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경쟁에 빠진 걸그룹들을 위한 조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렇기도 할 것이다. 너도나도 어떻게 하면 시선을 끌 것인가를 고민하며 허벅지를 드러내고 엉덩이를 쓸어내리는 통에 그냥 밋밋하게 했다간 묻혀버릴 판이다. 독특한 자신들만의 음악 콘셉트를 갖고 있지 않은 걸그룹이라면 그래서 더 강한 자극을 선보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스텔라(사진출처:톱클래스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노출도 어느 정도여야 하는데 이건 이미 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연예뉴스를 보면 과감한 노출과 선정적인 동작을 선보이고 있는 걸그룹들의 캡처된 뮤직비디오나 무대 장면들을 도처에서 접할 수 있다.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 한 걸그룹의 노출이 등장해 논란과 화제에 불을 지피고 그것이 조금 잠잠해지는가 싶어지면 다른 걸그룹이 나와 다시 불씨를 헤집는 형국이다.

 

기사들은 온통 노출경쟁 선을 넘었다는 식의 비판조로 쓰여져 있지만 사실은 홍보의 장이나 마찬가지다. 별 다를 것 없는 기사 내용을 반복해서 읽기보다는 그저 거기 같이 붙어있는 새로운 걸그룹의 캡처장면만이 회자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판은 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고 오히려 그 강도는 더 세지기만 하고 있다.

 

사실 19금이다, 섹시 콘셉트다, 노출이다 말하며 비판을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결국 음악이란 우리네 감정이나 생각을 노래에 담아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그것이 19금이든 섹시든 노출이든 필요하다면 안 될 것은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마돈나나 레이디가가의 파격적인 노출과 무대 연출에 대해서 우리는 그저 선정적이라는 비파을 하지는 않는다. 즉 문제는 19금이나 섹시, 노출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가인은 걸그룹의 노출에 대해서 그저 야하다는 측면만 강조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피어나같은 노래를 실제로 야하다기보다는 솔직한 속내와 감정의 표현에 더 가까웠다. 노출과 과감한 동작이 들어 있는 노래와 퍼포먼스가 공감가는 측면이 있었다는 점이다. 또 이효리가 스윔수트를 입고 나와 부른 미스코리아같은 경우에도 야하다는 느낌보다는 어딘지 처연함 같은 것들이 더 많이 표현되었다. 상품화되는 몸에 대한 위로 같은 느낌이랄까.

 

즉 걸그룹의 노출이 문제시되는 것은 그 노래와 춤이 공감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방편으로 활용되는 것인지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상품화된 성을 수동적으로 전시하는 노출을 위한 노출에 대해 대중들이 공감하기는 어렵다. 즉 이 과도한 시각적인 자극에만 치중되는 노출은 결국 음악의 청각적인 부분들을 빼앗아가 버린다. 노래를 듣긴 들었는데 노래는 기억에 안 남고 몸동작들만 어른거리는 것.

 

음악에서 비주얼이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지만 그래도 음악의 본질은 노래와 가사에 있다. 그것이 귀에 쏙쏙 박혀 마음을 울리지 않는다면 눈에 들어오는 동작들은 그저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움직임일 뿐 아무런 감흥을 주기가 어렵게 된다. 결국 성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19금 콘셉트의 노래라고 하더라도 일단 그 가사와 음악이 전해져야 하고, 거기에 안무가 덧붙여져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시각이 아니고 청각을 되살려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노출 경쟁의 덫에 빠진 걸그룹들이 진정한 살길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만한 지점이다. 그 공감대를 바탕으로 했을 때 무대 위에 선 가수들의 섹시나 노출은 좀 더 당당해질 수 있다. 공감 가는 감정표현으로서의 노출. 그것을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게다. 수동적으로 전시되는 섹시와 표현으로서의 자신감의 차이는 이처럼 크기 마련이다.

신동엽의 게이 연예인 언급이 돌 맞을 일인가

 

저는 심지어 연예인 중에서 어떤 여자가 결혼을 해요. 그런데 이 남자 게이에요. 근데 이 여자는 자기가 결혼할 남자가 게이라는 걸 몰라요. 게이 중에서 결혼한 남자들 굉장히 많거든요. 애도 낳고... 근데 이거를 얘기를 해줘야 되는 건지...”

 

'마녀사냥(사진출처:JTBC)'

<마녀사냥>그린라이트를 꺼줘라는 코너에서 신동엽은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결혼한 연예인이야기를 꺼냈다. 이 내용은 한 매체에 의해 신동엽 게이 숨기고 결혼한 연예인 홍석천과 나만 안다”’는 제목으로 기사화 됐다. 기사 제목도 그렇고 이 기사의 내용만을 들여다보면 마치 신동엽이 게이 연예인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의도적으로 꺼내놓은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한편 기사의 말미에 쓰여진 신동엽은 해당 남자 연예인 성 정체성에 관해 홍석천과 나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는 내용은 오보다. 방송에는 아예 그런 내용 자체가 들어 있지 않다. “홍석천과 나만 알고 있다는 멘트는 홍석천씨랑 저만 (그린라이트를) 안 껐네요.”라는 말을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오보를 적시하고 그걸 제목으로 뽑아내자 기사는 마치 신동엽이 자극적인 멘트를 하기 위해 영리한 방식으로 폭로를 한 듯한 인상을 만들었다.

 

예상대로 기사 밑에 달려진 댓글들은 온통 신동엽에 대한 비난과 욕으로 가득 채워졌다. 댓글 속에는 신동엽이 이 멘트를 한 후 (아버지가 게이임을 밝혔던) 샘 해밍턴의 얼굴 표정이 어두워졌다는 전혀 방송 내용과 다른 글들도 덧보태졌다. 비난이 전혀 다른 사실들을 더하면서 심지어는 신동엽 자신이 그 연예인이 아니냐는 비상식적인 말까지 덧붙여졌다.

 

늘상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그러려니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전형적인 마녀사냥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마녀사냥>에서 신동엽이 게이 연예인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것을 폭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이 날 선배가 밝힌 남자친구의 외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하는 내용의 사연 때문이다. 즉 후배의 남자친구가 외도를 한 사실을 알고 있는 중간입장에서 이걸 밝히는 게 옳은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비슷한 고민을 했던 자신의 경험을 꺼내놓았던 것뿐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오로지 게이 연예인이야기 폭로에만 초점이 맞춰진 기사는 앞뒤의 맥락을 뚝 잘라버림으로써 전혀 다른 뉘앙스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게다가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게이 이야기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기사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즉 거기에 홍석천이 이른바 게이 대표로 버젓이 출연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걸 말해준다. 신동엽이 게이 연예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홍석천이 거기 앉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녀사냥>이 다루는 성담론의 수위는 높다. 그래서 19금 딱지를 붙인 것이고 성인들을 위한 솔직한 남녀 간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기도 하다. 게이 이야기 또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이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개방적인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 날 게이 연예인 언급을 하면서 신동엽이 굳이 덧붙인 멘트 역시 성 소수자에 대한 그의 배려가 묻어난다. “그런데 그런 게 힘들죠. 진짜 그런 상황이 되면은... 게이분들의 장점이 굉장히 많거든요. 굉장히 따뜻하고 섬세하고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닌가.”

 

물론 이 성에 있어 개방적인 프로그램에 대한 호불호와 취향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오보에 앞뒤 맥락을 끊고 자극적인 부분만을 끄집어내 이상한 뉘앙스를 덧붙인 기사는, 물론 그 기사 내용이 방송 내용을 그대로 붙인 것이라고 하더라고 그 편집 때문에 전혀 다르게 읽힐 수밖에 없다. 이제 사실왜곡만이 오보인 시대가 아니다. 사실을 달리 편집하면 오보가 되는 시대라는 얘기다.

 

물론 오보는 실수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인터넷에 뜨는 기사들을 보면 이것이 실수인지 의도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지난 올해의 영화상에서 이정재와 송강호의 인사를 이상한 방향으로 몰아 논란이 만들어지고 결국은 한국영화기자협회가 사과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진 것은 단적인 사례다.

 

의도인지 실수인지 알 수 없으나 그 결과와 파장은 적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마녀사냥이 대단한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소소해 보이는(사실은 소소하지 않은) 사안들에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흥미롭게도 이 프로그램의 제목이 <마녀사냥>이다. 물론 여기서 마녀란 마녀사냥의 마녀를 뒤집는 이야기다. 당당해진 마녀의 이야기랄까. 그러니 <마녀사냥>이 당하는 마녀사냥은 실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SNL>, 왜 시사풍자보다 19금이 세졌을까

 

<SNL코리아>는 왜 최일구 아나운서 대신 유희열이 필요했을까. ‘위캔드 업데이트’ 코너에 고정 크루로 들어온 유희열은 ‘감성변태’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능글능글한 매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19금 코미디로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신동엽이 이엉돈 PD로 나온 ‘몸으로 풀다’에서 서로 젖병에 담은 모유를 나눠먹는 장면은 실로 이 두 변태(?)들의 시너지를 최고조로 보여준 압권이었다. 유희열 말대로 그들은 19금 그라운드에서 함께 뛰는 ‘메시와 호날두’ 같은 느낌이었다.

 

'SNL코리아(사진출처:tvN)'

하지만 유희열이 들어온 ‘위캔드 업데이트’는 특유의 야릇한 분위기가 주는 19금 유머는 강화되었지만 특유의 시사풍자 코드는 약화된 게 사실이다. 서울 심야버스 확대 운행을 언급하면서 “아쉬워하는 분들도 많다”며 야릇한 웃음을 던지고, 데니스 로드맨이 방북해 김정은을 만난 이야기에서 그들의 나이차가 30년 차가 난다며 갑자기 그 정도 나이차가 나는 수지에게 영상편지를 보낸다. “수지야 근데 너 지금 뭐 입고 있니?”

 

손석희 앵커 복귀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살짝 비틀기보다는 “자기와 비슷한 이미지”라며 자신의 위캔드 업데이트 복귀에 맞춰 복귀하는 것이 ‘위기의식’ 때문이 아니냐는 식으로 웃음을 주었다. 과거의 장진 감독이나 최일구 아나운서가 했던 ‘위캔드 업데이트’가 시사 문제를 비틀어 그 시사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었던 반면, 유희열의 그것은 시사 문제를 끌어오긴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는 사적인 이야기로 돌아오고 있다.

 

물론 이것은 유희열의 탓이 아니다. <SNL 코리아>가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여의도 텔레토비’가 없어지고 그 유사한 형태로 생긴 ‘tvN 동화 행복한 세상’은 인어공주 이야기를 가지고 ‘일본 방사능 유출 공포’에 대해 다뤘지만 ‘여의도 텔레토비’ 만큼의 날선 시사 풍자는 보여주지 못했다. 이것은 <SNL 코리아>의 다른 코너들에서도 똑같이 보여지고 있는 현상이다.

 

승리가 호스트로 나온 지난 <SNL 코리아>는 거의 전 코너들이 풍자를 다루기보다는 19금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첫 코너인 ‘더 테러 라이브’는 이 본래 영화가 보여주던 계급정서는 쏙 빠지고 대신 야한 생각하면 팬티 속의 폭탄이 터진다는 식의 19금 코미디를 보여주었다. 테러범 여동생으로 클라라가 등장해 신동엽에게 야릇한 상상을 하게 만들고 그걸 참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시루떡 보이즈’는 홍대클럽, 헬스클럽, 실버클럽, 파이트클럽 등 각종 클럽을 다니며 부비부비 하는 남자들을 보여주었다. 내용이 있다기보다는 과장된 동작들의 반복이 주는 단순한 웃음이 대부분이었다. ‘승리의 품격’은 폼생폼사의 승리가 점점 망가지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는데 여기에도 클라라가 여주인공으로 출연해 승리와 야릇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하룻밤을 위해 자취방을 대실해준다는 ‘승리의 자취방 대실 서비스’나, 흘린 걸 닦아주는 여자 때문에 더 야한 부위에 일부러 흘리는 남자들을 보여주는 ‘심야식당’ 역시 19금을 내세운 야한 설정으로 꾸며진 코너들이었다.

 

그나마 비판적인 시선을 담은 것이라고는 ‘꽃보다 할배’라는 코너로 예능의 베끼기를 풍자한 것이 유일했다. 자신도 베끼자며 ‘전국 안녕하세요 꽃보다 진짜사나이 할배 무한도전 하러 어디가? 스플래시’라는 프로그램을 찍는 장면은 그나마 속 시원한 풍자의 한 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시사 풍자 코드는 거의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클라라가 코너 전편에 거의 들어가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것도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SNL>의 핵심은 균형에 있다. 즉 시사 풍자 같은 조금은 무거운 주제의 코미디와 19금 코미디 같은 야하고 가벼운 코미디가 적절히 균형을 잡았을 때 이 프로그램만의 독특한 매력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나 시사 분야가 가진 권위적인 부분들을 상당 부분 무너뜨리면서 웃음을 줄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난다. 또한 19금도 그저 저질스런 코미디로 전락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시사 풍자 같은 코너들이 없는 19금 코미디는 자칫 시사적인 이슈들을 뭉개버리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19금으로 덮어진 어설픈 시사 끌어오기는 그래서 오히려 마취적인 역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SNL코리아>가 클라라를 크루에 합류시킨 것에 이어 유희열이 ‘위캔드 업데이트’를 진행하게 된 데는 그래서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클라라야 지금 가장 핫한 야한 이미지로 떠오른 인물이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희열은 어떨까. 그는 특별히 현실적인 이슈에 대해 그다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던 인물이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자리를 잡기 전에 그 시간대 음악프로그램의 MC가 윤도현에서 이하나로 넘어가던 시절의 잡음들을 떠올려 보라. 유희열은 현실적인 이슈 바깥에 존재하면서도 시청자들을 잡아끄는 매력의 소유자가 아닌가. 그러니 이 뜨거운 ‘위캔드 업데이트’의 자리를 적절히 식혀주고 그 방향을 19금쪽으로 틀어놓는 데 그만한 인물이 없는 셈이다.

 

사실 유희열이나 클라라는 잘못된 것이 없다. 그들은 <SNL코리아>가 원하는 새로운 방향성에 의해 새롭게 투입되어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보여줄 뿐이다. 다만 이들의 투입으로 보여지는 <SNL코리아>에서 점점 실종되어가는 날선 시사풍자 코미디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도대체 무엇이 잘 나가던 <SNL코리아>에 이런 급격한 변화를 만든 것일까. 실로 아쉬울 따름이다.

<오로라공주>가 던진 비난 떡밥들, 입질은 있었나

 

아예 작정을 한 걸까. 임성한 작가의 새 드라마 <오로라공주> 첫 회는 욕 먹기를 작정하기라도 한 듯한 장면과 대사와 상황이 쏟아졌다. 시작부터가 불륜이다. 오금성(손창민)이 내연녀에게 “한 달만 기다려. 정리하고 올께. 약속해.”라고 천연덕스럽게 던지는 말은 자못 도발적이다. 저녁 7시 대 일일드라마로서 첫 장면에 불륜 장면을, 그것도 너무나 버젓이 던지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색깔을 명확히 해준다.

 

'오로라공주(사진출처:MBC)'

다음 시퀀스는 임성한 월드의 특징을 정확히 보여준다. 여주인공 오로라(전소민)가 검사인 남자친구의 어머니와 대면하는 장면. 위 아래로 훑어보며 “다 해봐야 십만 원 밖에 안되겠네”라고 대놓고 말하는 속물근성 덩어리 어머니의 안하무인격 태도에 발끈하게 될 즈음, 갑자기 극 흐름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남자친구 어머니의 코털이 인서트된다. 임성한 작가의 전작들이 가끔씩 상상 신을 활용해 인물들의 꿈틀대는 속내를 꺼내보였던 것처럼, 이 장면에서 오로라는 남자친구 어머니의 턱을 잡고 코털을 자르는 상상을 한다.

 

아마도 드라마에서 이런 코털 장면은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뾰족한 가위를 코 속에 넣어 자른다는 점에서 그 장면은 특이하면서 자극적이다. 하지만 그 뿐이다. 이 시퀀스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 흐름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시청자의 이목을 끌거나 화제가 될 만한 장면을 집어넣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임성한 월드가 늘 추구해오던 것이기도 하다. 언제 주제의식이나 스토리의 일관성을 따졌던가. 그저 자극적이거나 눈요기 거리거나 화제(아니 나아가 논란)가 될 만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끼워 넣는 것이 임성한 월드의 특징이다.

 

품격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막가파식의 설정과 대사 역시 빠질 수 없다. 오금성과 아내 이강숙(이아현)이 함께 안마를 받는 자리에서 오금성이 이혼을 선언하자 이강숙이 알몸을 가린 가운을 열어 보여주며 하는 대사는 리얼하다기보다는 자극을 위한 자극처럼 보인다. “뭐가 부족해 내가! 호강에 겨워서 뭐에 빠진다고... 마흔 셋에 이 정도 유지하는 여자 봤어? 누구는 주물러 터트려서 귀찮아 죽겠대. 뭐가 그리 잘났는데? 나니까 살아줬어. 토끼 주제에...” 그러자 남편 오금성도 못지않은 막말을 쏟아낸다. “식어 빠진 사발면을 그럼 1,2분이면 해치우지 2,30분에 먹냐.” 실로 19금딱지 붙은 드라마에서도 듣기 힘든 대사들이 아닌가.

 

비상식적인 가족의 대화는 오왕성(박영규), 오금성, 오수성(오대규)이 저녁을 먹으며 불륜에 빠진 오금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동생 오수성은 바람난 형에게 연실 장난치듯 비아냥대고, 형인 오왕성은 책망을 하지는 못할망정 내연녀의 나이를 궁금해 하고 부러워한다. 오금성이 내연녀가 서른다섯 처녀라고 말하자 이 두 형제는 심지어 “대박!”이라고 감격하기까지 한다. 형제들이 바람피는 것을 부러워하고 은근히 자랑질 하는 이 장면을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장면이 야기하는 짜증은 임성한 월드가 굴러가는 연료이기도 하다. 분노하고 욕하기 위해 본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아마도 임성한 월드는 이 잘나가는 가족들의 속물근성을 끄집어내 보여주고 싶은 것일 게다. 이 가족 속에 등장하는 계급들의 모습, 이를테면 오로라를 시중드는 하녀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거나, 평범한 옷을 입고 명품백을 사러 온 오로라를 불친절하게 대하는 종업원의 모습 역시 속물 자본주의가 가진 여전히 봉건적인 요소들을 보여주고는 있다. 또 임성한 월드에 꼭 등장하는 무속이나 종교적인 행태들(이번 드라마에도 잠자는 황마마(오창석) 옆에서 불경을 외우는 누나들이 등장한다) 역시 21세기에도 존재하는 전근대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속물 자본주의나 전근대적인 행동들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목적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풍자나 비판의식을 담재하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그 비상식적인 장면들이 만들어내는 짜증을 증폭시키기 위함으로 보인다. 즉 임성한 월드가 움직이는 동력은 바로 이러한 시청자의 감정을 낚는 이른바 ‘비난 떡밥들’이 도처에 던져져 있기 때문이다. 첫 회만 봐도 이런 논란이 될 만한 떡밥들은 거의 매 시퀀스마다 등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 그토록 욕을 하면서도 챙겨봤던 것처럼(어쩌면 욕하기 위해) 지금의 시청자들도 이 떡밥들을 덥석 물것인가. 첫 회에 시청률 11%를 기록할 정도로 임성한 월드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끝없이 던져지는 짜증나는 시퀀스들에 이제 진력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오로라 공주>의 성패는 시청자들의 성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비난을 먹고 자라는 이상한 임성한 월드는 여전히 그 기능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지나가버린 퇴행적인 세계로 기록될 것인가. 그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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