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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인물

송중기, 또다시 늑대소년의 초심을 다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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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 중년의 깊이와 무게감으로 돌아온 송중기

로기완

“긴데 이런 내가 행복해질 자격 있는 거가?”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에서 탈북 청년 로기완 역할을 연기한 송중기는 그런 대사를 던진다. 특유의 북한 억양이 들어있는 그 목소리에는 그가 느끼는 행복감과 더불어 그런 행복을 자신이 누려도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이 동시에 담겼다. 그래서 거기에는 지독한 슬픔 같은 게 묻어난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가는 걸 보면서도 탈북자라는 사실 때문에 공안을 피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청년. 살기 위해 탈북한 이후 그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뿌리내릴 작은 땅조차 없이 살아야했던 그는 거의 유일한 마음의 터전이나 다름 없던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어디서도 뿌리 내리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낯선 땅 벨기에까지 날아와 난민 지위를 얻어보려 하지만, 탈북자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그곳에서도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그런 그에게 마리(최성은)라는 또 하나의 ‘흔들리는 청춘’이 나타난다. 벨기에 국적 한국인 사격 선수였지만 어머니의 안락사를 아버지가 허락했다는 사실 때문에 방황하며 함부로 자신의 삶을 내동댕이쳐온 그녀는, 자신은 상상조차할 수 없는 생존 상황에도 끝까지 버텨내며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는 로기완을 보며 마음이 움직인다. 

 

‘로기완’은 그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탈북 청년과 이국에서 방황하는 청춘의 운명적인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거기에는 미래가 불안한 청춘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보편적인 서사도 들어있다. 로기완의 인상적인 대사에 들어 있듯이, 청춘들이 느끼는 만만찮은 현실은 그들에게 ‘행복해질 자격’을 묻는다. 그런데 행복에 왜 자격 따위가 필요할까. 행복은 그냥 누리면 되는 것이 아닌가. 자격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래서 탈북청년 로기완의 이 질문은 왜 모든 청춘들이 그저 행복할 수는 없는 세상인가를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로기완은 끝내 마리를 먼저 떠나보내면서 말한다. “너 붙잡아 줄 단단한 사람”이 되겠다고. 그래서 꼭 만나러 가겠다고. 그건 세상이 흔들어 놓은 청춘들 모두의 마음 그대로다. 

 

또한 이건 아마도 배우 송중기의 마음이기도 했을 터다. 이제 30대 후반의 나이에 접어든 이 배우 역시 ‘성균관 스캔들(2010)’ 같은 그를 스타덤에 올린 초창기 작품을 하면서 언젠가는 흔들리지 않는 보다 단단한 연기를 해내겠다 다짐했을 테니 말이다. 연기자라기보다는 ‘꽃미남’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렸던 당시의 송중기는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남장여자 캐릭터의 개연성’이라고까지 이야기됐던 미모의 소년이었다. 박민영이 연기했던 남장여자 캐릭터가 성균관에 출입한다는 설정이 바로 이 송중기라는 꽃미남(여성이라고 해도 될 법한)에 의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성에 가까운 꽃미남 이미지로 소비되는 자신을 못견뎌했던 송중기는 그 후로 부단한 변신의 노력을 한다. 영화 ‘늑대소년(2012)’이 송중기에게는 가진 늑대의 야성이라는 또 다른 측면을 끄집어내는 도전이었다면, 드라마 ‘뿌리깊은나무(2011)’의 젊은 세종 역할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2012)’의 선과 악을 넘나드는 모습은 꽃미남 스타가 배우라는 이름에 걸맞는 필모를 쌓아가는 과정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는 독특한 이미지를 갖게 됐다. 여리디 여릴 것 같은 꽃미남의 외모를 갖고 있지만 앙다문 입술과 살짝 미간이 좁혀지면서 나오는 대사의 톤을 들어보면 강인한 내면이 느껴진다. 밝게 웃으면 착하디 착한 미소년의 모습이지만, 분노에 한껏 일그러진 얼굴은 순간 분노의 화신으로 그를 변신시킨다. 이러한 다면적인 이미지는 송중기를 그저 꽃미남에 머물지 않게 하면서도 동시에 배우라는 무게에만 침잠하지 않게 해주는 스타와 배우 사이의 균형을 만들어줬다.  

 

그 진가는 ‘태양의 후예(2016)’라는 작품으로 꽃을 피웠다. 테러리스트들과 맞서는 강인한 군인이지만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운 유시진이라는 캐릭터는 송중기의 이 균형잡힌 이미지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당시 군인이라는 직업을 이토록 판타지로 느껴지게 만들었던 건 다름아닌 송중기의 이미지에 상당부분 기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처럼 글로벌 스타로까지 떠올랐다고 해서 그가 젊은 날 꿈꿨던 그 단단한 사람이 된 건 아니었다. 그는 그 후에도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지옥섬 군함도에 끌려간 조선인(군함도 2017), 선사시대의 영웅(아스달 연대기 2019), 우주 SF의 히어로(승리호 2021), 이태리에서 온 마피아 변호사(빈센조 2021)까지 여러 시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역할들을 소화했다. 또 시간을 되돌려 인생리셋을 꿈꾸는 1인2역(재벌집 막내아들 2022)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최근 그가 출연한 영화 ‘화란(2023)’과 ‘로기완’은, 꽃미남으로 등장해 그 껍질을 벗겨내려 흔들리면서도 무던 애를 쓰고 결국 스타덤에 올랐던 청춘의 나날을 지나 이제 30대 후반 중년기에 접어든 송중기의 출사표 같은 작품으로 다가온다. ‘화란’에서 아버지가 술독에 빠져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그 죽음의 끝에서 자신을 구해준 조폭의 수족으로 살아가는 치건(송중기)이나, ‘로기완’에서 뿌리가 뽑혀져 그 어디에도 발을 디디지 못한 채 부유하는 로기완이나 모두 모든 걸 잃은 채 살아가는 밑바닥의 삶을 보여준다. 치건이 아버지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인물이었다면, 로기완은 어머니 없는 세상 앞에 던져진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들을 연기하는 송중기는 ‘꽃미남’ 같은 수식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멍자국 핏자국의 상처들이 가득한 얼굴을 드러낸다. 그건 마치 영화 ‘늑대소년’에서의 모습처럼 보인다. 다만 다른 건 ‘늑대소년’의 송중기가 미소년에서 야성 같은 새로운 이미지를 끄집어내려는 청춘의 도전이었다면, ‘화란’이나 ‘로기완’의 송중기는 보다 사회적 의미를 질문하기 시작하는 중년의 도전 같은 느낌이라는 점이다. 물론 여전히 흔들리는 청춘을 연기하고 있지만 송중기의 연기는 중년의 무게감을 얻어가고 있다. 또한 그렇게 단단해져 웬만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 그건 어쩌면 청춘의 시기를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꿈꾸는 중년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