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마이웨이’, 그래 우린 모두 꿈이 있었어

“나처럼 살지 마라.” 아버지의 이 한 마디 속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담겨져 있을까. 이제 지긋한 나이, 그 세월을 살아온 분이 자신처럼 살지 말라는 말은 사실 그 삶을 부정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것은 아픈 일이지만 그래도 자식에게만은 자신 같은 삶이 반복되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신처럼 살지 말라고 하는 말만큼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없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고동만(박서준)은 스스로를 흙수저라 부른다. 그는 오랜만에 자신의 집을 찾아온 아버지 고형식(손병호)에게 그 답답한 속내를 토로한다. “나한테 아버지처럼 살라고 하지 마라. 죽을 똥 싸면서 나 같은 놈 또 만들어야하나 잘 모르겠다. 걔가 흙수저라고 나 원망할까봐.” 하지만 흙수저 청춘의 부모 역시 당연히 흙수저 부모다. 그들 역시 스스로 흙수저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 그들에게도 꿈이란 게 있었다. 

영업부장으로 새파란 사장 앞에서 잔뜩 고개를 조아리고 갑질을 감내하는 아버지를 본 고동만은 거기서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서 상사에게 당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한 번도 못해봤던 생각.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그 역시 한때는 자신처럼 꿈이 있던 청춘이었을 거라는 생각. 그래서 소주 한 잔을 따라드리며 꿈이 뭐였냐고 묻자 아버지는 말한다. “내 꿈은 파일럿이었다. 지금은 그냥 너희들이 내 꿈이다.”

그 아버지가 자신처럼 살지 말라고 한다. “난 이제 와서 파일럿은 못해도, 넌 사고라도 한번 칠 수 있잖아.” 그리고 아들이 흙수저라고 한 그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지 허세 섞인 한 마디를 덧붙인다. “너 흙수저 아니야. 아버지 앞으로 20년은 더 벌거야. 뒤에 아빠가 딱 있으니까 한번 날아봐라. 들이받고 덤비고 깨져도,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봐.”

<쌈마이웨이>는 가진 것 없는 현실이 만들어낸 ‘쌈마이’ 청춘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청춘들의 부모들 이야기 역시 그 울림이 적지 않다. 족발집 딸이라는 사실 때문에 주만(안재홍)의 집 사람들에게 설움 받는 딸 백설희(송하윤)를 보고 억장이 무너지지만 그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주만에게 자신의 딸을 많이 사랑해주라고 부탁하는 설희 엄마가 그렇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무대에 선다는 소식에 한 달음에 달려오는 최애라(김지원)의 딸바보 아빠가 그렇다. 

가진 것 없이 키워서 흙수저가 되어 현실에 나간 자식들 앞에서 이 부모들은 모두 죄인처럼 살아간다. 자신은 꿈을 지워버리고 흙수저 현실을 살아가며 자식만큼은 그 삶을 반복하지 않고 그들의 꿈을 키워가길 원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흙수저라는 말 속에 이미 들어 있듯이 그 굴레는 고스란히 자식으로 대물림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쟁적인 현실은 이제 정년퇴직을 앞둔 부모 세대가 계속 자식들을 위해 취업전선에 나서야 하고, 그 자식들 역시 이렇게 가중된 경쟁 속에서 취업난을 겪는 이중고로 이어지고 있다. <쌈마이웨이>의 고형식이 아들 고동만에게 던지는 격려가 슬프고도 먹먹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우린 모두가 꿈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현실을 알아버리고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 꿈은 이제 아빠, 엄마가 되어간다. 자식들을 대신 꿈이라 치부하며.

‘쌈’, 욕먹을 캐릭터조차 공감하게 만드는 안재홍 연기력

타고난 배려심일까 아니면 쓸데없는 오지랖일까.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김주만(안재홍) 대리가 장예진(표예진) 인턴을 대하는 태도는 한편으로는 공감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화가 난다. 6년 간을 거의 사실혼 관계로 지낸 조강지처 백설희(송하윤)가 있지만 끝없이 대시하는 장예진에게 철벽을 치지 못한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접촉사고를 당한 장예진이 도움을 요청하자 김주만은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 물론 사고를 낸 상대 남자들에게 당할 위기에 처한 여성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김주만의 입장은 어찌 보면 ‘회사 동료’로서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도움을 주고 굳이 집까지 그녀를 바래다주고 다리를 저는 그녀를 부축해 문 앞까지 데려다주다가, 문 앞에 가득 쌓인 택배박스를 힘들게 옮기려는 그녀를 그냥 보지 못하고 도와주는 모습은 너무 과하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김주만이라는 인물의 캐릭터다. 사실 6년 전 그가 백설희와 가까워지게 된 이유도 바로 그런 타인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배려심 때문이었다. 같은 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백설희를 도와주다가 결국 연인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됐던 것. 

그래서 김주만은 자신에게 대시하는 장예진의 모습에서 당황스럽게도 자꾸만 6년 전 백설희의 모습이 겹쳐지는 걸 발견한다. 그는 백설희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도 스마트폰으로 추신수가 출전한 메이저리그 경기를 본다. 그런 그에게 백설희가 서운함을 드러내자 그는 말한다. “6년을 만났는데 어떻게 눈만 보고 있어. 무뎌지는 거지.”

김주만과 백설희의 관계는 <쌈마이웨이>의 이제 막 1일을 선언한 고동만(박서준)과 최애라(김지원)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서로 눈만 쳐다봐도 꿀 떨어지는 고동만과 최애라의 관계가 보는 이들마저 가슴 설레게 만든다면, 김주만과 백설희의 관계는 그 달달했던 시간들이 지나간 쓸쓸함을 담는다. 어쩌면 고동만과 최애라의 그 죽고 못사는 관계도 6년 정도가 지나고 나면 김주만과 백설희처럼 데면데면해질 지도 모른다. 

그래서 <쌈마이웨이>가 담아내려 하는 건 지금 막 스파크가 터지는 사랑의 시작점만이 아니다. 그것은 나아가 그 사랑이 어떻게 시련을 맞게 되고 그럴 때 우리들은 어떤 노력과 결정들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들까지다. 김주만과 백설희의 관계는 그래서 이 달달한 청춘 로맨스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그들은 과연 이 고비를 잘 넘어갈 것인가. 

주목할 건 이 김주만이라는 현실 남친 캐릭터를 소화해내고 있는 안재홍이라는 배우의 발견이다. 물론 <응답하라 1988>에서 ‘봉블리’라 불리는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주목받은 배우였지만 확실히 이번 <쌈마이웨이>는 그가 가진 연기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어찌 보면 ‘욕먹을 캐릭터’지만 그것조차 어느 정도는 공감하게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쌈마이웨이>는 현실이 부여한 어떤 틀에 박힌 길에서 소외되어 ‘쌈마이’ 취급을 받아도 ‘마이웨이’를 걷는 건강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니 김주만이라는 캐릭터에게서도 <청춘의 덫> 식의 틀에 박힌 변심이 아닌 무언가 이들만의 해결책이 제시되길 기대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하고 묻던 <봄날은 간다>의 대사가 아닌 <쌈마이웨이>만의 길을 걷길.

웃긴데 섬뜩하고 짠하기까지, ‘품위녀’의 정체가 궁금하다

제목은 <품위 있는 그녀>인데, 거기 등장하는 이들은 그다지 품위 있어 보이지 않는다. 강남의 부유층으로 살아가는 그녀들은 한정판 명품백에 패션모델이나 입을 듯한 옷을 입고 브런치를 즐기거나 요가를 하고 마음수련 모임을 갖기도 한다. 그건 멀리서 보면 꽤 있어 보인다. 심지어 품위까지.

'품위있는 그녀(사진출처:JTBC)'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이 살아가는 진면목을 들여다보면 품위는커녕 돈이면 다 된다는 천민자본주의의 천박함이 묻어난다. 앞에서는 언니 동생 살갑게 굴지만 뒤에서는 그 언니의 남편과 바람이 나고, 꽤 그럴 듯한 레지던스를 갖고 있지만 대담하게도 그 곳에서 내연남과 불륜에 빠진다. 사장 직함을 갖고 있는 남자들은 골프를 치며 바람 필 궁리나 하고 있고, 그 남자들의 아내들 역시 성형외과에서 보톡스를 맞거나 요트를 빌려 젊은 남자들과 한바탕 질퍽한 술판을 벌인다. 이들에게서 품위를 찾기는 어렵다. 

그들과는 조금 다른 것처럼 보이는 우아진(김희선)도 크게 보면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디자인을 전공해 스스로 악세사리를 만들어 달고 다니지만 그건 예술에 대한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가를 발굴해 키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예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가치를 높여 더 비싼 값에 작품을 소유하려는 투자의 의미가 더 강하다. 자신이 그렇게 키운 팝아트 화가가 남편과 바람이 나는 줄도 모르고. 

시아버지인 안태동(김용건) 회장의 생신파티에서 그 우아해 보이는 우아진이 걸맞지 않게 구성진 트로트를 부르며 우스꽝스런 춤을 추는 장면은 그래서 멀리서 그럴 듯하게 보이는 이들의 삶이 가까이서 보면 코미디에 가깝다는 걸 제대로 그려낸다. 그들의 삶이 위악스럽게 여겨지고 나아가 어딘가 섬뜩한 느낌을 주는 건 그 전혀 다른 이중성 때문이다. 

그 저택으로 안태동의 간병인으로 들어온 박복자(김선아)는 품위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다. 구성진 사투리를 쓰는 모습에 뽀글 파마를 하고 명품백과는 전혀 인연이 없어, 안태동이 명품백을 사주자 화장실에서 소리 내어 눈물까지 흘리는 인물이다. 애초부터 그저 간병인이 아니라 이 저택의 안주인을 노리고 들어온 그녀는 절실하다. 온 몸을 던져 자신을 내보내려는 이들과 대항하고, 저택의 안주인이 되려 제 몸을 다치게 하는 자작극을 벌이기까지 한다. 

허술한 듯 보이는 인물이 어느 순간 정색을 하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저는 하녀가 아닌데요”라고 말하는 모습은 섬뜩하다. 그것은 간병인이라는 위장이 벗겨지는 순간이면서 동시에 늘 상명하복으로 체계화되어 있던 이 저택의 시스템이 위협을 받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내쫓으려는 이 저택의 며느리들 앞에서, 그녀는 안태동 회장을 온 몸을 던져 구하는 자작극을 벌인 끝에 회장의 마음을 돌린다. 얼굴에 멍투성이인 그녀가 병원을 박차고 나와 저택으로 돌아온 후 그 곳을 활보하고 다니는 장면은 그래서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부유층 그녀들이 그 위악스런 모습으로 웃음을 주면서도 동시에 어떤 불편한 섬뜩함을 주는 반면, 이 가난하고 처절한 박복한 여인의 모습은 정반대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겉으로 보면 섬뜩한 미저리의 이미지지만 어딘지 이 절박함에서 짠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도대체 이 짠함의 정체는 뭘까. 

그것은 이 저택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사실은 우리가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많은 현실들을 거의 축소해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택의 권력 시스템을 보라. 가진 자들과 못 가진 자들의 경계가 명확하고,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신봉건주의적 세계가 그 안에 펼쳐져 있다. 태생적으로 부자의 자식으로 태어난 이는 회사에서는 잠이나 자고 내연녀와 바람이나 피면서도 잘 살아간다. 반면 그 못가진 채 태어나 신분을 뛰어 넘으려 하는 자는 몸은 물론 심지어 영혼까지 팔아야 한다. 

<품위 있는 그녀>는 그 장르가 그래서 복합적으로 걸쳐져 있다. 이 강남의 부유층들이 하는 짓들은 풍자적인 의미로 웃음이 터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극의 한 편을 본 것마냥 마음이 불편해지고, 그 세계로 뛰어든 박복자는 공포영화의 한 인물처럼 섬뜩하지만 또 그 절박함에서 짠한 비극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딱 그렇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웃기지만 불편하고 섬뜩하지만 짠한 그 현실이 <품위 있는 그녀>를 자꾸만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시청자들은 김은숙의 로맨틱한 멜로에 이병헌을 허용할 수 있을까

누가 뭐래도 김은숙 작가는 지금 현재 가장 대중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드라마 작가다. <태양의 후예>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까지 그 영향력을 확보한데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의 대성공으로 대중성과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작가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사진출처:영화<싱글라이더>

그리고 김은숙 작가가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작품으로 1900년대를 배경삼아 우리가 기억해야할 의병들의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보도는 그 기대감을 더욱 높여 놓았다. 개항 시절, 그 이질적인 문화들이 혼재하는 시대가 먼저 드라마틱하면서도 로맨틱한 작품을 선보이는 김은숙 작가와 너무나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발표와 함께 팬들은 저마다 그 주인공을 두고 가상 캐스팅을 벌이기도 했다. 강동원, 조인성, 김수현 등등 쟁쟁한 연기자들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이런 예상과 달리, 그 주인공으로 낙점을 받은 연기자는 이병헌이었다. 

이병헌이 <미스터 선샤인>의 남자주인공으로 확정되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이병헌이라는 배우에게는 아직도 지난 사생활 문제로 논란이 되어 생긴 이미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안은 끝났지만, 배우에게 남은 이미지는 쉽게 사라질 수 없었다. 

물론 그런 논란이 터진 후에도 이병헌은 여러 작품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줘 사생활과는 별개로 배우로서 인정받기도 했다. 실제로 <내부자들>, <마스터> 그리고 <밀정>까지 그가 최근 출연했던 영화들 속에서 이병헌은 확실히 세계적인 배우의 면모를 톡톡히 과시했다. 사생활에 대한 비판 여론은 여전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출연한 영화가 그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던 건 그 연기력이 한 몫을 차지했다.

하지만 시시껄렁한 건달이나 희대의 사기꾼 혹은 독립군 수장 역할은 연기력을 통해 넘어설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아직까지 멜로는 쉽지 않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 <싱글라이더>였다. 물론 대작이라 할 수는 없는 작품이지만 <싱글라이더>는 이병헌이라는 거물 배우와는 상반되게 저조한 기록을 남겼다. 이 부분이 김은숙 작가의 차기작인 <미스터 선샤인>에 남는 우려다. 과연 시청자들은 김은숙 작가 특유의 로맨틱한 멜로에 이병헌을 허용할 수 있을까. 

김은숙 작가처럼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작가가 왜 차기작에 분명 논란과 소음이 일어날 이병헌을 캐스팅했는가 하는 데 대한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것은 작품의 배경이 이병헌 같은 국제적인(?) 인물과 맞아 떨어지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김은숙 작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신미양요 때 의병이었던 남자 주인공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훗날 자신을 버린 조국으로 돌아와 주둔하며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영어를 할 줄 아는 배우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런 기능적인(?) 요소가 가진 장점만큼 이병헌이라는 배우에게 드리워진 불편한 이미지의 부담감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작품이 나오지 않아 어떤 결과가 이어질 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심지어 ‘갓은숙’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인공들을 시대의 아이콘으로까지 만들어놓는 김은숙 작가가 이번 이병헌을 캐스팅해 그 로맨틱한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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