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안타까운 조기종영 '반의반' 정해인, 짧지만 애틋하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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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조기종영 '반의반' 정해인, 짧지만 애틋하게

D.H.Jung 2020. 4. 2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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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반’, 보편적인 소통엔 실패했지만 색다른 시도

 

“반보기라는 말 알아요?” tvN 월화드라마 <반의반>에서 하원(정해인)은 한서우(채수빈)에게 전화해 그렇게 묻는다. 그러자 서우는 “반만 본다는 건가..”하고 자신 없는 추측을 한다. 하원은 “결혼하는 여자가 친정엄마 보고 싶을 때 딱 반 되는 지점에서 잠깐 보는” 것을 반보기라고 한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잠깐 반보기를 하자는 하원의 제안에 중간 지점에서 만난 두 사람. 하원은 대뜸 손을 내민다. 서우가 그 손 위에 손을 포개자 하원이 말한다. “짧고 애틋하게.” 그렇게 잠깐 보더라도 그 마음의 애틋함은 그래서 더 커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장면은 안타깝지만 12회로 조기종영을 결정한 <반의반>이라는 드라마가 건네는 말처럼 들린다. 짧지만 그래서 더 애틋한 드라마. <반의반>은 2.4%(닐슨 코리아) 첫 회 시청률로 시작했다. 아무래도 정해인이라는 배우의 멜로드라마라는 기대감이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매회 시청률이 하락하면서 자칫 1%대 미만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제 아무리 시청률이라는 지표가 이제는 온전한 시청자들의 반응을 말해주지 않는 시대에 들어왔다고 해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수치가 되었다.

 

어째서 <반의반>은 시청자들과의 보편적인 소통에 실패했을까. 그건 애초에 AI라는 소재와 짝사랑을 엮어 풀어내겠다는 그 시도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AI도 낯선 데다 직접 만나기보다는 한 걸음씩 떨어져서 사랑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너무 더디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AI와 짝사랑을 엮어놓은 그 시도 자체가 나쁘다 보긴 어렵다. 둘의 공통점은 이 드라마가 은연 중에 말하고 있는 “없는 데 있는 것”이라서 손에 잘 닿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을 쥐고 흔들기도 하는 그런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다.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가 되기 어렵다는 건 이미 사라져버린 이를 잊지 못하고 AI를 통해서나마 계속 대화를 이어가려는 하원의 0% 가능성 짝사랑과, 그런 하원을 옆에서 바라보며 빠져든 1% 가능성 짝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데서 나타난다. 이들은 골목길에서 카페에서 육교 위에서 녹음실에서 또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만나지만 그들 사이에 놓인 어떤 장벽들(그것은 과거가 되기도 하고 잊지 못한 짝사랑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떨어져서 바라보는 사랑을 한다.

 

조기종영이 결정된 후 드라마의 빨라진 속도감과 그래서 급물살을 타고 있는 하원과 서우의 관계에도 이들의 사랑은 반보기를 하듯 여전히 조심스럽다. 떠나보낸 자들의 상실감을 치유해주는 디바이스로 손을 잡아주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솔루션을 개발하려는 하원이 서우에게 손을 인식하게 하고 직접 잡지 않고도 잡은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하게 하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사랑법을 잘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한 걸음 떨어져서 하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자식을 떠나보내던 날 늦게 도착해 잡지 못한 손 때문에 절망하는 김민정(이정은)은 자신의 예전 밝았던 목소리를 담은 AI와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제는 그 밝은 소리를 낼 수 없는 자신을 되새기며 허공에 대고 이제는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아이의 손을 잡고 싶어 절망한다. 그 순간 옆에서 그 광경을 보던 하원이 그 손을 대신 잡아준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서 채워지지 않는 어떤 상실감은 없는 존재에 대한 집착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대신 그걸 공감하는 누군가의 또 다른 손길이 위로를 대신해줄 뿐.

 

늘 한 발 떨어져 있고, AI와 식물, 음악연주 등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심지어 손과 손 사이를 살짝 떨어뜨린 채 잡는 걸 대신하는 <반의반>의 낯선 사랑법은 시청자들과의 보편적인 소통에서 실패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마치 노르웨이로 떠나버린 아내에 절망하며 즉흥적으로 홀에서 쳤던 강인욱(김성규)의 피아노 연주처럼 낯선 미완의 곡이 되었다. 좀 더 선명하고 효과적인 전개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떤 이들에게는 그 작은 풍경 하나, 대사 몇 마디 같은 것들이 단 몇 초 동안이나마 위로를 줬을 거로 생각한다.

 

“없어졌어야할 곡이에요.” 강인욱은 그 곡에 대해 그렇게 말했고, “그런 게 어딨어요?”라고 서우는 말했다. 서우는 “누구한테는 정말 힘들 때 이게 도움이 됐을 수도 있고” 실제로 그 곡이 폭설 속에서 두려움에 떨던 지수(박주현)가 전화로나마 들으며 위로를 받았던 곡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비아냥대듯 “음악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의구심을 자아내는 인욱에게 “네 몇 초간 구원했어요”라고 분명히 말한다. 분명 이 드라마가 그럴 것이다. 몇 초 간이라도. 짧고 애틋하게.(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