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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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방부터 찢었다... 뻔한 오디션 찢어버린 미친 보컬들의 향연

D.H.Jung 2024. 4. 2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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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스 온 파이어’, 걸그룹 오디션이 지겨웠다면 이 여성보컬그룹 오디션을 보라 

걸스 온 파이어

또 오디션이야? 아마도 JTBC ‘걸스 온 파이어’에 대한 시청자들의 선입견은 익숙하게 봐왔던 아이돌 오디션의 어떤 풍경이 아니었을까. 차례 차례 어디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비주얼의 출연자들이 등장하지만, 어설픈 춤실력에 실망하거나 춤은 잘 추는데 노래실력은 엉망인 이들이 자신들의 아직 부족한 실력을 애써 매력으로 채워보려 안간힘을 쓰는 그런 오디션... 하지만 그건 ‘걸스 온 파이어’에 대한 단단한 착각이고 선입견이다. 

 

그런 선입견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걸스 온 파이어’는 첫방부터 1대1 맞짱승부를 통해 이 오디션이 그런 뻔한 걸그룹 오디션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보여줬다. 스스로를 구례에서 올라온 돌+I라고 소개한 감담영이 연 첫 무대부터가 달랐다. 그의 무대는 마치 한영애가 시간을 되돌려 소녀가 되어 부르는 것처럼 자유분방했고 물론 만만찮은 노래실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담영이 무난하게 첫 번째 맞짱승부에서 승리해 다음 무대로 진출할 거라 여겨졌지만, 스스로의 가능성을 ‘미지수’라 부른 조예인이 기타를 치며 부르는 무대는 이런 예상을 모두 깨버렸다. 오디션 심사계의 ‘시조새’로 불리는 윤종신 심사위원이 극찬했던 것처럼 조예인의 목소리 톤은 독보적이었고, 중저음에서 고음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진성과 가성의 중간 정도를 내는 데서 나오는 공명감의 조절은 기가막혔다. 걸그룹? 이건 거의 보컬리스트를 뽑는 오디션에 가까웠다. 

 

실제로 ‘걸스 온 파이어’는 우리가 흔히 오디션으로 많이 봐왔던 걸그룹을 뽑는 그런 오디션이 아니다. ‘국내 최초 여성보컬그룹’을 결성하는 오디션이다. 따라서 끼와 열망은 대단하지만 노래는 적당히 춤은 어느 정도 하는 수준으로는 참여조차 하기 어려운 오디션이다. 반대로 노래는 기본 이상이어야 하고 춤이 아니라도 표현으로서의 퍼포먼스를 할 줄 알아야 하며 끼와 열망은 당연한 이들만이 가능한 오디션이다. 

 

이런 오디션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두 번째 맞짱승부에 올라온 괴물토끼 윤민서는 아이브의 ‘일레븐’을 집착과 광기에 가득한 화자의 목소리로 표현해내 한 편의 뮤지컬 같은 무대를 만들었다. 가창력이 완벽하게 뒷받침 되어 있어 낯설 수도 있는 그 표현들이 선우정아 심사위원의 표현대로, ‘기술’의 차원을 넘어 ‘예술’이 될 수 있는 무대였다. 하지만 이토록 압도적인 무대를 선보여 괴물토끼가 아니라 ‘괴물’처럼 여겨졌던 윤민서가 당연히 압승할 거라고 생각했던 건 다음 무대를 펼친 ‘행복한 쿼카’ 최아임에 의해 깨져버렸다. 

 

박혜원의 ‘막차’를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부른 최아임은 그 진심이 얹어진 무대로 모두를 몰입하게 만들었고, 발라드가 끄집어내는 슬픔의 감성을 모두에게 전파시켰다. 파워풀한 가창력의 소유자처럼 보이지만, 그걸 애써 강조하기보다는 꾹꾹 눌러 가사에 진심을 얹어 전하려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윤민서라는 괴물의 무대와 박혜원이라는 감동의 무대. 물론 승패는 갈렸지만 승패가 그리 의미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무대들의 향연이었다. 

 

노래와 퍼포먼스만이 아니라 작사 작곡 능력을 갖춘 출연자도 돋보였다. 만만찮은 끼를 가진 중국에서 온 레타와 맞선 자작곡 ‘누워있고 싶다’를 선보인 자넷서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무대는 마치 프로 가수의 쇼케이스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한번 듣고 나니 2절부터는 ‘아 걍 다 때려치고 누워있고 싶다-’라는 후렴구를 따라부르게 됐다는 영케이 심사위원의 말이 실감되는 무대. 그냥 발표해도 차트에 오를 것 같은 공감가는 가사와 따라하고 싶은 훅이 느껴지는 곡을 오디션 무대에서 보게 될 줄이야. 

 

절친으로 참가했지만 라이벌로 이수영과 맞짱승부를 하게 된 김예빈의 무대도 돋보였다. 블루스 록 장르의 ‘Better babe’를 톡톡 터지는 탄산수처럼 시원시원한 고음의 매력으로 소화하며 뇌쇄적인 퍼포먼스까지 펼쳐보였다. 뮤지컬계에서 떠오르는 샛별로 이아름솔이 ‘천둥호랑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제시제이의 ‘Mamma knows best’를 진짜 뮤지컬을 하듯 폭풍 가창력으로 소화했지만, 오디션만 이번이 네 번째라는 이나영이 자신의 진심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부른 박정현의 ‘미안해’는 더더욱 진짜 뮤지컬 같은 무대를 보여줌으로써 모두를 감동하게 만들었다. 

 

3세대 아이돌 에이프릴의 메인보컬 출신 김채원과 맞붙었던, ‘그세계 아이돌’ 이송화의 무대도 충격 그 자체였다. 세계 최초 K팝 AI 아이돌 ‘이터니티’로 데뷔해 ‘얼굴없는 가수’로 활동해온 이송화는 레드벨벳의 ‘몬스터’라는 곡을 진짜 괴물의 탄생을 알리는 듯한 무대로 소화해냈다. 사이버 세상에 더 이상 머물지 말고 밖으로 나와달라는 MC 장도연의 재치 있는 멘트가 공감가는 실력자였다.

 

‘걸스 온 파이어’가 이른바 K팝이 아닌 ‘뉴K팝’을 주창하며 ‘여성보컬그룹’을 탄생시키겠다고 내세운 기치에는 ‘결국 중요한 건 본질’이라는 메시지가 읽힌다. 가수라면 노래를 잘해야 하는 게 기본이고, 또 그걸 잘 표현해내는 게 본질이라는 것. 화려한 퍼포먼스만이 아닌 진짜 마음을 건드리는 음악의 본질로 돌아가자고 이 프로그램은 말하는 듯하다. 아마도 오디션이 ‘거기거 다 거기’라는 선입견을 가진 분들이라면 이 프로그램을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그 선입견을 깨주는 메시지에 깊게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첫방을 내놓은 것뿐이지만 벌써부터 다음 출연자들이 어떤 무대를 선보일지가 기대된다. (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