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넷플릭스와 디즈니+가 선택한 예능대세 덱스

좀비버스

최근 몇 년 간 예능은 주력 매체의 변화로 인해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중이다. 지상파, 케이블, 종편 중심에서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OTT로 그 트렌드의 중심이 옮겨갔기 때문이다. 이 달라진 매체 환경의 변화 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존재감을 보인 인물을 꼽으라면 단 한 명이 떠오른다. 그건 바로 덱스(본명 김진영)다. 특수부대 UDT 출신의 전직 군인으로 군 제대 후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다, ‘가짜사나이2’라는 유튜브 콘텐츠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인물. 그는 전직 군인다운 리얼하고 야성미 넘치는 모습과 더불어, 상반된 미소년의 얼굴로 순식간에 대중들에게 그 존재를 각인시켰다.

 

코로나19 시절을 거치며 대중들의 피지컬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던 걸 떠올려 보면 UDT 시절부터 잘 관리해온 덱스의 단단한 피지컬이 그의 존재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그 피지컬은 군 시절부터 훈련을 통해 단련되어 있어, 단지 보기 좋은 미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파괴력을 보여준다. 특히 순간적인 폭발력은 서바이벌을 담은 리얼리티 예능에서 덱스를 돋보이게 만든 가장 큰 요소이다.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피의 게임’이라는 서바이벌 예능에서 그가 철창에 채워진 자물쇠를 순간적인 힘으로 부숴버리는 장면은 그래서 프로그램 방영 내내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전 야구 선수였던 정근우와 현직 경찰관 이태균이 힘을 합쳐 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던 자물쇠를 단번에 부숴버렸던 것. 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솔로지옥2’에 뒤늦게 합류해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이른바 ‘메기남’으로 불렸던 것 역시 그의 피지컬과 무관할 순 없다. 물론 조각처럼 잘 생긴 외모도 뻬놓을 수 없는 매력이었지만, 다른 남성 출연자들과 해변에서 천국도행을 놓고 벌이는 대결에서 그가 보여준 압도적인 파워는 모두를 매료시키고도 남았다. 

 

그의 이런 남다른 피지컬은 대본없이 치러지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마치 현실로 튀어나온 액션 히어로 같은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피의 게임2’에서 무려 신장이 221cm인 전 농구선수 하승진과 맞서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그것이다. 덩치로만 보면 간단히 밀려날 것 같았지만 몸싸움에서 결코 밀리지 않고 죽기살기로 맞부딪치는 덱스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마찬가지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좀비버스’에서도 수십 명씩 달려드는 좀비떼들 사이에서 특유의 힘과 순발력으로 대적하는 모습은 방영 내내 화제가 됐다. 8미터 높이의 밧줄을 타고 내려가 좀비들에게 희생당할 위기에 처한 걸그룹 빌리의 멤버 츠키를 구해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사실 츠키를 구하면 대신 덱스가 희생당하는 게 수순이었지만, 그 순간 그는 다시 밧줄을 맨손으로 타고 오름으로써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제작진들까지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덱스는 최근 들어 유튜브 예능이나 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 등을 통해 갈수록 리얼리티의 강도가 세지고 있는 이 변화의 시기에 최적화된 인물로 등장한다. 과거 리얼리티의 시대 이전에는 연예인들이 얼마나 캐릭터를 잘 구현해내는가 하는 연기적인 차원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이제 일반인들 역시 영상을 매일 접하고 또 직접 만들어 SNS 등을 통해 선보이기도 하는 시대로 들어오면서 그런 ‘인위적인 영상(연기적인 캐릭터를 기반으로 하는)’에 대한 몰입감은 희석되기 시작했다. 대신 진짜로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보여주는 리얼리티가 요구되기 시작했는데, 그 리얼리티 속에서도 마치 드라마 같은 극적인 장면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덱스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즈음에 ‘강철부대’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탄생시킨 피지컬의 매력을 가진 인물들 중에서도 단연 덱스가 주목받게 된 건 강렬한 피지컬과는 상반된 스위트한 면모 또한 갖추고 있어서다. ‘솔로지옥2’에서 전 세계 여성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은 그는, ‘피지컬’과 ‘밀리터리’ 같은 소재적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보편적인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영역으로까지 자신을 확장시킨다.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2’는 그의 첫 지상파 고정 출연으로서 이런 다양한 매력을 꺼내준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합류한 덱스는 의외의 면모들을 드러냈다. 피지컬만 봐서도 ‘야전’이 생활화된 인물처럼 여겨졌지만, 의외로 극도의 깔끔함을 추구하고 먹는 것도 가리는 ‘장지컬’ 약한 반전 모습을 보여준 것. 또 기안84와 빠니보틀 앞에서는 막내 특유의 애교를 선보이기도 하고, ‘솔로지옥2’로 자신을 알아봐주는 현지 여성들과 즉석 ‘팬미팅’을 하기도 했다. 물론 여행지에서도 그 곳의 헬스클럽을 찾을 정도로 운동에 진심인데다, 현지인들과의 스포츠 대결을 즐기는 강인한 모습 또한 빼놓지 않았는데 그래서 이른바 ‘강강약약(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약하다)’의 매력남으로 불리기도 했다. 

 

‘가짜사나이2’로 존재감을 드러낸 후 약 3년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지만 덱스는 놀랍게도 크리에이터에서 예능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올 하반기 넷플릭스와 디즈니+가 각각 내놓는 ‘좀비버스2’와 ‘더 존: 버텨야 산다’ 시즌3에 덱스가 둘다 고정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이 이 사실을 증거한다.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건 이 현실판 액션 히어로 같은 인물이 최근 드라마에도 진출했다는 사실이다. 웹툰 원작드라마 ‘아이쇼핑’에서 그는 비밀조직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정현이라는 ‘인간병기’ 역할을 맡았다. 또 7편의 옴니버스 공포 미스터리인 U+모바일tv 오리지널 드라마인 ‘타로’에도 출연한다. 아직 연기의 영역은 그에게 낯설지만, 이미 각종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피지컬 액션이나 멜로적 이미지는 이 분야 또한 결코 불가능하지 않은 도전의 영역으로 그에게 다가오고 있다. 

 

특히 피지컬에 관심이 많아진 최근, 몸을 잘 관리하고 신체기능을 높이며 나아가 자신감과 자존감을 갖는 일은 이제 그 사람의 중요한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UDT의 경험에서 삶의 목표와 동력을 얻었다는 덱스의 성공은 그 ‘좋은 예’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글:국방일보, 사진:넷플릭스)

‘눈물의 여왕’, 김지원과 김수현을 응원하게 만드는 거짓과 진실의 대결

눈물의 여왕

“털어도 10원 한 장이 안 나온답니다. 로펌 자문비부터 소송 비용 집행 내역까지 샅샅이 뒤졌는데 전혀 오차가 없었답니다. 저도 카드랑 계좌 좀 살펴봤는데요. 놀랍도록 소비가 없으세요. 세차장을 좀 자주 가신다는 것 정도? 그런데 간헐적으로 수백만 원 단위의 현금을 인출하실 때가 있었어요. 또 하나 이상한 건 현금을 인출하시는 날엔 꼭 물랑루즈에서 30만원 상당의 카드 결제를 하셨다는 거예요.”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나비서(윤보미)는 홍해인(김지원)에게 회사 내 감사를 통해 회계자료부터 카드 내역까지 탈탈 털어낸 백현우(김수현)에 대해 보고한다. 백현우가 이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자신을 속여왔다고 생각한 홍해인은 그런 식으로 백현우를 궁지로 몰아세우는 중이다. 그런데 그렇게 탈탈 털어도 나오는 게 없다. 대신 홍해인은 그 과정을 통해 백현우의 자신을 향한 진심을 오히려 마주하게 된다. 

 

알고보니 물랑루즈는 술집이 아닌 꽃집이었고, 그가 인출해간 현금은 직원 장례식장의 조의금으로 쓰였다. 그것도 홍해인의 이름으로 된 꽃과 조의금이다. 사람을 붙여 백현우에 대해 알아본 홍해인의 아버지 홍범준(정진영)이 알게 된 것 역시 그가 얼마나 쓸쓸하게 지내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혼자 코인 야구장에 가고, 혼자 저녁을 먹고, 혼자 괜스레 자신을 벌주듯 운동장을 돈단다. 코믹하게 그려졌지만 윤은성(박성훈)의 계략에 의해 오해를 사고 궁지에 몰린 백현우가 오히려 탈탈 털림으로써 그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들에 이 인물에 대한 연민이 생겨난다. 

 

사실 백현우를 오인해 관계가 틀어져 버린 홍해인이 그려내는 이런 상황들은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만든다. 시청자들은 그래서 백현우와 홍해인이 그저 사랑하게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드라마는 본래 ‘갈등’이 있어야 동력을 얻는 것이라 두 사람의 관계는 한껏 좋았던 시점에서 틀어지는 걸 반복한다. 홍해인과 백현우의 ‘홍백전(그래서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 게다)’이 드라마가 긴장을 잃지 않고 흘러가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갈등 상황 속에서도 그 짠함을 코미디로 풀어내고 그려내는 건 박지은 작가가 가진 힘이 아닐 수 없다. 백현우를 탈탈 털어버리겠다는 홍해인의 엄포는 살벌하지만, 그 과정에서 맞닥뜨린 백현우의 진심은 보는 이들을 웃게 만들고 나아가 이 캐릭터가 가진 짠한 연민까지 느껴지게 만든다. 그래서 백현우가 어느 순간 감정을 드러내며 아이처럼 울게 될 때 시청자들은 한편으로 웃기면서 한편으로는 슬픈 느낌을 갖게 된다. 

 

여기에 ‘눈물의 여왕’은 홍해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이 가진 모든 걸 가로채려는 이들의 실체가 드러남으로써 대결구도가 세워진다. 홍만대(김갑수) 회장의 옆에 자리했던 모슬희(이미숙)는 윤은성의 친모로 오래 전부터 퀸즈 그룹을 집어삼키려는 계획을 가진 인물이었다. 또 홍수철(곽동연)의 아내 천다혜(이주빈) 또한 이 계획에 가담하고 있는 그레이스 고(김주령)에 의해 정체를 속인 채 의도적으로 이 재벌가에 입성한 인물이다.

 

결국 ‘눈물의 여왕’은 거짓과 진실의 싸움으로 흘러간다. 탈탈 털어도 오히려 진심을 마주하게 만드는 백현우가 진실의 편에 서 있다면, 진심인 척 달콤한 말들을 꺼내놓지만 사실은 온통 거짓인 모슬희나 윤은성이 그 반대편에 서 있다.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것 같은 세상이고 그래서 때론 돈에 대한 엇나간 욕망들이 사건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시한부 판정을 받아 죽음 앞에 돈이 별 의미를 갖지 않게 된 홍해인이나, 재벌가에 입성했어도 홍해인이 백화점 옥상에 너구리가 산다는 말조차 믿을 정도로 진심인 백현우의 동화 같은 사랑을 자꾸만 더 응원하게 된다. (사진:tvN)

‘원더풀 월드’가 연쇄적인 복수극을 통해 담아낸 피해자들이 분노

원더풀 월드

“행복해지려고 하니까? 방송에서 그러더라구 잘 살아보겠다고.” MBC 금토드라마 ‘원더풀 월드’에서 권선율(차은우)은 왜 이렇게까지 했냐는 강수호(김강우)에게 그렇게 말한다. 권선율은 아버지를 차로 치어 죽인 은수현(김남주)에게 복수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준비했다. 교도소에 일부러 봉사를 다니며 은수현의 동태를 살폈고, 그의 남편 강수호가 한유리(임세미)와 불륜을 저지르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친 자매처럼 자라온 한유리와 남편 강수호의 불륜은 은수현에게는 지독한 상처가 아닐 수 없었다. 권선율이 자신이 죽인 권지웅(오만석)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다지 흔들리지 않았던 은수현이지만, 결국 밝혀진 한유리와 강수호의 불륜 사실은 그를 뒤흔들었다. 한번의 실수라고 하지만 아내 은수현이 충격을 받을 걸 걱정해 애써 그 사실을 숨기려 했던 강수호는 권선율을 찾아와 꼭 그렇게까지 해야했냐고 묻는데, 이에 대한 권선율의 답변이 의미심장하다. 

 

방송에 나와 강수호와 은수현이 “잘 살아보겠다”고 했던 그 대목에서 권선율은 분노했다는 것. 그건 피해자들의 분노가 어디서 촉발되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건 바로 가해자들이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는 일이다. 흔히 연예인의 학교폭력 같은 사례에서 자주 등장하듯이, 가해자는 쉽게 잊어버리지만 피해자는 결코 잊지 못하는 과거의 상처는 그저 묻어두고 지내려 해도 어느 순간 분노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원더풀 월드’에서 굳이 강수호가 방송에서 주목받는 스타 앵커이고 은수현 역시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스타 작가로 설정된 건 그래서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인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직업을 갖고 있다. 그러니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묻어두고 살고 싶어도 자꾸만 눈앞에 그 삶이 보이게 되고, 그들의 행복해지려는 모습은 피해자인 권선율에게는 더 큰 상처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건 은수현도 마찬가지로 겪었던 상처다. 그가 끝내 권선율의 아버지 권지웅을 차로 치어 죽인 건, 자신의 아들을 치어 죽이고도 그만한 처벌도 받지 않고 버젓이 살아가는 모습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억울함을 토로하며 권지웅을 찾아가 사죄하라고 요구했지만, 끝내 사죄하지 않는 뻔뻔함에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것. 

 

이처럼 피해자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원더풀 월드’라는 역설적인 제목은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아들을 잃은 은수현이나 아버지를 잃은 권선율은 모두 자신이 믿고 있던 세상이 무너지는 걸 경험했고 여전히 그 무너진 폐허 위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너무나 ‘원더풀’한 모습으로 흘러간다. 이러한 차이에서 비롯되는 절망감은 결코 겪지 않은 이들은 가늠할 수 없는 크기가 아닐까. 

 

과연 이 피해자와 가해자로 뒤얽힌 은수현과 권선율에게도 구원이라는 게 있을까. “죽음에 더 큰 죽음으로” 갚겠다는 권선율에게 은수현은 이렇게 말한다. “죽는 건 쉬워. 계속 살아내는 게 어려운 거지. 넌 내가 어떻게 버텼을 것 같니? 난 건우 엄마로서 후회하는 것도 부끄러운 것도 없어. 오직 그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어. 누구든 날 흔들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 나를 죽일 순 있어도 이 마음을 죽일 순 없어.” 같은 고통을 겪었고 버텨내는 삶을 살아간다는 그 공감이 서로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이 될 수는 없을까. 이제는 무너져 회복될 수 없는 ‘원더풀 월드’에서 끝내 버텨내기 위해서라도.(사진:MBC)

“이런 좋은 점은 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이진주 PD의 진심

연애남매

JTBC X 웨이브 ‘연애남매’의 이진주 PD를 만났다. 인터뷰는 아니었다(그래서 사실 현장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없다). 그저 차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누고 싶었다. 도대체 이토록 따뜻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연달아 내놓는 이 인물이 궁금했다. 이 사람의 어떤 태도와 시선이 그걸 가능하게 하는가가. 

 

‘환승연애’라는 공전의 히트 프로그램을 탄생시킨 이진주 PD를 처음 만났던 건 꽤 오래 전 일이다. 아마도 나영석 사단에서 ‘꽃보다’ 시리즈를 경험하며 조연출로서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시절이었다. 기억하기론 당시 이진주 PD는 엉뚱하게도 프로그램 이야기보다는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것이 ‘환승연애’에서 ‘연애남매’로 이어지는 그의 프로그램에 어떤 색깔을 입히게 됐는지. 

 

음악에 리듬과 박자 같은 흐름이 중요하듯이, 이진주 PD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감정의 흐름이었다. 그래서 주로 멜로드라마가 그러하듯이 어떤 인물이냐가 가장 중요하고 그 인물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들을 갖게 되고 그것이 관계 속에서 어떤 변화들을 갖게 되는가가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채널 십오야 ‘빠삐용편’에 출연했을 때 나영석 PD가 이진주 PD에게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PD’로 소개하며 하지만 그만큼 ‘많이 벌어주는 PD’라 상찬한 건, 그의 연출방식이 인물의 감정에 집중함으로써 프로그램에 폭발력을 만드는 것이고 그래서 그 감정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 몇 배의 제작비도 감수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감정들을 어떤 이유로 보여줘야 할까. 여기에는 갖가지 기획의도들이 의미를 더해 붙여지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연출자가 재미있어하고 그래서 시청자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그 이유가 되곤 한다. 이진주 PD는 그걸 이런 말 한 마디로 담아 전했다. “출연자들을 여러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들여다보려 하는데, 문득 어떤 좋은 점들이 보일 때가 있어요. 가슴을 툭 건드리는. 이런 좋은 점은 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시청자분들에게.”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지만 그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도 이 한 마디가 유독 내 마음을 움직였고 이진주 PD와 그가 만들어온 프로그램들을 이해하게 해줬다. 이진주 PD는 사람에 애정이 깊은 연출자다. 그래서 사람을 들여다보고 싶어하고 그 사람이 가진 좋은 점들에 먼저 감정적 요동을 경험하는 것 같다. 그러고나면 그런 점들을 또한 시청자분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단순해 보여도 이 한 가지는 엄청난 출연 후보자들을 만나보고(그것도 여러 차례 다양한 방식으로 사전 인터뷰를 한다고 한다)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에 맞는 이들을 추려내며, 이들이 가진 ‘좋은 점들’을 끄집어내 시청자들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상황이나 미션들을 고민하고, 그렇게 찍어낸 수 백 개의 영상자료들을 매주 수십 명의 PD들이 달라붙어 편집을 통한 스토리텔링하며, 끝내는 하나의 관통되는 서사로 한 회분의 그 주 방영분을 내놓는 그 지난한 과정들을 즐겁게 견뎌내게 해주는 힘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인물의 ‘좋은 점들’을 시청자분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욕망은 프로그램을 따뜻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연애남매’는 어쩌다 통념에 의해 ‘납작하게’ 소비되어 왔던 남매라는 관계를, 다양한 가족 구성과 정서적 관계를 가진 남매들을 출연시킴으로서 입체적으로 되살려낸 면이 있다. 겉으론 ‘킹받아’ 하면서도 속으로는 남다른 애정을 가진 남매들이나, 아예 대놓고 서로를 의지하는 존재라는 걸 드러내는 남매들이 등장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좋은 점들’을 꺼내보인다. 

 

연애라는 다소 사적인 지점에 가족이라는 보다 확장된 관점을 더함으로써 프로그램은 ‘연애 리얼리티’라는 틀의 한계를 벗어나 인간을 바라보는 ‘휴먼 리얼리티’로 나아간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이진주 PD가 궁극적으로 나가보려는 세계일 것이다. 그는 연애는 하나의 좋은 계기이자 동력일 뿐,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들여다보려는 예능 PD다. 특히 사람의 ‘좋은 면’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수다를 떨던 와중에 문득, 이진주 PD가 하는 일이 내가 하는 일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램(영상)을 보고 거기서 어떤 의미나 가치를 찾아내려 애쓰는 일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 많은 영상자료들을 통해 하나의 의미가 되는 것들을 연결해 스토리텔링하는 것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방식이 아닌가. 그래서일까. 자꾸 수다를 떨며 이진주 PD를 나도 모르게 ‘이진주 작가’라 부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가 실제 인물들을 통해 써나가고 있는 작품의 세계에 우리가 깊게 빠져들어가는 건, 그 연출 필력이 만만찮은 이 작가와 우리가 같은 ‘좋은 점’ 속에서 공명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린 마치 음악을 듣는 듯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그 좋은 감정의 흐름 속으로 기꺼이 빨려들어가고 있다. 그 좋은 점들이 주는 웃음과 눈물을 공유하며.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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