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프락치 지진희의 비애, 그리고 국가의 야만적 폭력

 

1990년대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가짜 신분으로 접근했다 사랑에 빠진 안기부 요원. JTBC 금토드라마 <언더커버>는 한정현(지진희)은 이석규라는 자신의 이름을 지운 채 사랑하게 된 최연수(김현주)와 가정을 꾸려 단란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이 한정현이 가진 '거짓 신분'은 언제고 터질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이었다.

 

인권변호사가 된 최연수가 공수처장으로 지목되자, 국정원 도영걸(정만식) 팀장은 한정현을 협박한다. 최연수가 공수처장이 되는 걸 막지 않으면, 그의 가족을 파탄 내겠다는 것. 한정현은 아내의 앞길을 막을 수도, 그렇다고 가족이 파탄 나는 걸 볼 수도 없는 곤경에 빠진다. 다행스럽게도 최연수가 스스로 공수처장을 수락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이런 선택은 그가 30년 넘게 재심 변론을 해왔던 황정호(최광일)의 간절한 부탁으로 흔들린다.

 

<언더커버>는 BBC 동명의 원작 리메이크 드라마지만, 우리 식의 해석이 담겨 있다. 90년대 학생운동과 당시 안기부의 공작들이 그 밑그림으로 들어가 있어서다. 이석규는 바로 당시의 안기부 요원 중 능력을 인정받아, 한정현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채 최연수에게 접근하는 인물이다. 프락치 활동을 하는 것이지만, 한정현은 점점 최연수에게 빠져들고 그래서 조직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며 사직서를 쓴다. 하지만 이런 한정현을 그냥 놔둘 리가 없는 안기부다.

 

안기부는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한정현이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아직 드라마가 보여주지 않았다. 다만 그 삶이 얼마나 비극적이었을 지는 그가 아버지를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하는 장면에 들어 있다. 임무 때문에 자식이 해외에 나갔다 믿었던 아버지는 최연수와 가정을 꾸린 채 나타난 한정현이 아들이 아님을 부인하자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한참 후에 한정현이 요양원에서 마주한 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아들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한정현은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바로 달려갈 수 없는 처지다.

 

한정현은 국가 기관이 만든 시대의 비극을 담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그 비극 속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아버지를 경험하면서도, 애써 지키려 한 건 바로 자신의 가족이다. 과거를 애써 잊으며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려던 그지만, 그 과거가 갑자기 그의 앞으로 다시 툭 튀어나온다. 한정현은 이제 현재를 위해 과거와 싸워야하고, 가족을 위해 저 거대한 조직과 싸워야 한다.

 

궁금해지는 건 최연수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정의를 위해 거의 한 평생을 살아왔던 인권변호사다. 그런데 공수처장 수락을 앞두고 가족이 파탄 위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는 과연 남편의 거짓 신분을 알고도 그를 받아들일까. 가족이 위기에 처하는 상황 속에서도 정의를 위한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갈까. 그런 최연수를 바라보는 한정현은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언더커버>는 정체를 숨기고 살아온 남편의 실체가 드러나는 스릴러적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법 정의나 진실과 거짓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국가 기관이 만든 개인의 비극과 그래서 개인이 저 거대한 국가 기관과 마주해 싸우는 이야기. 특히 <언더커버>가 리메이크 되면서 강화한 부분은 가족이다. 결국 한정현도 최연수도 이 위기 속에서 가족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한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리메이크작이지만 이 드라마가 꽤 우리네 드라마 같은 정서적 공감대를 갖게 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사진:JTBC)

'마우스'가 또 뒤집은 반전, 사이코패스는 이승기였나

 

반전에 또 다시 반전이라니. 맞은 자리를 또 맞은 것 마냥 뒤통수가 얼얼하다. 그런데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 범죄스릴러는 역시 반전의 맛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tvN 월화드라마 <마우스>는 정바름(이승기)이 본래 자신이 사이코패스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서 또 다른 국면으로 전환되는 반전을 선사했다.

 

첫 번째 반전은 정바름이 뇌 이식 수술을 받은 후 깨어나 새장 속의 새의 목을 잔인하게 꺾어 창밖으로 던져 버리는 장면에서 생겨났다. 길거리에서 약자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걸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바른 순경이 바로 정바름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살인 충동을 점점 느끼게 되는 정바름은 그 이유가 사이코패스 살인자인 성요한(권화운)의 뇌를 이식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믿게 만든 건 살해된 줄 알았지만 살아있었던 대니얼 리(조재윤)였다. 그는 성요한의 뇌가 이식되어 정바름의 뇌를 잠식해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 살인본능을 억제하려면 누군가를 죽여야 하고, 그럴 바에는 '죽어 마땅한 이들'을 살해하라고 했던 것. 하지만 거기에는 누군가의 지시가 존재했다. 다음 살인 대상을 알려주는 누군가의.

 

하지만 두 번째 반전이 숨어 있었다. 정바름은 자신이 성요한의 사이코패스 기질을 가진 뇌와 싸우고 있다고 여겨왔지만, 사실은 정바름이 진짜 사이코패스였고 성요한은 그걸 막으려 했던 인물이라는 게 그의 집에서 나온 여러 증거들에 의해 드러났다. 오봉이(박주현)에게 줬던 목걸이에 달린 팬던트가 고양이 이빨로 만든 것이었고(아마도 정바름이 고양이를 죽였다는 것), 고무치의 형 고무원(김영재)의 팬던트와 봉이 할머니의 브로치도 자신의 집에서 발견되었다.

 

결정적인 건, 뇌 이식 수술을 받고 깨어난 후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느꼈던 이상한 기분의 실체가 드러난 장면이었다. 그 뒷마당 화분 아래에는 비밀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고, 그 안에는 실종됐던 아이 김한국의 시신과 여러 살인사건들의 사진들이 벽 한 가득 붙어 있었다. 정바름은 그 살인을 벌인 자가 성요한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걸 깨달으며 충격에 빠졌다.

 

그러고 보면 수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인 이재식을 갈대숲에서 잔인하게 죽이고 숨어 있던 정바름에게 고무치(이희준)가 던진 말은 일종의 복선이었다.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지? 사람 죽이고 싶어서 콘셉트를 그렇게 잡았냐? 그래봤자 넌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야 이 새꺄!" 이 대사는 마치 '다크 히어로'나 된 것처럼 여겨지던 정바름의 실체를 말하는 대목이니 말이다. 게다가 정바름을 키웠던 이모(강말금)가 아들과 함께 그의 눈치를 보며 도망치듯 마을을 떠난 이유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모는 아마도 정바름의 실체를 알고 있었을 거라는 것.

 

<마우스>가 보여준 이중 트릭은 이 작품이 연쇄살인마 같은 가해자들이 별다른 고통 없이 살아가는데 비해 피해자들은 평생을 상처 속에 사는 그 현실을 가져와 어떻게든 저들을 처단하고픈 욕망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것이 결국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욕망과 현실 인식이 부딪치는 것. 시청자들은 잠시간 정바름이 다크히어로처럼 '죽어 마땅한 이들'을 처단하는 것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됐지만, 그가 다름 아닌 진짜 사이코패스라는 걸 드러냄으로써 그것 역시 잔인한 살인에 불과하다는 걸 충격적으로 확인하게 됐다.

 

드라마 초반에 등장했던 정바름의 친구였지만 마술을 돕다가 상자 속에서 피투성이로 발견된 치국(이서준)이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가 깨어났다는 소식은 이제 각성한 정바름에게는 충격적인 상황일 수밖에 없다. 그의 실체가 공개될 수 있는 위기이기 때문이다. 이중 트릭으로 반전에 반전을 더함으로써 20부작 드라마가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후반부 스토리가 다시금 쫀쫀해졌다.

 

첫 번째 반전에서도 이승기라는 배우의 이미지는 주효한 면이 있었다. 워낙 바른 이미지를 갖고 있던 터라 그가 사이코패스가 되어간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에도 이 인물에 대한 바른 이미지의 기대감은 여전했다. 그래서 사이코패스 잡는 사이코패스라는 상황에서 이승기의 바른 이미지는 법이 집행하지 못하는 걸 해주는 '정의의 사도'처럼 그려진 면이 있다. 하지만 두 번째 반전으로 그가 진짜 사이코패스라는 게 밝혀지면서 시청자들은 또 다시 충격에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얼얼한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 바로 이런 과감한 반전으로 드라마가 긴장을 계속 유지해나갈 수 있게 됐다는 사실과, 이를 통해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도 더 깊어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적 복수의 카타르시스와 더불어 그것이 결국 살인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두 번의 반전을 통해 메시지 속에 녹아들었으니 말이다.(사진:tvN)

자극적인 19금 전성시대, 따뜻한 드라마들이 설 자리는 없나

 

지금은 19금 드라마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N 수목드라마 '마우스'처럼 사이코패스 잡는 사이코패스라는 자극적인 소재의 드라마 앞에서 MBC '오! 주인님' 같은 다소 전형적이지만 따뜻한 멜로 휴먼드라마는 그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펜트하우스'로 19금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져갈 수 있다는 걸 확인한 SBS는 또 다른 19금 설정의 '모범택시'로 시청률 대박을 터트리고 있다. 자극적인 장르물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 과거 우리네 드라마의 주력 장르이기도 했던 멜로나 휴먼드라마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에 쏟아지는 호평과 상반되는 낮은 시청률에는 시청자들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이어진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칠순의 덕출(박인환)이 보여주는 발레 도전에 담긴 감동적인 이 드라마의 스토리는 '할비레라'라는 표현까지 나오게 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화제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과거 JTBC '눈이 부시게' 같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휴먼드라마지만, 19금 드라마 전성시대의 자극 앞에 2%대 시청률에 머물며 훨훨 날지는 못하고 있다.

 

'오! 주인님'의 사정은 더 좋지 않다.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외양을 가져왔지만,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들여다보는 삶과 관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휴먼드라마다. 한비수(이민기) 작가와 톱배우 오주인(나나)이 함께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물론 둘 사이의 멜로를 그려내지만, 이들이 만드는 드라마가 치매를 앓는 오주인의 엄마와 그의 절친으로 역시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한비수의 엄마를 위한 작품이 되어가는 과정은 휴먼드라마의 따뜻함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등장하고 있는 19금 드라마들이 그저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만 치닫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마우스'는 다소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장면과 설정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이 던지는 질문은 진중하다. 가해자들이 별 죄책감도 없이 지내는 것과 상반되게 평생 상처를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을 이 질문이 새삼 들여다보게 해줘서다.

 

'모범택시'도 마찬가지다. 법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사적 복수'라는 자극적인 설정을 담은 드라마지만, 카타르시스와 더불어 법 현실을 폭로하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모범'이라 타이틀을 걸었지만 실체는 범법 행위를 하고 있는 이들을 통해, 역설적으로 법을 세우고 있는 현실이 과연 '모범적으로' 정의를 구현하고 있는가를 되묻는 이야기. 즉 최근의 19금 드라마들은 자극적이긴 하지만, 나름의 완성도와 주제의식도 갖춰가고 있어 향후에도 이 전성시대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최근 멜로나 휴먼드라마 같은 따뜻한 드라마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안타까운 현실을 들어 19금 드라마들을 비판하긴 어렵다. 그건 다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지향점이 다른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19금 드라마들의 자극과 수위가 따뜻한 드라마들에 대한 시선과 관심을 빼앗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한때는 우리네 드라마의 주력 장르이기도 했던 멜로와 휴먼드라마는 과연 이 강력한 19금의 자극 속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19금과 더불어 이들 따뜻한 드라마들이 공존할 수 있는 다양성이 낮은 시청률로 재단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극의 피로감 속에서 어떤 편안함과 위로를 줄 수 있는 따뜻한 드라마들이 설 자리는 또 분명히 필요한 법이니까.(사진:tvN)

'마우스'의 질문, 법은 과연 정의로운가

 

희대의 범죄자가 심신장애를 주장하고 그래서 감형 받아 만기 출소한 후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른다. 사이코패스 살인범은 체포된 후에도 아무런 죄책감이나 후회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가슴을 치고, 그 후유증을 평생 안고 살아간다. 안타깝지만 이런 일은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조두순의 만기 출소를 두고 벌어진 대중들의 공분을 보라.

 

tvN 수목드라마 <마우스>에 등장한 성범죄자 강덕수(정은표)는 그 현실의 인물을 드라마 속으로 고스란히 옮겨왔다. 만기 출소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피해자였던 오봉이(박주현)는 공포에 질려버린다. 오래도록 갖가지 무술을 익힌 건, 그 범죄자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건 어쩌면 피해 후유증으로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안간힘이었을 게다.

 

법이 잡아넣어도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하지 않고, 심지어 다시 풀어주어 또 다른 잠재적 범죄를 야기하게 만드는 현실. <마우스>는 아마도 이런 현실에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일침을 가하고 싶었던 듯하다. 사이코패스 성요한(권화운)의 뇌를 이식받고 점점 사이코패스의 본능이 살아나는 정바름(이승기)이라는 문제적 인물은 그렇게 탄생했다. 사이코패스 잡는 사이코패스의 탄생.

 

이 설정은 마치 연쇄살인마를 사냥하는 소시오패스 덱스트 모건을 다룬 미국드라마 <덱스터>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마우스>는 <덱스터>처럼 다소 경쾌하게(?) 이 사안을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는 더 무겁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법은 정의로운가. 죽어 마땅한 이를 살해하는 건 과연 잘못인가.

 

사이코패스의 뇌를 이식받은 정바름이 강덕수를 추격해 그가 범행했던 대로 똑같이 그를 처단하는 이야기는 이런 질문들을 통해 탄생한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그의 살인을 감춰주거나 덮어주려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강덕수에게 끌려갔던 아이는 다리 밑 버려진 캐비넷 속에 자신을 숨겨주고 그를 살해한 인물이 정바름이라는 걸 알면서도 묵인한다.

 

강덕수와 사투를 벌였던 오봉이는 그의 사체 옆에서 천 원짜리 지폐를 발견하고 그를 죽인 인물이 고무치(이희준)라 생각하며 그래서 자신이 범인으로 몰려도 입을 다문다. 한 피해자 아이가 고무치에게 그 지폐를 주면서 가해자를 죽여 달라고 의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지폐는 정바름이 증거보관소에서 꺼내 갔다가 현장에서 흘린 것이었다.

 

현장 근처에서 피투성이가 된 오봉이를 발견했던 최홍주(경수진)는 그를 차안에 옮겨놓은 후 그가 강덕수를 살해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손에 칼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다리 밑에서 강덕수가 죽어가고 있는 걸 확인한 최홍주는 그러나 오봉이의 부탁대로 앰블런스를 부르지 않는다. 대신 최홍주의 칼과 피묻은 옷을 숨겨 놓는다. 그 역시 강덕수의 죽음이 정당하다 여긴 것.

 

<마우스>가 정바름을 사이코패스 뇌에 잠식당해 점점 사이코패스화 되어가는 인물로 세운 건, 법이 처결하지 못하는 범죄자들에 대한 날선 비판을 담고 있다. 정바름은 과연 잔인한 사이코패스인가, 아니면 법이 행하지 못하는 정의를 비로소 수행하는 인물인가. 최란 작가는 정바름이라는 문제적 인물과 그의 살인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지지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에둘러 말하고 있다. 법은 과연 정의로운가. 피해자들의 고통을 충분히 헤아릴 정도로.

 

애초 먹구렁이가 들어있는 상자 속에 쥐가 들어가, 오히려 쥐가 먹구렁이를 공격하는 장면은 그래서 정바름의 변신을 통해 다시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불안한 사회를 은유한 것이라 보인다. 먹구렁이가 버젓이 활보하는 세상, 쥐들은 그저 두려움과 공포를 감수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네 선량한 이들을 상징한다. <마우스>는 그 쥐의 반격을 통해 우리네 사법 정의의 현실을 묻고 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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