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환불원정대를 보면 유재석의 부캐놀이가 새롭게 보인다

 

"재석 오빠 지미 유 캐릭터 맡고서 눈빛마저 차가운 거 알아? 완전 진짜 다른 사람처럼." 엄정화의 집에 모여 함께 즐거운 식사를 나누던 환불원정대. 이효리가 유재석의 지미유 부캐 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툭 꺼내놓는다. 그러자 엄정화 역시 똑같이 느꼈다며 자신만 그렇게 느껴진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효리는 유재석의 연기를 이야기한다. "완전히 눈빛 자체가 달라. 연기자야 연기자. 연기자들은 원래 연기 들어가면 사람이 다른 사람처럼 변하잖아요." 이렇게 일종의 '부캐 놀이'에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맞장구를 치는 환불원정대. 유재석이 몰입이 심해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려면 꽤 오래 걸릴 것 같다며 '몰입병', '부캐병'이라는 농담까지 더해 넣는다.

 

사실 별거 아닌 농담처럼 슥 지나가는 이야기 속에 나온 연기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 대목은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하는 부캐 놀이에 점점 몰입이 더해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실제로 이번 지미 유 캐릭터는 이전에 싹쓰리 프로젝트에서 그가 꺼내놨던 유두래곤 캐릭터와는 사뭇 다르다.

 

유두래곤이 어딘지 젊은 날 좀 놀았을 법한 캐릭터로 그 때의 열정을 다시 불태우는 그런 인물로 이효리가 분했던 린다 G에게 늘 주눅 드는 캐릭터였다면, 지미 유는 어딘지 사기 캐릭터의 냄새가 솔솔 풍기고, 할 말은 하는 의외로 강한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준다. 톱100귀를 갖고 있다며 노래에는 절대 터치하지 말라는 환불원정대의 이구동성에도 그는 자신의 선택이 더 맞을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단발에 하와이안 셔츠 그리고 일수가방처럼 들고 다니는 백 같은 스타일로 마치 옛날 분위기를 풍기는 대부업체 사람 같은 캐릭터를 꺼내놓은 지미 유. 그런데 왜 유재석은 이번 부캐에서 이렇게 색다른 캐릭터를 세워놓고 좀 더 그 캐릭터에 몰입하고 있는 걸까.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첫 번째 이유는 '환불원정대'가 가진 센 언니들 캐릭터에 적당한 대립구도를 만들어야 그들의 팀워크도 단단해지고 또 센 느낌 역시 적당히 중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싹쓰리에서는 이효리에게 주눅 드는 모습을 보여도 비가 막내로서 적절히 툴툴 대고 앙탈을 부리는 모습으로 균형 잡힌 케미가 완성됐다. 하지만 '환불원정대'에서 유두래곤 같은 '당하는 캐릭터'를 고수하면 자칫 센 언니 캐릭터가 과잉되게 보일 가능성이 높다. 지미 유가 절대 밀리지 않고 이들의 센 기세에 자신도 할 말을 하는 건 그런 이유다. 물론 그렇다고 밀리지 않는 건 아니지만.

 

지미 유가 이런 캐릭터를 세워두고 남달리 몰입하는 두 번째 이유는 '환불원정대'가 출범하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이 캐릭터가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며 만들어내는 색다른 재미와 웃음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제작자로서 이상민이나 송은이 같은 이들을 만나 조언을 듣는 이야기나, 매니저 면접을 보는 과정에서 지미 유의 이런 다소 우스꽝스러운 사기 캐릭터는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들어낸 바 있다. 이상민으로부터 "매니저는 말귀를 못 알아들어야 제작자가 빛난다" 같은 다소 엉뚱한 조언들을 듣는 모습이나, 그래서 만난 김종민이 "예?"라고 묻기만 해도 웃음이 터졌던 상황들은 지미 유라는 과하게 몰입해 유재석이라는 본캐와 선을 그은 부캐가 있어서다.

 

개그맨이라고 하면 웃음을 주는 사람으로 그 직업을 생각하곤 하지만 사실 그전에 코미디언이라고 불렸을 때만 해도 이들은 모두 연기자였다. 웃음을 주는 캐릭터에 몰입하고 특정한 상황극에 진짜처럼 빠져야 보는 이들에게 더 큰 웃음을 선사할 수 있다. 유재석의 부캐 놀이는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소속사 사장님(?) 김태호 PD의 강제에 의해 주어졌지만, 차츰 유재석 스스로 그 새로운 캐릭터에 몰입해 빠져드는 면모로 진화하고 있다.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목표에 대해 묻는 청년들에게 유재석은 자신이 특별히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목표를 세우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거였다. 다만 자신의 성격이 무언가 맡겨지면 해야 하는 스타일이라 그렇게 되면 최선을 다해 한다고 했다. 애초 유재석에게 부캐놀이는 자신이 생각한 목표는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태호 PD에 의해 맡겨진 그 목표 속에서 유재석은 최선을 다하면서 점점 그 일에 몰입해가고 있다. '환불원정대'에서 유재석이 이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사진:MBC)

'여름방학', 소소하지만 이 방학이 남기는 깊은 여운은

 

저런 방학을 지냈던 때가 언제였던가. 방학이 되면 시골 할머니댁에 놀러가 한 달 간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유년시절을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일찍부터 학원 다니며 방학이 되도 그 반복되는 일과를 보내는 지금의 초등학생들에게는 낯선 풍경일 게다. 간간이 나는 시간에 모바일 게임을 하는 것이 더 익숙한 방학의 풍경일 테니.

 

tvN 예능 <여름방학>은 그 잊고 있던 추억의 한 자락을 꺼내 올리는 프로그램이다. 강원도 바닷가 마을의 집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콘셉트지만, 그 집이 그려내는 풍경이나 일상들이 이제는 나이 들어 더 이상 방학이 없는 도시의 어른들에게는 그 어렸을 때 겪었던 할머니댁을 떠올리게 한다.

 

자전거를 타고 괜스레 동네를 휘 돌아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처음에는 낯설어 데면데면했던 뽀삐가 이제는 익숙해져 반갑게 꼬리를 흔든다. 친한 지인들이 찾아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해먹기도 하고 다락방에 올라 공기놀이를 하며 아이처럼 까르르 대다가는 어느새 창밖으로 지는 해를 넋 놓고 바라본다.

 

<여름방학>은 그렇게 자극적인 재미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너무나 소소하고 차분한 프로그램인 게 사실이다. 그래서 시청률도 화제성도 그다지 높지 않지만 일단 계속해서 이 세계를 들여다본 시청자라면 점점 그 곳에 익숙해져 이제는 정유미나 최우식처럼 그 집의 마당들과 거기 피어나는 허브들, 마당에서 그들을 반겨주던 뽀삐가 마치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인 양 반가워지는 느낌을 갖게 됐을 게다. 첫 방송이 나가고 나왔던 왜색이나 표절 논란이 싹 잊힐 정도로.

 

그 집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도 그렇다. 조금만 나오면 보이는 바닷가와 거기 세워진 빨간 등재와 하얀 등대 하나가 반갑고, 최우식이 찾아가 빵 굽는 걸 배웠던 카페나 이들이 가리비를 사가곤 했던 가게, 장을 봤던 슈퍼가 반갑다. 처음에는 낯선 이방인처럼 그 공간에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제는 동네 사람이 다된 듯 만나는 이들마저 이웃처럼 인사하는 모습이 정겹다.

 

처음엔 손님으로 왔지만 이제 지인들을 초대하면 이들은 이 집이 노을 맛집이라는 걸 자랑하고 바닷가 풍광이 너무나 좋다고 알려준다. 산책길 끝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저 멀리 설악산의 위용을 보여주고 싶어 하고, 건강한 식재료들을 갖고 직접 만든 음식들을 맛보여주고 싶어 한다. 손님은 어느새 그렇게 그 곳의 주인이 된다. 그들은 어느새 그 집을 '우리 집'이라 말하고 그 동네를 '우리 동네'라고 말한다.

 

이것은 <여름방학>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담아내고 있는 색다른 느낌이다. 과거 이진주 PD가 <윤식당>에서 이국의 낯선 땅에서조차 점점 지내다보면 '우리 마을'처럼 느껴지곤 했던 그 경험을 이 프로그램은 전하고 있다. 그건 마치 방학 때 시골 할머니댁에 가면 처음엔 모든 게 낯설다가 이제 돌아올 때쯤이 되면 그 곳이 '우리 집'이라고 말하게 되는 그 경험 그대로다.

 

이제 돌아갈 날이 다가오자 최우식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며 벌써 한 달이 훅 지나갔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처음에 정유미가 한 달 살기를 같이 하자고 했을 때만 해도 자신은 그걸 부담으로 느끼던 최우식이었다. 그러던 그가 그 곳에서 보내는 일상에 점점 깊이 빠져들고 그래서 한 달 더 살자며 '가을방학'은 없냐고 말하는 대목에서 이 프로그램이 준 소소하지만 깊은 여운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최우식은 이번 한 달 살기를 통해 결과만 보고 달려왔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며 이제는 '과정' 하나하나를 행복하게 느끼겠다고 말한다. 어쩌면 매일 같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느새 과정의 즐거움을 잊고 살아온 건 아니었을까. 그걸 보게 해주는 건 '방학'의 진짜 의미, 말 그대로 어떤 결과를 향해 달려오던 걸 잠시 멈추고 하루하루의 과정들을 느껴보라는 그 시간의 경험이 아닐까.

 

단 번에 되는 일은 없고 많은 것들이 그 하나하나의 과정들을 거쳐 되는 것이다. 그러니 최우식이 말하듯 그 과정을 행복하게 보내는 일이 소중해진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 잘도 따르는 뽀삐 같은 존재가 생기는 것처럼. 결과가 급해도 과정은 천천히. 이 어려운 시국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잘 보내는 것으로 지나갈 테니.(사진:tvN)

'악의 꽃', 게임 체인저 김지훈이 끄집어낸 이준기의 흑화

 

놀라운 반전의 연속이다.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은 게임체인저 백희성(김지훈)이 깨어나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또 바뀌었다. 남편이 도현수(이준기)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왔다는 걸 차지원(문채원)도 또 그의 동료형사 최재섭(최영준)도 알게 됐지만 그들은 모두 그 사실을 덮어주려 했다. 그것은 차지원도 최재섭도 도현수와 그 누나 도해수(장희진)가 겪은 비극을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도민석(최병모)이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 의해 마녀사냥을 당한 도현수는 그 충격으로 아버지의 환영을 보게 됐고 그래서 스스로가 귀신이 씌웠다 믿기 시작했다. 도해수가 마을 이장을 살해한 건 그를 범하려한 탓도 있었지만 그가 동생을 괴롭히는데 앞장선 인물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그 살인사건으로 죄를 스스로 뒤집어쓴 도현수는 신분을 위장한 채 백희성으로 살아가게 됐다.

 

문제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던 진짜 백희성이 눈을 떴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두 명의 백희성이 존재하게 됐다는 뜻이고, 그들 가족과 도현수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덮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백희성이 깨어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도현수는 그의 아버지 백만우(손종학)를 도민석의 공범으로 의심하고 그를 궁지에 몰아 체포하려 하지만 백희성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 사실을 모두 알고는 거꾸로 역이용하기 시작한 것.

 

그 집에서 일하던 가사도우미를 살해한 백희성은 도현수의 지문까지 사체에 남겨 그에게 누명을 씌우고 결국 차지원마저 남편을 의심하게 만든다. 형사로서 증거까지 나오게 되자 차지원은 남편 도현수에게 수갑을 채우려 하지만 그 때 도현수에게 아버지의 환영이 나타난다. 아버지는 말한다.

 

"네 엄마도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어. 근데 네 엄마가 사랑했던 건 내 허상일 뿐이었지 내 본 모습을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결국 니들까지 버리고 내 곁을 떠나 버렸지. 사랑은 굉장히 간사한 감정이야. 아주 교활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고는 더할 나위 없는 배신감을 주지. 현수야 잘 새겨들어. 살면서 누군가를 믿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건 네가 나약해지고 있다는 증거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그려내고 있는 '악'이 어떻게 피어나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도현수가 아버지의 환영을 보게 된 건 마을 사람들이 그를 믿지 못하고 귀신 들린 사람이라 의심하며 심지어 아버지의 공범으로 몰아세웠기 때문이었다. 악은 이처럼 누군가의 '의심'에 의해 피어난다. 도민석이 그러했던 것처럼.

 

도현수는 아내 차지원과의 단란한 가정을 통해 그 악을 지워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믿음과 신뢰가 만들어내는 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은 도현수가 자신을 숨긴 채 백희성으로 살아왔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의 정체가 드러난 후에도 차지원은 변함없는 사랑과 신뢰를 보내지만, 깨어난 진짜 백희성은 이제 거꾸로 도현수인 척 위장해 살인을 저지르고 누명을 씌운다. 그 누명은 차지원이 눌러 놓았던 의심을 깨워내고 그 의심은 도현수가 애써 지우려 했던 아버지의 환영을 다시 끄집어낸다.

 

<악의 꽃>이 놀라운 건 바로 이런 지점 때문이다. 사건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새로운 게임체인저의 등장으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지만 그 사건들을 통해 사랑과 신뢰 그리고 악의 탄생 같은 인간의 근원적인 면들을 탐구해낸다는 것. 그건 결코 이 작품이 그저 흔한 스릴러도 멜로도 아닌 그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물론 멜로와 스릴러라는 이질적인 장르를 완벽한 균형으로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악의 꽃>은 충분히 칭찬받을만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장르의 결합이 사랑과 악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변화해가는가를 담아냈다는 건 이 작품에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게 만든다. 도현수가 갑자기 흑화되어 아내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장면마저 공감되게 만드는 힘. 이런 게 가능한 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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