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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악의 꽃', 이준기는 정말 문채원을 사랑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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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이준기의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거짓말

 

"아니 단 한 순간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다. 난 그런 마음 모른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누나 도해수(장희진)가 차지원(문채원)을 사랑하냐고 물었을 때 백희성(이준기)은 그렇게 선을 그었다. 안타깝게도 그 순간 차지원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말았다. 상심한 차지원은 돌아서 홀로 눈물을 흘렸다.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에서 백희성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는 진정 차지원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 그의 말대로 단 한 순간도 사랑한 적이 없는 걸까. 그간 백희성이 차지원과 그의 딸 백은하(정서연)를 대해온 걸 보면 결코 그렇진 않은 것 같다. 그 누구보다 가족을 챙겼던 백희성이 아니었던가.

 

그 증거는 죽은 아내의 시신을 찾겠다며 백희성의 가족까지 위협하던 박경춘(윤병희)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인 백희성의 모습에서 찾아질 수 있다. 그는 박경춘이 가족의 사진을 꺼내 보이며 위협하자 그 사진을 빼앗아 찢은 후 불태워버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차지원을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백희성이 오랜만에 누나 도해수를 만나 그렇게 말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도해수는 동생인 백희성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동생에게 굿판을 더 이상 벌이지 말라고 찾아갔던 도해수를 마을 이장이 자신을 어떻게 하려고 하자 그는 이장을 죽였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백희성은 이장을 죽인 게 자신인 것처럼 꾸몄다. 그래서 연쇄살인범 도민석(최병모)와 그가 공범이라는 소문이 돌게 된 것이었다.

 

백희성은 누나만은 이런 끔찍한 가족사에서 벗어나 평범하게 살아가길 원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죄를 뒤집어 쓴 채 사라진 동생을 생각하며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살아가지 못했다. 백희성은 누나를 차갑게 대하며 거리를 두는 것이 누나를 위해서도 또 지키고 싶은 가족을 꾸린 자신을 위해서도 나은 선택이라 여기고 있다. 그는 그래서 죄책감을 느끼는 누나에게 "모든 게 내 선택"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백희성이 차갑게 누나에게 "난 그런 마음(사랑 같은 것) 모른다"고 말한 것도 백희성이 결혼한 차지원이 형사라는 사실을 걱정하는 누나를 안심시키고 자신은 보통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말함으로써 누나와의 거리를 두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는 마치 자신이 진짜 연쇄살인범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차갑게 말한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누나의 마음을 조금은 편하게 해주고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해주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나는 백희성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채고 있었다. 김무진(서현우)과 함께 도민석의 공범을 추리하면서 도해수는 "현수 너 네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해"라고 했다. 도해수는 백희성이 모든 걸 느끼고 아파하고 간절해한다는 걸 알아차리고 있었다. 입으로 나오는 말이 아닌 마음 속 간절한 이야기를 하라고 말하고, 그런 건 모른다는 백희성에게 "넌 알아. 네가 변했으니까"라고 말한다. 결국 백희성은 속내를 보인다. "난 백희성으로 살고 싶어. 아무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 백희성으로 살고 싶어. 그것뿐이야. 난 내 인생을 잃고 싶지 않아. 절대로."

 

백희성은 마치 감정이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차갑게 대하고 심지어 사랑이라는 그런 마음조차 모른다고 말하지만, 그건 어쩌면 가족들(아내와 딸 그리고 누나)을 지켜내기 위한 슬픈 거짓말로 들린다. 그는 아내와 딸을 위해 도현수가 아닌 백희성이라 거짓말을 하고 있고, 오랜만에 만난 누나 앞에서 그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인 채 하고 있다. 과연 진짜 범인이 밝혀지게 되면 백희성의 그 무겁디 무거운 삶은 얼마나 큰 무게로 다가오게 될까. 연쇄살인범인 아버지에 누나의 살인을 뒤집어쓴 채 다른 이름으로 서야 비로소 살아갈 수 있게 된 그의 비극적인 삶. 과연 그 삶의 진실을 알게 된 차지원은 그를 따뜻하게 가족의 품으로 보듬어줄까.(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