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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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맨', 광수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D.H.Jung 2012. 8. 7.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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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맨>의 광수, 배경음악만으로도 웃긴 캐릭터

 

<런닝맨>은 캐릭터 열전이다. 유르스윌리스, 유혁 같은 캐릭터를 가진 유재석, 능력자 김종국, 하로로 하하, 에이스 송지효, 이지 브라더스, 필촉 크로스의 이광수, 지석진, 그 자체로 캐릭터인 개리 등등... <런닝맨>의 캐릭터는 말 그대로 쏟아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기린 이광수다.

 

'런닝맨'(사진출처:SBS)

제주도에서 한지민을 게스트로 벌어진 <런닝맨>에서 이광수는 그 어떤 캐릭터들보다 많은 역할을 보여주었다. 유재석이 도둑 샤워를 하기 위해 불쑥 샤워실에 들어갔을 때 이광수는 특유의 불쾌한 표정으로 “다 나가!”를 외쳤고, 김종국이 자신은 여자에게 약해서 한지민의 이름표를 뗄 수 없기 때문에 송지효하고만 같이 다니겠다고 하자 “전 한지민 머리채도 잡을 수 있어요”라고 말해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생명을 하나 더 사놓고 김종국에게 알리지 않으려고 숨기고 있는 와중에, 방송으로 그 사실이 공개되자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도 압권이었고, 미로에서 특유의 큰 키를 이용해 폴짝폴짝 뛰면서 벽 너머를 살피고 길을 찾는 기린 캐릭터도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결국 이지브라더스로 지석진과 팀을 이뤄 마지막 한지민과의 대결에서 어처구니없이 지는 상황도 이광수 같은 캐릭터이기 때문에 더 재미있을 수 있었다.

 

처음 그가 <런닝맨>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그저 허우대만 길쭉한 잘 알려지지 않은 그저 그런 신인 연기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차츰 그는 늘 당하는 억울한 캐릭터로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이제는 뭘 해도 빵빵 터트리는 캐릭터가 되었다. 그는 억울한 상황에 깔리는 배경음악만으로도 충분히 웃음을 줄 정도로 자기만의 확실한 영역을 만들어놓았다.

 

이광수의 존재감은 그 억울한 표정 연기에서 비롯된다. 연기자답게 우스운 상황에서도 절대로 웃지 않고 진지하게 실제 억울하다는 표정을 고수할 때 웃음은 배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광수가 늘 당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그도 모반을 꿈꾼다. 능력자 김종국에 대한 약간의 감정을 드러내고, 뒤에서 그를 제거하기 위해 다른 캐릭터들을 끌어들이는 모습은 자못 도발적이다.

 

사실 김종국의 스파르타식 강한 캐릭터가 어느 정도 용인되는 것도 이광수의 도발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도발이 성공한다. 이번 제주도 게임에서도 김종국의 편인 척 하면서 그를 속이고 적과 내통해(?) 그를 제거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늘 강하기만 한 김종국에게 이광수 같은 캐릭터의 도발이 없었다면 자칫 독재자의 인상을 지웠을 지도 모른다.

 

또 지석진처럼 늘 게임에 약한 캐릭터와는 연대를 통해 하나의 캐릭터를 구축하기도 한다. 이지 브라더스 혹은 필촉 크로스는 마치 ‘나홀로 집에’ 나오는 바보 같은 도둑들 콤비 같기도 하고 ‘덤 앤 더머’ 같기도 하다. 이광수의 기린이라는 캐릭터와 어울리게 지석진이 임팔라라는 캐릭터를 갖게 된 것도 이 조합이 꽤 흥미로운 스토리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한지민 머리채도 잡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광수는 또한 출연하는 여성 게스트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무리 게임이라도 여성들은 이 쟁쟁한 런닝맨들 속에서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 긴장을 무장해제 시키는 역할로 이광수만한 캐릭터가 있을까. 그는 체력적으로 약한데다가 바보스럽게 늘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때로는 배신의 아이콘이라 불릴 정도로 누군가를 속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치 이윤석과 정준하와 노홍철을 섞어놓은 듯한 이 절묘한 캐릭터는 이광수만의 확실한 위치를 만들어주고 있다. <런닝맨>에 이광수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지금 같은 흥미진진한 웃음의 구도가 만들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