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진실에 접근할수록 먹먹해지는 건

 

진실에 접근해갈수록 감정은 복잡해진다. 그 감정은 나쁜 어른들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에 대한 분노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하디착한 아이들의 마음과 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진실에 다가가는 좋은 어른들에 대한 먹먹함이 더해진 것이다. SBS 월화드라마 <아무도 모른다>는 어떻게 이렇게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된 것일까.

 

10회는 그간 제목처럼 ‘아무도 몰랐던’ 은호에게 벌어진 사건의 전모가 한꺼번에 밝혀진 회차였다. 은호가 왜 밀레니엄 호텔 옥상에서 뛰어내렸는지, 또 은호를 철거될 건물로 데려가 폭력을 가했던 민성(윤재용)의 운전기사가 어째서 목을 맨 시신으로 발견됐는지, 그리고 은호가 구해준 장기호(권해효)와 그의 행방을 좇는 백상호와 그 일당들은 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가 모두 드러났다.

 

장기호가 무언가 백상호와 그 일당들에게 약점이 될 만한 것을 빼돌렸고, 그것을 일당들을 피해 도망치다 도움을 받은 은호에게 전해준 것이 사건을 복잡하게 만든 이유가 됐다. 백상호는 그 물건을 가진 은호를 잡으려했고 그래서 그에게 폭행을 가하던 운전기사를 제지하게 됐다. 그렇게 은호를 구해냈지만 그것은 물건을 찾으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밀레니엄 호텔에 데리고 간 백상호의 정체를 알아채고 은호는 도망쳤고 비상용 완강기를 옥상에서 타고 내려오다 이를 막으려 하자 스스로 뛰어내린 것. 결국 이렇게 사건이 커지자 운전기사도 목 매달아 죽이게 됐던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른다>는 이런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을 어째서 쉽게 보여주지 않았을까. 거의 오리무중에 가깝게 시청자들을 몰아넣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인다. 정말 아무도 모르는 그 사건의 진실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차영진(김서형)과 이선우(류덕환) 그리고 형사들의 그 모습 자체가 주는 절실함과 신뢰감을 보여주기 위함이었고, 무엇보다 진실이 하나씩 드러날 때 보이게 되는 인물들의 진면목과 진심을 꺼내놓기 위함이었다.

 

그 과정에서 지나는 행인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언제든 내밀었던 착한 은호는, ‘정의’보다 ‘구원’이라며 사람의 약한 부분을 도와주고 대신 그를 이용해먹는 백상호(박훈)가 완전한 대척점에 서 있다는 게 드러난다. 은호로 인해 비뚤어질 뻔 했던 동명(윤찬영)도 또 부정 시험을 치렀던 민성(윤재용)도 끝내 엇나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백상호는 구원을 미끼로 아이들까지 포섭해 악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악의 축이었다.

 

이러한 진실과 함께 드러나는 선명한 실체들 속에서 단연 빛나는 인물은 차영진이다. 그는 학창시절 연쇄살인범에게 친구가 살해당한 아픔을 겪고는 끝까지 그를 잡기 위해 포기하지 않았던 인물.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은호가 당한 사건을 추적하면서 차영진은 시청자들이 느끼는 분노와 먹먹함을 동시에 전해주는 인물이 됐다. 백상호와 그 일당들이 저지른 범행들에 분노하게 되면서 동시에 그런 위협 속에서도 착한 마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맞섰던 은호의 용기에 먹먹해지는 것.

 

<아무도 모른다>는 그래서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에 따뜻함이 더해진 독특한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가 어른보다 나은 은호 앞에서 눈물 흘려주며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냉철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가진 차영진이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킨다.

 

차영진은 은호의 엄마에게 “그 누구도 엄마를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해 그의 마음을 되돌리기도 하고, 은호 일이 자신 때문에 벌어졌다 자책하는 민성에게 “너의 잘못은 은호가 당할 폭력을 외면한 것” 딱 거기까지라며 “네 탓이 아니다”라고 위로해주는 인물이다. 그러면서 백상호 앞에서는 무섭도록 냉철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아무도 모른다>가 스릴러이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지고, 분노하게 되면서도 먹먹해지는 건 이 드라마의 완성도 높은 대본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이 모든 걸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해준 김서형이라는 배우의 진가 덕분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몹시도 진실이 궁금해졌고, 그 궁금증을 따라가다 만난 진실 속에서 분노했으며 먹먹해졌다.(사진:SBS)

‘반의 반’, 정해인의 AI와 채수빈의 화분이 의미하는 것

 

tvN 월화드라마 <반의 반>은 그 서사의 단점이 적지 않은 드라마다. 그것은 의도적인 불친절이라기보다는 하려는 이야기의 야심이 좀 더 치밀한 개연성 아래 채워지지 않아서 생긴 문제로 보인다. 감정적 서사들이 많이 들어가 있어 꽤 복잡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이야기는 그리 복잡하진 않다.

 

노르웨이에서 성장 과정을 함께 지내며 지수(박주현)와 영혼의 단짝이 되었던 하원(정해인)은 어머니가 사망하자 문정남(김보연)의 후원을 받아 미국으로 가게 되고 그렇게 떨어져 그리움만 키워가던 중 지수가 피아니스트 인욱(김성규)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렇게 엇나간 사이가 되지만 하원은 지수에 대한 외사랑을 홀로 이어가고, 지수는 어떤 사실(그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하원의 어머니의 죽음과 관계된 듯한)을 알게 된 후 인욱과 관계가 틀어지고 괴로워한다.

 

AI프로그래머로 의료용으로 활용될 대화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하원은 녹음실에서 일하는 서우(채수빈)를 통해 지수의 목소리를 담아내려 한다. 그 과정에서 서우는 하원과 자꾸만 얽히게 되고 그가 지수를 애타게 홀로 짝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홀로 노르웨이로 떠났다 지수가 조난당해 사망하고, 실의에 빠진 하원은 지수의 목소리와 정보를 담은 AI프로그램을 만들고, 서우는 대화를 통해 그 프로그램을 깨워낸다.

 

사실 이러한 AI 기반의 대화프로그램이 낯설기 때문에 <반의 반>이 왜 굳이 이런 설정을 넣었는가가 궁금해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죽은 지수를 기억해내기 위해 그가 생전에 찍은 사진들을 찾아내고 그 사진이 찍힌 장소를 찾아가는 하원의 모습은 이 설정에 대한 단서를 준다. 그것은 어쩌면 현재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정보를 축적한 데이터에 목소리를 더하면 그 사람이 죽었어도 마치 진짜 그 사람이 살아있는 듯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설정은,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하게 된 색다른 사랑 방식에서 나온 상상력일 게다. 우리는 누군가 사망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고 해도 꽤 오래도록 그의 사진과 목소리와 영상을 통해 그를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또 굳이 사별하지 않더라도 저 멀리 떨어진 세계 속에서도 전화 통화 하나로 연결되는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건 편리함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반쪽짜리 사랑’의 아련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원은 서우에게 마치 AI를 통해서라도 듣고 싶어 했던 그 질문을 던진다. 만약에 서우를 통해 지수를 만났다면 그가 어떤 말을 했을까를 물어본다. 서우는 ‘힘든 얘기 다 털어놓고 공항에 안 갔을 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지수가 만들어 하원에게 준 그릇 이야기를 꺼낸다. 괜스레 하원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서우의 그 답변은 그래서 그가 만들어내고 있는 AI에 담겨지는 목소리의 실체를 슬쩍 보여준다. 그건 지수 자신이 아니라, 지수를 생각하고 그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진 목소리다.

 

“이게 뭔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지수씨한테만 말하는 건데요, 나 이 사람 보고 있는 게 참 좋아요. 지수씨가 있던 곳에 있고 지수씨가 듣던 것을 듣고 느꼈던 것을 느끼고 싶어하는 이 사람을 이렇게 보고 있는 게 참 좋아요. 지수씨를 궁금해하는 모습에 빠졌어요. 이게 뭔지.” 별 생각 없이 AI를 지수라 생각하고 혼잣말을 하던 서우는 갑자기 “짝사랑이네”라는 AI의 답변에 놀란다. 그리고 AI는 이렇게 말한다. “반할 게 없어서 나를 그리워하는 것에 반하니?”

 

하원이 AI라도 붙들고 지수에 대한 반쪽짜리 사랑을 하고 있는 것처럼, 서우도 AI를 통해 하원에 대한 반쪽짜리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반의 반>은 이처럼 완전하게 만나지 못하는 반쪽짜리 사랑을 하는 우리네 시대의 아련함을 담아낸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AI 같은 차가운 디바이스가 마치 물을 주면 자라나는 식물처럼 은유된다는 사실이다. 지수는 떠나기 전 서우에게 화분 하나를 건넸다. 깜박 잊고 있다 시들어가는 화분을 뒤늦게 발견해 서우는 물을 준다. 화분이 자라고 꽃을 피워내는 건 그래서 짝사랑을 닮았다. 그건 어쩌면 화분이 꽃을 피워 돌려주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부여한 사랑을 돌려받는 것일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 <반의 반>이 다소 복잡해 보이는 서사를 통해 하려는 이야기는 하원과 서우 같은 반쪽짜리 사랑을 하게 된 이들의 아련함이 아닐까 싶다. 이미 사라져버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를 애써 목소리로, 사진으로라도 계속 기억해내며 사랑하려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사랑은 때론 그 반쪽을 채워주는 또 다른 사람을 통해 하나의 사랑이 되기도 할 것이다. 지수의 목소리와 기억 위에 얹어지는 서우의 배려가 하원의 비어있는 반쪽을 조금씩 채워가듯이. 지수가 준 화분에 서우가 물을 주어 다시 꽃을 피워내듯이.(사진:tvN)

‘날씨가’, 은빛눈썹 서강준 주변에 있었던 진짜 사람들

 

“그 어디에도 진짜 사람들은 살지 않아서 소년은 결국 혼자 그렇게 외롭게 살다가 죽었다는 이야기.” 은섭(서강준)이 해준 ‘은빛 눈썹’ 이야기는 바로 자신의 이야기였다. 산 속 외딴 집에서 아버지와 지냈던 행복한 봄날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버지로 인해 춥디추운 겨울이 되었다. 아버지와 따뜻했던 그 집은 홀로 떨며 지새워야 하는 곳이 되었다. 은섭이 따뜻한 행복을 두려워하게 된 건 그래서였다. 그것이 언제 사라져 차가운 불행으로 변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JTBC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서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한 해원(박민영)을 갑자기 은섭이 밀어내며 차갑게 대했던 건 그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따뜻하고 다정한 것들이 전부 불안했어. 위태로운 내 행복의 순간이 단숨에 사라져 버릴까봐.” 그래서 혼자 해원을 짝사랑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어두운 밤길에 손전등을 비춰주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불쑥 다가온 해원은 그를 불안하게 했다.

 

죽은 엄마와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버지로 혼자가 된 은섭을 거둬준 건 임종필(강신일)과 윤여정(남기애)이었다. 그들은 친아들처럼 은섭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지만, 행복이 불행으로 바뀌는 경험을 한 은섭은 늘 불안했다. 게다가 ‘부랑자의 아들’로 알려진 은섭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고, 술에 취해 화가 나 툭 불거져 나온 이야기지만 “어디서 개 걸뱅이 같은 놈을 주워와 가지고는” 같은 소리를 새 아버지 임종필은 들어야 했다.

 

“간사한 원숭이, 교활한 여우, 못된 돼지, 음흉한 너구리. 소년이 본 세상 속엔 진짜 사람은 없었어.” 은섭이 해준 은빛 눈썹 이야기의 소년은 그렇게 추운 겨울에 홀로 서 있었다. 깜깜한 밤 홀로 그 산 속 외딴 집을 찾아가는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런 그에게 해원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두려운 따뜻함을 주었을까. “그 소년은 얼마나 추웠을까?”라며 “안아줘야지. 힘껏 안아줘야지. 온 힘을 다해 그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꼭 안아줘야지.”

 

은섭의 그런 사정을 듣게 된 해원은 그러나 은섭의 그 은빛 눈썹 이야기는 끝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그가 틀렸다고 말해준다. 그의 주변에는 그를 항상 따뜻하게 해주는 ‘진짜 사람들’이 있었다. 안 닮았지만 은섭의 동생이라 밝게 웃으며 말했던 동생 임휘(김환희), 산에서 조난당한 사람이 있을 때마다 구조대가 부르는 은섭을 그 누구보다 걱정하는 엄마 윤여정, 은섭이를 산에서 발견해 데려와 친 아들 이상으로 아껴준 아버지 임종필, 그렇게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다.

 

“네가 틀렸다고 임은섭. 그 늑대의 은빛 눈썹을 가진 소년 이야기 말야. 네가 그랬지? 그 소년은 결국 진짜 사람이 사는 마을 찾지 못한다고. 근데 아니. 소년은 결국 그 마을 찾아. 그리고 평생 그 곳에서 행복하게 살아. 지금의 너처럼.” 해원은 은섭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그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제목에 담긴 것처럼 추운 겨울을 겪는 이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가 담겨있다. 도시생활의 차가운 겨울을 경험하고 이 자그마한 마을로 내려왔던 해원은 난로처럼 그를 따뜻하게 해준 은섭을 통해 봄을 느끼고, 따뜻한 봄이 언제 사라질까 두려워 산 속 외딴 집 추운 겨울에 자신을 가둬뒀던 은섭은 그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해원과 가족들을 통해 봄을 맞이한다. 파랑새처럼 봄은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옆에 있었음을 이 드라마는 이야기해주고 있다. 봄은 이미 와 있다. 다만 우리가 그걸 못 느끼고 있을 뿐.(사진:JTBC(

‘한번 다녀왔습니다’, 가족 해체 시대에 더 필요한 가족드라마

 

“근데 지나고 보면 네가 그렇게 고집부린 데는 다 이유가 있더라고. 중학교 때 느닷없이 전학 보내달라고 그럴 때도 그랬고 고3 때 알바 한다고 설칠 때도 그랬고. 그래. 이번에도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아버진 알아 근데 이거 하나만 꼭 알아둬. 다 지나가. 시간 지나면 별일도 별일 아니게 돼. 정말야. 인생 길다. 살다보면 웃을 일도 생기고 울 일도 생기고. 뭐 울 일 좀 생기면 어때. 네 옆에는 엄마 아빠 다 있는데 언니 오빠 있고 네 편이 이렇게 많은데.”

 

KBS 주말드라마 <한번 다녀왔습니다>에서 송영달(천호진)은 결혼식날 파혼하겠다며 돌아온 막내 송다희(이초희)에게 그렇게 위로한다. 파혼한다는 그 사실을 질책하기보다는 그런 결정을 내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며 딸을 다독인다. 그는 이미 맏아들 송준선(오대환)과 맏딸 송가희(오윤아)의 이혼을 겪었다. 그리고 또 이어진 파혼. 속이 속일 리 없다. 하지만 이 아버지는 더 마음 아플 딸을 위로한다.

 

물론 송다희의 엄마 장옥분(차화연)은 놀란 가슴에 버럭 화부터 낸다. 그리고 송다희와 파혼한 남자친구를 찾아가 사정과 회유를 해본다. 하지만 그건 딸의 선택이 잘못 됐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 아니다. 딸을 걱정해서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싸가지 없이 다희를 고집 세다, 눈치도 제로다 학벌도 모자라고 능력도 없고 여자로서 매력도 부족하다 말하는 이 남자에게 장옥분은 일갈한다.

 

“니들이 뭔데 결혼도 하기 전에 남의 귀한 딸 데려다가 설거지를 시키니? 시키기를. 이제 보니까 너한테 주기엔 우리 다희가 너무 귀하다. 이제 네가 달라고 사정을 해도 내가 안줘. 못줘.”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도로 한 복판에서 오열한다. 집으로 와 괜스레 딸에게 설거지 하지 말라고 화를 낸다.

 

속상할 장옥분을 남편 송영달은 다독인다. “잘 했어. 잘 정리했어. 우리 인생도 우리 맘대로 안되는 데 뭐. 자식들 인생이야 뭐. 우리 자식들 남의 자식보다 잘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어. 그냥 운 없어서 닥친 걸 어떻게 해. 견뎌내야지.” ‘한 번 다녀온’ 송준선, 송가희와 언니 송나희(이민정)도 송다희를 위로한다. 너무 자책하지 말라며 파혼은 자신들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라 말해준다. 하지만 파혼을 선언한 남자가 양다리를 걸쳤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언니 오빠는 그를 찾아가 통쾌한 복수를 해준다.

 

<한번 다녀왔습니다>는 이처럼 이혼과 파혼을 겪는 인물들을 가족이 다시 끌어안고 다독이는 모습을 담아낸다. 게다가 송나희 역시 과거 유산의 경험 때문에 관계가 멀어진 남편에게 이혼을 하자고 한다. 지금껏 보통의 KBS 주말드라마가 그려오던 흐름이 ‘결혼 권장’이었던 걸 떠올려 보면 이 드라마는 이혼과 파혼으로 시작하고 거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결혼을 했으니 그래도 버티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결혼이나 현실이 받쳐주지 않는 결혼은 이혼과 파혼을 해서라도 나은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가족드라마. 물론 그 과정이 힘들고 아프지만 가족이 이를 든든히 지탱해주고 위로해주는 가족드라마. <한번 다녀왔습니다>가 그리는 건 가족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던 그런 가족이 아니라, 개인의 행복이 우선이고 그것을 지지해주는 그런 가족이다.

 

사실 1인 가구가 급증하고, 비혼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버린 시대에 가족드라마는 설 자리를 잃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가족드라마가 과거 가족주의 시대의 이야기들을 반복할 때 생겨나는 결과다. 1인 가구가 급증해도 비혼이 늘어도 가족은 여전히 존재하고, 따라서 그렇게 달라지고 있는 가족의 양태와 역할을 담아낼 때 가족드라마의 존재가치 또한 분명하다. KBS 주말극 <한번 다녀오겠습니다>가 기대되는 건, 바로 그 색다른 가족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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