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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빌레라', 칠순의 알츠하이머 박인환도 꿈을 꾸는데

 

"날이 이렇게 좋은데, 이렇게나 화창한데, 내가 왜, 도대체 왜, 엄마 아버지 나 어떡해요." 칠순의 어르신의 입에서 나오는 '엄마, 아버지'라는 말은 그 자체로 짠하다. 그건 순간 이 어르신의 70년 인생이 가진 무게가, 저 어린아이로 되돌아간 목소리를 통해 느껴지기 때문이다. 버티지 못할 정도로 힘겨울 때 우리는 모두 저도 모르게 어린아이가 되어 부모님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의 덕출(박인환)처럼.

 

칠순의 나이에 발레복을 입고 춤을 추는 덕출을 보는 주변의 시선은 '주책'이다. 나이 들어 '춤바람' 났다는 소문까지 들려온다. 발레연습실에서 채록(송강)이 그 아름다운 동작으로 새처럼 가볍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덕출은 순간 자신을 초라하게 느낀다. 늙고 볼품없는 자신이 꿈이라며 하고 있는 발레가 실로 '주책'은 아닐까 싶어진다. 덕출이 발레라는 꿈을 꾸는 일은 그래서 청춘들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운 일이다.

 

게다가 덕출은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됐다. 그건 주책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꿈을 향해 나가는 그에게는 더욱 더 큰 좌절감을 주는 판결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꿈을 지워내고 살았던 삶이 그의 한 평생이었고, 이제야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알츠하이머라니. 그건 꿈이 아닌 자신이 지워지는 병이 아닌가. 이보다 큰 절망이 있을까.

 

하지만 덕출은 기승주(김태훈)가 데리고 간 김흥식 발레단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휠체어를 탄 무용수의 아름다운 발레를 보면서, 발레가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서 서툰 동작이지만 정성껏 배운 대로 자기 느낌을 담아 발레를 선보인 덕출은 무용수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건강한 몸이 아니어도 발레를 좋아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발레가 될 수 있게 해준다는 것.

 

기승주가 덕출에게 말하는 '자기만의 발레'라는 표현은, 이 드라마가 단지 발레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걸 드러낸다. 젊건 나이 들었건, 건강하건 병이 들었건, 누구나 어떤 꿈을 꾸는데 있어서 '자기만의 발레'를 하는 것이고, 그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덕출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칠순의 알츠하이머 어르신도 '자기만의 발레'를 할 수 있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나빌레라>에서 덕출이 하는 말 한 마디, 동작 하나가 감동적인 건, 툭 던져져 나온 말 한 마디와 눈앞에서 보이는 어설픈 동작 하나에도 이 어르신의 칠순의 삶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할 것은, 이 '자기만의 발레'는 덕출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연기자 박인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칠순의 이 연기자가 발레복을 입고 발레를 배우는 역할에 도전한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이겠나. 이제는 가족드라마의 평범한 아버지 역할로 자리하고 있는 노배우의 발레 연기라는 새로운 도전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다.

 

그래서 무용수들 앞에서 너무나 진지한 얼굴로 발레 동작들을 하나하나 선보이는 이 노배우의 연기는 덕출이라는 인물의 도전을 그 누구보다 절절하게 전해준다. 굉장히 고난도의 점핑이나 회전 같은 게 전혀 없는, 작은 손 동작 하나만으로도 이토록 아름다운 발레를 표현할 수 있다니. 박인환의 연기에서는 그의 인생의 무게가 느껴진다. 덕출이 발레 동작 하나에 자신의 삶을 담아내듯.(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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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과 박인환, 우리 시대의 새로운 어르신상

 

미국배우조합상(SAG),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다음은 아카데미일까.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에 쏠린 국내외의 관심이 뜨겁다. 물론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그간 쌓아온 연기공력과 필모들이 모여 지금의 결과에 이른 것이지만, <미나리>가 순자라는 인물을 통해 끄집어낸 외신에서도 이른바 K할머니(halmoni)라 불리는 그 캐릭터의 힘을 빼고 이 놀라운 결과를 말하긴 어려울 게다.

 

순자는 <미나리>에서 어린 손주인 데이빗(앨런 킴)이 영화 속에서 말하듯,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다. 물론 이 할머니는 자식을 위해 그 먼 이역만리를 찾아가며 멸치에 고춧가루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는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긴 한다. 하지만 언어도 환경도 낯선 데다 트레일러에서 살아가는 딸 가족의 모습에 눈물을 보이거나 한탄을 쏟아놓는 그런 할머니는 아니다. 오히려 그런 삶이 "재밌다"고 말해주며 호호 웃는다.

 

굉장히 희생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할머니도 아니다. 순자는 자식들을 위해 요리를 하는 모습보다 데이빗에게 화투를 가르치는 모습이 더 인상적이고, 한국의 전통적인 맛을 고집하기보다 데이빗과 함께 그들의 탄산음료의 맛에 빠져드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이 작품의 리 아이작 정 감독이 순자라는 인물의 해석을 윤여정에게 맡기면서 나오게 된 독특한 할머니상이 아닐 수 없다.

 

이 K할머니는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식만큼 자신을 챙기는 인물이다. 미나리가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까지 정화시키는 효능을 가진 존재인 것처럼, 순자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 이역만리에서 고군분투하는 가족들에게 끝까지 버텨낼 수 있는 지혜를 알려주는 존재다. 이처럼 <미나리>의 순자라는 K할머니에 대한 찬사는 최근 들어 시대가 바라는 어르신상의 새로운 모습들이 투영된 결과다.

 

그런데 최근 K할머니에 비견되는 K할아버지의 등장이 눈에 띈다. 바로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의 덕출(박인환)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매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명대사인 이 할아버지 역시 기존 어르신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칠순의 나이에도 어려서 꿈꿨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포기했던 발레에 다시 도전하고, 무엇보다 채록(송강)이라는 날개가 꺾인 청춘 발레리노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해준다.

 

특히 덕출이 젊은 꼰대에게 던지는 일침은 시청자들을 먹먹하게 만든다. "어르신이라고 부르지 말아요. 나 어른 아냐. 그깟 나이가 뭐 대수라고. 전요. 요즘 애들한테 해줄 말이 없어요. 미안해서요. 열심히 살면 된다고 가르쳤는데 이 세상이 안 그래. 당신 같은 사람이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으니까. 응원은 못해줄망정 밟지는 말아야지. 부끄러운 줄 알아요." 그는 사과할 줄 아는 어르신이다. 신문 사회면에 단골로 등장하는 '불통'의 대명사처럼 이미지화되어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어르신상을 덕출은 보여준다.

 

<미나리>의 순자와 <나빌레라>의 덕출은 우리 시대가 바라는 새로운 어르신상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살아온 삶의 지혜가 가득하지만, 그걸 후대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려하며 한 발 물러서 응원하고 지지하는 어르신상. 이런 어르신들이야말로 우리 사회 아니 나아가 우리 시대 젊은 세대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어떤 위기들을 슬기롭게 넘어설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존재들이 아닐까.(사진:영화'미나리')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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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악랄하게.. '빈센조'·'모범택시' 다크히어로 전성시대

 

어떻게 하면 더 악랄하게 응징할 수 있을까. 최근 장르물 서사는 '선한 히어로'보다 '악랄한 히어로'의 전성시대다. 이들 다크히어로들은 인면수심의 악당들을 법이 아닌 그들의 방식으로 처단하고 응징한다.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의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송중기)가 그렇고,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의 무지개운수 택시기사 김도기(이제훈)가 그렇다. 도대체 무엇이 악당 잡는 악당들, 다크히어로 전성시대를 열었을까.

 

<빈센조>의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가 바벨그룹과 대적하는 방식은 마피아의 방식 그대로다. 그는 변호사이긴 하지만 법을 정의구현의 방법으로 쓰지도 않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법무법인 지푸라기의 홍유찬(유재명) 변호사가 힘없는 약자들을 위해 싸우다 살해되고, 그의 딸 홍차영(전여빈)이 그 뒤를 이어 바벨그룹과 싸워나가지만, 차츰 홍차영도 또 약자들(금가프라자 사람들이 그렇다)도 빈센조의 방식을 따르게 된다. 납치하고, 협박하고, 고문하고 늘 갖고 다니는 지포라이터로 싹 다 불 질러 버린다. 급기야 어머니가 살해당하자 빈센조는 이성을 잃은 채 저들을 향해 총을 겨눈다.

 

우리나라에서 결코 벌어지기 어려운 지극히 비현실적인 상황이고, 작품 역시 이것이 하나의 허구라는 걸 드러내는 과장된 블랙코미디로 그려간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 다크히어로의 강력한 응징에 열광한다. 그것이 비현실적인 것은 맞지만, 실제 현실이 '마피아 보다 더한' 저들만의 공고한 네트워크로 이뤄져, 법이 정의를 세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청자들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관피아, 검피아 같은 비아냥 가득한 신조어들이 나오는 그 지점을 이 드라마는 정확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현실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가 더해진 다크히어로를 탄생시킨다.

 

새로 시작한 <모범택시> 역시 이 <빈센조>의 구성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범'이라는 제목에 담긴 지칭은 그 자체로 역설적이다. 사실 이 드라마 속 모범택시를 운행하는 무지개운수는 '사적 복수'를 대행해주는 조직이다. 김도기는 바로 그 사적복수를 실행하는 인물이고, 장성철 무지개운수 대표는 이 조직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김도기가 하는 처단의 방식 역시 빈센조가 하는 방식과 같다. 첫 번째 에피소드로 등장했던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을 폭행, 구금하며 강제노동을 일삼은 젓갈공장 사람들을 김도기는 그들이 했던 방식을 그대로 써서 응징한다. 생선이 담긴 대야에 머리를 쑤셔 넣어 물고문을 하고, 흠씬 두드려 맞은 후 커다란 통에 담겨져 어디론가 보내진다. 이런 악당들이 가는 곳은 무지개운수와 연결된 낙원신용정보 대모(차지연)가 운용하는 사설 감옥이다.

 

<빈센조>와 <모범택시>는 가상의 설정을 가져오고 악당들이 하는 방식 그대로 그들을 악랄하게 처단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두 드라마 모두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할 만큼 인기가 있다. 그것은 다소 자극적인 처단방식과 블랙코미디가 섞여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 때문이지만,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건 '사법시스템'에 대한 불신이다.

 

가진 자들은 바로 그 부와 권력을 이용해 범죄를 저질러 더 큰 돈을 벌어가지만, 법은 이들 앞에 무력하다. 심지어 그 부정한 돈 아래 무릎 꿇는 모습까지 보인다. <빈센조>의 범법자들을 비호하는 법무법인 우상이 그렇고, <모범택시>에서 돈을 받고 도주한 피해자를 잡아다 다시 그 지옥 같은 공장에 돌려보내는 경찰이 그렇다.

 

선은 과연 악을 이길 수 있을까. 이 과장된 블랙코미디가 섞인 다크히어로에 대한 열광 이면에는 이런 의구심이 유령처럼 피어난다. 너무나 촘촘해지고 강력해진 데다 디테일해진 악을 이길 수 있는 건 그래서 오히려 그들의 방식뿐일지도 모른다는 참담한 현실 인식이 이들 열광에서 꿈틀대는 욕망의 실체다. 마피아를 때려잡는 마피아 변호사와 악당을 때려잡는 '모범' 택시기사가 등장한 이유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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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되지 않는 길

 

JTBC 금토드라마 <괴물>이 종영했다. 제목처럼 괴물 같은 드라마였다.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빈틈없이 몰아친 드라마였고, 범죄스릴러 특유의 쫄깃한 장르적 묘미를 선사하면서도 일관된 메시지를 완성도 높게 놓치지 않은 드라마였다.

 

그래서 <괴물>은 어떤 이야기를 하려 한 것일까. 일찌감치 드라마는 연쇄살인범이 만양슈퍼 강진묵(이규회)이었다는 걸 드러냈지만, 그가 이동식(신하균)이 그토록 찾으려 했던 괴물의 진면목은 아니었다는 걸 보여줬다. 그의 뒤에는 일찍이 그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기 자식을 지키기 위해 20년간이나 이를 묵인한 채 살아온 시의원 도해원(길해연)이었고, 실제로 이동식의 여동생을 뺑소니친 후 사건을 덮어버린 한기환(최진호) 경찰청장이었으며, 이들 옆에서 수족 역할을 하며 문주시의 개발 이익을 노리던 이창진(허성태)이었다.

 

<괴물>이 특이했던 건, 이 괴물들을 추적하는 이들 역시 점점 괴물처럼 되어갔다는 사실이다. 이동식은 그래서 만양슈퍼 강진묵이 자신의 딸 강민정(강민아)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도 이를 모른 척하고 잘려진 손가락을 슈퍼 앞 평상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사체를 발견하지 못하면 손가락 열 개만으로 강진묵을 살인범으로 잡아넣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동식이 그런 덫을 놓았다는 걸 만양파출소 남상배(천호진) 소장도 또 문주경찰서 강력계 오지화(김신록) 형사도 알고 있었지만 묵인했다. 그건 법을 어기는 행위였지만 그들도 그것이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동식은 이 덫을 통해 사체를 찾아내고 강진묵을 체포할 수 있었다.

 

처음 이동식과 만양파출소 사람들의 이런 이상한 관계들을 외부인의 입장으로 들여다보며 끝없이 의심했던 한주원(여진구)은 차츰 사건의 실체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들과 동화되어갔다. 그리고 남상배 소장이 살해되고 그 뒤로 이창진이 있고, 그와 자신의 아버지 한기환이 연결되어 있으며 그가 진짜 이동식의 여동생 뺑소니범이었다는 걸 알고는 그 역시 이동식처럼 괴물을 선택한다.

 

자신이 뺑소니범이라고 말하는 한기환의 녹취 파일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이 그를 잡을 수 있는 증거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한주원은 이동식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한주원은 자신이 미끼가 되어 아버지 한기환을 끌어안고 지옥 속으로 떨어지겠다고 했다.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되는 것. 이동식이 그랬듯 한주원도 그 길을 선택했다.

 

결국 한기환은 체포됐다. 하지만 <괴물>은 그러한 시원한 사이다 카타르시스 결말을 내지는 않았다. 마지막 순간, 한주원은 경찰을 그만 두고 처벌 받겠다고 이동식에게 말하지만, 이동식은 이금화씨 직권남용에 대한 처벌 받고 죽을 때까지 경찰로 살라 말한다. 그리고 이동식이 오히려 자신의 손에 수갑을 채우라 말한다. "강민정의 사체를 유기하고 현장을 훼손하고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체포 부탁드립니다."

 

물론 정상참작이 되어 이동식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한주원은 무혐의 처분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괴물과의 싸움이 끝난 후, 서로 자처해 손을 내밀어 수갑을 채우라 요구하는 대목은 흥미롭다. 그것은 괴물과 싸우면서도 끝내 괴물이 되지 않은 이들의 면모를 드러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이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렇게 서로에게 수갑을 채우라며 손을 기꺼이 내밀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됐기 때문이었다.

 

<괴물>은 최근 몇 년 간 방영됐던 범죄스릴러에서도 독보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듯하다. <비밀의 숲>처럼 빈틈없이 이야기가 구성된 완성도 높은 작품이면서, 메시지 또한 분명했다. 게다가 엔딩에 신하균과 여진구의 목소리로 더해진 성인 실종자에 대한 고지는, 김수진 작가가 얼마나 절박하게 이 작품을 썼는가 하는 진심이 묻어났다.

 

"대한민국에서 소재를 알 수 없는 성인 실종자는 단순 가출로 처리됩니다. 그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작은 단서라도 발견하시면 반드시 가까운 지구대 파출소에 신고 부탁드립니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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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균 이외에도 '괴물'이 끄집어낸 연기 괴물들

 

신하균만이 아닌 모두가 연기 괴물들이었다. JTBC 금토드라마 <괴물>은 그래서 드라마 말미에 되돌아보면 그 제목이 마치 이들 연기 괴물들을 지칭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첫 회부터 끝까지 드라마의 추동력을 중심에 잡아준 신하균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연기괴물이다. 그는 이동식이라는 피해자 가족이자 형사 역할로 범인과 사체를 찾으려는 절박한 심정을 그 눈빛 하나 표정 하나에도 담아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이동식의 파트너이자, 동시에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든 한주원(여진구)은 <괴물>을 이끄는 또 한 축이었다. 지극히 공적인 형사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모습과 점점 사건의 진실을 파고들수록 사적인 관계와 충돌을 일으키는 한주원이라는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여진구는 너무나 생생하게 잘 표현해 줬다. 배우는 함께 하는 배우로부터 배운다고 하던가. 신하균을 만난 여진구는 그래서 그 관계의 시너지를 통해 한껏 성장하는 배우가 됐다.

 

<괴물>은 신하균과 여진구 이외에도 다양한 '연기 괴물들'을 선보였다. 다리를 저는 평범하고 소심한 인물처럼 보였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의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유주얼 서스펙트>급 반전 소름을 안긴 강진묵 역할의 이규회, 이동식의 절친이지만 그의 여동생을 차로 쳐 죽였다는 드러낼 수 없는 비밀과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박정제 역할의 최대훈도 이 작품이 끄집어낸 빛나는 배우들이다.

 

특히 최대훈은 <괴물>이라는 심리가 더해진 범죄스릴러의 색깔을 잘 드러내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 범죄에 가담하게 된 인물이면서, 그 피해자가 절친의 여동생이라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는 인물. 그 복잡한 심리는 <괴물>이 범죄스릴러이면서도 보다 깊은 감정과 정서적 쓸쓸함 같은 걸 더할 수 있게 된 이유였다. 그런 점에서 조역이지만 최대훈의 연기는 주역만큼 중요하고 도드라졌다 평가된다.

 

후반부에 들어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도해원과 이창진을 각각 연기한 길해연과 허성태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개인의 넘쳐나는 욕망과 자식을 향한 모성애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도해원이나, 그럴 듯한 사업가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언제든 야수의 본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이창진은, 이 드라마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최강 빌런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복잡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낸 길해연과 허성태의 연기자로서의 저력 또한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신인 같지 않은 신인 최성은을 빼놓을 수 없다. 만양정육점 주인으로 실종된 엄마를 기다리는 유재이 역할을 소화해내는 최성은은, 역시 이 지역의 살풍경하고 쓸쓸한 정조를 잘 드러내는 연기를 보여줬다. 신하균, 여진구, 이규회 같은 배우들과 함께 합을 맞춰 연기하는 모습 속에서 그는 신인이라는 느낌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냈다. 아마도 그로서는 <괴물>이 연기자로서의 성장에 중요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괴물>이 이처럼 다양한 연기 괴물들을 발굴해내는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건, 이 드라마가 그리는 인물들이 누구 하나 전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물들은 저마다의 비밀이나 아픈 상처 혹은 숨겨둔 욕망들을 갖고 있어 복합적이고 입체적이었다. 그러니 이를 소화해내는 연기자들의 잠재력이 인물들을 통해 끄집어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괴물>은 그래서 작품으로서도 괴물 같은 완성도를 만들어냈지만, 연기 괴물들을 쏟아낸 작품으로도 주목받는 작품이 됐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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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 낮은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마술사들 위한 헌사

 

방화동 사거리 한 복판에는 매일 마이클 잭슨이 출몰한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이 '시간의 마술사들' 특집에서 소개한 이철희씨는 칠순의 나이에도 어김없이 사거리로 나서 절도 있는 동작과 현란한 손짓으로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벌써 40년째 '인간신호등'을 자처했다는 이철희씨는 150cm의 작은 키지만 지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덕담을 한다. 모르던 이들도 여러 차례 인사를 받고 덕담을 듣다 차츰 이철희씨와 가까워지고, 이제 아침마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40년째 교통정리를 하게 된 계기는 누나의 뺑소니사고 때문이었단다. 보험을 들지 않아 재산을 탕진했고, 더 입원하기도 어려워 3년 뒤 퇴원한 누나는 그 후로도 7년 간 후유증으로 고생했다고 했다. 도로가 원망스러웠고 운전자들을 보면 '일을 낼 것 같은' 분노가 있었지만, 그가 선택한 건 사거리로 나서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40년 간을 교통정리 봉사를 해오고 있었다.

 

'시간의 마술사들' 특집은 '시간'이라는 키워드를 가져왔지만, <유퀴즈> 특유의 보이지 않는 낮은 곳에서 묵묵히 일하며 세상을 밝히는 이들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인형병원 김갑연 원장은 낡고 헤진 인형을 수술(?)하고 고쳐주는 일로 누군가의 추억 가득한 시간들을 되살려주는 일을 하고 있었고, 무려 30년 전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을 선보였던 한민홍 대표는 기술을 개발하기보다는 사서 쓰려는 기업들의 잘못된 인식 속에서 지금껏 홀로 외롭게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김갑연 원장이 복원해준 건 단지 인형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갖고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잊고 지냈던 동심이었다. 또 낡으면 당연히 버려지는 어떤 것들이 아니라, 그 낡은 것 속에 담겨진 시간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게 해주는 일. 그래서 인형을 수선해주는 일은 마치 그걸 가진 이의 마음을 수선해주는 일처럼 보였다.

 

너무나 차분하게 자신이 일찍이 했던 자율주행에 대한 연구와 성과들을 이야기하는 한민홍 대표의 모습에서 어떤 뭉클함이 느껴졌던 건, 제작진이 "외롭지 않으셨냐"고 묻는 대목에서였다. 너무 시대를 앞서갔던 그의 연구에, 미래를 위해 투자하지 않는 당대의 분위기는 그를 얼마나 외롭게 만들었을까.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기의 그 길을 지금껏 걸어가고 있다고 했다.

 

영화 <승리호>, <기생충>, <신과 함께> 등 다양한 영화에 VFX 작업을 한 덱스터 강종익 대표는 할리우드의 10분의 1 예산으로 <승리호> 같은 작품의 CG를 만들어냈던 장본인이다. 그런데 이건 굉장히 가성비 높은 기술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최고의 퀄리티를 냈던 그 힘겨운 시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은 과거와 달리 노동환경이 상당 부분 개선되어 있다 했지만 그것 역시 그간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이날 마지막 출연자였던 김범석 종양내과 의사가 들려준 이제 삶의 끝을 앞둔 환자들의 이야기가 특히 감동적이었던 것도, 그렇게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 같은 인물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흉부외과만큼 찾지 않는 종양내과 의사로서 살려내기 보다는 좀 더 오래, 고통 없이 남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김범석 같은 인물은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분들이 있어 세상은 조금 따뜻해지고 살만해지는 것일 테니까.

 

마침 '시간의 마술사' 특집편이 방영된 날은 서울과 부산의 보궐선거가 치러진 날이었다. 저마다 자신이 왜 당선되어야 하는가를 강변하고, 경쟁자의 약점을 물어뜯는 네거티브 선거를 봐왔던 대중들이라면, 이렇게 보이지 않게 묵묵히 무려 수십 년 간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거리로 나서 인간신호등을 자처하고, 낡은 인형을 수선해 누군가의 추억을 복원해주며,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외로워도 걸어가고, 조악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최고의 결과물을 내놓으며, 마지막 가는 분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특별하게 다가왔을 게다. 실제로는 이런 분들이 있어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니까.(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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