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유재석도 한 수 배운 춘천의 재밌고 먹먹한 입담꾼들

 

사랑에 대해 제대로 한 수 배웠다.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찾아간 춘천에서 유재석과 조세호가 우연히 만난 부부는 무려 21년 간을 함께 세차를 해왔다고 했다. 매일 같이 얼굴을 보고 있으니 어찌 다툼이 없을까. 웃으며 맨날 싸운다고 털어놓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부부는 아침에 헤어졌다 저녁에 봐야 제일 좋아요”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아침에도 싸웠다”는 남편의 말에 “금방 풀려요”라고 말하는 아내의 말에 따뜻함이 느껴진다.

 

춘천에서 세차장을 운영하는 윤연기(59), 이순자(58) 부부. 보통 여름에 더 세차가 많을 것 같지만 오히려 겨울에 세차가 제일 많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날이 추우면 셀프세차 하시는 분들도 스스로 세차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추우니까 손 발 시린 게 제일 힘들다”는 부부의 말에 성수기인 겨울을 맞는 반가움과 힘겨움이 동시에 묻어난다.

 

하루 종일 함께 있어 매일 다툰다는 부부에게 “혼자 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냐”고 묻는 유재석의 질문에 아내는 냉큼 그럴 때가 있다고 답한다. 하지만 남편의 얼굴은 사뭇 다르다. 그는 진지하게 “전 혼자 하고 싶을 때는 없어요. 매일 옆에 달고 있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 사랑이 묻어나는 말에 유재석의 광대는 승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부부의 사랑이야기는 의외였다. 연애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단 세 번 만나 결혼했다는 것. 남편은 “꼭 사랑만 해야 사는 거 아니다”라고 말했고 아내 역시 그 말에 동조했다. 그건 아마도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시쳇말로 젊은 날 청춘들이 뜨겁게 사랑하다 결혼하는 그런 사랑의 의미는 아니라는 뜻일 게다. “총각 때 삶의 회의를 많이 느꼈다”며 아내를 그 삶에서 건져준 사람이라는 남편과 “진실하고 열심히 사니까. 착하고 오로지 아이와 가정을 위해 사니까”라고 말하는 아내의 목소리에는 이미 사랑이 가득했다.

 

그런데 “다시 태어나도 결혼하겠냐”는 통상적인 유재석의 질문에 의외로 이 부부가 살아왔던 결코 쉽지 않았던 삶과 애틋한 두 사람의 사랑이 전해진다. 단박에 “안한다”고 말하는 아내와 “저는 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남편. 왜 안한다고 했냐 묻는 질문에 아내는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대신 아내는 꽃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잠시 잠깐이라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꽃으로.

 

남편에게 재차 다시 태어나고 싶냐고 묻자, 남편 역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며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오고 싶지 않아요. 너무 힘들어요.” 부부가 살아왔던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까가 그 얘기에 묻어났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남편이 어렸을 때 겪은 아픈 기억을 꺼냈다. 어머니가 재가를 하셔서 일찍 헤어졌다는 것. 그래서 요맘때 시월만 되면 우울하다고.

 

“초등학교 1학낸 땐가 2학년 절 보러 오셨었어요, 고향으로. 그 때 가시면서 거기 계시는 주소를 알려주고 가셨어요. 그 주소를 잊어버리지 않고 머리에 기억을 했다가 나중에 그 주소를 찾아갔었어요. 어머니가 재가를 하셔서 거기서 다시 살고 계시니까, 같이 융화를 못해요. 남편 분께서 아무래도 어머니하고 계속 트러블 있고 그래 가지고 제가 그냥 두 분이 나 때문에 싸우시지 말고 내가 가면은 두 분 행복하게 사시라고 울면서 떠나왔어요 강릉에서. 밤에 눈물을 흘리고 찾아가서 눈물을 흘리고 나온 데가 강릉이에요.”

 

그 어린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까 절절히 느껴지는 대목이었지만 남편분의 말에 담긴 존칭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지금도 여전하고 그것이 미움보다 더 크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그 아픔보다 ‘어머니의 밥’을 기억했다.

 

“열여섯 살 때. 한 6개월 정도 어머니의 밥을 먹어봤어요. 밥이 참 맛있어요. 진짜. 맛있어요. 눈물을 흘리면서도 먹는 밥이 되게 맛있더라고요. 처음 해주시는 밥이.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 같아요. 먹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어머니의 자식을 태어나서 진짜 부모 자식의 정다운 정을 느끼면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어리광도 피워보고 효도도 해보고 싶고 여러 가지 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솔직히 지금도 될 수만 있다면...”

 

그 말을 들으며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보니 이 부부가 얼마나 서로를 위하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사랑해야 사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이들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사랑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해보지 못한 어리광을 아내에게 한다는 남편과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한다며 웃는 아내. 사랑을 못 느껴봐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줘야 하는지 몰라 힘들었다는 남편이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행복하다”는 아내에게서 그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춘천에 유독 사랑꾼들이 많은 것인지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찾은 어느 빵집에서의 사연 역시 사랑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울에서 수공예 일을 하다 건물주의 일방적인 통보로 쫓겨나 춘천으로 오게 됐다는 권성기씨와 그 아내 권진미씨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시종일관 웃으며 밝은 모습을 보여준 권성기씨지만 그 사연 속에서 어찌 힘겨운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도중 외곽에서 카페 한다는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 마침 퀴즈 맞혀 100만원 받으면 어떻게 할거냐고 유재석이 묻자, “결혼 10주년인데 아내에게 주고 싶다”고 남편이 말했던 참이었다. 그 말을 유재석이 아내에게 전하자 갑자기 말을 잊지 못하고 눈물 흘리는 아내. “너무 고마워서”라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단지 그 10주년과 100만원에 대한 고마움만이 담긴 게 아니었다.

 

“일이 많이 힘들었는데 남편이 옆에서 다 도와주고 이해해주고 그래서 여기까지 버티고 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자기 거는 하나도 안하고 저한테만 다 주기만 하니까. 그게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그러네요.”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유재석의 눈이 촉촉해졌다. 아마도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낙엽이 익어가는 가을에 춘천을 찾은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청춘(靑春)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아마도 춘천이란 지명에서 청춘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게다. 하지만 이번 편이 보여준 건 ‘사랑’이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남달랐던 건 그 열렬하고 달달한 사랑이 아니라 이제 겨울을 앞둔 스산한 그 힘겨움들 앞에서 오히려 더 빛나는 사랑이었다. 스산한 가을에 찾아갔지만 거기서 느껴진 따뜻한 봄의 풍경들. 오늘도 사랑에 대해 한 수 배웠다.(사진:tvN)

‘같이 펀딩’, 유준상과 데프콘의 임정로드가 되새긴 윤봉길

 

홍커우 공원 안에 있는 윤봉길 기념관을 찾아 헌화하고 자신의 숙원이기도 했던 태극기함에서 태극기를 꺼내 게양한 유준상은 함께 간 데프콘에게 잠시 나가 있자고 했다. 윤봉길 의사에게 오롯이 태극기와 함께 하는 시간을 주고픈 마음이었을 게다. 하지만 밖으로 나온 유준상은 그 날 하루 동안 애써 꾹꾹 눌러왔던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공원 안을 괜스레 걸어 다니며 유준상은 아이처럼 울었다. 그리고 그 눈물에 시청자들도 울었다. 그 날 하루 유준상과 데프콘이 걸었던 과거 윤봉길 의사의 그 길이 생생히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MBC 예능 <같이 펀딩>이 유준상의 태극기함 프로젝트의 종착지로 선택한 건 중국 상하이 윤봉길 의사가 걸어갔던 그 마지막 길 이른바 ‘임정로드’였다. 사실 시청자들도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에 대한 이야기나 시계에 얽힌 일화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게다. 하지만 사전에 최태성 강사를 통해 듣게 된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의거 직전 그 마지막 발자취를 따라 걷는 길은 당시 소회가 어떠했을까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겨우 스물다섯의 나이에 기꺼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마음먹은 청년의 하루. 또 그걸 옆에서 바라보는 김구 선생의 심경 또한 그 길 위에서 새록새록 다시금 피어났다. 처음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만나 의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사해다관은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웠고, 그 유명한 세 장의 사진을 찍었던 안공근 선생의 집이자 한인 애국단의 본거지였던 곳도 도로가 나면서 허물어져 사라져버렸다.

 

있는 유적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현장이지만 사라진 유적지의 터를 찾아간다는 사실은 나라를 잃고 해외에 임시정부를 세워 버텨내왔던 당시의 우리네 비극적 상황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만일 임시정부가 외국이 아닌 우리 땅에 있었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유적지가 사라진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일까.

 

다행스럽게도 다음 장소로 찾아간 상하이 YMCA는 여전히 과거의 모습 그대로 현재는 호텔로 운영되고 있었다. 거사 하루 전날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 장소에서 유준상과 데프콘은 하루를 묵으며 당시의 그 마지막 순간을 회고했다. 김구 선생의 요청으로 유언처럼 써내려간 아이들에게 남긴 편지는 그 비장함과 아이들 아빠로서의 자애로움이 동시에 묻어나 글귀 하나하나에 먹먹해질 수밖에 없었다. 유준상은 그 자리에서 느낀 감정들을 두 아들에게 글로 남겼다. 그 글은 윤봉길 의사의 그 마지막 길이 끝이 아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유준상과 데프콘은 거사 당일 마지막 한 끼를 했던 김해산 선생의 집을 찾았다. 다행히 그대로 남아있는 그 곳에서 현재 살고 있는 주인의 허락을 받아 유준상과 데프콘은 그 마지막 한 끼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김구 선생이 직접 소고기를 떼와 끓여주게 했다는 국을 너끈하게 먹었다는 백범일지에 담겨진 윤봉길 의사의 이야기는 시청자들도 뭉클하게 만들었다. ‘윤군의 기색을 살피니 농부가 논밭 일을 나가기 위해 밥을 먹는 것처럼 태연자약한 모습이었다’라고 적힌 백범일지의 글귀는 당시 윤봉길 의사의 죽음 앞에 의연한 모습과 그걸 바라보는 김구 선생의 소회를 지금까지도 잘 전하고 있었다.

 

짧은 하루 정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이었지만, 유준상과 데프콘이 따라 걸어간 그 윤봉길 의사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죽을 걸 알고 나가는 걸음이었기에 얼마나 무겁고 외로웠을까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그 길을 걸어온 유준상의 누르고 눌렀던 그 먹먹한 마음이 그 기념관 앞에서 결국 터져버렸을 게다. 폭탄이 터진 자리에서 그의 감정도 터져버렸다. 그리고 그건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계속 절로 나오더라는 데프콘과 유준상의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었다.(사진:MBC)

가족극 같은 ‘82년생 김지영’, 그 담담함의 의미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게 평점 테러할 영화인가 하는 것이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개봉 전부터, 캐스팅 당시부터 쏟아져 나왔던 악플들과 비난들에 휩싸였던 작품이다. 이른바 남혐 여혐 갈등을 조장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어디서도 혐오나 갈등 조장의 연출이나 내용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물론 원작 소설도 ‘혐오’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영화는 더더욱 담담해졌다고나 할까. 마치 한 편의 가족극을 보는 듯한 담담함.

 

가족극의 시선으로 보면 <82년생 김지영>은 육아와 가사 그리고 경력단절을 겪는 김지영(정유미)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정신적인 문제를 갖게 되고, 이를 남편은 물론이고 온 가족이 나서서 해결하려 애쓰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잘 다니던 회사를 육아와 가사 때문에 그만두고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이라는 주인공의 상황과, 그가 시댁에서 겪는 혼자만 소외되어 있는 것만 같은 상황은 여러 모로 젠더적 관점이 들어있다 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어디 새삼스러운가. 종영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수시로 등장하는 이야기고, KBS 주말드라마에는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다. 시대는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가부장적 체계 속에서 사회적으로도 또 심지어 가족 시스템에서도 김지영은 스스로도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겪는다. 그래서 그는 어딘가 자신이 잘못되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그냥 옛날 생각 자꾸 나고, 해 질 무렵에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데, 그래도 괜찮아.”

 

하지만 스스로도 괜찮다 말했던 김지영은 사실 전혀 괜찮지 않다. 어쩌면 그렇게 괜찮다고 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오히려 그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갑자기 다른 사람에 빙의해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김지영은 하기 시작한다. 자신도 모르게 쌓이고 쌓인 문제들을 끄집어내놓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자, 그 억압을 빙의라는 형태로 꺼내놓기 시작한 것.

 

사실 <82년생 김지영>에서 가장 큰 사건은 바로 이 빙의사건 정도다. 나머지는 김지영을 걱정하는 남편과 그 누구보다 그를 이해하고 껴안아주는 어머니와의 공감이고, 빙의사건을 계기로 플래시백 되어 보여지는 과거 김지영이 살아왔던 삶 속에 저도 모르게 내재되어 있던 차별들이다.

 

<82년생 김지영>에는 딱히 두드러지는 악역이 없다. 김지영의 시어머니도 또 친아버지도 차별 섞인 말을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악의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모두가 함께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명절에 며느리인 김지영에게 시누이가 귀한 만큼 며느리도 친정에 가게 해주는 배려 없이 “음식 좀 내와라”하는 시어머니는 물론 감정을 건드리는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악의적인 건 아니다. 또 밤늦게 다닌다며 김지영을 나무라면서 “바위가 굴러오면 피해야 한다”는 논리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피하지 못하는 걸 나무라는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이야기는 시대착오적이지만 그건 악의라기보다는 살아왔던 사회에서 오래도록 그 가부장적 시스템 속에서 학습된 결과라고 보인다.

 

이건 아내를 사랑하고 이해하려 애쓰며 또 어떻게든 도와주려 하는 남편이지만,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나선 김지영에게 “일 그만두게 한 것도 미안한데 그 딴 아르바이트나 하냐”고 말하는 남편 정대현(공유)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내를 누구보다 걱정하고 사랑하지만 그가 처한 세계와 환경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다. 김지영을 돕기 위해서 필요한 건 자기 관점에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입장에 들어가 보는 일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영화 개봉 전 마치 엄청난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평점 테러까지 이어졌지만, 심지어 가족극처럼 보일 정도로 담담하고 소소하다. 그런데 이것은 이 작품이 소소해서가 아니라 김지영이 겪는 차별의 문제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리네 일상에 내재되어 있는 이른바 ‘먼지 차별’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영화가 더 극적인 상황이나 사건들을 가져왔다면 그건 특정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차별의 문제로 오도될 수 있었다. 따라서 그 담담함과 소소함 속에 이 영화가 가진 진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족이 다 함께 봐도 될 법한 영화다. 우리의 어머니와 우리의 아내 그리고 당대의 아버지들까지 모두 같이 겪었을 힘겨움을 새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한 인간에 대한 휴머니즘의 관점으로 보면 당연한 공감대를 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마치 성별 갈등을 조장하기라도 할 듯 오도하는 일이다. 평점 테러? 영화를 보면 그런 일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사진:영화'82년생 김지영')

패밀리밴드와 함께 완성형 음악예능 된 ‘비긴어게인3’

 

지난 금요일 JTBC 예능 <비긴어게인3>에서 박정현, 하림, 헨리, 수현, 김필, 임헌일 등으로 이루어진 패밀리밴드의 낭만 가득했던 이탈리아 버스킹이 끝났다. 금요일 밤 감성을 촉촉이 해주던 노래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니 아쉬움이 밀려온다. 하지만 감사한 마음도 있다. 아무런 설명 없이 영화 홍보와 베를린으로 떠난 다른 팀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패밀리밴드의 여정은 중단됐었다. 시청자 입장에서 그렇게 끝이 난 줄로만 알았던 패밀리밴드가 돌아온 것이니 기대하지 않은 별책부록을 받은 듯하다.

 

소렌토를 중심으로 남부 이탈리아 이후 끊어졌던 패밀리밴드의 멜로디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설이 깃든 동부의 낭만적인 도시 베로나에서 다시 이어졌다. 제작진이 패밀리밴드의 압도적인 인기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 두 팀의 여행을 교차로 편성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줄어들던 관심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시청률은 즉각 반등했고, 호평이 쏟아졌다. 시즌3의 마케팅에 적극 활용된 박정현의 ‘샹들리에’와 ‘아베 마리아’는 지난 시즌 ‘someone like you’처럼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엽서 속 풍경과 같은 도시를 배경으로 전해준 음악의 감동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다가갔다.

 

패밀리밴드가 좋았던 것은 박정현의 노래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을 보는 뿌듯함 때문만이 아니다. 여행하는 내내 인간적으로는 마치 가족처럼 서로를 살뜰히 챙기고 음악적으로는 서로의 영향을 받아 성장하려는 노력을 지켜보는 편안함과 성장드라마를 보는 듯한 설렘이 함께한 덕이다. 노래에는 방송 분량을 위한 욕심, 어떤 식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계산된 브랜딩과 같이 돋보이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멤버들에 대한 존중과 순수한 즐거움이 정제되어 있었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패밀리밴드의 정체성인 가족적 관계 덕분이다. 연장자이자 중심축인 하림과 박정현이 품어주고 끌어주며 힘을 불어넣는 좋은 어른이라는 행운이 작용했다. 자연스럽게 가족과 같은 관계를 형성하는 리더십이 발휘됐고, 다른 멤버들의 진정성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웃고 떠드는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멤버들이 하나로 뭉쳐서 뭔가를 해내는 모습, 서로에게 배려하고 도움이 되려는 자세, 그래서 모여 있을 때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고 새로운 환경에서 주어진 도전을 즐기는 모습들은 성장드라마를 기반으로 성공한 리얼 버라이어티를 보는 듯했다.

 

패밀리밴드는 숙소 마당에서의 디너파티를 끝으로 10일간의 이탈리아 버스킹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감구의 감정에 빠졌다. 박정현은 “우리는 음악으로 시작한 관계”라며 “힘들 때 음악으로 버티고, 기분 좋을 때 음악으로 표현했다”며 멤버들과 함께한 시간에 애틋함을 드러냈다. 수현은 “나만 아는 나의 성장기이자 나의 청춘 영화다”라며 의미부여를 했고, 늘 덤덤하던 하림은 “눈물이 나올 것 같다”고 했고, 임헌일은 실제 눈물을 흘렸다. 실제로 개인일정 때문에 남부 일정을 끝내고 먼저 국내로 돌아간 수현이 하루 만에 다시 이탈리아로 날아가기로 한 결심은 단지 방송을 위해서만은 결코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진정성 있는 일화들이 패밀리밴드가 <비긴어게인>의 다른 모든 팀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자 노래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성공 요인이라 해석된다.

 

패밀리밴드는 <비긴어게인>의 재미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에이스 역할은 분명 박정현이지만 시즌의 주인공은 없다. 노래마다 주인공이 있을 뿐이다. 선곡도, 역할배분도 최대한 어우러지는 방향으로 결정한다. 헨리가 노래를 안 할 땐 바이올린을 켤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고, 김필의 곡에는 임헌일이 격정적인 기타로 호흡을 맞춘다. 수현의 노래에는 박정현이 코러스를 하고, 하림은 솔로곡을 줄이는 대신 비는 리듬이나 멜로디를 전담한다.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마치 가족처럼 살뜰히 챙기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호흡은 점점 무르익는다. 그래서인지 지난 시즌에 한 번 시도했던 음향세팅 없는 진짜 버스킹을 새로운 장소에 갈 때마다 즉흥적으로 펼쳤다. 진정으로 음악과 버스킹을 즐기려는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들의 공연과 준비한 노래가 궁금하고 이들이 보여줄 다음 여정이 기다려진다. 한류가 인정받는 것도 재밌는 볼거리고, 이국적인 풍광 속에서 언플러그드 공연을 펼치는 뮤지션들을 보고 듣는 재미도 있지만 가볍고 담백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함께 음악을 즐기는 데서 <비긴어게인>은 새로운 음악 예능이 되었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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