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쇼’ 이 드라마의 방점, 쇼에서 시작해 위대한으로

 

과연 정치는 쇼에 불과할까. tvN 월화드라마 <위대한 쇼>는 그렇게 믿고 그렇게 행동하는 위대한 의원(송승헌)이 주인공이다. 그는 화려한 언변과 진심 없는 정치 쇼로 2016년 총선에 지역구를 출마해 경쟁후보인 강경훈(손병호) 후보와 박빙의 대결을 보인다. 그렇게 승기를 잡을 듯싶었던 위대한은 그러나 하루아침에 ‘국민 패륜아’가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어려서 이혼한 후로 본 적도 없는 아버지의 부고. 유세장에 찾아온 아버지를 외면했던 영상이 돌면서 위대한 의원의 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위대한은 포기하지 않고 정치 쇼를 이어간다. 광화문 광장에서부터 고인이 된 아버지의 납골당까지 3보1배를 하는 퍼포먼스를 한 것. 처음에는 쇼라 비판하던 대중들도 며칠씩 계속 이어지는 그의 3보1배를 보며 동정하기 시작하고 지지율도 오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그는 선거에서 결국 강경훈 후보에게 고배를 마시고 하루아침에 대리운전기사가 되어 살아간다. 물론 그것 역시 차기를 노리는 정치 쇼처럼 하는 일이지만.

 

<위대한 쇼>는 진심 없는 정치인에 대한 신랄한 풍자 코미디로 문을 연다. 앞에서는 부패한 정치를 일소하겠다며 대중들 앞에 서지만, 뒤에서는 금배지에 대한 욕망만 가득한 정치인에 대한 풍자.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오지도 않은 아버지의 부고가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위대한은 선거를 위해 3보1배를 하며 아버지에 대한 사죄를 외치는 인물이다. ‘위대한 쇼’라는 제목은 그래서 이 정치판의 선거를 위해 뭐든 하는 쇼를 말하는 것이면서, 위대한이라는 인물이 벌이는 쇼를 중의적으로 담아낸다.

 

하지만 <위대한 쇼>가 궁극적으로 그리려는 이야기는 단지 쇼판이 되어버린 정치에 대한 신랄한 풍자만이 아니다. 선거에서 패배하고 대리운전기사로 살아가던 차에 갑자기 자신이 딸이라는 한다정(노정의)이 찾아온다. 그런데 한다정 한 명이 아니다. 한다정의 배다른 동생 한탁(정준원)과 한태풍(김준), 한송이(박예나)까지 모두 사남매가 갑자기 그를 찾아와 가족을 이루게 된다.

 

여전히 정치판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위대한은 갑자기 생긴 사남매에 당황하지만, 그것이 ‘국민 패륜아’의 이미지를 벗을 수 있는 기회라는 걸 알아차린다. 사남매를 통해 가족적인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대중들을 향한 위대한의 정치 쇼가 다시 시작된다. 사남매를 거둬 가족을 돌보는 위대한의 가식적인 정치 쇼.

 

<위대한 쇼>는 복잡한 두뇌싸움이 오가는 정치를 다루기보다는 정치와 엮어진 유쾌한 가족극을 다루고 있다. 정치를 하려면 가정부터 잘 지켜야 한다는 그 전제 하에, 쇼로 시작한 가족과의 삶이 향후 어떻게 변해갈 지가 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다. 그래서 지금 현재 <위대한 쇼>라는 제목에서 방점은 ‘쇼’에 찍혀져 있다. 위대한이 하는 모든 행동들이 진심이 1도 없는 가식적인 쇼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 쇼를 코믹하게 터치해낸 드라마에 웃다 보면 언젠가는 그 방점이 ‘위대한’으로 옮겨지는 뭉클한 지점에 도달하게 되지 않을까. 비록 시작은 쇼였지만, 점점 진심이 되어가고 진짜 가족이 되어가기 때문에 ‘위대한’. 요즘처럼 가족이야기가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에 <위대한 쇼>는 에둘러 코미디와 소동극으로 우리 시대의 가족을 그리려 하고 있다. 겉으론 웃으며 가식으로 가족이라 하기보다는, 지지고 볶지만 진심으로 가족이 되어가는 그런 이야기.(사진:tvN)

넷플릭스 경험한 시청자들에게 허술한 드라마 더는 안 통해

 

tvN 월화드라마로 종영한 <60일, 지정생존자>는 아마도 미드 원작을 보지 않았다면 괜찮은 웰메이드 드라마로 여겨졌을 수 있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원작이 갖고 있는 미국적인 상황을 우리의 상황으로 변환하는데 일정부분 성공했다고 보인다. 그건 60일이라는 한정된 기간을 부여했고, 한반도 국제정세 상황을 투영시켰으며 무엇보다 국정농단 사태를 겪은 우리네 정서를 반영해 ‘자격 없는 이가 권력을 갖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한 부분을 부각시킨 면 등이 그랬다.

 

하지만 미드 원작을 본 시청자들은 <60일, 지정생존자>에 만족하기가 어려웠다. 그건 원작이 갖고 있는 속도감과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들에 비해 <60일, 지정생존자>는 상당히 지지부진하고 답답한 전개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테러범을 찾아내는 과정에 온전히 16부를 할애한 <60일, 지정생존자>는 그래서 박무진(지진희)이라는 권한대행의 국정 수행 능력에 집중하기보다는 빌런으로 등장한 오영석(이준혁)의 국정농단에 더 초점을 맞췄다. 물론 그는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말지만.

 

이처럼 최근 우리네 시청자들은 넷플릭스나 왓차플레이 등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외국 드라마들에 익숙해져 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왕좌의 게임> 같은 작품을 본 시청자들이 tvN <아스달 연대기>에 혹평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달라진 환경 때문이다. 사실 이런 비교점 없이 새로운 시도로만 보면 <아스달 연대기>의 성취는 적은 게 아니지만, 이제 미드를 우리네 드라마와 다를 바 없이 소비하게 된 시청자들에게 <아스달 연대기>의 미술이나 의상이 <왕좌의 게임>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었다.

 

MBC 수목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 같은 사극은 전통적으로 우리네 시청자들에게 강한 드라마지만 생각보다 시청률도 화제성도 나오지 않는 것 또한 달라진 시청자들의 눈높이와 관련이 있다. 사극이 보다 차별화된 확실한 스토리와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고 과거 이른바 멜로사극이라 불리던 장르적 틀만을 반복하는 것으로 이제 더 이상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끌기는 어려워졌다. 틀에 박힌 복수극의 장르를 반복하는 KBS <저스티스>도 마찬가지다. SBS <닥터탐정>은 물론 그 다큐적 소재를 가져와 드라마화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지만 역시 대중적이라 보기는 어렵다.

 

KBS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이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높은 33.5%(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건 꽤 상징적이다. 그것이 어떤 성과를 말해주는 게 아니라, 이제 지상파 시청률이라는 건 고정층들(주로 고령시청자)만을 겨냥할 때 나올 수 있는 수치라는 걸 말해주는 상징. tvN <호텔 델루나>가 그나마 1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가 되는 건, 그 익숙한 <전설의 고향>식의 우리네 귀신 이야기를 트렌디하게 엮어내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까지를 모두 끌어안아서다. SBS <의사요한>이 9.4%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의학드라마라는 안정적인 포맷 위에 지금껏 다뤄지지 않았던 안락사 문제를 건드리는 뾰족함이 있어서다.

 

하지만 넷플릭스 같은 해외의 드라마들을 경험한 시청자들이 주목하는 드라마는 시청률은 상대적으로 낮아도 몰입감이 남다른 OCN <왓쳐>나 영화적 느낌이 더 많이 나는 JTBC <멜로가 체질> 같은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영화와 드라마 사이의 경계가 이미 헐거워진 해외 드라마들을 접하다 보면 우리네 드라마가 가진 지나치게 드라마적인 색채나 클리셰가 지겨워진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다크> 같은 드라마나, 왓차플레이에서 방영되고 있는 <체르노빌> 같은 드라마를 우리네 시청자들이 찾아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제작사들이 드라마에 대한 생각 자체를 달리해 봐야 하는 이유다. 보다 완성도 높고 확실히 차별화 되는 스토리와, 영화와 더 이상 경계가 없는 밀도 높은 드라마가 아니라면 갈수록 우리네 시청자들의 이탈은 커지고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이미 높아진 눈높이는 되돌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사진:tvN)

‘의사요한’, 단순 사랑 아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사랑

 

SBS 금토드라마 <의사요한>에서 강시영(이세영)은 차요한(지성)에게 “좋아해요”라고 말한다. 실제로 강시영은 차요한이 사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질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밤이고 낮이고 그를 걱정한다. 함께 데이트를 나와서도 앞에서 달려오는 사람이 혹여나 차요한에 부딪칠까를 걱정하고, 뜨거운 커피를 쏟을까를 걱정한다.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제 몸이 망가지고 있어도 그걸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차요한은 자신의 집에 대신 몸 상태를 체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매일 퇴근해서는 제 몸을 검사하고 잠을 잘 때도 카메라에 영상으로 그 모습을 일일이 기록해 혹여나 있을 수 있는 수면 중 행동의 위험성 또한 예방하려 한다.

 

그 질환에 걸린 이들이 손가락이 뜯기는 지도 모르고 손을 물어뜯거나, 각막이 손상되는 지도 모르고 눈을 비비는 그런 행동들을 하다 결국은 일찍 사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시영은 눈물을 쏟아낸다. 병원에 바이러스성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가 들어오고 그 병동이 폐쇄 격리되자 강시영은 혹여나 그 곳으로 차요한이 들어오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하지만 강시영이 환자를 돌보다 쓰러지게 되자 차요한 역시 그를 걱정해 폐쇄 병동에 들어와 문제를 해결한다.

 

좋아한다 말하고, 매일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상대방을 걱정하며, 데이트를 하면서도 혹여나 있을 위험을 피하려 하는 강시영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의학드라마 속에서도 보게 되는 멜로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의사 요한>이 강시영을 통해 그려내는 멜로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그건 그가 사랑하는 차요한이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강시영과 차요한의 멜로는 스킨십보다는 감정을 공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차요한의 상황을 애써 이해하려는 강시영에게 차요한이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애써 그러지 말라고 하고, 그럼에도 강시영이 그걸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이들이 보여주는 멜로의 방식이다. 그건 남녀 간의 사랑으로 그려져 있지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의사로서 혹은 한 인간으로서의 사랑으로도 보인다.

 

차요한이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알 수 없다고 말하자 강시영이 그렇기 때문에 그걸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사랑이야기의 차원을 넘어 보다 깊은 인간애에 대한 통찰로 다가오는 면이 있다. 우리는 과연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 이해했다 생각하지만 착각인 경우가 많고, 그것이 미디어를 통해서 오해 혹은 오역되기도 하는 문제. 우리는 공감한다 말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공감인가에 대한 질문. 그런 것들이 <의사 요한>에서는 멜로에서조차 담겨진다.

 

강시영의 차요한에 대한 애착은 그래서 함께 산을 오르다 사고를 당해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삶을 이어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겹쳐진다. 그래서 강시영이 차요한을 이해하려 애쓰는 건 마치 자신이 더 이상 아버지의 고통을 없애줄 수 없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차요한은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병을 갖고 있어 환자의 고통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 고통을 경감시키려 노력한다. 통증 그 자체가 아닌 그 사람을 들여다보려 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무통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 자신의 질환을 보여주면서 그래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던진다. 타인의 고통을 우리는 완벽히 알 수 없지만 우리가 겪는 고통이 있어 타인의 그것을 미루어 이해하려 노력한다.

 

자신이 겪는 고통 혹은 우리가 갖게 되는 어떤 결핍이나 상실감. 그것이 있어 우리는 어쩌면 타인의 고통과 결핍, 상실감 같은 걸 이해하려 노력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통증은 그저 고통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해하게 만드는 신호라고도 볼 수 있다. <의사 요한>은 이처럼 통증이라는 화두를 통해 우리네 인간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그려내는 면이 있다.(사진:SBS)

'멜로가 체질' 디테일 재주꾼 이병헌 감독

 

새로울 건 없다. 절친인 세 여성이 중심이 되는 드라마는 수없이 많은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적 캐릭터 구성이고, 그들이 어찌 어찌 하다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JTBC 금토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아예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멜로로 가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그 액면으로만 보면 우리가 그토록 많이 봐왔던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새롭다. 그건 캐릭터 구성이나 설정 같은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들을 갖고 왔지만, 이들 캐릭터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매력 덩어리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특정한 상황 속에서 보이는 의외의 말과 행동들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멜로가 체질>은 이른바 ‘말맛’이 좋다. 평이한 대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이병헌 감독은 미묘하고 디테일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예를 들어 드라마제작사에서 PPL을 담당하고 있는 황한주(한지은)와 신입사원 추재훈(공명)이 나누는 대화에서 대표를 “까칠하지만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그렇다. 보통 직원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대표라고 하면 뻔한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이 같은 표현은 그 캐릭터에 새로운 디테일을 만들어낸다. 휴식시간에 커피를 마시고 있던 황한주와 추재훈이 대표를 보고 일어서자, “휴식시간도 지켜주지 않는 회사처럼 보이게 왜 이래?”라고 말하는 대표의 캐릭터를 콕 집어내는 대사.

 

또 로맨틱 코미디에서 주고받는 대사가 마치 말로 치고받는 한 바탕 대결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그런 연출도 돋보인다. 임진주(천우희)의 대본이 마음에 들어 함께 작품을 하고 싶은 손범수(안재홍)가 돌려 말하지 않고 대본을 비판하자 이를 두고 임진주와 손범수가 치고받는 대사는 마치 핑퐁게임처럼 경쾌하다. 대본 비판이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 싸움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이 상황 속에서 “얼마나 줄거냐”는 속물적인 마음과 그럼에도 작가로서의 자존심이 부딪치는 임진주의 속내가 대사 속에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임진주가 그렇게 소심한 척 할 얘기는 하는 말 방식을 갖고 있다면(그래서 작업실에서 쫓겨나지만), 다큐 한 편이 의외로 대성공을 거둬 벼락부자가 된 이은정(전여빈)은 거의 표정 없이 직설적으로 할 이야기를 또박또박 내놓는 시원시원한 말 방식을 갖고 있다. 두 사람과 비교하면 황한주(한지은)는 다정다감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인물이다. 그래서 PPL 하나를 하기 위해서 아이돌 출신 배우를 쫓아다니며 ‘기분 좋은 귀찮음’으로 설득하는 인물.

 

임진주와 드라마 작업을 하려다 술을 마시고 함께 하룻밤까지 보내게 되는 손범수의 에피소드는 ‘드라마 작업’이 마치 ‘연애 작업’과 묘하게 병치되는 느낌을 주며 로맨틱 코미디의 핑크빛 웃음을 만들어낸다. 손범수가 임진주에게 드라마 작업을 제안하며 “같이 해요 우리”라는 대사는 그래서 그 순간부터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또 치킨 PPL을 하기 위해 애쓰는 황한주와 추재훈의 이야기가 곧바로 손범수와 임진주가 함께 치킨집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으로 넘어갈 때 그 장면에 실제 PPL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역시 이병헌 감독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PPL 갖고도 슬쩍 미소짓게 만들다니.

 

<멜로가 체질>은 익숙한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갖고 오지만 남다른 말맛으로 시종일관 빵빵 터지게 만드는 드라마다. <극한직업>에서 이미 경험한 바지만, 이병헌 감독의 코미디는 밀도가 높다. 매번 대사 하나도 살짝 뒤틀어 웃음을 주려 작정한 듯한 느낌마저 준다. 물론 그런 희극의 바탕은 비극이 있다고 했던가. 여기 등장하는 세 명의 여자들은 저마다의 비극적 현실을 희극으로 전복시켜 놓은 캐릭터들이다.

 

‘노오력’은 있어도 ‘노동’은 없다는 좋게 말해 프리랜서 현실적으로 말해 비정규직인 작가의 길을 걸어가는 임진주가 그렇고, 벼락부자가 되기는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가슴 한 구석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은정도 그러하며, 어쩌다 여덟 살 아들을 혼자 키우는 이혼녀이자 워킹맘인 황한주가 그렇다. 이들의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그래서 그들이 일과 사랑에 있어서 어떤 저마다의 행복을 찾기를 기대하게 된다. 90%의 코미디가 채우고 나면 10%의 페이소스를 담아내는 <멜로가 체질>. 많이 봤던 멜로 구도지만 새롭게 보이는, 이렇게 말맛 좋은 로맨틱 코미디라니. 참 오랜만이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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