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옛글들/드라마 곱씹기 (2288)
주간 정덕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들 올해는 사극은 약진하고 현대극들은 주춤했던 한 해였다. 처음에는 월화 드라마를 ‘주몽’이 잠식하더니, 주말 드라마에 ‘연개소문’과 ‘대조영’이 포진하고, 수목 드라마마저 ‘황진이’가 장악하면서 현대극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과거 형태의 구태의연한 답습을 거듭하는 트렌디 드라마는 더더욱 살아남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꿋꿋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드라마들이 있다. 시청률과는 무관하게 특별한 시도와 보다 높은 완성도를 무기로 이들은 우리네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포스트 트렌디 드라마’의 징후를 읽게 해준 그 드라마들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웰 메이드 드라마, ‘연애시대’ ‘연애시대’가 끝난 지 꽤 ..
2006, 욕하면서 봤던 드라마 욕하는 것만큼 쉬운 비평이 없다고 한다. 흠을 잡아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2006년 시청률 상위의 드라마들은 대부분 욕을 먹었다는 것. 그것은 분명 그럴만한 소지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쩌면 욕을 먹는다는 건 그만한 기대감이 컸다는 반증은 아니었을까. 올 가장 화제가 된 SBS‘하늘이시여’, KBS‘소문난 칠공주’, MBC‘주몽’을 예로 들어, 많은 욕을 먹었으나 시청률은 높았던 드라마들의 논쟁점과 완성도, 중독성 등을 체크해보자. 혹 욕에 가려져 보지 못한 미덕을 발견하게 될지 누가 아는가. 어쩌면 시청률과 욕의 상관관계가 밝혀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늘이시여’, 논란드라마의 정수를 보여주다 지난 12월13일 민주언론시민연..
퓨전사극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역사를 날 것 그대로 꺼내 보여준다면 재미있을까. 예상은 부정적이다. 그래서일까. 역사에 상상력의 날개를 달고 퓨전사극이 각광받는 시대가 됐다. 퓨전사극의 계보는 과거 ‘다모’, ‘대장금’, ‘해신’ 등에서부터 내려오고 있지만 최근 열풍의 진원지는 역시 ‘주몽’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주몽’이라는 강력한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하는 소재에, 역사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고 더 전개가 자유로워진 퓨전사극이라는 형식이 맞물린 결과다. 결과적으로 시청률면에서 승승장구한 주몽은, 최근 연장방영에 대한 논란들마저 연착륙시켰다. 이례적으로 MBC 신종인 부사장은 인터뷰를 통해 “그간 거듭돼온 방송사의 고무줄편성에 대한 시청자들의 우려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며, “주몽 만큼은 끝까지 완성도 ..
환상 속의 커플이 환상적인 커플이 되다 ‘환상의 커플’은 웃음이 드라마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를 보여주었다. 드라마의 완성도나 리얼리티 같은 걸 잠시 접어두고 우리는 드라마 내내 웃음을 터트리다가 어느새 종영을 맞았다. 어찌 보면 조금은 허탈할 수 있는 이 웃음폭탄은 그러나 마지막에 와서 1%의 눈물을 보여주면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공감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한예슬이라는 연기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나상실 혹은 조안나라는 캐릭터이다. 환상적인 커플, 환상 속의 커플 드라마 종영의 시점에 와서 ‘환상의 커플’이란 드라마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는 걸 알게된다. 그것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를 못 잡아먹어 으르렁거리면서도 차츰 마음을 열게되는 나상실과 장철수(오지호 분), 이 안 어울..
퓨전사극 속 사제간의 인생은 반복된다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퓨전사극, ‘황진이’와 ‘주몽’에서는 사제간의 반복되는 인생유전이 독특한 재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주인공에게 카리스마를 부여하고, 극의 대결구도를 만들어주며, 주인공이 성취해야할 일에 대한 목적의식을 부여하기도 한다. 황진이-백무 vs 부용-매향 :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 부용(왕빛나 분)은 황진이에 대해 칭찬을 하는 스승 매향(김보연 분)이 밉기만 하다. 그런 부용에게 매향은 말한다. “그렇게 명월이가 이기고 싶으냐? 내가 그 맘을 잘 안다. 천재는 늘 노력하는 준재를 가슴아프게 만드는 법이지.”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그것은 ‘황진이는 천재며 부용은 준재’라는 것과 ‘그런 마음을 매향은 잘 안다’는 것. 매향 역시 저 백..
무대를 탈피한 개그로 돌아온 웃음충전소 KBS에서 본격 코미디를 자처하며 새로 시작한 ‘웃음충전소’는 그간 개그의 대세로 자리잡은 공개무대개그의 시공간적 한계를 넘어서며 신선한 재미를 주. 무대개그의 장점은 즉석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단점은 공간적 제약이 있어 연극적인 상황설정에 의한 개그가 주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또한 정해진 시간 내에 개그를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시간 흐름과 변화를 통한 개그에는 어려움이 있다. ‘웃음충전소’는 바로 그 어려움을 좀더 정교한 세트와 야외 촬영의 교차편집으로 넘어서면서 카메라가 자유로워진 지점에서 새로운 웃음을 유발한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 ‘타짱’은 긴박감 넘치는 영화 ‘타짜’의 분위기를 개그 속으로 끌어들인다. 화면은 긴박한 배경..
달라진 방송환경과 붕괴되는 아나운서라는 직종 그들은 연예인인가, 아나운서인가. 혹은 아나운서 출신의 연예인인가, 혹은 연예인인 아나운서인가. 최근 들어 끊이지 않는 아나운서의 정체성 논란은 마치 겉으로 보기엔 아나운서 자신들만의 문제처럼 보인다. 대부분 아나운서들의 연예활동(물론 그 영역을 어디까지 봐야할지 알 수 없지만)에 대해 그것이 적절하냐 아니냐에서 논란이 야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신력이라는 도덕적인 잣대만을 아나운서들에게 들이대는 이러한 접근방식으로는 지금 상황의 해결책을 제시하진 못한다. 사실 이 문제의 핵심은 아나운서들의 문제라기보다는 달라진 방송환경의 탓이 크기 때문이다. 달라지지 않은 것과 달라진 것 먼저 아나운서의 위치에 있어 과거와 비교해 달라지지 않은 것과 달라진 것을 구분해야..
만화적 감수성과 드라마의 만남 ‘풀 하우스’, ‘궁’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만화와 드라마와의 공생 관계는 이제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올드 보이’, ‘타짜’, ‘아파트’, ‘다세포소녀’, ‘데스 노트’ 등의 성공은 만화가 가진 상상력의 힘과 탄탄한 드라마성, 그리고 캐릭터에다가 그 자체로서 영상화가 가능한 비주얼의 힘이 더해져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원작 만화의 매니아들이라면 이러한 작품들이 원작만 못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화를 보지 못한 대부분의 시청자, 혹은 관객들은 영화, 드라마를 통해 그 존재를 알게 되고 만화를 찾아보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런 작품들의 성공이 단순히 만화가 가진 그런 장점들 때문만일까. 더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에게 만화적 감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