹고 살아야 되는" 그런 극단의 상황에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 그 순간에 얼마나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교차됐을까.

 

2009년 강호순 체포 이후 연쇄살인범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 권일용은 그것이 없어진 게 아니라 빨리 잡히는 것이라고 했다. 즉 범행 후 빨리 잡히기 때문에 연쇄살인이 이어지지 않는 것이지, 만일 늦게 잡혔다면 끔찍한 범행이 더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빨리 잡히는 이유에 대해 권일용은 시민의식이 높아졌고 CCTV나 블랙박스 영상 등을 활용하면서 검거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라 했지만 범죄심리학자나 프로파일러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 또한 그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유 퀴즈 온 더 블록> '그것이 알고 싶다' 2탄 특집이 특별하게 느껴진 건, 그런 남다른 사명감을 갖고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을 마주하는 분들의 생생한 현장에서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들 또한 한 사람으로서 갖는 복잡한 감정들과 고충들까지 담아냈다는 점이다. 드라마나 영화가 그려내듯 우리와는 다른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분들의 위대한 헌신이 엿보였다. 모두가 고개를 돌릴 때 그 끔찍한 범죄를 마주하고 보고 또 보는 그런 분들의 헌신이 있어 그나마 우리의 안전이 담보되고 있는 게 아닐까.(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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