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하숙’, 차배진의 대접에 시청자도 덩달아 기분 좋아지는 까닭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 다섯 시 유해진은 일어나 현관 문 앞에 떨어진 낙엽들을 쓴다. 가끔 스트레칭을 해가며 낙엽을 쓸고 그는 청소를 시작한다. 복도와 계단, 다이닝룸과 세탁실 등등 구석구석을 물걸레질 하고 카페트까지 들어 올려 그 밑까지 청소한다. 비슷한 시간에 차승원은 일어나 손을 씻고 아침을 준비한다. 전날 미리 만들어두었던 김치전 반죽을 꺼내놓고, 역시 미리 끓여두었던 된장국도 데워놓는다. 계란 한 판이 다 들어간 두툼한 계란말이도 만들어 놓고, 혹여나 부족할까 만두도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하게 튀겨놓는다. 역시 일찍 일어난 배정남은 차승원의 손발이 되어 척척 그를 돕는다. 간이 맞는지 맛을 보고 “끝내준다”고 리액션을 해줘 차승원을 웃게 만드는 건 덤이다.
tvN 예능 <스페인 하숙>을 보면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 이른바 ‘차배진’이 얼마나 부지런하게 움직이는가를 알 수 있다. 새벽잠은 아예 없는 것인지 마치 경쟁하듯 일찍 일어나고, 저마다 뭘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일을 한다. 일의 영역도 확실히 구분되어 있어 차승원은 주방을 맡고 유해진은 ‘이케요(IKEYO)’라는 토종 브랜드를 내도 될 법한 보수(?)는 물론이고 청소와 손님 응대를 맡는다. 특정 역할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아 일이 가장 많아 보이는 배정남은 차승원의 보조로서 손님 대접에 정신없는 멘탈까지 챙겨준다.
<스페인 하숙>은 이들이 쉴 새 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차승원과 유해진이 섬에서 유유자적 세 끼 챙겨먹고 힐링하던 <삼시세끼>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들이 쉴 새 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기분이 좋아진다. 이 즐거움의 이유는 뭘까. 그건 누군가를 챙겨주고 대접해주는 그 마음이 갖게 되는 즐거움이다.
아마도 밥벌이 때문에 혹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새벽부터 일어나야 하고 또 하루 종일 이 일 저 일 뛰어다니며 해야 한다면 그걸로 즐거움을 갖기란 어려울 게다. 시쳇말로 “즐기면서 일하라”고 말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하지만 <스페인 하숙>의 일은 이런 밥벌이나 현실과는 뚝 떨어져 있는 일이다.
외국인 손님이 갑자기 들이닥쳐 부랴부랴 그들의 입맛에 맞게 간장양념 돼지불고기를 준비하고 맵지 않은 계란국을 만들어 내놓는 차승원을 보며 즐거워지는 건 일의 차원을 넘어서 있는 진짜 손님을 대접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다. 샤워할 때 벗어놓은 옷에 물이 튄다는 손님의 이야기를 듣고, 옷을 넣을 수 있는 양동이에 프라이버시를 위한 뚜껑을 만들어 샤워실에 비치해놓는 유해진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손님이 올 때 마치 귀한 친구라도 온 듯 반가워하는 배정남의 기분 좋은 호들갑은 어떻고.
<스페인 하숙>이 굳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가서 하숙집을 연 건 우리가 현실에서는 좀체 경험할 수 없는 ‘일의 차원을 넘어서는 손님 대접’의 상징적인 풍경을 자연스럽게 잡아낼 수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그 먼 길을 오롯이 두 다리로 걸어오는 순례자들이란 어찌 보면 현실에서 하루하루를 매일 힘겨워도 걸어 나가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저마다의 고민들이 있지만, 적어도 걸을 때만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더라는 어느 순례자의 말처럼 힘들어도 앞으로 나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어쩌면 우리를 살아가게 해주는 힘이 되어주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삶의 여정에서 대단한 건 아니지만 따뜻한 밥 한 끼와 편안한 하룻밤 잠자리가 주는 위안은 얼마나 큰 것인가. <스페인 하숙>은 그래서 스페인의 어느 알베르게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하숙을 하는 것이지만, 이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극진히 대접하며 자신들은 정작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도 즐거운 모습들이 ‘숭고한 느낌’마저 전해준다. 그것이 어쩌면 힘들고 긴 여정에서 우리들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우리에게는 행운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기도 하는)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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