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이토록 짧게 삶의 위대함을 보게 해주다니

 

이건 마치 한 편의 감동적인 동화 같다.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어떻게 매번 이런 놀라운 분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걸까. 서울 후암동 어느 골목길을 걷다 발견한 초등학교 바로 앞에 있는 작은 문방구 이야기다. 40년이나 된 문방구이니 어찌 이야기가 없을까마는, 남편을 2년 전 갑자기 여의고 홀로 그 곳을 지키고 계신 함범녀 할머니와 그 곳을 제 집처럼 드나들던 학교 아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기적 같았다.

 

2년 전 갑자기 할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고 나서 가게 문을 닫을까 생각했던 할머니의 마음을 돌린 건 아이들이었다. 청소를 하다 발견하게 된 아이들이 남긴 쪽지. 거기에는 빼곡하게 아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할머니 너무 힘들어하시지 마시고 언제나 힘내세요(수민)’, ‘할머니 제가 문방구 많이 올게요. 힘내세요(예지).’, ‘할머니, 힘드시겠지만 열심히 지내세요!(별아)’, ‘할머니, 힘들어하시지 마세요 항상 밝게 웃고 힘내세요(서영)’, ‘슬퍼하지 마시고 힘내세요(하령)’, ‘할머니! 혼자 사셔도 힘내세요. 제가 많이 찾아갈게요(장연)’

 

할머니는 학생들을 부를 때 “우리 애들이”라고 표현하셨다. 아들 하나를 뒀지만 손주가 아직 없다는 할머니는 이 어린 학생들이 다 당신의 손주라고 하셨다. 애들이 너무나 따뜻하고 자신에게 잘한다고 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든 빵을 갖다 주기도 하면서 자신을 좋아하고 따라주는 것 때문에 40년 동안 그 곳에서 일할 수 있었다고 한다.

 

40년을 일해 쉰두 살까지 된 졸업생이 가게를 찾아오기도 한다며 할머니는 최근 일이 다시 떠올라 울컥 하셨다. 찾아온 졸업생은 울면서 할아버지가 옛날에 잘 해줬던 이야기를 했단다. 김치찌개 끓여서 점심을 먹을 때면 막 찾아와 자기도 달라며 퍼먹던 애들이란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보니 할아버지가 생전 얼마나 주변 사람들을 챙기며 살아왔는가가 느껴졌다. 할머니는 늘 자기 건강만 걱정해주고 매일 아침 녹즙을 갈아주던 할아버지가 본인 건강 생각은 안했다며 마음 아파 하셨다.

 

할아버지가 쓰던 연장을 볼 때 가장 할아버지가 떠오른다는 할머니는 일하다 펜치를 보고는 눈물이 나서 혼자 막 울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손때가 잔뜩 묻은 연장은 거기 그대로 남아있는데 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란다. 하지만 연장에 담겨진 할아버지의 남다른 노력과 마음은 여전히 그 곳을 찾던 아이들의 가슴 속에 남았다. 아주 작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친할아버지처럼 아이들을 들여다보고 있던 걸, 삼광초교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은혁이는 어느 날 ‘오늘은 문방구를 쉽니다’라는 표지판을 보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았다고 했고, 조이는 처음엔 어디 가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없으시니까 깜짝 놀랐다고 했으며, 태희는 원래부터 알고 지냈던 할아버지인데 돌아가시니까 좀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한 건 평소 할아버지와의 자잘하지만 따뜻한 기억 때문이었다. 가은이는 뭘 떨어뜨렸을 때 할아버지가 주워 주였다고 했고, 서현이는 감기에 걸렸다며 마음으로 걱정해주셨다고 했다. 은석이와 우준이는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시고 밴드도 붙여주셨던 할아버지를 기억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의외로 무거운 질문을 툭 던졌다. “죽음이라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그런데 아이가 한 답변은 놀라울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이 세상일을 다 한 거요! 자기가 땅에서 할 일을 다 한 거요” 재차 “할아버지는 그 할 몫을 다하고 떠나셨을까요?”라고 묻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네! 충분히 하셨어요.”라고 답했다.

 

과연 우리네 삶이 누군가에게 저렇게 평가받을 수 있을까 싶었다. 나의 작은 배려가 깃든 말과 행동들이 누군가에게는 저토록 크게 자리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그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아이들의 마음을 담아 전해줬다. “이번 생에서는 할아버지가 저를 챙겨주셨고 만약에 또 만나게 되면 다음 생에서는 제가 할아버지 챙겨드릴게요(이가은).” “할아버지 저한테 잘해주신거 감사하고 다음에 또 뵙게 된다면 제가 더 잘 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이동욱).”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뭔가 마음에 뭔가 빈 생각이 들었어요 할아버지가 전 지금까지 몰랐는데요 우리에게 많이 자상하게 해주셨던 걸 그 때까지 잘 몰랐던 거 같아요. 할아버지 하늘에서도 잘 계시길 바랍니다(박조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유재석과 조세호는 주변 사람들의 작은 위로 하나가 힘겨운 삶에 크나큰 힘이 된다고 했다. 그것은 어쩌면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이 길거리에서 만나는 분들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작고 소소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한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거기에는 넘쳐난다. 너무나 힘들어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 속에서 그나마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건 이런 실제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건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도 할 것이다.(사진:tvN)

‘날씨의 아이’의 흥행실패, 과연 시국 때문 만일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전작이었던 <너의 이름은.>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이례적으로 370만 관객이라는 흥행을 거둔 감독이다. 국내에는 이미 그 작품 때문에 그의 전작들이었던 <언어의 정원>이나 <초속5센티미터> 등 또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에 투자한 영화사측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날씨의 아이>가 첫 주말에 약 33만 관객을 동원한 것에 적이 실망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관계자는 공식 입장문까지 내놨다.

 

공식 입장문의 주요 내용을 보면 <너의 이름은>에 비해 <날씨의 아이>의 성적이 저조한 이유가 지금의 냉각된 한일관계 때문이라는 것이고, 이에 대해 안타까운 심경이 토로되어 있다. 물론 지금의 이런 시국이 이 작품의 성패에 영향을 준 건 사실일 게다. 아무래도 일본 영화라는 사실이 주는 막연한 부담감(?) 같은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주말에 33만 관객을 동원한 것이 과연 실패라고 볼 수 있는지, 또 그 실패의 기준으로 <너의 이름은>의 흥행 성공을 내세우는 것이 온당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작품으로만 보면 <날씨의 아이>는 전형적인 신카이 마코토 감독 스타일의 연출과 이야기 기법을 가져온 작품이다. ‘빛의 마술사’라는 지칭대로 빗방울 하나하나, 폭죽이 터지는 색감, 하늘의 풍경 등등이 만들어내는 감성들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색채로서 화려하게 표현해낸다. 그래서 그 색깔에 빠져들면 단지 눈만 건드리는 게 아니라 보는 이들의 감성까지 건드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것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날씨의 아이>라는 날씨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든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 작품은 세계적인 기상이변 같은 지구적 위기의 문제를 특유의 판타지적 기법으로 들여다보고 머리만이 아닌 감성으로까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야망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그 기조에서 가장 중요해 보이는 건 날씨가 사람들의 감정을 좌지우지한다는 그 사실이고, 그것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아니면 색채로 표현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감정 과잉 부분이 몰입을 오히려 방해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잔잔하게 흐르던 감정을 어느 순간 폭발시키고 그 상황에서 주인공들이 마치 구호를 외치듯 대사를 던지며 부감으로 거대한 도시나 자연으로 확장되는 그런 영상 연출과 음악이 이어지는 그 연출방식은 이미 <너의 이름은>에서도 충분히 반복되었던 것들이다. 그리고 그건 <너의 이름은>에서 큰 힘을 발휘한 연출이었지만, 이미 그것이 익숙한 관객들에게 비슷한 연출방식을 보이는 <날씨의 아이>가 그만한 효과를 발휘했을 지는 의문이다.

 

영화는 주관적 체험이고 그래서 그 반응은 상대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영화의 흥행이란 객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날씨의 아이> 영화사측이 첫 주의 결과를 보고 내놓은 공식 입장문이 과연 공감할만한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공식 입장문에 담겨진 것처럼 영화사측은 ‘2019년 전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감독 중 한 명의 작품’으로 <날씨의 아이>를 꼽고 있고 그래서 이 정도 성적은 일찌감치 실패이며 그 이유는 한일관계 때문이라 내놓고 있다.

 

물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대단한 감독인 건 사실이지만, 모든 대중들이 영화사측처럼 생각하는 건 아닐 게다. 또 첫 주말에 33만 관객 수를 실패로만 보지 않는 관객도 있을 수 있다. 안타까운 건 알겠지만 자신들의 생각을 객관적 사실처럼 얘기하며 생각한 만큼 관객이 들지 않았다고 시국을 가져오는 건 너무 성급한 판단과 행동이 아닐까. 반드시 관객 수가 그 작품 완성도의 바로미터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사진:영화'날씨의 아이')

심상찮은 'VIP' 반응, 불륜을 통해 담아내는 사회적 의미

 

SBS 월화드라마 <VIP>에 대한 반응이 심상찮다. 지속적으로 오르는 시청률도 그렇지만, 이 작품이 단지 불륜만은 아니라는 징후들이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상황도 그렇다. 사실 불륜을 소재로 한다고 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륜 드라마’가 되는 건 아니다. 불륜을 소재로 담으면서도 그것을 통해 색다른 사회문제나 의미를 가진 드라마들 역시 존재했기 때문이다.

 

<VIP>는 분명 초반 불륜을 전면에 내세웠다. 어느 날 갑자기 나정선(장나라)에게 온 문자 하나가 그 시작점이었다. ‘당신 팀에 당신 남편 여자가 있어요’라는 문자. 그 후 나정선은 남편 박성준(이상윤)을 의심하고 그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려 하기도 하고 그 뒤를 따라가기도 한다. 또 그 ‘여자’가 누구인가 사무실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던 동료들을 하나둘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거짓말을 한 사실이 발각된 박성준은 나정선의 의심이 사실이라고 털어놓고 평생 사죄하며 살겠다고 하고, 고통스럽지만 나정선 역시 용서하려 노력해보겠다 말한다.

 

이런 전면에 드러난 스토리만을 두고 보면 <VIP>는 불륜을 다룬 드라마가 맞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불륜 소재만을 자극적으로 펼쳐놓은 드라마가 아니라는 건, 나정선과 박성준을 부부이면서 한 팀의 팀장과 차장으로 구성해놓고 있는 점이나, 또 그 팀이 다름 아닌 백화점 VIP를 전담하는 부서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어째서 이 드라마는 VIP 전담팀이라는 구체적인 직업의 세계를 가져왔고 그 팀에 부부가 팀장과 차장으로 있는 설정을 해놓은 걸까.

 

그건 우리네 관계가 공과 사를 구분한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것이 구분되지 않는 어떤 지점이 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나정선과 박성준이 어느 VIP 고객과 자연스런 인사를 하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사적인 부부의 저녁을 가장해 앉아 있을 때, 그 고객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불륜을 맺고 있다는 걸 발견한 부부의 시선은 애매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하는 공적인 일은 VIP들을 케어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들의 사적인 불륜 같은 것들조차 숨기고 감춰주는 것이 그들의 일이 된다.

 

그래서 공적인 일로서는 그걸 당연히 받아들이지만, 사적으로 들여다보면 용납하기 어려운 불륜일 뿐이다. 이미 박성준의 불륜을 의심하게 된 나정선은 그래서 그 VIP의 불륜을 보면서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된다. 저들의 불륜은 넘어가면서 내게 닥친 불륜을 넘어갈 수 없게 만드는 차이는 그것이 내 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돈으로 얽혀져 있어 불륜마저 그 힘에 의해 덮여지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위계 구조가 들어가 있다.

 

이런 일들은 이 VIP 전담팀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에게 모두 발생하고 있는 일들이다. 예를 들어 온유리(표예진)는 하재웅 부사장(박성근)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가난을 넘어서려 하는 인물이다. 공적인 위치를 사적인 관계를 통해 넘어서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 이현아(이청아)는 정선과 입사동기이고 친구였지만 무슨 일 때문인지 휴직을 하고 돌아와서는 그와 미묘한 관계가 형성된다. 그 역시 무언가 회사 내 위계구조 안에서 일을 겪었던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이 정선과의 사적인 관계 또한 바꿔놓고 있는 것.

 

송미나(곽선영)는 육아 때문에 회사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워킹맘으로 사적인 문제로 공적인 위치에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회사에서 승진해 정당한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고 싶어하지만 두 아이를 낳으며 육아휴직을 하면서 승진이 누락되어 6년째 사원이다. 훨씬 더 절실해진 그는 그래서 공적 관계를 넘어서는 어떤 짓이라도 할 것처럼 위태롭게 보인다. 결국 그는 집을 나가겠다 선언한다.

 

VIP 전담팀을 굳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설정한 건, 이런 돈과 지위로 결정되는 위계가 심지어 윤리적인 부분까지 넘어서는 걸 가장 잘 극명하게 드러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VIP라는 이유로 저들은 군림하고 뭐든 하대하며 누리려 한다. 저들은 선을 넘는 일조차 당연하듯 행하고 거기에 죄책감도 별로 느끼지 않지만, 이들을 대하는 전담팀은 다르다. 그들은 VIP를 응대하는 일이 자신의 업이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저들을 목격한 이들의 삶이 과연 온전할 수 있을까.

 

<VIP>는 그래서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건드린다. 그건 우리가 그간 별로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던 우리네 사회의 위계구조다. 돈 있는 이들이 결국 VIP로 불리고 군림하는 사회. 하지만 VIP의 의미 그대로 진정으로 ‘아주 중요한 사람’이 돈으로 좌지우지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이런 부분들을 이 드라마가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되는 대목이다.(사진:SBS)

‘돈키호테’ 통해 본 몸으로 웃기는 예능의 부활 가능성

 

tvN 새 예능 프로그램 <돈키호테>에는 ‘미치거나 용감하거나’라는 표현이 붙었다. 여러모로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둘시네아를 구하기 위해 풍차를 향해 달려들었던 인물. 보는 관점에 따라 그건 미쳤거나 혹은 용감한 행위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돈키호테>의 스토리텔링을 적극적으로 가져온 이 예능 프로그램은 그래서 프로그램 소개에서도 소설 <돈키호테>의 대사 중 하나를 가져온다. “꿈꾸는 자와 꿈꾸지 않는 자, 도대체 누가 미친 거요?” 그럴 듯한 설정이다. 하지만 막상 <돈키호테>를 들여다보면 그것이 어떻게든 과거 우리가 봐왔던 몸으로 웃기는 예능프로그램과는 다르다는 걸 애써 강변하려는 안간힘처럼 보인다.

 

많은 이들이 첫 회만 슬쩍 보고도 이건 MBC <무한도전>의 시작점이었던 <무모한 도전>을 떠올린다. 삽질로 포크레인과 대결을 벌이고, 버스와 달리기를 하며, 무참히 깨지는 모습을 통해 큰 웃음을 주었던 예능 프로그램. 처음엔 무모했던 도전들이지만 그것이 성공하진 못해도 최소한 웃음을 주었다는 점에서 박수 받으며, 나아가 그 땀들이 모여 도전의 가치를 세워줬던 프로그램. 그래서 <무한도전>이라는 레전드 예능의 밑거름이 된 예능.

 

실제로 <무모한 도전>과 비슷하다는 반응들에 대해 손창우 PD는 애써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김태호 PD와 5년 간 함께 <무한도전>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감성’이 비슷하게 전달된 것일 수 있다고 했고, 특히 “어떠한 종목에 도전한다는 형식이”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절대 똑같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잘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무모한 도전>과 살짝 다른 지점들이 존재한다. 이를 테면 ‘꿈잣돈’처럼 이들이 도전에 성공할 때마다 모아 꿈을 위해 필요한 이들에게 전해준다는 장치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 장치 하나로 이 유사함이 다르다고 말하긴 어렵다. 육상 꿈나무들과 계주 대결을 벌이고 자동화 로봇과 즉석밥 포장 대결을 벌이는 그 형식은 <무모한 도전>, <무한도전>의 연장선이다.

 

멤버 구성은 <무한도전>과는 사뭇 다르지만 어딘지 <1박2일>의 구성을 닮았다는 점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의 공식적인 팀 캐릭터 구성이 아닌가 싶다. 김준호가 맏형으로 들어갔고 조세호와 이진호가 웃음 담당 개그맨으로서 참여했으며 저세상 텐션을 보여주는 배우 송진우와 이 프로그램의 얼굴담당이자 젊은 피인 이진혁이 포진했다. 맏형을 세워 찧고 까부는 설정 개그가 기본으로 깔려 있고 분량 욕심을 내보이는 조세호와 이진호가 별 노력 안해도 존재감을 보이는 막내 이진혁과 묘하게 세워지는 대결구도가 있으며, 여기에 의외의 예능감을 선보이는 송진우가 조커처럼 포진했다. 도전은 이들의 캐릭터를 만들고, 그 과정은 이들의 성장담을 그려낼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그렇듯이.

 

이렇게 보면 <돈키호테>는 대놓고 예전 몸으로 웃기고 부딪치는 예능을 내세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리얼리티쇼 즉 관찰카메라의 시대 깊숙이 들어와 이제는 캐릭터쇼가 한 물 간 것처럼 여겨지는 지금 어째서 <돈키호테>는 과거로 회귀한 것일까. 이건 퇴행일까 아니면 빠른 변화에서 오히려 과거가 그리워지는 복고 현상일까.

 

어찌 보면 관찰카메라 시대로 들어오면서 웃음의 강도는 상당 부분 약화된 게 사실이다. 즉 웃기기보다는 좀 더 진지해진 부분에 무게를 두는 예능의 시대랄까. 예능도 그런 진지함을 담아낼 수 있다는 외연의 확장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러면서 점점 줄어든 것이 별 생각 없이 한없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예능 프로그램이다. 재미가 웃음만이 아닌 다양한 영역으로 넓혀지면서 상대적으로 웃음의 영역은 축소되었다는 것.

 

퇴행이든 복고든 <돈키호테>가 지금 기능하는 지점은 바로 이 결핍이다. 그게 무엇이든 웃음을 줄 수 있다면 온 몸을 던지는 그런 예능이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결핍. <무한도전>이 역사 속에서 사라졌고 <1박2일>은 다시 돌아온다고 하지만 아직은 빈자리다. 웃음을 주겠다는 그 진정성이 통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승부를 걸 수 있다 여겼을 법 한 상황이다.

 

다만 그토록 오래도록 해왔던 <무한도전>의 많은 스토리텔링들과의 비교를 <돈키호테>가 어떤 새로움으로 넘을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무언가 새로운 포인트나 소재들이 등장한다면 시선을 끌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복고가 복제가 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진정성은 알겠지만, 그걸 얼마만큼 신선하게 끌어갈 것인가는 이 프로그램의 중대한 숙제로 남았다.(사진:tvN)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