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의 신기원 ‘품위녀’, 무엇이 그리 특별했을까

욕심쟁이 드라마다. <품위 있는 그녀>는 결국 많은 이들이 예상한 대로 마지막 회 12% 시청률(닐슨 코리아)을 기록하며 JTBC 미니시리즈 사상 신기록을 세웠다. 이로써 백미경 작가는 전작인 <힘쎈여자 도봉순>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성공시키며 JTBC 드라마의 한 획을 그었다. 

'품위 있는 그녀(사진출처:JTBC)'

하지만 이 작품이 얻은 건 단지 시청률만이 아니었다. 스릴러 장르에서부터 사회 풍자극, 치정극 같은 다양한 장르적 색채들을 한 드라마 안에 녹여놓은 완성도 높은 대본이 있었고, 김희선과 김선아를 중심으로 빈틈없는 연기의 향연이 있었다. 보통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져가고, 대본과 연출과 연기가 삼박자를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인 드라마라고 할 때, <품위 있는 그녀>는 그 기준에 모두 부합한 드라마였다. 

<품위 있는 그녀>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건 무엇보다 강남 부호들의 위선적인 삶을 들여다본다는 쾌감이었다. 겉보기엔 화려해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불륜과 치정과 돈 관계로 얼룩진 구질구질함이 이 드라마가 폭로해낸 것이었다. 욕망으로 얼룩진 그 삶이 실체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허망한 것이라는 걸 백미경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통찰해냈다.

단지 폭로의 쾌감만 있었다면 <품위 있는 그녀>가 가슴까지 어떤 울림을 주는 드라마가 되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박복자(김선아)라는 인물이 이 세계에 들어와 파란을 일으키는 이야기지만, 드라마는 후반으로 갈수록 이 인물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을 담아냈다. 그토록 꿈꾸던 진정한 품위와 우아함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결국 파국을 맞는 그 삶을 통해 우리네 서민들이 갖는 욕망과 그 욕망의 끝을 동시에 보여줬다. 

그러면서 어떤 길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인가를 그 세계로부터 탈주해 나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우아진(김희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려냈다. 진정한 삶의 행복과 가치는 돈으로 얻어질 수 없는 것이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평상시에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걸 ‘품위 있는 그녀’의 캐릭터를 통해 드러냈다. 그것이 진정한 ‘품위’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

이처럼 자못 무게감이 있는 메시지를 백미경 작가는 지극히 대중적인 작법들을 통해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는 이야기로 그려냈다. 이미 첫 회부터 예고된 것이지만 박복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마지막 회까지 그대로 이어졌고, 작가가 공언한 것처럼 드라마가 끝나기 10분 전에서야 그 진범이 밝혀지는 것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 진범이 누구인가가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그런 장치가 있어서 시청자들은 끝까지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누가 범인인가를 추측하게 만드는 그 장치를 통해 여러 용의자들(?)의 실체에 더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기도 했다. 마지막 회의 또 다른 떡밥으로서의 풍숙정 김치의 정체는 그 실체가 조미료였다는 게 밝혀짐으로써 어떤 통쾌함을 안겨주면서도 이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를 전했다. 맛도 모르면서 비싸게 산다고 진짜 맛이 아니라는 것. 품위가 그러하듯이.

<품위 있는 그녀>는 지금껏 JTBC 드라마가 추구해온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대중성까지 확보해낸 작품으로 시청자들에게 남았다. 메시지를 담은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흥미로운 이야기, 그 이야기를 살아있는 인물로 만들어내는 연기와 연출... 좋은 작품의 교과서 같은 면을 보여준 작품이다.

tvN·OCN 편성 공격에 너덜너덜해진 JTBC ‘맨투맨’

JTBC 금토드라마 <맨투맨>은 요즘 심기가 편치 않다.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까지도 JTBC가 이 드라마에 거는 기대는 남달랐다. 사전제작으로 완성도를 높였고, 박해진과 박성웅이라는 투톱 캐스팅만으로도 대중들의 관심이 쏠렸다. 무엇보다 <태양의 후예>를 쓴 김원석 작가의 대본이라는 점은 국내는 물론 해외의 관심까지도 끌어 모았다. 

'맨투맨(사진출처:JTBC)'

실제 문을 연 <맨투맨>은 그 남다른 스케일과 스파이 액션이라는 좀체 시도하기 쉽지 않은 장르를 코미디 장르와 잘 엮어낸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물량 투입에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맨투맨>이 시청률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4%(닐슨 코리아)대에서 시작하며 전작이었던 <힘쎈여자 도봉순>의 성공을 이어갈 것이라고 예측됐지만, 3회에 2%대로 떨어지더니 그 후로 2-3% 시청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건 물론 <맨투맨>이 화려한 볼거리에 비해 시청자들의 감정을 몰입시키는 쫄깃한 스토리가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 그 요인이다. 또 박성웅이 연기하는 여운광이라는 코믹한 액션배우 캐릭터가 참신한 데 비해, 박해진이 분한 김설우라는 국정원 고스트요원 캐릭터는 다분히 상식적이라는 점, 그래서 여운광과 김설우가 이어가는 브로맨스는 흥미롭지만, 김설우와 여주인공 차도하(김민정)의 멜로 역시 너무 남성 판타지에만 머물러 있다는 점등이 한계로 지목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액션과 코미디를 엮어낸 작품이 2% 시청률에 머문 데는 외적인 요인이 적지 않다. 그것은 금토 11시대 헤게모니를 두고 경쟁하는 tvN과의 편성 전쟁이다. 금요일 밤 <맨투맨>의 시청률이 2%대로 떨어지게 된 가장 큰 외적요인은 tvN <윤식당>이 그 방영시간을 애초의 시간대에서 30분 정도가 늦춰진 9시50분으로 늦추게 되면서부터였다. tvN은 이러한 편성시간 변화를 낮 시간이 길어지면서 귀가시간도 늦춰진 대중들의 달라진 생활패턴에 맞추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그 여파는 고스란히 <맨투맨>에 미칠 수밖에 없었다. 1시간 반 넘게 방영되는 <윤식당>은 그래서 11시 반 정도에 끝나게 됨으로써 11시 방영되는 <맨투맨>과 겹쳐지게 되었다. 

여기에 애초에는 예상치 못했던 OCN 채널의 주말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이제는 토요일 밤 방영되는 <맨투맨>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보이스>에 이어 현재 방영되고 있는 <터널>은 현재 시청률이 6%에 육박할 정도로 주말 밤 화제의 드라마가 되었다. 그런데 10시 방영되는 <터널> 역시 방영시간이 1시간 반에 이른다는 점이다. 따라서 토요일도 11시 시작하는 <맨투맨>은 11시 반에 끝나는 <터널>과 30분이 겹쳐지게 되었다. 

의도적인 편성 전쟁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보면 <맨투맨>은 금요일 <윤식당>에 치이고 토요일 <터널>에 밀리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애초에 JTBC는 <힘쎈여자 도봉순>을 시작하며 그 시간대를 11시로 옮겨 톡톡한 재미를 본 바 있다. 하지만 이제 tvN과 OCN의 편성 시간대 변화와 맞물리면서 <맨투맨>은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 상황이다. 한때는 지상파 3사의 편성전쟁이 치열한 양상을 보였지만 지금은 금토 시간대의 비지상파 편성전쟁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힘쎈 여자 도봉순’, 박보영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드라마는 끝났지만 박보영이 남긴 잔상은 꽤나 오래 지속될 것 같다. 마지막회 시청률 8.957%(닐슨 코리아). JTBC로서는 이제 종영한 <힘쎈 여자 도봉순>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다. 그간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을 꾸준히 만들어왔지만 시청률에 있어서는 그다지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던 JTBC 아닌가. 그러니 이 <힘쎈 여자 도봉순>이 난공불락으로만 여겼던 시청률의 성을 깨버린 건 JTBC로서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그리고 이 드라마가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누가 뭐래도 박보영이라는 독보적인 연기자 덕분이라는 것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게다. 생각해보라. 어찌 보면 만화 같은 슈퍼파워걸 도봉순이 보여주는 엄청난 괴력의 장면들은 자칫 잘못하면 유치하게 느껴지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살짝 치기만 해도 사람이 날아가고, 문짝을 통째로 뜯어내거나 달리는 버스를 맨 손으로 멈춰 세우며, 수십 명은 될 조폭들을 간단히 제압해버리는 그 장면들은 우리네 드라마에서는 좀체 성공하기 어렵다는 B급 정서까지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현실을 드라마는 그간 범행의 대상으로만 주로 다뤄지던 여성 히어로를 세움으로써 심정적 지지로 바꾸었고, 그 B급 정서가 코미디적으로 연출되면서 믿기 어려운 액션들마저 웃어넘길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런 난관들을 모두 허용시킨 건 다름 아닌 박보영이라는 배우 자체였다. 어른들에게는 복스럽고, 남녀 모두에게 귀엽게 다가오는 이 대체불가의 배우는 액션이면 액션, 멜로면 멜로, 코미디면 코미디 등등 뭐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발휘했다. 

이 드라마에서 박보영이라는 배우가 한 장르들을 떠올려보라. 스릴러는 물론이고 액션, 멜로, 코미디, 청춘 성장드라마 등등 그 스펙트럼이 너무나 넓다. 마치 아이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올려다볼 때는 보는 이들을 가슴 설레게 만들고, 조폭들을 한꺼번에 때려눕힐 때는 그간 억눌렸던 감정들이 시원하게 풀어지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춘들에게는 개인적 성장을 통한 어떤 위로와 위안을 주고, 웃을 일 찾기 힘든 현실에 잠시 동안 모든 걸 잊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렇게 다채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액면대로 보면 드라마가 굉장한 메시지나 형식미 혹은 내용적 완성도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조금씩 있는 흠결들을 채워 넣어준 건 다름 아닌 박보영이다. 그녀가 하기 때문에 용서되는 장면들도 있었고, 그녀가 있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게 됐던 허술한 이야기 설정들도 적지 않았다. 

이 배우가 놀라운 건 보통 우리가 ‘국민 여동생’ 같은 표현으로 지칭할 때 생기는 어떤 이미지의 장벽 같은 것들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귀여운 여동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뭇 남성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 이건 배우로서 박보영이 가진 가장 큰 독보적인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작년 방영해 큰 성공을 거뒀던 tvN <오 나의 귀신님>은 박보영이라는 배우의 꽃길이 이미 시작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제 <힘쎈 여자 도봉순>으로 확실히 입증된 그 힘은 벌써부터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든다. 이제 자신의 힘을 자각한 박보영의 또 다른 비상을 기대한다.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 도봉순이 결국 자각했던 그 힘처럼.

‘도봉순’, 어째서 멜로와 여성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나

결국 힘쎈 여자 도봉순(박보영)이라는 슈퍼히어로라고 해도 남자의 구원을 받아야 될 존재여야만 할까. JTBC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이 예상과 달리 엉뚱한 전개를 보이는 것이 대해 시청자들이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제대로 된 여성주의적 관점을 담은 드라마라는 생각과 달리, 슈퍼히어로인 도봉순이 여전히 남자에게 의존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여성들을 감금해 사육하는 엽기적인 사이코 김장현(장미관)은 도봉순을 유인해 선량한 사람을 자신으로 위장시켜 다치게 함으로써 그녀의 힘을 무력화시켰다. 그런 설정이야 김장현과 도봉순의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드는 것으로서 필요했던 장면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위기 상황에 나타난 안민혁(박형식)과 인국두(지수)가 결국은 무력화된 도봉순을 구한다는 설정은 너무 쉬우면서도 안이한 해결책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그 장면은 결국 도봉순처럼 힘쎈 슈퍼히어로라고 해도 안민혁이나 인국두 같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되는 존재처럼 비춰진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가 지금껏 해오려던 이야기의 긴장감을 일시에 무너뜨렸다. 힘쎈 여자는 과연 예쁘지 않고 사랑받지 못할까라는 드라마가 화두로 던진 문제의식은 끝없이 도움을 갈구하고 남성 캐릭터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도봉순의 각성 없는 모습 앞에 조금씩 휘발되고 있다. 

사실 <힘쎈 여자 도봉순>이 어떤 통쾌함을 주었던 장면들은 동네 조폭들을 단신으로 대적해 모두 병원 신세를 지게 만드는 그런 것들이었다. 결국 애초부터 도봉순이라는 괴력을 이겨낼 수 있는 적수는 찾기 어려웠다는 것. 그것은 여성들만 범행대상으로 삼아 엽기적인 범죄를 저질러온 김장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결국 꼼수를 쓰게 되는 것이지만 이런 꼼수로 슈퍼히어로가 무너질 리는 없다. 

그러니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도봉순이 가진 진짜 문제는 이런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들이었다. 힘쎈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스스로 인정하고 그것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주체성의 결여가 그것이다. 그러니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에 종속되어 수동적으로 사랑받는 걸 갈구하는 모습에서 나아가 스스로 가진 자존감을 바탕으로 대등한 관점에서 사랑을 주고받는 그런 도봉순으로 깨어나길 시청자들은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3회 분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도봉순은 한 걸음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건 애초의 주제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이기 보다는 멜로와 여성주의 사이에서 드라마가 지나치게 갈등을 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도봉순과 안민혁의 멜로가 주는 힘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멜로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새롭게 그려낼 수는 없었을까.

물론 남은 3회 분량을 봐야 결론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지금의 멜로 구도는 너무 전형적이다. 위기에 상황에 몰린 여성을 구하러 달려오는 왕자님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멜로 상황을 거꾸로 뒤집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위기 상황의 남자들을 오히려 구해내는 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도봉순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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