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이런 분들이 있어 우리의 밤이 편안하다

 

'본 예능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모두 실화임을 밝힙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올라온 이 자막은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것과 정 반대의 고지를 담고 있다. '경찰 특집'으로 출연한 경찰 분들을 통해 듣는 이야기들은 정말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한 것들이지만, 그게 모두 실화라는 것.

 

총 경찰경력 28년째인 뺑소니사건 전문 형사 유창종 경위가 들려준 사건들의 이야기는 마치 영화 <뺑반>을 보는 것처럼 생생했다. 뺑소니를 치고 도망친 범인을 잡기 위해 사고지점의 피해자가 있던 자리에 누워볼 정도로 간절한 마음으로 범인을 추적하곤 했다는 그는 검거율 98%를 기록하고 있지만 남은 2%가 더 아쉬운 찐 경찰이었다.

 

현장에 떨어진 조각 하나, 심지어 흙 한 줌을 통해서 뺑소니범을 잡기도 했다는 유경위는 시력이 안 좋아질 정도로 CCTV를 돌려보는 일이 일상이라고 했다. 모든 조사관들이 사망한 피해자의 사체 앞에서 기도를 하고 꼭 잡겠다는 약속을 한 후 범인을 추적한다는 이야기에 이 분들의 간절한 진심과 의지가 느껴졌다.

 

사건 많기로 유명하다는 홍익지구대의 신참 막내라는 문한빛 순경은 우리가 드라마 <라이브>를 통해 봤던 그 이야기의 실제를 들려줬다. 불금의 의미 자체가 달라졌다는 그는 금요일이나 토요일 야간근무를 할 때는 12시간 사이에 무려 150건에서 200건의 사건이 벌어진다고 했다. 주로 주취자와 만취자들의 사건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유재석과 조세호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힘들면 지치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문 순경은 눈빛부터 달랐다.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홍익지구대를 선택할 거라는 그는 힘든 만큼 동료들 간에 서로를 의지하고 다독이는 끈끈함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제복을 입을 때마다 사명감이 절로 느껴진다는 것.

 

영화 <범죄도시>의 실제 모델이라는 윤석호 경위 역시 실제 사건 현장의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한가를 담담한 목소리로 전했다. 칼과 도끼가 난무하는 곳에서 범인들과 싸워야 하고, 수시로 잠복근무를 해야 하는 직업. 그와 오랜 인연을 맺고 형 동생 하고 있다는 마동석은 윤 경위를 자신이 만나본 형사 중 가장 진짜 형사라고 추켜세웠다.

 

하지만 그 역시 한 가족의 가장이었다. 직업의 특성상 핸드폰 화면이나 SNS에 가족관련 사진이나 집 같은 사진을 올릴 수 없다는 그는 오랜만에 딸과 여행을 갔다가 훌쩍 큰 키에 놀랐다고 했다. 매일 밤 늦은 귀가에 누워 있는 모습만 봐서 키가 그렇게 큰 지 알 수 없었다는 거였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지만 본인은 남모르는 고충이 있었다는 게 그 이야기에서 느껴졌다.

 

이날 가장 가슴이 아픈 사연은 서울지방경찰청 한강경찰대 고건 경위의 이야기였다. 우리에게는 도시의 쉼터 같은 공간으로만 생각했던 한강은 때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위험천만한 곳이기도 했다. 그럴 때 목숨을 걸고 그들을 구조하고, 때론 유족들이 애타게 찾는 사체를 인양하는 일을 하는 분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고건 경위는 한강이 겉으로 보기엔 깨끗해 보여도 안에 들어가면 시야가 거의 확보되지 않아 처음에는 두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그걸 넘게 해준 건 같이 들어가는 동료가 잡아주는 손이었다. 그들이 동료의 손을 심지어 '생명줄'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이들의 끈끈한 동료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제 아무리 두렵고 힘겨운 일 앞에서도 굳건할 것처럼만 보였던 척 보기에도 단단하고 다부진 체구를 가진 고건 경위는 후배였던 유재국 경위가 수색도중 사고로 사망하게 된 사연을 전하며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한 번 더 살펴 보자 다시 들어갔던 게 마지막이었다는 것. 그는 입술마저 부르르 떨며 그 때를 회고했다.

 

"그런 경우를 처음 당해봐서.. 같이 있던 동료가 그래 버리니까. 전에는 글 같은 거 읽었을 때 상상할 수 없는 슬픔이라고 표현들 하는데 상상이 되니까 더 슬프더라고요." 특히 추위를 많이 탔다는 유 경위를 생각하며 동료가 느꼈을 추위와 두려움을 떠올리며 그는 눈물을 흘렸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경찰들은 멋진 모습으로 활약한다. 하지만 그런 위험천만한 상황이 실제 현실이라면 어떨까.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찰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면이 있었지만 그것이 더 이상 허구가 아니라 실제라는 사실에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분들이 있어 우리가 좀 더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니.(사진:tvN)

'가족입니다', 가족에 대한 비밀과 왜곡된 기억이 실체를 드러낼 때

 

과연 우리는 가족이라고 부르는 존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는 김상식(정진영)과 이진숙(원미경)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고로 22살의 사랑꾼의 기억으로 돌아간 김상식은 평소와 달리 아내에게 "진숙씨"라 부르며 살갑고 애틋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진숙은 그런 상식이 낯설고 불편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상식과 결혼해 살아왔던 나날들이 사실상 포기한 삶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꾹꾹 눌러둔 그 감정은 결국 폭발했다. "딴 집 살림하고, 딴 애 키우느라 우리 애들은 내팽개친 거는 기억해?" 상식은 그 말이 충격적이다. 자신이 그런 짓을 저지른 파렴치한이라는 걸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22살의 상식으로 돌아가 그 때 진숙이 도시락에 넣어주려 써놓았던 메모를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외우던 그가 아닌가. 그렇게 진숙에게 애틋했던 상식이 딴집 살림이라니.

 

기억은 많은 것들을 왜곡한다. 상식은 정말 자신이 기억하고픈 것들만 기억하는 것일까. 진숙의 말은 사실일까. 진숙 또한 기억의 왜곡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은 도시락에 그런 메모를 쓴 적이 없다고 했지만, 오래도록 써왔던 일기장에서 상식은 그 메모를 찾아낸다. 그리고 진숙 또한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낸다.

 

그저 가부장적인 아빠로만 알았던 상식이 자신의 꿈이 대학가요제에 나가는 거였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자식들은 순간 숙연해진다. 자신을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하는 진숙을 위해 졸혼을 서두르는 상식이 자식들을 따로 모아 졸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문득 꿈이 뭐였냐고 물어본 은희(한예리)에게 상식은 그렇게 말한다. 대학을 갈 처지가 못돼 꿈을 접었다는 상식은 오래도록 트럭을 몰며 은희가 녹음해 준 대학가요제 노래들을 들어왔을 터였다. 잘 알고 있다 여겼던 아빠 상식은 그래서 또 낯설게 다가온다.

 

은주(추자현)는 진숙에게 엄마가 유독 아빠와 자신을 차갑게 대했다며 문득 젊은 날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만 하며 보냈던 자신에 대해 "내 딸 수고한다. 내 딸 고맙다." 그 한 마디를 안 해준 이유에 대해 묻는다. 그러자 진숙이 말한다. "말이 너무 쉬워서 못했어. 네 또래 애들이 화장하고 예쁘게 입고 살랑거리고 다니는 걸 보면 마음이 무너졌어. 넌 그때 말도 없고 웃지 않고 새벽에 출근할 때도 늦게까지 야근할 때도 택시 한 번을 안타고, 싸구려 옷만 입고 신발도 밑창 다 닳고.. 고맙다는 말을 어떻게 하니? 뻔뻔스럽게. 미안하다는 말을 어떻게 해? 아무 것도 못해줬는데. 말이 무슨 소용이 있어? 말 뿐인데."

 

때론 가족은 그 마음을 말로 전하지 못한다. 아니 어떨 때는 타인보다도 더 속에 있는 말을 꺼내놓지 못한다. 그래서 그건 때론 오해를 낳고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는다. 그렇게 세월이 눈처럼 그 위로 소복하게 쌓이다보면 기억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대로 튀어나온 것들만 기억하려 한다. 애써 사랑꾼으로 포장하기도 하지만, 냉정했던 마음에 대한 상처만을 떠올리기도 한다.

 

<가족입니다>는 가족이라는 테두리로 묶여져 있어 아주 가깝고 그래서 속속들이 알 것 같은 이들이 사실은 저마다 드러나지 않은 민낯들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건 숨겨진 비밀일 수도 있고, 오해일 수도 있으며 때론 기억의 장난일 수도 있다. 가까이 있어 오히려 더 잘 모르는 가족이라는 존재를 이 드라마는 우리 앞에 펼쳐놓고 있다. 가족이지만 실상 아는 건 별로 없다고. 그렇게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그래도 가족이라고 말하며.(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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