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자매수난시대, 한 남자를 사랑하는 그녀들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자매수난시대, 한 남자를 사랑하는 그녀들

D.H.Jung 2009. 12. 10.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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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그리는 자매들, 그 관계가 불편한 이유

한때 '연애시대'에서 남녀의 사랑보다 진한 자매애를 보여주면서 많은 이들을 흐뭇하게 해주었던 은호(손예진)와 지호(이하나)의 이야기는 이제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나. 드라마 세상은 온통 자매들의 수난시대로 그려지고 있다. 한 남자를 두고 연적이 되어 서로 싸우는 볼썽사나운 자매들의 모습을 우리는 이제 드라마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자매들을 이처럼 불편한 관계 속으로 밀어 넣었을까.

'천사의 유혹'의 주아란(이소연)과 윤재희(홍수현)는 자매지간이지만 그 사실을 모른 채 서로가 서로에게 복수를 하는 관계가 되어있다. 그 중심에는 신현우(한상진)에서 얼굴을 바꾼 안재성(배수빈)이 자리하고 있다. 주아란에 의해 죽음에 몰린 신현우를 살려낸 윤재희는 안재성으로 모습을 바꾼 그의 복수를 돕지만, 안재성은 복수를 위해 다시 주아란과 가까운 관계를 연출한다. 이 자매들은 모두 애타게 어린 시절 헤어진 언니와 동생을 찾고 있지만, 이제 모든 것을 잃게 된 주아란은 동생인줄 모르는 윤재희에게 어떤 짓을 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천만번 사랑해'의 고은님(이수경)과 오난정(박수진)은 부모들의 재혼으로 맺어진 자매지간이다. 외국생활에서 알게 된 백강호(정겨운)를 오난정이 혼자 짝사랑하지만, 백강호는 고은님을 사랑하게 되고, 결국 결혼에까지 골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연출된 오난정이 고은님에게 "감히 내 남자를 뺐어?"하고 드잡이하는 장면은 많은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대 웃어요'는 요즘 보기 드문 착한 드라마지만, 여기에도 불편한 자매들의 한 남자를 둔 사랑이야기는 등장한다. 강현수(정경호)는 서정경(최정윤)을 대학시절부터 쭉 짝사랑해왔지만 결국 퇴짜를 맞게 되는데, 하필이면 그녀의 동생인 서정인(이민정)과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문제는 강현수와 서정인이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정경의 마음 또한 흔들린다는 것. 그녀는 현수에게 "다시 날 사랑해주면 안되니?"하고 묻는다. 아무리 한 남자에게 사랑의 감정이 생겼다고 해도, 이미 자기 동생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마당에 이런 행동을 하는 언니라는 존재는 그다지 쉽게 공감가지 않는다.

'다함께 차차차'에서는 친자매는 아니지만 같은 집에서 사는 사촌 간에 동생이 언니의 남자친구를 빼앗는 자극적인 내용이 방영되었다. 수현(이청하)이 사귀던 남자 이한(이중문)을 사촌동생인 진경(박한별)이 빼앗아 결혼하는 것. 애초에 착한 가족드라마의 뉘앙스를 풍겼던 이 드라마는 그러나 이 이해할 수 없는 관계설정을 통해 어떤 논란의 징조를 이미 보였던 것이 틀림없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질질 끌던 이 드라마는 결국 기억이 돌아온 강신욱(홍요섭)을 통해 그 결혼의 여부를 다시 물고 늘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드라마 속 자매들은 이처럼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으르렁대게 된 것일까. 그것은 대본 작업에 있어서 지나치게 편의적이면서도 자극적인 관계 설정을 한 탓에 나타나는 결과이다. 사실 현실에서 한 남자를 자매가 동시에 사랑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물론 확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이것이 드라마 속의 공식처럼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딘지 잘못된 것 같다. 이러한 불편한 관계들은 그것이 주는 어떠한 인간 조건의 문제를 이들 드라마들이 건드릴 만큼 심도가 깊지 않고 진지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고전이 다루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저 현실성 없는 클리쉐의 반복일 뿐이다.

자매들 간의 남자 쟁탈전이 벌어지게 된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이 관계를 마치 공식처럼 갈등 요소로 끼워 넣은 탓에 생긴 것이다. 그다지 공감가지도 않고, 보기 좋은 장면도 아니며, 이해할 수도 없는 이 한 남자를 사랑하는 자매들의 이야기는 그저 극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자극적인 장치로 활용된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드라마들 역시 어떤 수위조절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런 근친 사이에 벌어지는 지나친 사랑 관계의 압축은 가족드라마가 지켜야할 윤리적인 선을 넘어선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혹 자매들이 서로를 위해주고 아껴주는 정상적인 이야기로는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