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김희애, 졸렬한 망언 박해준에게 짜릿한 비수를

 

“남편 때문에요. 바람 폈거든요 이 사람.” 숨 막히게 몰아치는 지선우(김희애)의 반격이었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비수처럼 날아가 남편 이태오(박해준)와 그와 바람을 핀 여다경(한소희) 그리고 그 부모들인 여병규(이경영), 엄효정(김선경)의 가슴에 꽂혔다. “임신한 거 부모님은 아직 모르시나봐 다경씨?” 그 말에 여다경이 무너졌고, “이 댁 따님이요. 내 남편이랑 바람펴서 임신했다구요. 회장님은 그것도 모르고 거액을 투자하신 거구요.”라는 말에 그의 부모님은 얼어붙었다.

 

애써 부인하는 이태오의 졸렬한 모습에 여다경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거기에 지선우는 마치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독설을 퍼부었다. “봤지? 끝까지 비겁하게 도망치는 거. 그게 바로 이태오란 남자야. 네가 좋아서 물고 빨고 했던 게 겨우 저런 놈이라구.” 그래도 딸이라고 입조심하라며 화를 내는 여병규에게도 거침없이 독설을 퍼부었다. “당신 딸부터 조심시켰어야죠. 남의 남편은 건드리는 게 아니다. 아이까지 있는 유부남한테 함부로 껄떡대면 안 된다. 암만 몸이 달았어도 남의 가정 파탄내는 건 나쁜 년들이나 하는 짓이다.”

 

단 5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순식간에 공기를 바꿔놓았다. 남편의 불륜과 그걸 알면서도 묵인했던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에 절망하던 지선우였다. 게다가 남편의 불륜 현장을 미행하게 했던 민현서(심은우)를 상습적으로 폭행해온 박인규(이학주)가 이 사실을 알아채고 지선우를 협박해 금품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또 남편의 재정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또 홧김에 맞불륜을 저질렀던 남편 친구 손제혁(김영민)이 집까지 찾아와 은근히 그를 위협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남편의 불륜 동영상을 우연히 찍은 파일을 줬던 환자 하동식(김종태)이 병원에서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고 무너지는 그 순간들을 겪은 지선우지만 그는 결코 거기서 무너지거나 물러나지 않았다. 민현서로부터 여다경이 집으로 들어갔다며 이제 남편과의 불륜은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선우는 그걸로 이 일을 덮고 넘어가려 하지 않았다. 공원에 앉아 차분히 그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정리하고 그는 결심했다. 자신이 받은 것만큼 고스란히 돌려주겠다는 것. 더 이상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것. 그래서 여병규의 집을 찾아가 낱낱이 불륜 사실들을 폭로해버렸다.

 

지선우의 이런 과감하고 도발적인 선택은 지금껏 많은 불륜을 소재로 했던 우리네 드라마들이 보여줬던 것들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대부분의 불륜 소재 드라마에서는 피해자가 눈물 흘리고 힘겨워 하는 모습이 등장하고, 혼자 떠나거나 헤어지는 것 정도가 그 대처하는 모습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는 이처럼 피하는 모습이 아닌 정면으로 부딪치고 받은 만큼 돌려주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태오는 지난 번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한다”는 망언에 이어 또 한 번의 망언을 던진다.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하지만 가족까지 버릴 생각은 없었어.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그 망언에 지선우는 허탈해졌다. 그걸 ‘사랑’이라 부르는 남편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선우는 자신이 저지른 맞불륜을 털어놓는다. “나 제혁씨랑 잤어.” 그러면서 처음엔 복수할 생각이었지만 “막상 하다 보니 짜릿하더라”는 비수를 던진다. 그런 짓이 결코 사랑일 수 없다는 걸 말하는 대목이었다.

 

<부부의 세계>가 이처럼 뜨거운 관심을 받는 건 그간 불륜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들이 그려온 답답한 전개와는 사뭇 다른 속도감과 치고받는 난타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그냥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 휘발되지 않게 되는 건, 지선우라는 캐릭터에 대한 디테일한 심리를 담아내고 무엇보다 그의 대처방식이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맞서는 것으로 그려진다는 것에 대한 카타르시스와 메시지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피해자만이 감수하곤 했던 아픔을 가해자에게 고스란히 돌려주는 그 선택은 당연한 것이지만, 사회통념이니 성차별 같은 것들이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게 만든 현실이 존재한다. 시청자들은 지선우의 선택을 통해 그 잘못된 현실을 뒤집는 통쾌함을 느끼고 있다.(사진:JTBC)

'부부의 세계' 김희애, 저질 밑바닥 박해준에게 살벌한 저주를

 

바닥 중에서도 이런 바닥이 없다. 아내 몰래 오래도록 바람을 피우고 친구들도 속이게 만든 것도 모자라, 집을 담보로 심지어 아들의 보험까지 건드려 빼낸 돈으로 내연녀의 명품 가방을 사주는 그런 인간. 게다가 어머니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상주가 되었지만, 상가에서조차 내연녀와 몰래 차 속에서 밀회를 나누는 그런 바닥 중의 바닥이 바로 이태오(박해준)의 실체였다.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이런 남편의 실체를 하나씩 알게 되면서 무너져가던 아내 지선우(김희애)가 아들 때문에 갈등하던 마음을 다잡고 복수를 결심하는 과정을 담았다. 단지 다른 내연녀와 불륜을 맺었다는 사실보다 그를 더 아프게 하는 건 그를 속였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심지어 사랑까지도.

 

지선우에게 이태오가 프러포즈할 때 차에서 흘러나오던 스팅의 ‘My one and only one’은 상가 주차장에서 이태오가 몰래 밀회를 나누는 내연녀의 차에서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노래 속 ‘only one’은 거짓이었다. 지선우에서 내연녀 여다경(한소희)을 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태오는 여다경과 빨리 정리하라는 설명숙(채국희)에게 뻔뻔하게도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다”고 말했다.

 

<부부의 세계>는 지선우가 겪는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서 시청자들을 온전히 그의 입장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이태오의 그 이중적인 면면들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무너지고 분노하는 지선우와 똑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이 갖는 분노감이 유독 크게 느껴지는 건 이런 관점과 그 관점을 제대로 증폭해 보여주고 있는 김희애의 몰입감 넘치는 연기 덕분이다.

 

여기에 지선우의 분노를 더욱 크게 만든 건 요양병원에 누워 있는 이태오의 어머니다. 그가 이미 이태오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들을 두둔하는 모습은 시청자들마저 공분하게 만들었다. 그 역시 남편의 불륜을 겪었던 인물이었지만 자기 아들만 생각하는 모습 때문이다. “자식 앞날 생각해 용서하고 살라”는 그에게 지선우는 선언한다. “이혼할 겁니다. 빈털터리로 쫓아낼 거구요. 이 동네 다시는 발도 못 붙이게 만들 겁니다. 준영이 영원히 못볼 거예요.”

 

하지만 이태오의 어머니는 그 불륜이 지선우의 탓이라는 몰상식한 말을 던진다. “바늘 끝 하나 안 들어가는 너랑 사느라 내 아들도 고단했다. 오죽하면 그래. 네가 숨 쉴 틈만 줬어도 한 눈 안 팔았어.” 그 장면에서 지선우가 이태오의 어머니와 눈을 맞추고 던지는 저주들은 마치 살벌한 스릴러의 한 대목처럼 그려진다.

 

밑바닥을 보여주는 이태오와 그 사실을 알고 절망하는 지선우를 더더욱 분노하게 하는 그 주변사람들. 책방에서 우연히 만나 팽팽한 대결구도를 보여주는 지선우와 여다경. 그리고 이제 이혼을 결심하고 이태오에 복수하기 위해 민현서(심은우)를 여다경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게 만드는 지선우... 이 일련의 과정들은 이제 복수극의 서막이 올랐다는 걸 말해준다. 제목은 <부부의 세계>지만 그 어떤 스릴러보다 팽팽한 긴장감과 폭발력을 보여줄 지선우의 복수가 갈수록 기대된다.(사진:JTBC)

‘백일의 낭군님’, 진지함과 코믹함 다 되는 남지현과 도경수

사실 새로 시작한 tvN 월화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의 인물관계도를 보면 그 이야기가 구조가 그리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원수지간인 부모의 관계 속에서 이뤄진 첫사랑, 왕세자라는 캐릭터, 몰락한 가문의 여인, 사고로 기억을 잃고 평민이 된 왕세자와 어쩌다 보니 혼인을 하게 된 여인,... 많이 봐왔던 조선시대판 멜로사극의 풍경이 그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하지만 <백일의 낭군님>이 시선을 끄는 건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캐스팅이다. 이제는 아이돌 배우에서 ‘아이돌’ 딱지를 떼도 충분할 만큼 연기의 성장을 보여왔던 도경수와, 사극에서부터 현대극까지 아울러 아역에서 성인역으로 성장해왔던 남지현이 그들이다. 첫 회에서 두 사람은 아련한 사랑의 감정과 아픈 가족사를 담아내면서도, 특유의 코믹한 설정들을 소화해내는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왕세자 이율을 연기하는 도경수다. 시작부터 “불편한 건 나뿐인가”라는 유행어가 될 법한 대사를 반복하며 궁궐 생활의 ‘불편함’을 토로하는 것으로 묘한 코믹함을 만들어내는 이 인물은, 동시에 아버지인 왕(조한철)과 갈등하는 모습 또한 드러낸다. 결국 아버지의 사주로 인해 자신이 좋아했던 윤이서(남지현)의 아버지가 역도로 몰려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어머니 역시. 

그래서 궁궐 생활을 하면서 계속 엇나가는 이 왕세자는 아버지를 왕으로 세운 김차언(조성하)의 딸 김소혜(한소희)와 혼인을 맺지만 그를 피한다. 오랜 가뭄이 왕세자가 세자빈과 합방을 하지 않아 생긴 음양의 부조화 때문이라는 신하들의 이야기에, 왕세자는 조선의 노처녀, 노총각들도 모두 혼사를 시키라는 명을 내리지만 그것을 자신이 겪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결국 저잣거리로 나오게 될 그는 자신의 명 때문에 윤이서와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궁궐 내에서 그가 툭하면 내뱉었던 ‘불편함’은 그래서 향후 저잣거리에서 그가 겪을 진짜 불편함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코믹한 상황이 연출된다. “얼굴만 번지르르하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내”가 된 그는 악처로 돌변한 윤이서에게 갖은 구박을 받는 존재가 된다. 살짝 비틀어진 관계의 역전이 이 멜로 사극의 코미디적 요소가 된다. 

이율과 윤이서는 각각 저잣거리의 이름을 갖고 있다. 원득과 흠심이라는 이름. 그래서 그들은 100일 간 일종의 가상부부 생활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만, 때론 가상이 현실이 되기도 하는 법이라 두 사람 사이에 피어날 멜로는 기대되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그들이 그 저잣거리의 서민적 삶을 통해 진솔한 사랑을 피워내고, 자신의 이름인 이율과 윤이서로 돌아왔을 때 바뀌게 될 변화들 또한.

많은 것들이 이미 예상되는 범위 안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가 시선을 끄는 건 역시 남지현과 도경수라는 믿고 보는 배우들 덕분이다. 그들이 만들어갈 코믹하고 절절한 멜로 사극이 <구르미 그린 달빛>이나 <해를 품은 달> 같은 대중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박보검-김유정, 김수현-한가인 같은 그림 같은 커플의 탄생이 될 테니.(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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