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애받지 마세요, 내가 정답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예능인은 누굴까. 유재석도 신동엽도 아닌 전현무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의하면 그가 지난해 고정출연한 프로그램이 무려 21편이다. 이게 가능해진 건 그만큼 그가 해내는 프로그램에서의 역할이 폭넓기 때문이다. 그는 ‘히든싱어’나 ‘팬텀싱어’, ‘트로트의 민족’ 같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맛깔나게 진행하는 MC면서,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카메라 형식의 프로그램의 메인 출연자다. ‘전지적 참견 시점’ 같은 웃음과 재미에 특화된 프로그램에서도 특유의 깐족과 재치를 자랑하지만, ‘톡파원 25시’나 ‘성적을 부탁해:티처스’, ‘선을 넘는 녀석들’ 같은 정보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지식을 바탕으로 한 진행 능력을 선보인다. 그러니 예능가에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런칭하면 몇 개 중 하나에는 반드시 전현무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의 영역은 전방위적이다. 그는 어떻게 이런 전천후 방송인이 될 수 있었을까.
인포테인먼트의 흐름, 전천후 방송인의 탄생
전현무는 방송의 흐름이나 시대의 변화를 앞서 내다보는 능력이 탁월해 보였다. 2012년 그가 프리 선언을 했을 때 마침 방송가에는 ‘인포테인먼트’의 흐름이 생기고 있었다. 교양에서조차 정보만이 아닌 재미를 요구하는 새로운 변화였다. 그래서 아나운서로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아나테이너의 길로 나아간 선택은 이런 변화에 딱 맞는 거였다. 진행자인 MC로서의 역할, 예능에서의 플레이어로서의 역할, 또 코멘테이터의 역할을 다양하게 할 수 있게 된 건 이 변화의 흐름에 적응한 결과였다.
“저는 근데 예전에 이렇게 역할이 다 나뉘어 있을 때부터 그냥 옷만 다르게 입는 거지 다 똑같은 전현무를 하는 거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실제로 예전에는 게스트, 패널, MC, 플레이어 다 이렇게 나뉘어져 있었는데 요즘에 그런 게 없잖아요. 예전에 넌 MC가 왜 이렇게 플레이어를 하려고 해 라고 누군가 얘기한 적이 있는데,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건데요?’라고 했던 적이 있어요. 역할을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옛날부터 저는 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역할이 다르긴 한데, 약간 MBTI처럼 제가 MBTI P인데 P만 있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저도 J가 한 20% 정도 있거든요. 그런 식으로 다 모든 게 섞여 있듯이 진행자로서는 진행자의 색깔을 좀 넣는 거고 게스트일 때는 게스트를 좀 하고... 100% 완벽하게 하나의 성향만 있지 않은 사람이다 보니까 그것만 조금씩 조절을 하는 거지 역할은 다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려 노력해온 시간들이 들어있다. 과거 ‘해피투게더’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루시퍼’ 춤을 추고 하던 모습은 어딘가 어색한 면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훨씬 여유로워진 예능인으로서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가끔 케이블 채널 몇백 번대에 가면 그거(루시퍼) 나와요. 아직도 나오고 있죠. 진짜 민망해서 못 봐요. 저런 멘트를 하고 저런 표정을.. 그리고 남의 말 듣지도 않고 그냥 나 하나 웃기려고 그냥 너무 안쓰러울 정도로 그러고 있어요. 그런데 그랬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여기 있는 것 같고, 지금 이제 막 예능하는 친구들을 제가 이렇게 MC로서 보면 제가 그랬던 모습이 보여요. 귀여워요. 얘들도 10년 뒤에 얼마나 이걸 흑역사로 생각하고 민망해 할까. 근데 누구나 그 과정을 거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러한 여유를 갖기까지 꾸준히 노력하고 그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방송에서 능력만큼 중요한 건 태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현무가 방송가에서 섭외 일순위로 꼽히는 건 어쩌면 이 태도와 자세가 남달라서일 게다.
“사실 본질적으로는 저는 캐스팅을 당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캐스팅을 하는 사람한테 캐스팅 하길 잘했다 라는 말을 들어야 되겠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게스트로 나가도 춤을 한 번이라도 더 추고 편집을 하더라도 그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섭외해 줬으니 이렇게 120% 하고 가겠다 라는 마인드로 지금도 하고 있고, 그 초심은 지금도 여전해요.”
변화하는 트렌드에 적응하는 법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고, 트렌드에 민감한 방송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OTT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고 모바일이 일상화되면서 콘텐츠들도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가 ‘나 혼자 산다’에서 이른바 ‘트민남(트렌드에 민감한 남자)’ 캐릭터로 MZ들의 다양한 취향에 뛰어들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에게 트렌드란 도대체 뭘까.
“몸이 늙는 거는 병원 가서 어떻게든 노화를 더디게 할 수는 있는데 정신 늙는 거는 답이 없다.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정신이 늙으면 진짜 두 배 세 배로 늙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이가 몇이든 간에 요즘 세대들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려 하죠. 근데 그거를 재미있게 풀어서 ‘트민남’이라고 한거예요. 요즘 애들은 뭐 이거 한대 이러면 이미 나는 늙는 거예요. 근데 어떻게든 그걸 알려고 하고 따라해보려고 하면 주책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친구들이 저를 귀엽게 봐요. 저를 친근하게 생각 하거든요. 그리고 실제로도 요즘 유행하는 패션이 어떤 추세고, 맛집은 어디가 힙한지 관심이 많고 또 그걸 즐기며 살고 있어요.”
트렌드 변화는 방송도 예외가 아니다. 연예인보다 인플루언서들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로 돌입했다. 그래서 역으로 연예인들이 유튜브에 뛰어드는 트렌드도 생겨나고 있는데 환경이 너무 다르다 보니 실패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현무는 아직 그 대열에 들어 있지 않다. 트렌드 변화에 잘 적응해온 그의 이력을 생각해보면 의외의 행보다.
“주변에 유튜브를 안하는 사람이 거의 저밖에 없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제가 오히려 레어템이 돼서 방송이 더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유튜브 하다 보면 콘셉트가 겹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방송을 안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저도 유튜브가 하고 싶기는 해요. 하지만 남들 하니까 나도 계정이나 만들어 놓을까 하는 자세로는 처음 잠깐 주목받다 흐지부지될 것 같아요. 유튜브는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거를 해야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요. 또 방송에서 이미 했던 캐릭터를 갖고 비슷한 걸 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방송에서 소화못하는 콘텐츠가 있다면 그걸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아직은 손에 잡히지는 않고 있어요.”
예전에 ‘Moo진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전현무는 브런치 스토리에 ‘트렌드를 대하는 자세’라는 글을 쓴 바 있다. 거기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가장 나다운 게 곧 트렌드’라고 한 문구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문화에 진심인 것. 그게 가장 트렌디한 일이다.’라고 그는 썼다.
뻔한 엄숙주의를 넘어선 펀(fun)한 인물
전현무는 누가 봐도 엘리트다. 연세대를 나왔고 2003년 조선일보 공채 43기 기자로 입사했다 1주일만에 나와 YTN에 앵커로 들어갔으며, 2006년에는 KBS에 공채 아나운서로 합격했다. 언론고시에 있어서 기자, 앵커, 아나운서 모두를 합격한 브레인이었던 것. 하지만 그의 행보는 기자에서 앵커로 앵커에서 아나운서로 옮겨간 후에도 또다시 이전에는 없던 ‘예능에 최적화된 아나운서’로 그리고 프리선언 이후에는 본격적인 예능인으로 변모했다. 이 과정을 보면 한때 엘리트주의와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서서히 유연해진 시대의 흐름이 엿보인다.
“저는 예전부터 영상 매체는 뉴스든 다큐든 예능이든 교양이든 재밌어야 된다는게 제 철칙이었거든요. 요즘 종편을 보면 앵커들조차 재밌게 하려고 하는데요, 과거에는 이런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거부감이 있었던 건데 저는 이럴 때가 올 거라고 예상을 했었어요. 왜냐하면 바쁜 와중에 TV를 켠다는 건 대단한 행위인데 진지한 얘기만 들으려고 보지는 않거든요. 재미가 있어야 보는 거다 라는 생각이 있어서 예전 싸이월드 제 계정에 제가 이렇게 쓴 적도 있어요. ‘재미 없는 건 재앙이다’라고요. 당시에는 아나운서, 코미디언, PD, 기자 등등 역할이 완전히 나눠져 있었는데 그게 좀 안타까웠어요.”
인포테인먼트 시대를 지나 어느 순간에는 교양과 예능이 뒤섞이는 시대로 넘어갔다. 실제로 SBS에서는 당시 교양국과 예능국이 통합되어 ‘정글의 법칙’ 같은 프로그램이 탄생하기도 했다. 교양의 다큐적 요소들이 예능 속으로 들어와 점점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경향도 생겼다. 아나테이너들이 등장하게 된 건 당연지사였고, 전현무는 그 시대의 아이콘으로 얘기해도 될 법한 인물이었다.
“아나테이너들이 훨씬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장성규와 조정식을 응원하거든요. 너무 이쁜 동생들 좀 더 활발히 설쳐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건 ‘나다움’을 잃지 말라는 거예요. 나다움을 잃고 기존의 아나운서를 흉내내는 순간 불합격입니다. 나다움이 굉장히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에 흔히들 하는 얘기거든요. 면접장에서도 본인이 보지도 않는 방송의 아나운서를 제 롤모델이라고 하면 거짓말인 거 다 알거든요. KBS 시험 볼 때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개콘’을 얘기했었어요. 실제로 전 ‘개콘’을 매주 일요일마다 봐서 그렇게 얘기했는데 술렁술렁거렸어요. 당시 아나운서들이 진행할 확률이 제로인 ‘개콘’을 얘기했다는 거는 굉장히 전략적이지 않은 답변이었죠. 근데 거기서 그분들은 솔직하게 본 거죠. 제 아이덴티티를 보여준 거고.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나는 어떤 사람이 되겠다. 나는 이런 걸 되게 잘한다. 방송에서 그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 이런 게 있을 거예요. 그런 거를 잃지 말고 면접장에서 어필을 하시면 훨씬 더 합격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요즘 아나운서는 직종 자체가 위기다. 이미 정확한 발음에 특화된 아나운서보다 조금 익숙지 않아도 개성있는 배우가 멘트를 하는 걸 더 선호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어서다. 또한 아무 개성 없이 멘트만 하는 아나운서는 AI를 이기기가 어렵다. 전현무가 말하듯 자기만의 어떤 개성이 확실한 목소리와, 자기가 좋아하는 것, 또 감정도 실을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요구된다.
‘나다움’의 아이콘
이른바 ‘멀티테이너’가 당연해진 우리의 일상이다. 연예인들도 그렇지만 일반인들도 한 가지 캐릭터만으로는 살기 힘들어졌다. ‘부캐’가 대세가 되고, 역할도 많아졌다. 어떨 땐 굉장히 진지해야 되고 어떨 땐 굉장히 가벼워야 하고 이걸 균형 있게 잘해야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다. 한 가지의 나의 모습에 갇혀 있기보다는 다양한 나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삶이 중요해진 현재, 전현무가 말하는 나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그 울림이 적지 않다. 그는 예전에 ‘다움’에 대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다움’에 갇히면 다 같아지고 ‘나’가 보이지 않는다. ‘나’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자가 백만 유튜버가 되고 파워 블로거가 되고 인플루언서로 인기를 얻는다.”
“‘나다운 게 다움에 갇혀 있었다’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학생다워야 한다, 아나운서다워야 된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 저는 근데 아나운서답지 않게 해서 성공을 했어요. 그 다움이라고 하는 거는 남이 규정해 놓은 거잖아요. 내가 생각했을 때 아나운서는 이래도 돼라고 생각하면 그게 맞는 겁니다. 제가 예전에 싸이월드에 ‘내가 정답이다’라는 글을 썼었어요. 부모님도 정답이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직장 상사, 사장님, 본부장님도 아닌 당신이 정답이에요. 당신 인생의 정답은 당신이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아나운서 들어가자마자 아나운서다움도 버려 버렸고 이제 프리를 해서도 아나운서 출신 다움에 대한 선입견도 버렸어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유튜브를 예로 들면, 방송과는 전혀 상관없는 곤충에 미쳐있거나, 피규어에 미쳐 있고 또 ASMR에 빠져있는 이런 분들이 콘텐츠 제작자가 되고 있잖아요. 100만 유튜버가 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너무 좋아 죽겠는거, 나다운 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다움은 요즘 시대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 과거 직장인다움이라는 틀 안에서 야근을 당연히 생각하고 자신을 희생해 가족을 부양하는 삶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걸 벗어나 퇴근 후 자신만의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워라밸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자리하게 됐다. 흔히들 ‘MZ 같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게 된 현 세대들의 긍정적인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일 게다. 전현무는 그런 점에서 스스로도 말하듯 MZ라는 개념이 나오기 전부터 MZ였다고도 볼 수 있다.
“MG들의 성향을 20대 때 이미 갖고 있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회식도 하기 싫으니까 안 가는 게 그 때는 쉽지 않았어요. 신입 아나운서 때부터 저는 회식을 안갔는데, 제 아나운서 송별회 하는 날도 제가 안 갔어요. 그만큼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 그렇게 살아왔죠. 저는 나이 50, 60이 돼서도 이런 나다움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아직도 음악 방송을 많이 하지만 아이돌들이 인사하고 오는 걸 싫어합니다. 진심으로 싫어합니다. 그리고 누가 인사를 안 왔다고 싸가지 없다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아니 바빠 죽겠는데 자기 할 일 하고 가면 되지. 그 시간에 쉬고 무대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나아요.”
왜 전현무가 이 급변하는 방송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지금 가장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인물이 됐는가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나다운 것을 잃지 않으려는 데서 비롯됐다고 보인다. 그리고 그 ‘나다움’이란 사회적 잣대가 들이미는 무수한 ‘다움’의 틀에 갇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들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전현무의 나다움은 그래서 복잡해진 현대인들의 삶에 중요한 가치를 던진다. 진정한 자신을 찾아내고 그 가능성을 넓혀가는 것. 그건 어쩌면 이 엄청난 속도로 변화해가는 세상을 좀더 행복하게 영위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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