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의 추락, 신뢰 회복 아니면 회생 어렵다

 

최근 지상파의 추락은 모든 분야에서 그 명백한 증거들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것은 광고매출의 급감이다. 사실 광고매출이 빠지게 된 건 미디어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이제 TV 본방 시대가 조금씩 저물고 있는 상황에, 많은 시청자들이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지상파의 광고 매출은 이 흐름대로라면 당연히 앞으로도 빠져나갈 것이 분명하다. 현재 지상파들이 광고가 아닌 콘텐츠 부가수익에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하고 있는 건 이러한 변화를 일찌감치 감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굿와이프, 싸우자 귀신아(사진출처:tvN)'

하지만 현재의 지상파의 광고매출 하락은 단순히 이러한 미디어 변화로 인한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 단적인 예로 새로 출범한 종편 채널이나 tvN 같은 CJ E&M의 광고매출이 오히려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는 건 지상파로부터 시청자들의 시선이 이탈하고 있다는 증거다. <PD저널>이 추산한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광고매출을 보면, CJ E&MKBSSBS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나 있다(CJ E&M 1345억 원, KBS 1237억 원, SBS 1150억 원). MBC1579억으로 CJ E&M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지만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동기대비 140억 가량 줄었고 영업 손실액도 55억 원 발생했다고 한다.

 

광고매출 하락으로 인해 지상파들은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매출은 떨어지는데 tvN이나 JTBC 같은 채널들은 점점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 지상파가 위기의식을 갖게 되는 가장 큰 이유다. 최근 시청률에 있어서 tvN 같은 케이블 채널이 지상파를 압도하는 현상은 점점 일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11시대 월화 드라마를 편성한 tvN은 최근 1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바 있다. 이건 동시간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들이 최근 해내지 못한 기록이다.

 

특히 tvN<삼시세끼>, <꽃보다> 시리즈,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대박 예능 콘텐츠들을 지속적으로 양산해오면서 최근 들어서는 <시그널>, <또 오해영>, <디어 마이 프렌즈> 같은 양질의 드라마들을 쏟아내며 드라마 콘텐츠에 대한 신뢰도 또한 높여나가고 있다. 즉 콘텐츠 경쟁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자연스럽게 광고 매출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영석 PD나 신원호 PD처럼 대박 콘텐츠들이 이른바 스타 PD들을 계속 발굴해내고 있고 또한 많은 지상파 PD들이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tvN을 지목하고 있는 반면, 지상파들에서는 연일 이탈하는 PD들 소식이 흘러나오는 것도 지상파의 추락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지상파에서 나온 PD들은 tvN이나 JTBC로 이적함으로써 지상파의 경쟁력을 이중적으로 약화시킨다. 이러한 인력 문제는 한 방송사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지상파로서는 아픈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지상파들은 이러한 위기의식을 드러내는 지표들을 내세워 중간광고 허용 같은 요구를 하고 있지만 여기에 대한 대중적인 공감대는 크지 않은 편이다. 무엇보다 지상파 콘텐츠에 대한 대중적인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크기 때문이다. 예능이나 드라마 콘텐츠에 대한 신뢰도에 있어서 JTBCtvN 같은 비지상파가 점점 앞서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고, 이것은 최근 교양이나 시사뉴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지상파로서는 심각하다고 여겨진다.

 

지난해 12월 미디어미래연구소가 매년 거행하는 미디어어워즈에서 JTBC는 가장 신뢰받는 미디어, 가장 유용한 미디어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JTBC 8시 뉴스에 대한 대중적인 신뢰가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 이 결과는 잘 보여줬다. 반면 이 미디어어워즈에서 MBC는 그 어떤 분야에서도 8위권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광고 매출의 하락, 콘텐츠 경쟁력의 추락, 유능한 인력의 이탈 그리고 방송에 대한 신뢰성의 추락은 현재 지상파의 아성이 급격히 허물어져 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제 지상파는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될 위기에 처해 있다. 조직 문화에서부터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고 나아가 방송사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는 이제 지상파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일주일 내내, 드라마는 콩 볶는 중

 

월화드라마 대전에서 SBS <닥터스>KBS <뷰티풀 마인드>의 성패를 가른 건 무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되는 건 바로 멜로다. 공교롭게도 같은 의학드라마 장르지만 <닥터스>는 멜로가 있고 <뷰티풀 마인드>는 멜로가 없다. 그것도 <닥터스>의 멜로는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로 대사나 행동들이 적극적이다.

 

'닥터스(사진출처:SBS)'

<닥터스>에서 수술은 그 보조자를 누구로 하느냐 마저 멜로적인 구도로 그려진다. 혜정(박신혜)이 홍지홍(김래원)의 수술에 보조로 들어가기로 하자 서우(이성경)는 질투를 하며 자신도 들어가겠다고 요구한다. 또 혜정에게 마음을 조금씩 빼앗기고 있는 정윤도(윤균상)는 아예 대놓고 혜정에게 자신의 수술에 들어오라고 요구하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이처럼 <닥터스>에서는 대부분의 사건과 상황들이 멜로로 귀결된다. 부모의 정을 받지 못하고 살아와 홀로 서려하고 누군가에게 기대지 못하는 혜정이 성장해가는 과정은 다름 아닌 홍지홍과의 멜로를 통해서다. 또한 그녀가 의사라는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과정 역시 홍지홍, 정윤도, 서우와 엮어지는 멜로적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향후 아마도 이어질 현성병원의 후계 구도를 두고 벌어지는 쟁탈전 역시 어떤 식으로든 혜정과 홍지홍의 멜로를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닥터스>의 성공은 의학드라마의 전문성도 물론 깔려 있지만 다름 아닌 멜로드라마의 달달함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KBS <태양의 후예>가 지상파의 시청률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도 결과적으로 보면 멜로다. 유시진(송중기)과 강모연(송혜교) 그리고 서대영(진구)과 윤명주(김지원)가 전쟁, 재난 상황 속에서 그려낸 멜로의 힘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만큼 강력했다. <태양의 후예>가 끝나고 난항을 겪던 수목드라마에 다시 두 자릿 수 시청률을 만들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KBS <함부로 애틋하게> 역시 그 힘은 멜로에서 나온다. 이 드라마는 중국에서 최단기간 4천만뷰를 넘어서며 벌써부터 <태양의 후예>의 뒤를 이을 작품으로까지 지목되고 있다.

 

그토록 주말극에 힘을 실으려 노력했던 SBS가 그나마 성과를 가져온 작품은 <미녀 공심이>. 가족드라마도 복수극, 장르물도 아닌, 어찌 보면 평이해 보이기까지 한 멜로드라마가 이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할지 누가 알았으랴. 안단태(남궁민)와 공심이(민아)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에 시청자들은 일주일의 피로를 녹이는 중이다.

 

tvN이 월화드라마라는 새로운 편성시간대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멜로의 힘이다. <치즈 인 더 트랩>으로 그 가능성을 확인한 tvN 월화드라마는 <또 오해영>으로 엄청난 성과를 가져왔다. 시청률은 물론이고 화제성도 단연 높았던 <또 오해영>은 확실하게 tvN 월화드라마 브랜드를 구축해냈다. 이어진 <싸우자 귀신아>가 첫 회에 4%를 넘기는 좋은 성적을 거둔 건 이제 믿고 보는 tvN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가 생겼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싸우자 귀신아> 역시 외피는 공포물에 코믹을 섞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달달한 멜로라는 점이다.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진 박봉팔(옥택연)이 기억을 잃어버린 귀신 김현지(김소현)와 가까워지는 이야기. 박봉팔과 엎치락뒤치락하다 입을 맞추게 되면서 과거의 기억을 살짝 떠올리게 된 김현지는 그 기억을 되살린다는 이유로 그와 다시 입을 맞추려 한다. 코믹 공포물이 멜로로 귀결되어 가는 증거다.

 

이제 의사가 나와도 귀신을 만나도 그 귀결은 멜로다. 사실 과거 같으면 기승전멜로라는 수식은 비판적인 의미가 더 강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그렇지 않다. 과거 기승전멜로드라마가 비판받았던 건 멜로로 귀결돼서가 아니라 그 과정들인 기승전이 너무 디테일과 전문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멜로 하는 드라마가 문제가 아니라 그 병원의 의사들이 보여주는 디테일한 상황들이 문제였다는 것. 하지만 <닥터스> 같은 드라마가 보여주듯 요즘은 멜로로 귀결된다 해도 그 안에 병원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

 

물론 모든 드라마가 멜로로 귀결되는 것이 드라마 다양성의 차원에서 긍정적이라고만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처럼 멜로에 집중되고 그것이 계속해서 대중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건 그것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멜로 중독을 만들고 있는 걸까.

 

지금의 시청자들이 조금치의 무거움이나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다는 건 이미 여러 드라마들의 성패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이제 드라마는 더 이상 작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주고 때로는 답답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기능을 가진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니 보다 직접적인 즐거움을 원하게 되는 것이고, 여성 시청자들이라면 단연 멜로가 주는 달달함을 원하게 되는 것.

 

이것은 거의 멜로 중독에 가깝다. 직장인들이 하루의 피곤을 맥주 한 잔으로 털어버리듯, 이제 하루를 살아낸 시청자들은 멜로 한 편으로 잠시 현실을 벗어난 판타지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 그 중독의 대상이 하필이면 멜로라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사람냄새가 나는 장르의 총아가 바로 멜로가 아닌가. 지금의 대중들이 어디에 갈급하고 있는가가 이 멜로 중독이라는 증상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바벨250>의 소통 도전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

 

힘겨운 모내기 끝에 새참으로 먹은 잔치국수가 너무나 맛있었던 프랑스에서 온 니콜라는 애써 안 되는 언어소통으로 그 이름을 묻는다. 하지만 그게 뭘 묻는 건지 알 수 없이 이기우는 거의 멘붕이다. 보다 못한 동네 아줌마까지 나서지만 역시 공통된 언어 없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 불통이 되진 않는다. 서로가 말하는 걸 애써 이해하려 노력하고 표현하려 하기 때문에 그 의지만으로도 어떤 소통의 지점을 만나게 되는 탓이다.

 

'바벨250(사진출처:tvN)'

그렇게 몇 분을 오리무중 언어의 늪(?)에서 헤매던 중, 드디어 니콜라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였던 동네 아줌마가 그 질문을 이해하고는 잔치국수라는 그 음식의 이름을 알려준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있다면 별 것도 아닌 일이고, 그것이 예능이 될 일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바벨250>이라는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이것이 예능이 된다. 외국인들이 등장해 그들만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가는 신개념 예능 프로그램. tvN <바벨250>이 도전하고 있는 새로운 외국인 예능이다.

 

2년 전만 해도 외국인 예능은 완전히 새로운 영역처럼 다가왔다. 물론 외국인들이 방송에 출연한 건 꽤 오래 전일이다. 로버트 할리나 이다도시 같은 외국인들이 방송에 나와 독특한 사투리나 발성으로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모습은 고스란히 예능으로서의 재미를 주었다. 그러다 MBC <진짜 사나이> 같은 군대 체험 프로그램에 샘 해밍턴 같은 외국인이 등장하고, JTBC <비정상회담>이 스타 외국인들을 배출하면서 외국인 예능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어언 2년이 지난 지금, 외국인 예능은 과거만큼 뜨겁지 않다. 한 때는 외국인들이 함께 모여 이문화를 체험하고 여행을 떠나는 그런 예능 프로그램들도 나왔지만 금세 사라져버렸다. 그나마 남아 있는 <비정상회담>은 여전히 뜨겁지만, 새로운 외국인들로 교체를 시도하는 것처럼 무언가 변화를 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러니 <바벨250>이라는 외국인 예능이 조금은 트렌드에 늦은 느낌을 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바벨250>은 지금껏 해왔던 외국인 예능과는 사뭇 다른 면면을 보여줬다. 한국말이 유창한 외국인들이 아니라 전혀 모르고 소통 자체가 안되는 외국인들을 모두 모아놓고 바로 그 언어로 안되는 소통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나간다는 것이 이 예능 프로그램을 참신하게 만드는 이유다. 그래서 그들은 잔치국수하나에도 그 소통했다는 성취감을 느낀다.

 

사실 다랭이논에서 일을 하고 그 보상으로 새참과 닭 다섯 마리를 주는 식의 미션은 이미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서 익숙한 방식들이다. 하지만 <바벨250>이 주목하는 건 그런 미션 자체가 아니라 그걸 이해하고 함께 해나가는 이들의 소통 과정이다. 닭 다섯 마리를 가져와 닭장을 짓는 과정에서 한 팀은 그걸 완벽히 이해하고 함께 작업에 돌입하지만 다른 팀은 닭은 당장 잡는다는 줄 알고 끔찍해하다가 나중에야 그걸 이해한다. 이런 소통의 과정은 틀에 박힌 미션도 달리 보이게 만들어 준다.

 

궁극적으로 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건 아마도 소통이라는 것이 언어가 아닌 의지의 문제라는 게 아닐까. 언어가 달라도 또 인종이 다르고 나라가 달라도 서로 소통하려는 의지가 있으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일. <바벨250>이 가벼운 예능의 형태를 갖고 있으면서도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어느 때보다 소통이 갈급한 우리네 현실과 무관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잔치국수한 마디로 이처럼 모두가 즐거워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예능이라니. 외국인 예능의 새로운 영역에 대한 <바벨250>의 도전이 예사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뷰티풀 마인드>, 시청률로 결코 폄하될 수 없는 수작

 

도대체 진정한 의사란 어떤 존재를 말하는 걸까. KBS 월화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의 질문은 진지하고 통렬하다. 이영오(장혁)라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우리가 흔히 사이코패스라 부르는 장애를 가진 인물. 이 드라마가 이런 문제적 인간을 병원의 의사로 세운 까닭은 분명하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인 이건명(허준호) 현성병원 센터장까지 괴물이라 부르는 그지만, 과연 진짜 괴물은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뷰티풀 마인드(사진출처:KBS)'

의사라는 직업은 이중적이다. 사람의 생명을 살려야 하는 직업이기에 환자의 고통을 공감해야 하지만, 동시에 수술대 앞에서는 한없이 냉정해져야 한다. 수술대 앞에서 아무런 감정을 갖지 않는 이영오가 다른 의사들보다 출중한 까닭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대단히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수술 중 환자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수술이 틀리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이영오의 모습은 그 인간적인 감정이 결여된 의사의 위험성을 드러낸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타인의 고통 앞에 연민과 동정 그리고 나아가 공감을 느끼는 게 상식적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병원이라는 시스템은 저 사이코패스처럼 무감정하게 돌아가기도 한다. 신약 개발이 환자를 살리기 위함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함으로 변질될 때, 그 곳은 병원이 아니라 사업체가 되고, 환자는 생명이 아니라 매출액으로 표시되는 수치가 된다. 병원이 시스템으로만 기능할 때 그건 사이코패스와 다름없는 무감정한 괴물이 된다.

 

물론 의사들은 사람이다. 그래서 환자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실감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어떻게든 환자를 살려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레지던트 3년차 양성은(동하)은 이식할 심장을 제 때 가져가기 위해 병원까지 꽉 막힌 도로를 뛰어가고, 이시현(이시원)은 심장 이식을 앞둔 환자에게 튼튼한 심장을 주겠다며 희망을 품지만, 수술 중 이식할 심장에 감염이 있다는 걸 알고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절망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장에서 뜨거운 심장을 갖고 일하는 의사들과 달리, 저 꼭대기에 있는 현성병원의 수뇌부들은 환자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현성병원 이사장 강현준(오정세)에게 중요한 건 돈 벌이뿐이고, 그를 동조하는 기조실장 채순호(이재룡)는 임상실험의 부작용으로 환자가 죽어나가도 그다지 감정이 없다. 오로지 권력에만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라는 게 밝혀지고 결국 현성병원에서 내쫓긴 이영오는 다르다. 그는 사이코패스지만 어떻게든 인간적인 감정을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바디 시그널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려 하고,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려 한다. 어떻게 하면 보통 의사들처럼 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한다. 이영오가 사이코패스지만 오히려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는 건 그래서다.

 

그는 계진성(박소담)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렇게 가게 된 어촌마을에서 이웃에 사는 고부를 통해 병변이 아닌 환자를 봐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바디 시그널만이 아니라 그 환자의 생명 자체를 염두에 둬야 비로소 진정한 의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그래서 그는 자신이 누구냐는 질문에 의사 이영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인간적인 감정 역시 이중적이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능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래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만드는 욕망이기도 하다. 마취과 의사 김윤경(심이영)은 자신의 자식을 살리기 위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다. 인간적 감정이 고통의 공감을 넘어 파국적인 욕망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아무런 감정 자체가 없는 이영오는 그래서 이 의사와 병원이라는 이중적인 세계의 리트머스지 같은 존재로 서 있다. 그의 감정 없는 모습이 사이코패스라며 그를 병원 밖으로 몰아내지만, 정작 병원 시스템은 더더욱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을 보인다. 의사들은 심지어 아버지까지 그의 이런 장애를 괴물이라 말하지만, 그들은 때론 그보다 더 괴물 같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뷰티풀 마인드>3.5%(닐슨 코리아)라는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결코 평가 절하될 수 없는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의학드라마로서 이처럼 통렬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이처럼 따뜻한 사이코패스의 성장을 통해 보여주는 작품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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