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 여성 서사의 정점 보여줄까

작은 아씨들

드라마 <마더>와 영화 <헤어질 결심>의 정서경 작가. <왕이 된 남자>, <빈센조>의 김희원 감독. 그리고 김고은, 남지현, 박지후 세 여성 배우들이 중심 롤을 맡은 작품.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대본, 연출, 연기 모두에서 여성 서사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정서경 작가, 김희원 감독의 만남만으로도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그 제작진의 면면만 봐도 어떤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최근 박찬욱 감독에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 <헤어질 결심>을 쓴 정서경 작가에, <빈센조>로 대중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연출을 보여줬던 김희원 감독의 만남이 그것이다.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로 박찬욱 감독과 꾸준히 작업해온 정서경 작가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더 알려져 있지만, 드라마업계에서도 그가 쓴 <마더>는 일본 원작의 아우라를 지울 만큼 탁월했던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니 <작은 아씨들>이라는 다소 여성 서사의 고전을 제목으로 가져와 새롭게 우리 식으로 해석한 드라마를 선보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청자들의 기대감은 커진다. 이미 <아가씨>나 <헤어질 결심> 같은 작품을 통해서도 보여진 것처럼 그가 가진 남다른 여성 서사에 대한 매력이 이 작품에서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가 자못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성 감독으로서 최근 몇 년 간 주목받고 있는 김희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사실이 더해지자 기대감은 더 커졌다. <돈꽃> 같은 어찌 보면 막장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작품을 유려한 연출로 그 색깔을 바꿔 놓았던 김희원 감독은 그 후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여성 감독 사극의 시대를 열었다.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여성 감독들이 연출한 사극의 흐름은 <옷소매 붉은 끝동>의 정지인 감독, <붉은 단심>의 유영은 감독으로 이어졌다. 또 김희원 감독은 <빈센조>를 통해 액션 느와르에도 탁월한 연출 능력을 증명했다. 이번 <작은 아씨들>에서도 자매들이 겪게 되는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이 그려지는데, 이 부분에 담겨지는 액션 느와르적인 색깔은 다분히 김희원 감독의 이러한 폭넓은 연출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성 작가가 쓰고 여성 감독이 연출한 작품에 타이틀 롤을 맡은 세 자매 역할의 김고은, 남지현, 박지후 여성 배우들이 포진했으니, 이 작품에 ‘본격 여성서사’를 기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 같다. 실제로 <작은 아씨들>은 첫 2회 분량에 오인주(김고은), 오인경(남지현), 오인혜(박지후) 세 자매가 대결하게 되는 부조리한 세상에 박재상(엄기준) 같은 절대 빌런을 세워 두었다. 이러한 대결구도는 자연스럽게 이 세 자매의 자매애를 통한 여성들의 연대를 드러내면서 저 박재상으로 대변되는 비뚤어진 남성 중심의 권력화되고 부패한 시스템과의 파열음을 예고한다. 정서경 작가가 그리고 있는 <작은 아씨들>의 큰 그림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작은 아씨들> 무슨 이야기일까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의 모티브는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전적 소설 <작은 아씨들>에서 따왔다. 물론 20세기 들어 중요한 여성 문학으로 재조명되었지만 1800년대에 쓰인 이 작품은 한동안 가부장적인 문학의 전통 속에서 무시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여성들의 성장소설에 담겨진 새로운 여성상이나 그들 간의 연대는 지금껏 세대를 뛰어넘는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2022년 한국드라마로 재해석된 <작은 아씨들>은 여기에 현재적 의미와 한국적 현실이 담겨졌다. 

 

오키드 건설에서 경리로 일하는 오인주는 회사에서 같은 왕따 취급을 받는 언니 화영(추자현)이 자신에게 20억 현금을 남기고 집에서 자살한 채 발견되자 큰 충격에 빠진다. 그런데 오인주는 화영이 15년간이나 신현민 이사(오정세)와 함께 회사의 불법 비자금을 운용해왔고, 죽기 직전 700억의 불법 비자금을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화영 이전에 비자금을 운용하는 일을 했던 여직원이 화영처럼 똑같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된 오인주는 신현민 이사가 화영을 죽였다고 의심하지만 그 역시 의문의 자동차 사고를 당하면서 비자금을 둘러싼 배후가 존재한다는 게 드러난다. 한편 오인주의 동생으로 사회부 기자인 오인경(남지현)은 정치인을 꿈꾸며 청년들을 위한 재단까지 만든 박재상(엄기준)이 과거 보배저축은행 사건의 배후라 의심하며 과거사를 파고 들지만 그 과정에서 역시 의문의 자동차 사고로 제보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겪는다. 화영과 신현민 이사 그리고 제보자까지 이들의 죽음 옆에는 모두 동일한 꽃이 놓여있다. 그들의 죽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암시다. 여기에 오인경은 막내 동생으로 예고에 다니는 오인혜(박지후)가 박재상의 딸 효린(전채은)의 그림을 대신 그려줘 상을 받게 해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작은 아씨들>의 서사는 세 자매가 모두 저마다 박재상이라는 인물과 대결구도를 그려내고 있다. 오인주는 화영과 신현민 이사의 죽음 앞에서 비자금을 둘러싼 거대한 비리를 마주하게 될 것이고, 오인경은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박재상의 실체를 기자로서 파헤쳐나갈 것이다. 그리고 오인혜 역시 돈을 받고 효린의 그림을 대신 그려줬다는 사실이 언니들이 마주한 사건들과 연결되면서 저들과 대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즉 과거사로부터 이어진 부조리한 권력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유지시켜주는 검은 자본의 흐름에 휘말리게 된 세 자매가 이를 헤쳐 나가며 진실을 파헤치고 정의를 그려내며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작은 아씨들>이 될 거라는 점이다. 

 

정서경 작가가 자본화된 세상과 맞서는 방식

영화 시나리오를 주로 써왔던 작가라서 그런지 정서경 작가가 쓴 <작은 아씨들>의 전개 속도는 거침이 없다. 그 흔한 드라마 공식을 따르는 질질 끄는 느낌이 없다. 1회 만에 화영의 죽음이 주는 충격으로 열린 세계에 2회 만에 신현민 이사의 죽음이 만든 반전이 더해지며 향후 벌어질 대결구도를 더 팽팽하게 만들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자본화된 세상과 대결하는 정서경 작가의 방식이다. 그건 오인경이나 오인주라는 인물을 통해 담아내는 남다른 ‘감수성’이다. 이들은 자본화된 세상이 굴러가는 그 익숙한 방식들을 그저 익숙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남다른 감수성을 가진 인물들로 그려진다. 즉 오인주는 죽은 화영이 말하듯, “경리는 (의사가 환자 몸을 보는 것처럼) 돈을 숫자로만 봐야 된다”는 그 말을 실천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에게 돈은 숫자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래서 20억이 갑자기 생긴 일에 결코 초연해하지 못한다. 그가 그저 20억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사건의 진실이나 내막을 궁금해 하는 이유다. 오인경은 기자로서 무감하게 사건을 리포트해야 하지만 결코 아픈 비극을 겪은 이들을 리포트하며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그래서 술을 조금씩 마시게 되고 알코올 중독 판정까지 받지만, 그건 거꾸로 이야기하면 그런 알코올 중독이 되어야 비로소 감정을 숨길만큼 독하디 독한 부조리한 세상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두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무감하게 자본화된 세상을 살아가지만 오인경과 오인주 같은 남다른 감수성으로 그걸 바라보는 이들은 그걸 결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바로 이 지점이 정서경 작가가 세상과 대결하는 방식이다. <작은 아씨들>이 가진 여성 서사가 보다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도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부조리가 일상화된 세상에서 그걸 달리 볼 수 있는 눈이란 그 세상이 배제한 이들의 시선일 수 있어서다. 자매들은 그래서 더 확장되어 세상이 배제한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로까지 나아가는 여성서사를 그려나갈 작정이다.(글:매일신문, 사진:tvN)

‘텐트 밖은 유럽’, 명품 배우들의 소박한 여행이 주는 매력

텐트 밖은 유럽

이 프로그램 어딘가 언발란스하다. 눈은 호강이라고 할 정도로 호사스러운 풍경들을 마주하고 있는데 이들이 그 곳에서 하는 여행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호사스러움과 소박함.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두 요소가 섞여있는데 그게 너무나 마음을 잡아 끈다. 도대체 tvN <텐트 밖은 유럽>이 보여주는 이 언발란스한 매력의 정체는 뭘까. 

 

“이태리에서 자전거 탄다잉-” 스위스에서 이태리로 넘어와 캠핑장에 자리한 유해진과 진선규 그리고 윤균상은 인근 가르다 호수 주변을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사실 풍광으로 보면 호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바다 같은 가르다 호수를 눈에 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호사스럽다. 시쳇말로 ‘눈호강’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곳에서 하고 싶어 하는 건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는 것이다. 

 

으리으리한 자동차가 아닌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자전거.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그 속도와 눈높이 때문에 자동차를 탔다면 놓쳤을 아름다운 풍광들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동화 속 마을에 들어온 것처럼 아기자기한 거리와 집들이 그렇고, 길가 가득 심어진 올리브 나무들이 그렇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잠시 멈춰 서서 유해진처럼 사진을 찍고, 자전거를 타고 가며 마주하는 나무에 피어난 꽃들을 괜스레 손으로 만져본다. 

 

길을 잃기고 하고, 그래서 현지 주민에게 어색한 영어로 호수 가는 길을 묻지만, 역시 영어가 어색한 주민이 마구 쏟아내는 이태리 말 앞에 당황하는 순간을 마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화려한 영어가 아니라도 소박한 보디랭귀지로 다 통하고, 길은 달리다 보면 결국 원하던 호숫가로 그들을 인도해주니 말이다. 마치 보상처럼 호수가 내주는 파도소리와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이들은 그래서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을 갖는다. 

 

유럽을 여행한다는 건 우리에게는 어쩐지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어떤 걸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텐트 밖은 유럽>은 이런 우리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호화로운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의 호사스러운 음식들, 유창한 영어와 잘 꾸며진 리조트 수영장 같은 걸 떠올릴 수 있지만, <텐트 밖은 유럽>은 그건 진짜 유럽이 아니라고 말한다. 

 

호텔 대신 캠핑장을 선택한 것부터가 신의 한 수고, 그 콘셉트의 여행에 딱 맞는 유해진을 위시해 소박하고 진솔한 매력이 넘치는 진선규와 멍뭉미에 착하디 착한 윤균상 그리고 뒤늦게 합류하는 따뜻한 인간미가 가득한 박지환이 섭외된 것 역시 이 신의 한 수에 또 한 수를 더한 선택이 됐다. 이들은 캠핑장에 앉아 마트에서 산 아라비아따 소스를 넣은 파스타에 오징어 숙회를 즉석에서 만든 초고추장에 찍어 먹지만 그걸 ‘이탈리식 가정식 만찬’이라고 표현한다. 

 

아침에 일어나 텐트를 열면 눈앞에 쏟아지는 스위스와 이태리의 풍광을 마주하는 호사가 있지만, 그들은 그 곳에서 소박한 하루를 보내며 즐거워한다. 아침에 일어나 조깅을 하다 꼭 여기 현지인들이 하는 것처럼 자신도 하고 싶었다며 가르다 호수에 뛰어든다. 아침으로 사과 한 개를 먹고 누룽지에 달걀찜을 먹는다. 

 

냉장고에 넣어둬야 할 반찬을 냉동고에 넣어 둬 꽁꽁 언 반찬을 마주하면서도 그 당혹스러움을 농담으로 즐겁게 받아들인다. 여름엔 “얼장아찌(언 장아찌)”라고 너스레를 떤다. 또 이탈리아 커피인 줄 알고 샀던 게 설탕이라는 걸 알고는 베트남 인스턴트커피를 마시지만 오페라 음악까지 틀어놓고 이탈리아 기분을 낸다. 대단할 것 없는 여정을 보여주지만 그 곳이 이태리고 그 곳의 자연과 문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는 걸 이들은 진심으로 드러낸다. 

 

피렌체로 들어가는 길이 마치 충남 당진이나 남양주랑 비슷하다고 하는 박지환이나 유럽의 도로를 달리며 경부선 같다고 말하는 이들의 소박한 말들이 유럽이라는 공간과 부조화를 이루는 지점에 <텐트 밖은 유럽>이 주는 매력이 존재한다. 이들이 만끽하다는 건 유럽이라는 공간에서도 누리는 소박한 하루다. 그런데 그것은 시청자들에게도 진짜 유럽의 공기를 전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고 보니 유럽이라는 눈호강 풍광 속에 펼쳐진 텐트라는 소박함은 이들 배우들의 면면과도 똑 닮았다.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명품배우들이지만 인간미가 넘쳐나는. (사진:tvN)

‘환혼’의 멜로가 특별한 건 사제, 주종 케미를 가장해서다

환혼

“제가 무덕이를 많이 좋아합니다.” “지가 도련님을 진짜로 좋아해유.” tvN 토일드라마 <환혼>에서 장욱(이재욱)과 무덕이(정소민)는 그렇게 각각 송림의 총수 박진(유준상)에게 말한다. 둘 사이의 비밀이 무엇이냐고 각각 물어보며 만일 답변이 틀릴 시 무덕이를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박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각자 갖고 있던 음양옥을 꺼내 보이며 그렇게 말하자 박진은 실소를 터트리며 그들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 장면은 <환혼>이 장욱과 무덕이의 멜로를 그리는 특별한 방식이 들어있다. <환혼>은 두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을 절묘한 위기 상황과 엮어 드러낸다. 환혼인을 추적하며 장욱과 무덕이의 비밀을 캐묻는 박진 앞에서 두 사람은 피해나갈 묘수로서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털어 놓는다. 그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처럼 보이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아닌 척 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죽도록 좋아한다는 말을 죽지 못해 자백”한 것처럼 꾸미지만, 실제로 무덕이 역시 장욱을 좋아하는 마음을 여러 차례 들킨 바 있어서다. 

 

무덕이 얼버무리며 자신의 속내를 숨기려 하자 장욱은 진지하게 속내를 꺼내놓는다. “스승님 죽어도 좋으면 버리지 않고 하던 거 계속 해도 됩니까? 제자가 죽을 결심을 할 땐 스승님도 함께 해야 된다고 했지? 난 죽어도 계속 할 거야. 그러니 우리 무덕이도 어렵게 자백한대로 계속해서 도련님을 죽도록 좋아해봐.” 그런데 그 말투가 존대와 하대를 넘나든다. 스승에게 하던 말투에서 하인에게 하는 말투로 넘어가는 것. 그건 사제 관계이기도 하고 주종 관계이기도 한 두 사람의 애매모호한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면서, 그것이 그저 가장하는 것일 뿐이라는 걸 말해준다. 실상은 연인 관계라는 것. 

 

<환혼>에는 이처럼 장욱과 무덕이가 어떤 위기상황에 놓였을 때 그간 사제이자 주종을 가장했던 관계를 뚫고 드러나는 실제 연인 관계의 스토리가 자주 등장한다. 천부관에 갇혀 죽을 위기에 처한 무덕이가 어찌된 일인지 수기를 빼내려는 환관으로부터 거꾸로 수기를 흡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러자 자신이 폭주한 줄 알고 다가오는 장욱을 무덕이가 막으려했을 때도 이런 멜로의 한 장면이 연출된다. “안돼. 만지지마 내가 폭주한 거면, 네가 나를 만지면 너는 수기를 빼앗겨 죽을 거야.” 하지만 그 말에도 불구하고 장욱은 무덕이를 꼭 껴안아준다. 그건 장욱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면서 무덕이가 폭주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장욱이 송림의 정진각 술사로 들어가고, 자격이 없는 무덕이는 송림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이른바 ‘송림하인선발대회’에 나가겠다며 장욱에게 던졌던 고지문에 대한 에피소드도 이들의 애틋한 관계를 에둘러 드러낸다. 결국 무덕이가 대회에 나가 하인으로 선발되고 송림에 들어오게 됐을 때 장욱은 무덕이가 던졌던 그 고지문을 꺼내 보이며 거기 담긴 의미를 자신이 읽었다고 말한다. “내가 이 짓을 해서라도 너를 꼭 보러 가겠다. 너만 볼 수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라는 것. 

 

그러자 무덕이는 애써 이를 부인하며 그 종이를 태워버린다. 하지만 장욱은 “이미 주고받은 게 태운다고 없어지겠냐”며 이렇게 말한다. “근데 스승님. 제자가 최근에 안 보이느 걸 읽는 걸 읽는 술법을 익혔습니다. 심서를 읽었다고 했잖아. 한번 보실래요? 보이지 않는 걸 읽을 땐 이렇게 집중해서 들여다 봐야 돼. 그리고 받을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거야. 무덕아.” 결국 장욱의 그 말에 무덕이는 속내를 들켜버린다. 그러자 장욱이 말한다. “읽혔다.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냐. 그저 숨기고 있는 거지.”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다. 그저 숨기고 있는 것일 뿐. 아마도 <환혼>에서 장욱과 무덕이의 사랑이 이토록 애틋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 점 때문일 게다. 사제와 주종을 가장해 숨기고 있지만 특정한 상황 속에서 저도 모르게 불쑥 불쑥 나오는 마음들과, 거부하려 해도 어쩔 수 없는 마음들이 서로를 향해 가는 것. 마치 음양옥이 서로 반응하듯 불이 켜지고 부인하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게 되는 그 마음을 읽게 되는 것. <환혼>의 멜로는 그렇게 무심한 척 시청자들의 가슴을 툭툭 건드리고 있다. (사진:tvN)

살벌 누아르에 들어온 멜로 배우들, 그 반전의 시너지(‘빅마우스’)

빅마우스

빚에 쪼들리면서도 입만 열면 뻥뻥 허세를 터트리는 빅마우스(Big mouth) 변호사. 어쩌다 재벌가와 언론사 권력자들의 사건에 휘말리고, 하루아침에 희대의 사기꾼이자 마약왕으로 불리는 빅마우스(Big mouse)가 되어버린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변호사, 감옥에서 벌어지는 사투와 성장, 진실과 정의를 위한 복수극. MBC 금토드라마 <빅마우스>는 누아르 장르의 복수극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서사를 풀어 놓는다. 

 

뻔해 보이지만 이 복수극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는 건 여러 가지 흡인 요소들이 겹쳐져 있어서다. 일단 거대한 사건에 휘말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렇고, 그 인물이 다름 아닌 권력자들에 의해 핍박받는 서민들이라는 점이 그렇다. 복수극이고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지만 <빅마우스>는 여기에 소시민들의 정서를 얹어 놓았다. 무엇보다 진짜 빅마우스가 누군가 하는 궁금증은 이 누아르에 강력한 추동력을 만든다. 벌써부터 누명을 쓴 변호사 박창호(이종석)의 아내 고미호(임윤아)와 장인인 고기광(이기영)이 진짜 빅마우스가 아니냐는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전형적인 서사 구조를 갖고 있지만 드라마를 쫄깃하게 만드는 건 역시 능숙한 스토리텔링의 흥미진진함에서 나온다. 피와 살이 튀는 살벌한 누아르의 세계 속으로 뛰어 들어가지만 <빅마우스>는 리얼하게 그 세계를 그리기보다는 다소 이야기성이 가미된 허구라는 걸 슬쩍 슬쩍 꺼내놓으며 드라마를 풀어간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비현실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이야기의 흥미로움에 빠져든다. 게다가 이런 현실과의 거리감은 박창호라는 인물이 겪는 잔혹한 상황들을 보는 것이 힘들 수 있는 시청자들에게도 적당한 숨 쉴 여지를 만들어낸다. 

 

이를 테면 감옥에서 모든 걸 포기한 박창호가 아내에게 보험금을 남기기 위해 죽을 결심을 하고 조폭 두목과 희대의 사이코패스에게 시비를 거는 대목이 그렇다. 자신을 죽여 달라고 거는 시비지만 드라마는 그런 목숨을 거는 박창호의 ‘다이 하드’ 반전을 그려낸다. 즉 두목을 제끼고 사이코패스가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 그건 과장되고 어찌 보면 코미디가 섞인 스토리지만 이런 허구가 힘겨운 상황에 놓인 박창호를 보고 있어야 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요소다. 

 

이런 스토리텔링의 여유는 아무래도 김하람 작가와 함께 이 작품의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장영철, 정경순 작가의 공력이 더해져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대조영>부터 <자이언트>, <기황후>, <배가본드> 같은 대작들을 주로 써오며 끝없이 상황을 뒤집는 스토리 운용에 탁월한 작가들이다. <빅마우스>가 가진 적당한 긴장감과 이완의 균형은 이 스토리를 너무 힘들지 않게 보게 만드는 운용의 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을 더욱 몰입하게 만들고 흥미진진하게 만든 건 캐스팅이다. 누아르 장르와 이종석, 임윤아의 조합. 어찌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드라마는 첫 회에 이종석과 임윤아를 부부로 내세워 알콩달콩한 서민 멜로의 그림들을 채워 넣은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서민적인 멜로의 풍경들이 전제되면서, 하루아침에 파괴되어 버리는 그 서민의 일상이 더 리얼해졌다. 

 

이종석의 얼굴이 점점 피로 물들어가고, 멍과 상처로 가득 채워질수록 시청자들은 이 인물에게 연민을 느끼며 빠져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멜로가 어울릴 법한 이미지를 가진 임윤아의 얼굴에 점점 단호한 의지가 엿보일 때 시청자들 역시 그 마음에 동참하게 된다. 거대한 권력자들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지는 서민의 얼굴, 그것도 달달한 멜로가 어울릴 것 같은 선남선녀가 피가 튀는 진창에 빠져 몸부림을 칠 때 이 드라마는 오히려 강력한 동력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이종석과 임윤아가 자신들의 보다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는데도 효과적인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라인을 좋아하는 작가들의 성향 상 향후 이들의 정체 또한 어떤 반전 모습을 드러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배우로서도 충분히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는 스토리 속 인물들인 셈이다. 

 

그래서 이종석과 임윤아의 캐스팅은 마치 살벌한 누아르 속에 들어온 평범한 서민 멜로의 주인공들 같은 반전의 시너지를 만든다. 다소 익숙한 스토리라인이 뻔하게 흘러가지 않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 끌게 만든 건 이 캐스팅에 묘수가 있었다고 보인다. 앞으로 이들은 어떤 변화된 얼굴로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와 소름을 안길까. 이미 깔려진 판만으로도 기대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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