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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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패', 매력적인 이 사극의 정체

D.H.Jung 2011. 3. 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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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 전개보다 인물들의 묘사가 뛰어난 '짝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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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패'(사진출처:MBC)

'짝패', 이 사극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첫 회에 같은 날 태어난 아기들이 뒤바뀌는 장면에서는 역시 '출생의 비밀'인가 했다가, 그렇게 다른 환경에서 한 명은 양반집 자제로 또 다른 한 명은 거지로 자라난 천둥과 귀동이 서로 "짝패 먹자"고 하는 장면에서는 그런 운명 따위는 개척하기 나름이라는 성장드라마의 일면을 보게 된다. 성장한 천둥(천정명)이 동녀(한지혜)와 상단을 꾸려나가는 이야기는 '상도'를 떠올리게 하고, 포교가 된 귀동(이상윤)이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장면에서는 '별순검'류의 조선법의학 드라마나 '다모'류의 조선형사물이 떠오른다. 물론 갓바치나 거지패들의 이야기에서는 민초들을 다룬 '추노'류의 민중사극이 연상된다. 도대체 이 사극은 정체가 뭘까.

시대적 배경도 전통적인 사극이 주로 다루던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그 시점에 걸쳐있다. 칼 대신 총을 쏘고, 서양의 문물들이 시장으로 들어온다. 민중봉기의 열기가 피어나고 있는 이 시대는 양반제라는 틀이 서서히 균열을 드러내는 시기다. 바로 이런 시대적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에 각기 출신이 다른 천둥과 귀동, 그리고 여성인 동녀가 서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지내는 장면들이 개연성을 갖는다. 사극이라면 늘상 등장하는 멜로보다, 우정이 더 많이 느껴지는 관계들도 이 사극의 독특한 위치를 보여준다.

드라마의 극적 구성도 기존 우리가 흔히 보던 현대 사극의 틀과는 상당히 다르다. 최근의 퓨전사극으로 주로 다뤄지던 성장드라마나, 장르사극으로 다뤄지던 극적인 전개는 이 사극에서는 그다지 발견하기 어렵다. 물론 그런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지만 그 자극이 강하지가 않다는 얘기다. 대체로 사극이 그리는 한 회의 흐름은 전회에 이어지는 강한 사건의 연속과 함께 중간에 새로운 이야기의 국면이 전개되고 그것이 조금씩 마지막의 극적 갈등으로 이어지다가 다음 회로 넘어가는 구조를 갖는다. 하지만 '짝패'는 그런 전형적인 구도를 벗어나 있다. 어찌 보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이 사극은 담담하다. 마치 일일드라마를 보듯, 인물들 간의 담담한 이야기가 무리 없이 전개되어 나갈 뿐이다.

물론 이 사극도 극적으로 상승하는 어떤 폭발적인 지점이 있다. 예를 들어 스승의 원수를 갚으려고 현감을 저격하는 장면이 그렇고, 참다못한 민중들이 봉기해 관아를 점령하는 장면들이 그러하며, 스승의 원수지만 친구 귀동의 아버지라는 이유 때문에 김진사(최종환)를 살려주는 장면이 그렇다. 즉 '짝패'는 극적 장면이 있지만, 그것을 통해 의도적으로 다음회를 낚시하는 식의 억지 구성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담담하다.

사극의 정체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을 쓰고 있는 김운경 작가의 필모그래피다. 81년 '전설의 고향'으로 데뷔한 김운경 작가는 '한 지붕 세 가족(1986)', '서울 뚝배기(1990)', '서울의 달(1994)', '파랑새는 있다(1997)' 등으로 잘 알려진 베테랑 작가다. 작품의 면면에서 알 수 있듯이 김운경 작가의 작품에는 늘 서민들이 어른거린다. '짝패'는 그래서 어쩌면 이 작가가 고집하는 서민들, 민중들의 이야기에서 그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사극이다.

천둥이 본래는 양반집 자제지만 거지로 성장하고, 귀동이 본래는 거지로 자라야할 운명이지만 양반집 자제로 자라나는 그 상황에서, '출생의 비밀'로 빠져들지 않고 서로 상생하는 성장드라마로 넘겨올 수 있었던 건 김운경 작가가 늘 쥐고 있는 이 서민 코드 덕분이다. 그들은 뒤바뀌어진 운명 속에서도 자신이 갈 길을 간다.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지점은 서민들을 향해 걸어가는 그 길 위에서 있다. 그들은 다른 신분에서 출발하지만 같은 길을 걷는 짝패가 된다.

따라서 '짝패'라는 사극을 즐기는 법은 저 성장드라마의 끝없이 치고 달리는 욕망의 흐름이 아니라, 조금은 차분하게 운명을 관조하며 그 속의 인물들이 따뜻하게 서로를 감싸안아주는 그 흐뭇한 장면들을 바라보는 그 지점에서 생겨난다. 천둥과 귀동이 서로의 손을 꼭 쥐고, 신분이 아니라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그런 장면들이나, 동녀를 찾아온 귀동이 친구처럼 같이 술을 나누는 장면들이나, 어딘지 정이 가는 거지 도둑 장꼭지(이문식)의 배꼽빠지는 면면을 보게 되는 장면들 속에서 '짝패'의 진가가 묻어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어딘지 수더분해 보이면서 정이 가는 이 사극은 우리가 막연히 부르는 민중의 이미지를 닮았다. '짝패'는 그런 사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