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소비자 시대, 그 명과 암

혹자들은 '패밀리가 떴다2'와 '승승장구'의 낮은 시청률이 2PM 때문이라고 한다. 2PM의 재범 영구탈퇴 결정과 함께 팬들은 하루아침에 안티 팬으로 돌아섰고, 이로 인해 2PM에 대한 호감은 그만큼의 배신감으로 돌아섰다는 것. 그저 항간에 도는 소문이겠지만, 이러한 소문이 프로그램에 미치는 영향 또한 적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련의 2PM 사태와 그로인해 유포되는 다양한 루머들을 들여다보면 거기 이제 팬 문화에서 대중문화로 확대되어가는 징후들이 포착된다.

과거 기획사-아이돌그룹-팬 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뉘어져 기획사가 주도하고 아이돌은 그걸 따라가며, 팬은 그런 아이돌에 열광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소비자시대에 들어서면서 소비자로서의 팬은 그 덩치를 키웠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어가길 원한다. 기획사가 과거처럼 아이돌을 제 셈에 맞춰 좌지우지하려 하는 징후가 포착되면(물론 그것이 팬 소비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은 그런 기획사를 거침없이 비판한다. 2PM 사태는 아예 팬 소비자가 아이돌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까지 가게 됐다는 점에서 대중문화에 있어 소비층들의 힘이 어디까지 왔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대중문화가 확산되면서 이제 팬클럽에 한정되던 소비층이 일반 대중으로 넓어졌다는 점이다. 일부 팬클럽의 끊임없는 요구에 지친 기획사나 제작사들은 심지어 이런 팬클럽을 상대하기보다는 보다 넓은 일반 대중을 상대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듯도 보인다. 대중문화에 호의적인 일반 대중들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팬클럽만큼의 구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대중문화는 특정 세대가 특정한 방식으로 소비되는 그런 문화가 아니다. 누구나 어디서나 접하게 되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소비자의 요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중문화 시대에 대중들의 요구는 점점 강해진다.

드라마 전개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어떤 요구는 실제로 받아들여져 죽어야 될 인물이 살아나기도 하고(심지어 개연성을 깨뜨리면서까지!) 살아있어야 할 인물이 갑자기 죽어버리기도 한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엔딩에 쏟아진 수많은 시청자들의 비판 속에는 대중들의 욕구가 꿈틀댄다. 영화처럼 단 번에 끝나버리는 것이라면 모를까, 이제 시리즈로 방영되는 드라마는 어떤 식으로든 대중들과 소통하면서 제작(?)되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드라마의 진행은 물론이고 엔딩까지, 그것은 이제 제작자의 것만은 아닌 것이 되었다.

이런 쌍방향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드라마의 사전제작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 편에서는 완성도를 요구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대중들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진행을 요구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나갈 수 있을까. 실로 어려운 문제다. '추노'에서 대길(장혁)이 죽는 엔딩에서도, 많은 이들은 그 작품이 괜찮았지만 대길을 살렸으면 더 좋지 않았겠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사실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작품의 완성도와 자신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이 있는 건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무한도전'이나 '1박2일'처럼 확실한 팬층(일반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는 의미에서)을 소유한 프로그램에는 유난히 시청자들의 요구가 많아진다. '1박2일'이 남극에 간다고 결정을 내렸을 때, 제작진들은 그 결정으로 인해 생겨날 대중들의 마음을 읽고 그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것은 마치 민심을 읽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뭐든지 사고파는 시대에 민심은 소비자의 마음이기도 하다. '1박2일'이 1년마다 하는 '시청자와 함께 떠나는 1박2일'은 따라서 고객 행사 같은 성격을 띤다. 늘 소비자와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실제 체험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대중문화에 이제 주인이 왕이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 그 모든 것은 손님을 중심으로 바뀌고 있고, 심지어 손님들은 대중문화의 주인으로 격상된다. 소비자 참여 프로그램이 점점 많아지고, 제작자와 소비자 간의 소통의 창구가 점점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제 중요한 건 어떻게 하면 이 양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점이다. 주인은 늘 손님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어쩌면 지나치게 상업적(대중적인 의미로서)으로만 흘러갈 위험도 존재한다. 또한 손님은 왕이라고 하지만, 때론 손님의 요구가 작품 자체를 흔들어놓을 위험도 있다. 하지만 이 건전한 긴장관계, 즉 대중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 사이의 갈등은 어쩌면 좀 더 나은 콘텐츠의 생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작품성도 뛰어나면서 대중적인 성공도 거두는 작품들은, 바로 이런 긴장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넘어 인간애로 가는 멜로드라마

수목의 밤, 방송3사가 동시에 새로운 드라마를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것들은 모두 멜로드라마다. '신데렐라 언니'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를 언니 입장에서 재해석한다. 따라서 그 안에 사랑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드라마는 매번 새로운 남자를 갈아 치우는(?) 엄마 덕분에 이집 저집을 전전해온 은조(문근영)가 엄마가 마지막이라고 한 효선(서우)의 집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그 자매는 한 남자를 두고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애증의 과정 속에서 차츰 성숙해져간다는 이야기다.

'신데렐라 언니'는 그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의 선악구도를 뒤집는다. 즉 신데렐라는 늘 착하고 옳고 그 언니는 늘 악하며 옳지 않다는 그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려는 것이 이 설정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신데렐라 언니도 언니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으며, 동생인 신데렐라도 어떤 면에서는 그 언니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 있다는 것. 즉 이것은 어찌 보면 신데렐라와 신데렐라 언니를 동등한 위치로 바라보면서 그 둘의 갈등과 화해를 모색하는 드라마로 볼 수 있다. 결국 사랑을 두고 벌이는 멜로의 갈등 속에서 똑같은 눈높이로 서로의 성장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멜로의 틀을 넘어선다. 사랑 끝에 인간을 세워두는 것이다.

'개인의 취향' 역시 마찬가지.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구조를 갖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려는 이야기는 멜로 그 이상을 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쩌다보니 게이 행세를 하게 된 남자, 전진호(이민호)라는 존재다. 장차 이 완벽남이지만 게이라는 너울을 쓰게 된 인물은 솔직하고 내숭 없는 어리버리 박개인(손예진)과 동거를 하며 가까워지게 되는데, 여기서 사랑과 우정은 미묘해진다. 게이 남자친구와의 우정인지, 아니면 그를 남자로서 바라보는 사랑인지 헷갈리게 되는 것. 이 유쾌하고 발랄한 해결과정 속에 나올 수 있는 것은 결국 두 인물의 성장을 통해 갖게 되는 남녀라는 성별을 넘어서는 사랑이다. 즉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사랑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찬란한 유산'의 후속작으로 소현경 작가가 들고 온 '검사 프린세스'는 얼핏 보기에는 전작과의 연결고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작품 속에 깃든 사회(의 정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검사 프린세스'는 검사라는 직업이 가진 사회정의에 대한 사명감보다는, 그 직업의 외적인 것에 혹한 '프린세스' 마혜리(김소연)가 차츰 진짜 검사가 되어가는 이야기다. 즉 프린세스로 시작해 검사로 성장하는 마혜리의 이야기는, 좌충우돌의 멜로에서 차츰 사회로 넓혀져 갈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수목극의 방송3사가 모두 멜로드라마를 그리고 있지만, 또 이들 드라마들이 모두 멜로에 머물지 않고 차츰 인간애로 그 관심을 확장해나가는 것은 왜일까. 이것은 어쩌면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한계를 넘기 위해 일과 사랑에 대해 고민했던 청춘 멜로드라마에서 한발 더 나아간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즉 이제는 멜로드라마의 관심이 남녀 간의 사랑에서 차츰 성장해 인간 대 인간의 사랑을 담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겉으로 보기에 하나는 진지하고(신데렐라 언니), 하나는 로맨틱하며(개인의 취향), 다른 하나는 따뜻한(검사 프린세스) 이 세 멜로드라마들은 각각의 서로 다른 재미를 내포하면서도 저마다 하나씩의 성장드라마를 담는다는 점에서 작금의 달라진 멜로드라마의 태도를 잘 드러내준다. 멜로드라마를 통해 멜로 그 이상을 담아내려는 이런 시도는, 매번 늘 같은 남녀 간의 그저 그런 시시한 사랑타령에 머물던 멜로드라마를 또한 성장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연예인들의 자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

고 최진실씨가 간 그 길을 동생 최진영씨도 따라갔다. 우발적인 자살이라고 하지만 그 자살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어찌 그저 갑작스레 다가온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마지막 한 방울로 물이 넘치기 전까지 이미 마음이라는 사발에는 계속 해서 물이 차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겉으로는 가까스로 웃고 있었지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바라봤던 그 마음 속에는 한없이 쏟아지는 우울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흔히들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는 우울증은 사실은 감기처럼 경미한 수준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다가오지만 심지어 목숨마저 앗아가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측근의 이야기로는 고 최진영씨가 제대로 된 우울증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가진 특성 때문이다. '우울증'이나, '정신과' 같은 단어는 사실 일반인도 꺼리게 되는 것들이다. 하물며 대중들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연예인들은 오죽할까.

연예인들은 특히 우울증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직업적 특성을 갖고 있다. 먼저 사적인 생활과 공적인 생활이 엄밀히 구분되지 않고 혼재되는 상황이 그렇다. 사적인 공간은 개인에게 어떤 쉼터로서의 역할을 해주는데, 연예인들의 경우에는 이것 역시 늘 외부에 드러내질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게다가 작금의 매체 환경은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조차 보호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연예인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쉽게 겪는다. 늘 평탄한 삶을 살아가는 일반 대중들과는 달리, 연예인들은 인기에 휘둘리는 삶을 살아간다. 극단적인 포커스를 받아온 이들은 그 카메라 세례가 사라지고 나면 마음 한 가운데 텅 빈 공허를 지독하게 경험할 수밖에 없다. 고 최진영씨가 공백기에 일이 없어 힘들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털어 놓은 것은 그 박탈감의 강도를 잘 말해준다. 또한 이런 공백기 이후에 새롭게 연예활동을 들어갔을 때 역시 그 스트레스는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공백기의 힘겨움을 겪었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연예인들의 노동이 육체적인 노동보다 정신적인 노동에 더 가깝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대중들에게 자신을 노출시킨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정체성의 혼란과 스트레스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정신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연예인들을 위한 '정신건강 프로그램'은 마치 우리가 예방주사를 맞듯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사료된다. 이것은 연예인들의 모습이 사회적인 롤 모델이 되어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정신과'라는 특정 진료과에 대한 대중들의 잘못된 인식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고 상처가 나면 외과에 가면서 마음이 아프면 왜 정신과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 이것은 오래된 정신과 의사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정신과'라는 이름 자체를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을 연예인들의 자발적인 '정신건강 참여 프로그램'으로 바꿔나갈 수 있지 않을까. 연예인들도 마음이 아프면 당당히 찾아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거꾸로 일반인들의 정신과 문턱까지 낮출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예인은 현 변화해가는 사회 속에서 도드라진 존재들로서, 일반인들의 삶을 좀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란 점에서, 그들의 자살은 단지 거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장차 일어날 사회적 변화 속에서 일반인들도 똑같이 겪어야할 상황으로 다가올 것이고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일반인들 역시 사생활과 공적 생활의 경계는 점점 무너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연예인들의 자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패떴2'가 가진 공감 없는 스토리의 문제

새로운 구성원으로 시작한 '패밀리가 떴다(이하 패떴)'. 그 추락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때는 주말 예능의 지존의 자리까지 있었던 '패떴'은 차츰 하향세의 길을 걸어오다 결국 구성원 전원을 교체하고 '패떴2'로 변화를 꾀했다. '패떴2'의 첫 방은 16% 남짓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기대감을 높였으나 현재는 반 토막에도 못 미치는 7.5%에 머물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걸까.

먼저 지목되는 것은 유재석, 이효리 같은 '패떴' 1기 멤버들의 공백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지금 '패떴2'에는 전체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굴러가게 할 수 있는 이들 같은 존재가 없다. 김원희가 나서서 상황을 이끌려는 노력이 보이나, 그것은 유재석이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지가 않아 마치 리얼 예능에서 토크쇼를 진행하는 듯한 어색함이 있다. 지상렬은 거의 목숨을 걸고(?) 궂은일을 도맡아하는 열성을 보이지만 그걸 효과적으로 받아주는 멤버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한다는 느낌만을 전할 뿐이다.

애초에 기대했던 조권, 윤아, 택연은 이미 프로그램밖에 있던 캐릭터를 프로그램 속으로 가져와 반복해서 보여줌으로써 그 이미지 소모가 너무 빨라지고 있다. 조권은 여기서도 여전히 깝춤을 추고, 윤아는 '분장실의 강선생님' 흉내를 내며, 택연은 초콜릿 복근을 과시한다. 매화아가씨-매실총각을 뽑는 장면에서 이들이 남장여자, 여장남자를 했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조권의 여장은 결국 깝춤으로 이어졌고, 윤아의 남장은 의외의 보이쉬함을 통한 털털함을 재확인해줬으며, 택연은 결국 근육 과시로 마무리되었다.

거의 전 멤버가 프로그램 속에서 캐릭터를 세우지 못하고, 대신 이미 갖고 있던 캐릭터를 반복하는 것은 '패떴2'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든다. '패떴'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연예인들이 유사가족으로 뭉쳐졌을 때, 그 새로운 관계 속에서 의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재미를 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외부의 캐릭터를 그저 내부로 가져올 때, 그것은 '패떴'의 정체성을 공고히 해주는 게 아니고, 그 캐릭터를 반복하는 출연자의 정체성만 소비하게 된다. 즉 '패떴2'에서 고유의 특징을 만들어내기 어려워지게 되는 셈이다. 유일하게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는 인물은 윤상현이지만 예능 초보로서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문제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연출의 문제다. 지금 '패떴2'에는 자연스러운 스토리가 부재하다. 어느 마을에 가는 것에 대한 설명도 없고, 그 곳에서 게임을 반복하는 것에도 어떤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이것은 단지 프로그램의 의미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 하나를 하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시청자가 그 게임에 빠져들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맥락 없는 게임은 시청자들의 맥빠지게 만든다. 아침에 기상시켜 갑자기 차에 타라고 한 후, 강변에서 씨름을 시키는 것은, 출연진을 고생시키는 것 이외의 공감을 찾기 어렵게 한다. 씨름부 아이들과의 아침 대결이 준비되었다면(어차피 이건 인위적인 것이다), 사전에 왜 그들이 대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 정도는 암시되었어야 한다.

이것은 매화아가씨-매실총각 콘테스트나 벗굴 채취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이곳의 명물인 매화와 매실 그리고 벗굴을 홍보하기 위한 것은 알겠지만, 그 과정에서 이들이 왜 게임을 통해 이런 생고생을 해야 하는지는 잘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금 '패떴2'는 이처럼 공감이 형성되기 이전에 인물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님으로써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효과는 나오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패떴1'에서는 저녁 먹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주었는데, 지금은 눈밭과 진창에 뒹굴고, 벗굴 채취를 위해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가도 그다지 재미를 주지 못한다.

이것은 '패떴1'이 가졌었던 공감대를 '패떴2'가 가져오지 못한 결과다. '패떴1'은 그 따뜻한 가족적인 분위기가 가장 큰 공감대였다. 그 분위기 위에서 서로 툭탁대지만 그것이 장난 같은 즐거운 놀이처럼 아기자기한 맛을 주었던 것. 하지만 '패떴2'는 너무 비장하다. 윤아나 조권, 택연, 윤상현 같은 좋은 멤버들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마음에 저들과 함께 여행을 가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공감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 즈음에서 떠올려야할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야심만만'이다. '야심만만'은 설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초대 손님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재미를 선사했다. 어찌 보면 폭로의 우회형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설문을 통해 바탕에 깔린 공감대가 있었다. '아 나도 저랬었지'하는 공감을 통해 출연자의 이야기에 시청자가 고개를 끄떡일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야심만만2'로 오면서 그 공감이 사라지고, 대신 자극적인 설정만 남게 되었을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상기해봐야 할 것이다. '패떴2'는 왜 안타깝게도 '야심만만2'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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