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라기', 제발 시대착오적인 드라마였으면 좋겠지만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에서 손녀딸 아이 백일잔치에서 며느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아들 무구일(조완기)이 아이를 보는 모습을 본 시어머니 박기동(문희경)은 입이 삐죽 나온다. 그래서 못마땅한 얼굴로 보다 못해 자신이 아이를 볼 테니 아들보고 식사를 하라고 한다. 며느리 정혜린(백은혜)이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 빨리 먹고 아이를 보겠다고 하고 아들도 나서서 자신이 아이를 잘 본다고 말하자 박기동은 아예 대놓고 며느리 들으라는 듯 이렇게 말한다. "애는 엄마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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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가 보여주는 백일잔치 풍경은 아마도 아이가 있는 이들에게는 익숙할 게다. 아이가 생기면 가족모임이 있을 때마다 누구나 한 명은 아이를 돌보느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은 아이 엄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족들은 마치 그것이 당연한 것인 양 저들끼리 떠들고 식사하기에 바쁘고, 심지어 아이 엄마도 그것을 당연하다 여기기도 한다. 박기동의 말에 들어 있듯이 '애는 엄마가 봐야한다'는 성 역할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다.
백일잔치에서는 또한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하나 더 낳으라는 말과,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아이가 없는 이게는 언제 아이를 낳을 거냐는 말 그리고 엄마가 젊을 때 아이를 낳아야 아이도 똑똑하고 엄마도 힘이 덜 부친다는 말 등등. 게다가 하나로 족하다는 말에는 "그래도 아들 하나는 있어야지" 같은 시대착오적인 말도 등장한다.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문화들과 그 속에서 당연시 되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나오는 성 차별적인 말들. 며느리들이 백일잔치, 생일, 명절 제사 등등.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어딘가 불편하고 꺼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다 같이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는 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 일인가. 하지만 모두가 똑같이 일하고 차별 없이 대화하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면 그 훈훈한 분위기에서 혼자만 소외되고 있다는 상실감이 배로 느껴질 게다.
그래서 민사린(박하선)은 남편 무구영(권율)과 호캉스를 가기로 한 날 박기동이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는 말에 회사 워크샵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박기동은 사실 민사린의 생일을 기억하고 한 끼를 같이 하고 싶었던 것이지만, 그 마음은 전해지지 않는다. 늘 불편했던 시댁 가족모임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평소 시댁이 뭐든 마음껏 얘기할 수 있는 편안함을 줬다면 민사린은 솔직히 이야기했을 게다. 그럼에도 이 사실을 알게 된 박기동은 왜 며느리가 거짓말을 했을까는 생각하지 않고 서운함에 화를 낸다.
이런 일들이 매번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반복된다. 누군가의 생일, 특별한 날을 축하하는 잔치, 명절은 그래서 며느리에게 행복한 시간이 아니라, 불편하고 불행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된다. <며느라기>는 너무나 일상화되어 있어 당연한 듯 툭툭 던지는 말들이나, 어떤 관례화되어버린 행동들이 어떻게 며느리의 숨통을 조금씩 조여 오게 되는가를 디테일한 시선으로 포착해낸다.
혹자들은 요즘 세상에 이런 집이 어디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타인의 과는 잘 보면서도 자신의 과는 보지 못하는 게 사람의 편협한 시각이다. 그래서 드라마처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상황을 보며 저건 '나의 일'이 아니다 라고 부인할 일이 아니다. 혹여나 나도 저런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게 해왔던 건 아닌가 돌아볼 일이다. 그건 어디나 있는 일이니까.
<며느라기>가 민사린이 무구영과 결혼해 시댁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상처들을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건 그래서 가치가 있다. 문제의식 없이 지나치던 일들을 다시금 곱씹어보고 그것이 타인에게 줬을 상처들을 생각해볼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이런 집이 어디 있느냐고 치부되는 시대착오적인 드라마였으면 좋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현실이니 말이다.(사진:카카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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