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걸’부터 ‘닭강정’까지, 이제 안재홍은 매작품 은퇴한다
누구에게나 스스로 쌓아온 이미지는 소중하기 마련이다. 그건 그와 관계된 사람들이 그에게 일관되게 갖는 이미지에 의해 그의 정체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는 그 사람의 족쇄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고 거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회를 그 고정된 이미지가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그 이미지를 깨는 색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건 하나의 도전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안재홍이라는 배우는 독보적이다. 매번 ‘은퇴설’이 나올 정도의 파격적인 변신에 도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퇴는커녕 더더욱 대중들의 박수갈채를 받는 그런 배우이기 때문이다.
안재홍에게 ‘은퇴하는 거 아니냐’는 대중들의 이야기가 나오게 된 작품은 작년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2023)’이다. 웹툰 자체가 워낙 파격적이었다. 특히 그 작품 속 주오남이라는 캐릭터는 외모콤플렉스를 가진데다 컴퓨터에 약 2만 개의 야동을 저장해 놓을 정도로 비뚤어진 성의식을 가진 인물이다. 게다가 마스크를 끼고 인터넷 방송을 하는 마스크걸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통해 안재홍 스스로도 밝혔듯이 “더럽고 음침한” 캐릭터를 완전히 그 인물 자체인 것처럼 연기한다는 건 부담되고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건 그가 기존에 해왔던 역할들이 대부분 순수하고 수줍음 많은 청년 캐릭터였다는 걸 떠올려 보면 더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그의 인생캐릭터로 불리는 ‘응답하라 1988(2015)’의 정봉이를 떠올려보라. 2대8 가르마를 한 채 덕선(혜리)의 친구 미옥(이민지)과 어색하지만 설레는 연애를 하던 정봉이의 모습을. 또 ‘쌈, 마이웨이(2017)’에서 백설희(송하윤)와 연인 사이로 등장했던 주만이의 모습은 어떤가. 흔들리는 마음에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걸 후회한 후 노력 끝에 다시 사랑을 이루는 너무나 현실적인 청년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멜로가 체질(2019)’에서 스타 드라마 감독 손범수로 등장해 드라마 작가 임진주(천우희)와 유쾌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밀고 당기는 케미를 선보였던 건?
‘마스크걸’의 파격변신은 그래서 그간 이 수줍은 청년으로 각인되어 가던 안재홍이 그런 이미지로 굳어지기를 거부하려는 몸짓처럼 보였다. 그는 코로나19로 극장에 걸리지 못하고 결국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사냥의 시간(2020)’에서부터 삭발한 채 탈색한 헤어스타일을 한 반항기 가득한 모습으로 변신을 예고했다. 2023년에는 ‘마스크걸’의 주오남 역할과 더불어, 장항준 감독의 영화 ‘리바운드’로 실존 인물인 강양현 코치 역할을 연기했는데 실제 싱크로율을 맞추기 위해 몸무게를 10킬로 늘리기도 했다.
‘마스크걸’의 은퇴설은 올해 방영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LTNS’에서 또 불거졌다. 이솜과 과감한 19금 연기에 도전한 안재홍은 극중 섹스리스 부부의 남편인 사무엘 역할을 진짜 부부 같은 모습으로 찰떡같이 연기해냈다. 당연히 부부 간의 내밀하고 대담한 대사들은 물론이고 행위들까지 연기해내야 하는 부담이 분명했을 테지만, 그의 리얼한 연기는 “내 얘기 같다”는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 물론 솔직한 성담론이 담겨진 작품이지만, ‘LTNS’는 여기에 빈부의 차이와 성 문제와의 상관 관계 같은 사회적 코드들을 녹여낸 블랙코미디로 호평받았고, 거기에는 은퇴설이 또 나올 정도로 변신에 도전한 안재홍의 지분이 분명했다.
그런 그가 이제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으로 돌아온다. ‘멜로가 체질’로 인연을 맺은 이병헌 감독이 대본을 쓰고 연출한 작품이다. 이병헌 감독 특유의 코미디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어느 날 누군가에게 배달된 의문의 기계에 들어간 민아(김유정)가 닭강정으로 변하게 되고, 그걸 되돌리기 위해 아빠 선만(류승룡)과 그녀를 짝사랑하는 백중(안재홍)이 안간힘을 쓰는 이야기다. 2019년 네이버 웹툰 ‘지상최대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웹툰 원작을 드라마화한 작품으로 너무 황당한 설정인지라 과연 드라마에도 어울릴 수 있을지 고개가 갸웃해지는 작품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름 아닌 ‘극한직업’ 같은 독특한 세계를 특유의 코미디로 풀어내는 이병헌 감독이 대본과 메가폰을 잡았기에 오히려 기대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 됐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건 안재홍과 류승룡 같은 배우가 주는 아우라다. 특히 그간의 필모를 통해 예사롭지 않은 코미디 연기를 보여준 안재홍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다.
안재홍은 여러 역할들을 통해 여러 이미지와 얼굴들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꿰어지는 하나의 이미지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건 바로 ‘덕후 기질’ 같은 모습이다.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도 모든 것에 마니아틱한 열정을 드러내는 인물로 심지어 전화번호부를 정독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고, ‘멜로가 체질’에서는 드라마 연출에 푹 빠져사는 스타감독을, ‘마스크걸’에서는 그런 웃음을 자아내는 모습들과는 상반되게 비정상적인 성에 빠져사는 샐러리맨을 보여줬으며, ‘LTNS’에서도 섹스리스 부부가 갖는 허탈함 속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이들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여줬다. 마찬가지로 ‘닭강정’에서 백중은 짝사랑해온 민아를 본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닭강정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는 인물이다.
코미디는 그 웃음의 코드에 일단 어느 정도 적응하고 공감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닭강정’은 그런 의미에서 결코 쉬운 작품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항간에는 벌써부터 잘 되면 명작이지만 안 되면 ‘괴작’이 될 거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하나의 이미지에 멈춰서기보다는 심지어 은퇴설이 나오더라도 계속 새로운 도전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넓혀나가는 안재홍의 행보는 박수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아마도 우리의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무언가 새로운 가능성을 계속 열어보고 싶다면, 늘 은퇴하는 마음으로 기존의 편안했던 삶의 틀을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안재홍은 연기의 세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글:국방일보,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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