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마, 사랑해, 고마워", '너를 만났다', 다시 만난 아내에게 남편이 한 말들
"잘 있었어? 잘 있었어? 이제 안 아파? 이제 안 아파?" 4년 전 떠난 아내를 VR기술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남편 김정수씨가 가장 먼저 한 말은 그것이었다. 그건 아마도 아내가 떠난 후 김정수씨의 가슴에 묵직하게 남아있던 말이었을 테고, 끝내 전해주지 못했던 말이었을 수도 있었다. 아내는 아픈 모습으로 그와 다섯 아이들을 남긴 채 떠났으니.
MBC VR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시즌2의 부제는 '로망스'였다. 떠난 아내를 찾아가는 '모험'이자, 그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남편과 아이들의 아내와 엄마에 대한 가슴 뭉클한 사랑의 이야기. VR이라는 어찌 보면 차갑게 느껴지는 기술이 '휴먼'이라는 뜨거운 감정을 만나 눈물로 녹아내리는 순간을 <너를 만났다>는 보여줬다.
가상으로 다시 만나게 된 아내 앞에서 김정수씨는 울먹이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아내의 얼굴이 얼마나 만지고 싶었을까. 하지만 마치 손대면 작은 빛이 되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그런 마음이 그 떨리는 손끝에서 느껴졌다.
아이들은 VR기술로 아빠가 엄마를 다시 만난다는 사실을 방송국에 와서도 실감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가상 스튜디오에 들어간 아빠가 똑같이 가상으로 재연된 집에서 "지혜야"라고 엄마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닐 때 드디어 실감했다. 첫째부터 막내까지 오남매가 눈물을 흘린 건, 엄마를 다시 만났다는 사실만큼 엄마를 그토록 간절히 부르는 아빠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깊은 사랑과 그리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얼굴을 마주보며 "살 빠졌다" 안타까워하고, 음악을 틀어 놓고 양손을 잡은 채 천천히 함께 춤을 추는 부부. 춤의 끝자락에 조용히 다가와 남편의 품에 고개를 안긴 아내. 김정수씨는 그 작은 동작에서도 아내의 사랑을 느꼈다. "사랑해줘서 고마워. 지혜야."
그렇게 안은 채 그들이 가상으로 찾아간 곳은 오대산 월정사 근처의 숲길. 아파서 운신하기 힘들었을 때도 아내와 함께 갔던 곳이었다. 함께 숲길을 걷고 돌 하나씩을 얹어 놓고 소원을 비는 부부의 데이트. 그 모습을 밖에서 보는 첫째 딸 종빈은 환하게 웃으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바랐던 건강한 모습의 엄마가 거기 있었고, 그렇게 아빠를 만나고 있어서였다. 안 아픈 엄마를 바랐던 딸이었다.
함께 벤치에 앉아 아내가 문득 생각났다며 말한다. "나 아플 때 남한테 안 맡기고 오빠가 다 해준 거." 아내의 그 말이 가상으로 재연된 건 아마도 첫째 종빈과의 인터뷰를 통해 듣게 된 내용 때문이었을 터였다. 늘 아빠가 엄마 옆에 있었다는 종빈이는 엄마가 수술하고 배변주머니를 바꿔주고 하는 일들이 힘들었을 텐데 아빠가 그렇게까지 간호를 할 수 있었다는 데 놀라워했었다. 그것이 사랑의 위대함이라는 걸 종빈이는 느끼고 있었다.
"지혜야. 내가 들리는 거 없었고 네가 보이지 않아도, 항상 3년 동안 나하고 애들 옆에 있었다는 거 내가 알아." 그렇게 말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돌탑 쌓으며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묻는다. "우리 지혜 아프지 않고 하늘나라에서도 아프지 않고 하고 싶은 거 다할 수 있도록, 수영하고 싶은 거 수영하고 꽃꽂이하고 싶은 거 꽃꽂이 하고, 반찬 만드는 거, 음식 만드는 거 좋아하는 거 계속하면서, 이제 여기 걱정하지 말고 잘 있으라고. 오빠 가면 애들한테 있었던 일 다 빠짐없이 얘기해 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이제. 애들 다 잘할 수 있다고 오빠도 이제 괜찮고. 용기내서 할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는 오히려 떠난 아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누차 말하고 있었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중에 다시 만나면 다 해주겠다는 그 말에 아이들도 눈물을 흘렸다. 아내는 말했다. "우리 빈이, 윤이 지금 사춘기인데 힘들 때 엄마 생각 마음껏 해도 된다고." 종빈이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힘들 때만 엄마를 찾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고 말한 바 있었다. 종윤이는 독감 걸렸을 때 그러면 안되는데도 엄마를 찾아 안았다며 그게 좋았다고 말했었다. "인이, 원이, 혁아. 너희에겐 사랑하는 엄마가 있어. 알지?" 엄마의 그 말은 사실이었다. 아이들 기억 속에는 언제고 엄마가 살아있을 테니.
마지막 인사를 하고 아내가 작은 빛이 되어 떠난 후에도 김정수씨는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을 흘렸다. 너무나 아쉬운 시간이었지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후련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스튜디오로 들어온 아이들. 다소 어색한 듯 애써 웃으며 들어오던 아이들은 그러나 아빠에게 달려와 그 넓은 품에 안겨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제 엄마도 있었다. 그 따뜻한 엄마의 기억들이 함께 하는 한.(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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