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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샐러리맨 감성 제대로 건드렸다
    동그란 세상 2022. 12. 1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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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촌구석의 따뜻함과 위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나 회사 안가.”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매일 아무 생각 없이 살던 어느 날, 문득 바람결에 날아온 벚꽃 잎을 발견하고 여름(설현)은 충동적으로 일탈을 선언한다. 모두가 서울로 출근하는 길, 그 정반대로 가는 전철을 타자 늘 지옥 같던 출근길과는 너무나 다른 마법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바쁜 사람 하나 없는 한가한 전철을 타고 목적지 없이 낯선 곳을 향해 가는 발걸음. 번아웃이 일상이 되어버린 도시인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봤을 일이 아닐 수 없다. ENA 월화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는 그 도발적인 제목이 먼저 지친 마음을 툭툭 건드리며 시작하는 작품이다.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지만,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는 얌체 상사가 어떻게든 부려먹고 갈취하고 심지어 성희롱을 일삼는 그런 곳에서 여름은 탈출한다.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 만들어놓은 기준(이를 테면 직장을 다녀야 하고 승진을 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식의) 속에서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달리게 되어 있는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며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체감하게 된 여름은 모든 걸 정리해 배낭 하나에 꼭 필요한 것들만 담아 그 시스템 바깥으로 빠져나온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 안곡마을이다. 살 집도 집을 구할 돈도 변변찮은 상황, 부동산 아저씨는 그 곳에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는 당구장 건물을 여름에게 월세 5만원에 내준다. 건물에 사람 온기를 만들어 집주인이 원하는 괜찮은 가격에 매매를 하기 위함이지만 어쨌든 여름에게는 월세 5만원이면 연세를 내고 1년 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살 수 있는 곳이다. 여름은 그 곳에 머물며, 그 마을에 있는 도서관을 다니며 소일한다. 도시에서는 출판사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여름이지만, 이 시골에서는 도서관에서 한가로이 소일하는 삶을 산다. 똑같은 책이지만 팔기 위해 애쓰는 도시의 계산과는 너무나 다른 시골의 풍경이다. 

     

    제목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지만, 드라마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니다. 여기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선언은 ‘남들의 기준에 맞춰 사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 바깥으로 나온 삶을 또 다른 세계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삶을 그려낸다. 혼자 순댓국 하나를 시켜놓고 낮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취해 시골을 돌아다니거나, 하릴없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길에서 만난 할머니를 도와주거나 길 잃은 강아지를 챙겨 보살펴 준다. 

     

    또 안곡마을이라는 촌구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도서관에서 만난 남다른 따뜻함을 가진 사서 대범(임시완)과 실수로 얽히며 가까워지고, 도서관에서 만난 여고생 봄이(신은수)와 갈등과 화해를 거쳐 자매처럼 친해진다. 건물을 팔고 싶어 했지만 여름 때문에 못팔게 된 건물주의 아들 성민(곽민규)은 여름과 갈등하지만 결국 세상 마음 착하고 여린 인물이라는 게 드러나고 여름이 살고 있는 그 살풍경한 당구장에 중고물품들을 가져와 살만한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에서 도드라지는 관전 포인트는 ‘돈’으로 계산되는 세상과 마치 대결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음’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따뜻한 면면이다. 술에 취해 전 재산 450만원을 찾아 비닐봉지에 들고 다니다 잃어버린 여름을 위해 대범은 마치 제 일처럼 쓰레기더미들을 뒤져 돈을 찾으려 해주고, 성민의 아들이 주워 가지려 했다가 갖다 준 그 돈을 대범은 자신이 마치 챙긴 것처럼 거짓말을 하며 여름에게 돌려준다. 성민의 아들을 챙기기 위함이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성민은 여름을 찾아와 아들의 일을 사과하고 그 마음을 담아 당구장을 살만한 공간으로 꾸며준다. 

     

    또 봄의 아버지가 술에 취해 봄과 실랑이를 벌이다 칼로 찌르는 사고가 발생하고, 아버지가 감옥에 가는 걸 막기 위해 봄이 스스로 찔렀다고 증언함으로써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게 되자 그 병원비를 챙기기 위해 나서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렇다. 여름은 보증금을 빼서 병원비를 내려하고, 성민은 아버지 카드를 훔쳐 가져온다. 누가 그 병원비를 냈는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건 대범이 아닐까 싶다. 물리학 천재지만 이 시골마을의 사서로 지내고 있는 대범은 그 천재성으로 이론을 발표해 이름을 알리고픈 교수의 제안을 계속 거절해왔다. 하지만 결국 그 교수를 찾아간 건 당장 병원비가 필요하게 된 상황 때문이었다. 

     

    돈은 어디든 필요하지만 그것이 나의 욕망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누군가를 위한 마음에서라는 게 이 안곡마을이라는 촌구석에서 다른 점이다. 거의 폐가에 가까운 당구장이 여름이 오고 나서 봄도 오고 또 겨울이라는 강아지도 살게 되면서 온기를 갖게 되고, 그 곳에 성민과 봄을 짝사랑하는 재훈(장재민)이 옥상을 예쁘게 꾸며 봄의 퇴원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어주는 장면과, 교수를 만나고 나서 더 빨리 이 촌구석으로 돌아가려 하는 대범의 모습을 통해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이것저것 하라고 하는 세상에서 벗어나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이들의 항변은 실상 저 돈으로만 환산되어 달려가는 세상 바깥에서 사람의 온기로 가득한 진짜 삶을 마주하고 싶은 목소리라는 것을. 

     

    아쉽게도 안곡마을이라는 변방의 삶처럼 ENA라는 채널에 묶여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는 0%대 시청률에 머물러 있다. 혹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무려 최고시청률 17.5%를 냈다는 사실을 들어 이런 시청률이 채널의 인지도와는 상관없는 작품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은 넷플릭스라는 OTT가 공조하면서 그 저변이 만들어지고 자연스럽게 ENA 본방을 찾게 되는 선순환 속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시즌이 티빙과 합병되고 그래서 이제 티빙을 통해 이 드라마를 접할 수 있게 된 상황은 그래서 이 작아 보이지만 한없이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드라마의 반등을 기대하게 만든다. 안곡마을이 보여주는 그 위로와 따뜻함을 더 많은 이들이 느끼기를. 저 여름과 대범이 애써 살고 싶어 하는 그 촌구석의 따뜻함을 더 많은 이들이 발견하기를 기대한다.(사진: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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