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사만다’, 치타에 투영된 정글 같은 현실과 모성애

 

치타를 보고만 있는데 어째서 마음이 짠해질까. SBS 창사특집 4부작 다큐멘터리 <라이프 오브 사만다>의 첫 회는 이 전편 4부작에 대한 프리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주 짧게 이 다큐멘터리가 무얼 담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영화 <라이언킹>의 실제 무대이기도 한 케냐 마사이마라에 사는 치타 사만다. 새끼들 세 마리를 홀로 키우는 사만다에 감정이입이 되는 건 ‘싱글맘’이라는 지칭이다. 치타들은 암컷이 홀로 새끼들을 키우는 습성을 갖고 있는데, 수컷들은 짝짓기를 하고는 떠나버린다.

 

아프리카의 그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서 홀로 먹이를 구해야 새끼들을 키워야 하는 사만다의 이야기가 도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몰입시키는 건 그 삶이 우리의 모습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먼저 다큐멘터리는 치타에 대한 시청자들의 선입견을 깨버린다. 치타라고 하면 굉장히 빠르고 그래서 먹이를 잡는 선수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한 번 달릴 때 엄청난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금세 지쳐버리고 먹이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또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치타와는 너무나 다른 표범, 재규어 등과는 생태 자체가 다르고, 특히 다른 포식자들이 나타나면 도망갈 정도로 약하다는 사실이다.

 

제작진이 사만다 가족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은 건 치타가 늘 ‘도망치는 삶’을 살고 있어서다. 언제 어디서 위험이 닥칠지 알 수 없고 또 그 와중에 먹이도 구해야 하기 때문에 이동하는 사만다 가족을 찾기 위해 제작진들은 며칠 동안 초원을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고하고 새끼들을 챙겨야 하는 사만다는 어쩔 수 없이 제1 포식자인 사자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곳이 그나마 잡을 수 있는 영양 같은 동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어렵게 잡은 먹이도 제2 포식자인 하이에나가 나타나면 버리고 도망가야 할 정도 치타는 약하고 겁이 많았지만.

 

바로 이 두 지점이 사만다에 우리가 각별한 감정을 갖게 되는 이유가 된다. 자신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생존의 환경 속에 살고 있지만, 새끼들을 건사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 위험을 무릅쓰는 사만다의 모습이 주는 어떤 짠한 현실감과 그럼에도 따뜻한 위로가 있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동물이든 곤충이든 사물이든 다큐멘터리는 결국 우리의 이야기를 담는다고 하던가. <라이프 오브 사만다>는 이역만리의 아프리카 초원지대에서 살아가는 치타 가족을 통해 우리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그 풍경 속에서 얼마나 치열한 삶이 존재하고, 때론 먹먹한 관계들이 존재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그럼에도 살아나가는 생명을 통해 얻는 위로가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다.(사진:SBS)

‘배가본드’, 시작이 엔딩이었다는 건 뭘 말해주나

 

재밌게 보던 시청자들도 뜨악했을 것 같다. SBS 금토드라마 <배가본드>가 종영했지만, 그게 끝이라는 게 사실 믿기지 않는다. 전체 16부작이지만 사실 15부까지만 해도 다이나믹 시스템의 에드워드 박(이경영)이 이 모든 걸 뒤에서 계획하고 움직였던 사마엘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를 알게 된 고해리(배수지)는 제시카 리(문정희)를 따라 로비스트가 되고, 창고 폭파로 사망한 줄 알았던 차달건(이승기)은 살아남아 탄핵을 당한 정국표(백윤식)에게 자금을 지원받아 릴리(박아인)를 고용하고 에드워드 박과 관련된 용병단체에 들어가 복수를 꿈꾼다.

 

이 상황만 보면 지금껏 제시카 리, 민재식(정만식), 윤한기(김민종)에 정국표, 홍순조(문성근)로 이어져온 일련의 악당들은 저 뒤편으로 밀려나고 에드워드 박을 중심으로 이들 모두를 장악하고 있는 또 다른 조직이 전면에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이 드라마가 시즌2를 애초에 계획한 것이라면 시즌1의 이야기는 비행기 추락사건의 중요한 증인이자 범인인 김우기를 우여곡절 끝에 데려와 재판정에 세우게 된 12회에서 끝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사실상 그 후 보다 높은 곳까지 연루되어 있는 사건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해져 있던 것인지 16부작으로 뚝 끊어져 종영해버린 <배가본드>는 그 마지막회를 보던 시청자들을 허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설마 저러다 끝나는 건 아니겠지 하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건, 드라마 첫 회에 봤던 차달건이 누군가를 저격하려 하고 총을 드리웠지만 거기 고해리가 나타나는 장면이 다시 등장하면서다. 그렇게 <배가본드>는 시작을 엔딩으로 세웠다.

 

그런데 이런 엔딩은 지금껏 달려온 16부작을 앞으로 이어질 본편(?)의 예고편처럼 만들어버린다. 무엇보다 새롭게 등장한 강력한 악당 에드워드 박은 버젓이 살아 홍순조를 대통령 만들고 국정을 농단하려 하고 있다. 용병단체에 들어가게 된 차달건은 과연 이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또 로비스트가 되어 나타난 고해리는 차달건과 어떤 콤비를 보여줄까. 이런 궁금증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시즌2가 확정된 게 아니라면 이런 엔딩은 너무 무책임한 일이 된다. 이건 흔히 말하는 ‘열린 결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열린 결말은 어쨌든 결말이 등장했고 그 결말에 대한 해석이나 판단이 열려있다는 뜻이지, 아예 결말 자체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껏 16부를 열심히 몰입해서 봤던 시청자들을 생각한다면 시즌2는 고려 중이 아니라 ‘확정’이어야 옳다.

 

하지만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제작사인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의 입장은 이렇다. 애초 시즌2를 염두에 두고 작가도 연결되는 구도로 구상했지만 제작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 정도의 이야기로 마무리했으며, 이 후의 이야기는 시즌2에서 풀어야 하는데 시즌2는 시즌1 출연자들의 캐스팅 등 풀어야 할 문제가 많아 아직 확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 결국 시즌2는 결정된 게 없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결론내지 않고 끝내고 나서 그 뒷이야기가 계속 될지 아닐지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니. 이런 무책임한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

 

시즌제 드라마는 이제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개념은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시즌제를 계획하고 만들어지는 드라마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래서 시즌1에서 어떤 결말 없이 끝나는 것에 대해서도 이제 시청자들은 어느 정도 용인한다. 시즌2가 예고되어 있고 그걸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가본드>처럼 시즌2에 대한 확정을 하지 않은 채 뚝 끊어버리는 건 시청자들에게도 또 고생한 연기자들에게도 예의는 아닐 것이다. <배가본드>는 열린 결말이 아니다. 시즌2가 아니라면 용두사미라 불러도 할 말 없는 무책임한 결말일 뿐이다.(사진:SBS)

‘아침마당’을 ‘놀면 뭐하니?’에서 보게 될 줄이야

 

KBS <아침마당>을 보는 줄 알았다. MBC <놀면 뭐하니?> ‘뽕포유’ 프로젝트가 만든 새로운 풍경이다.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유재석)이 <아침마당>에 출연하면서 만들어진 방송사 간의 경계를 뛰어넘은 협업의 풍경. 선배 트로트 가수들이 신인 가수들을 추천해 무대를 선보이고 투표로 순위를 가리는 <아침마당>의 ‘명불허전’ 코너에 <놀면 뭐하니?>가 탄생시킨 유산슬을 출연시킨다는 KBS 측 협업제안을 김태호 PD가 받아들이게 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아침 일찍 KBS에 도착한 유산슬은 자신이 <놀면 뭐하니?>를 찍고 있으면서 KBS에 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MBC 방송에 커다랗게 들어가는 KBS라 쓰인 조형물이 그랬고, 스튜디오를 찾아가며 보이는 KBS 내부의 풍경들이 그랬다. 유산슬은 자신이 <아침마당>에 출연한다는 사실을 <해피투게더> 김광수 PD로부터 들었다며 황당해 했다. 자기 스케줄도 자신이 모르는 가수라니.

 

사실 유산슬이 <아침마당>에 출연했다는 건 지난 18일에 이미 인터넷을 통해 회자되었다. 아무런 사전 예고 없이 전격적으로 <아침마당> 생방송에 얼굴을 보인 유산슬은 큰 화제가 되었고 <아침마당> PD가 예고한 것처럼 실시간 검색 창을 관련 검색어로 가득 도배해 버렸다. 인터넷에 짧은 동영상이 올라와 이를 본 네티즌들은 반색했다. 더불어 <아침마당>에 대한 관심도 급상승했다.

 

하지만 아침에 그것도 생방송으로 방송되는 <아침마당>을 챙겨보는 시청층과 <놀면 뭐하니?>를 보는 시청층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고 화제가 된 건 알았지만 정작 그 유산슬이 나왔던 <아침마당>을 시청한 <놀면 뭐하니?> 시청자들은 많지 않았을 게다. 그래서 <아침마당>의 상당한 방송분량과 거기 담기지 않았던 비하인드까지 더해진 <놀면 뭐하니?>는 이 방송사간의 협업에 확실한 시너지를 만들었다.

 

일종의 서로의 시청자들을 통합하는 시너지랄까. <놀면 뭐하니?> 시청층, 특히 젊은 시청자들은 <아침마당>의 존재감을 새롭게 확인하게 됐고, <아침마당>의 시청층이라면 <놀면 뭐하니?>의 ‘뽕포유 프로젝트’에 더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또한 생방송과 녹화방송으로 이어져 있어 방송사들 간에 부딪침 없이 양자가 원하는 것들을 챙겨갈 수 있는 윈윈 구도가 만들어졌다.

 

물론 이것이 가능해진 건 유산슬이라는 초대형(?) 트로트 신인가수의 탄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로트라는 장르가 기성세대의 전유물만이 아닌 젊은 세대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장르로 받아들이게 만든 <놀면 뭐하니?>의 시도가 전제되어 있었고, 그것이 <아침마당> 같은 기성세대들에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까지 확장되어 갈 수 있었던 데는 유산슬이라는 구심점이 있었다는 것.

 

그래서 이번 <놀면 뭐하니?>와 <아침마당>의 성공적인 협업은 그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여겨진다. 그간 방송사들끼리의 경쟁으로 협업은 아예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이었지만, 이번 협업을 통해 양자가 충분히 윈윈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또한 방송사와 프로그램별로 서로 갖고 있는 다른 시청자층이 협업을 통해 교류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줬다. 이로써 향후 더 다양한 방송사간의 협업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첫 발을 김태호 PD와 유재석이 전면에서 보여준 역사적인 협업이었다.(사진:MBC)

‘나의 나라’, 이방원 이야기로 풀어낸 민초들의 역사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가 종영했다. 이방원(장혁)은 형제들이 흘리는 피로써 자신의 나라를 만들었고, 서휘(양세종)와 남선호(우도환)는 자신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나라를 지켰다. 서휘가 꿈꾸는 나라는 배곯지 않고 사는 나라일 뿐이었지만 이방원은 자신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서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했지만, 그는 권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방원은 자신이 꿈꾸는 나라를 위해서는 누구든 희생시킬 수 있다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서휘의 아버지 서검(유오성)이 그의 무술 스승이었지만 그가 군량미를 착복했다는 누명을 씌워 죽게 만든 것도 그였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서검이 가장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방원은 자신이 만인지상에 서야 하기 때문에 자신보다 두려운 존재들은 제거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가장 정점에 설 수 있게 하는 권력. 그것이 이방원의 나라였다.

 

자신의 나라를,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누구든 희생시킬 수 있다 생각하는 건 이성계(김영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서검의 부하들을 자극해 이방원을 밀어내기 위한 이른바 ‘상왕의 난’을 계획했다. 서검의 부하들을 자극하기 위해 서휘가 이방원에 의해 죽은 것처럼 꾸미려 했다. 이방원도 이성계도 사람보다 권력이 더 중요했다. 그것이 그들의 나라였다.

 

하지만 자신이 지켜야할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알고 있고, 또 자신이 죽지 않으면 저들마저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서휘는 홀로 이방원을 찾아가려 했다. 그런 서휘와 함께 한 건 남선호였다. 남선호는 서얼 출신의 벽을 넘기 위해 심지어 친한 동무였던 서휘까지 배신했었던 인물이지만, 결국 알게 됐다. 자신이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자신의 나라가 바로 서휘 같은 동무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자신들을 막아서는 관군들을 뚫고 가까스로 이방원 앞에 서게 된 서휘는 자신의 사람들을 놓아달라고 했고, 이방원은 그 뜻을 들어주는 대신 서휘의 목숨을 요구했다. 기꺼이 죽겠다는 서휘의 말에 이방원은 “네가 모두를 살렸다”고 함으로써 이 치열한 싸움이 끝이 났다는 걸 알렸다. 서휘는 남선호의 곁으로 돌아와 죽음을 맞이했다.

 

<나의 나라>가 이성계와 이방원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이야기를 가져와 하려던 이야기는 뭘까. 그건 역사에 기록된 저들의 나라가 있었다면 역사에 기록되진 않았지만 그 소용돌이 속에서 민초들도 저마다 지키려 했던 저마다의 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건 다름 아닌 자신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큰 위험에 처하지 않고 배곯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 민초들이 원하는 나라는 그것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현재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누가 대권을 잡고 어느 정당이 의석 수 과반을 차지하는가가 우리네 보통의 서민들에게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다만 매일 같이 허리가 휘도록 일하면서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저들의 권력 다툼 속에서 희생되지 않기 위해 온 몸을 던져 싸워야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겐 저마다 지켜야 할 나라고 있다. 비록 깨지고 부서져도 각자의 나라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곧 삶이기에 그렇다.’ 희재(김설현)가 서휘를 그리워하며 생각한 것처럼, 우리에게 각자의 나라는 우리의 삶이고 생계이고 밥이다. 소중한 사람들의 그것을 지켜주기 위해 때로는 제 목숨을 기꺼이 내놓을 정도로 포기 못하는.(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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