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화신>, 공효진표 로코에 호불호 나뉘는 까닭

 

공블리의 마법은 또 통할 것인가. SBS <질투의 화신>은 이제는 하나의 브랜드화 되었다고 해도 좋을 공효진표 로맨틱 코미디. 굳이 공효진표 로맨틱 코미디라고까지 표현하게 된 건 그 뚜렷한 특징과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즉 평범한 듯 보이지만 바로 그런 점들 때문에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좌절된 현실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의지의 여주인공은 의외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토록 예쁘고 귀여울 수 없는 여자 주인공의 면면이 처음에는 웃다가 후에는 빠져버리는 마법을 발휘한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프로듀사>에서 새내기 후배PD인 백승찬(김수현)과 술에 취해 미묘한 관계와 분위기를 만들어내던 탁예진이라는 열혈 PD 캐릭터가 그랬고,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굉장히 시크한 면들을 드러내며 정신적인 고통에 빠져 있는 장재열(조인성)을 보듬어주던 지해수라는 정신과 의사가 그랬으며 공블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최고의 사랑>의 구애정의 사랑스러움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파스타>에서 예 쉐프!”를 연발하며 일도 사랑도 쟁취하는 서유경이란 캐릭터는 <질투의 화신>의 표나리라는 기상캐스터와 유사한 면면이 보인다.

 

같은 서숙향 작가와 함께 하는 작품이기 때문일 수 있지만, <질투의 화신>의 표나리가 방송국에서 기상캐스터라는 위치에서 겪는 설움은 <파스타>에서 서유경이 라스페라라는 레스토랑 주방에서 겪는 어려움과 겹쳐진다. 또한 서유경이 사랑에 빠질 유명한 스타기자지만 성격은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이화신(조정석)이라는 인물에게서 <파스타>의 최현욱 셰프를 떠올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이화신 역시 표나리의 매력에 빠져들 게 될 것이다. 공효진표 로맨틱 코미디물이 그러하듯이.

 

이처럼 어떤 면에서는 공식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공효진표 로맨틱 코미디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질투의 화신> 첫 회는 물론 이 표나리라는 인물의 힘겨운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지나치게 기상캐스터라는 직업을 과장한 면이 있고, 그녀의 엉뚱발랄함을 드러내기 위해 지나치게 남자주인공인 이화신의 가슴을 만지는 장면을 반복해 들이댄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웃음 지을 수 있는 건 전적으로 공효진이 갖고 있는 연기자로서의 매력과 그녀 특유의 자연스러운 연기 덕분이다.

 

<질투의 화신>의 이런 전형적이지만 충분히 즐길만한 로맨틱 코미디는 의외로 강점이 있다. 특히 사랑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세계가 함께 펼쳐지는 로맨틱 코미디는 현실성을 부가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오래도록 공효진표 로맨틱 코미디를 봐왔던 시청자들이라면 너무 비슷한 패턴 안에 들어가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이 익숙함은 <질투의 화신>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약점도 된다.

 

물론 첫 회에 모든 걸 보여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질투의 화신>에는 의외로 고정원(고경표) 같은 극강의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인물도 존재하니 이야기는 언제든 변화할 수 있고 캐릭터도 그 속에서 다른 면면을 드러낼 수 있다. 게다가 이 작품은 공효진만 있는 게 아니다. 조정석이 연기하는 화신이라는 조금은 까칠한 기자 캐릭터가 주는 매력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연 어떨까. <질투의 화신>은 공효진표 로맨틱 코미디의 또 다른 성공으로 남을 수 있을까.

아슬아슬한 <W>, 든든한 이종석-한효주 멜로

 

이건 마치 달리고 있는 자전거 같다. 멈추면 넘어진다. 그러니 쉬지 않고 패달을 밟아야 한다. MBC 수목드라마 <W>가 처한 입장이다. <W>는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정신없을 정도의 속도로 전개되는 그 힘에 의해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개연성과 맥락을 지켜나가는 것이 드라마에 대한 작가와 시청자들 사이의 룰이지만, 이 작품은 웹툰이라는 설정으로 이 룰을 비켜나간다. 그래서 사실상 어떤 이야기든 그것이 뜬금없더라도 갑자기 집어넣을 수 있다.

 

'W(사진출처:MBC)'

웹툰을 그린 오성무 작가(김의성)가 만화 속 주인공인 강철(이종석)과 이 모든 걸 되돌리고 해피엔딩을 만들려하지만 갑자기 각성한 진범이 오성무의 얼굴을 빼앗고 그를 오히려 자신의 아바타이자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설정은 일반적인 드라마에서는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된다. 또 그렇게 작가와 작중 악역인 진범이 역전되어 작품 속 악당이 작가를 움직여 웹툰의 세계를 지배하려 하고, 그래서 뜬금없이 강철의 일가족 살해사건 현장에 마치 강철이 아버지와 다툼을 벌이다 모두를 죽이게 한 것처럼 대사를 끼워 넣어 그를 진범으로 몰아버리는 것도 이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그건 웹툰의 세계이고, 웹툰이란 외부에서 작가가 어떻게 그려 넣는가에 따라 달리지는 피조물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W>의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 낯선 드라마의 낯설고 맥락 없는 이야기 전개를 계속 바라보는 시청자는 어느 허구의 비등점 이상에 도달하게 되면 드라마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릴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가가 원하면 언제든 이야기를 바꿀 수 있는 개연성과 맥락의 룰이 사라져버린 너무나 자의적인 세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성무가 자신의 얼굴을 진범에게 빼앗기는 장면은 충격적이지만 너무 인위적인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야기하면 <W>는 강했다. 그 자의적이고 맥락 없으며 인위적인 이야기임에도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힘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멜로다. <W>에서 벌어지는 총기난사사건이나 추격전, 진범과 강철이 벌이는 대결과 그 사이에서 오연주(한효주)가 강철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들 같은 황당한 사건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도 그 밑바닥에는 이 이야기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멜로 판타지가 있었다는 것.

 

진범이 강철을 살인자로 몰아세우고 그 웹툰의 세계를 지배하려는 이야기 속에서 시청자들이 빠져들게 되는 건 그 강철 옆을 마치 수호천사처럼 배회하는 오연주가 그와 함께 이 난관을 넘어서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 힘겨운 싸움 속에서 서로 가까워졌다 잊혀졌다 다시 나타나 사랑이 이어지는 그 멜로 판타지에 몰입되게 된다. 그것은 개연성의 법칙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게 되고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는 시청자들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지는 추동력이다.

 

시작부터 마구 패달을 밟아 어느 곳으로든 달려가기 시작한 <W>는 그래서 개연성 없이 달려가는 세계의 공허함을, 패달을 계속 밟았으면 하는(두 사람의 사랑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그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채워나간다. 시청자들은 조금 맥락이 없어도, 또 황당해 보여도 갑자기 오연주가 나타나서라도 강철을 구하고, 또 그들의 사랑이 이뤄지고 진범이 처단되어 해피엔딩이 되기를 바란다. 그 오연주와 강철 사이에 만들어진 강력한 멜로 판타지는 그래서 어느 곳으로 튀든 이 <W>라는 자전거가 계속 패달을 밟아줬으면 하는 욕망을 만들어낸다. <W>라는 드라마는 그래서 아슬아슬하지만 그 빈 부분을 오연주와 강철의 멜로가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닥터스>, 다채로워진 박신혜 자연스러워진 김래원

 

섬세하고 따뜻했던 드라마 덕분인가. SBS <닥터스> 종영에 즈음해 되새겨보면 박신혜와 김래원에게 이 작품은 한 뼘 더 성장하게 해준 고마움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의학드라마지만 의술에 머물지 않았고, 멜로드라마지만 사적인 사랑을 넘어 휴머니즘까지를 담아낸 <닥터스>. 자칫 그 섬세함이 드러나지 않으면 밋밋해질 수 있는 관계와 구도들을 생생하게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연기자들의 공이다.

 

'닥터스(사진출처:SBS)'

박신혜가 연기한 유혜정은 결국 복수의 감정을 사랑으로 이겨낸 인물이다. 그러니 이 내적 갈등을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키는 건 이 연기가 가진 중요한 지점이다. 그녀는 과거 할머니의 죽음 때문에 진명훈 원장(엄효섭)에 대한 증오심을 갖고 있지만 의사라는 직업으로서 그를 살려내는 길을 택한다. 그녀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홍지홍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홍지홍(김래원)과 함께 수술실에 들어가 진명훈 원장의 위험천만한 종양수술을 성공시키는 장면은 이 작품의 주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만일 홍지홍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명훈 원장의 수술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은 그녀 안에 자리한 과거의 부채감과 증오를 극복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 장면은 그래서 <닥터스>가 가진 멜로구도와 복수극 그리고 의학드라마라는 다채로운 장르적 이야기들이 하나로 묶여지고 또한 풀어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의사로서의 프로페셔널한 냉철한 모습과 할머니의 죽음 앞에 오열하고 분노하는 한 서민의 모습 그리고 홍지홍 앞에서는 사랑스런 여자로 변모해가는 그 모습들이 박신혜라는 연기자를 통해 다채로운 결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것은 확실히 지금껏 그녀가 해온 캐릭터들에서 진일보한 면모다. 어딘지 여전히 소녀 같고 교복을 입어야 잘 어울릴 것 같은 이미지지만 이제 그녀는 그 위에 프로페셔널한 전문직 여성의 카리스마와 사랑에 빠진 여성의 달콤함을 얹었다. <닥터스>는 그녀의 이런 연기자로서의 성취가 아니었다면 결코 잔잔하지만 묵직하며 따뜻한 그 감동을 전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통해 박신혜라는 연기자가 다채로운 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김래원은 훨씬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서게 됐다. 본래 <넌 어느 별에서 왔니><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같은 풋풋한 청춘 멜로가 잘 어울리던 연기자였지만 언젠가부터 김래원은 하는 역할들이 너무 무거웠던 게 사실이다. <천일의 약속>의 지형이나 <펀치>의 박정환은 그래서 그에게는 너무 힘이 들어간 듯한 모습으로 그려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닥터스>의 홍지홍은 마치 그간의 무거움을 털어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훨씬 편안해지고 자연스러워진 김래원의 면면들을 제대로 끄집어내줬다. 어찌 보면 선생과 제자의 결코 나이차가 적지 않은 설정의 사랑이지만 김래원 특유의 풋풋함과 능글맞음이 적절히 조화된 모습은 그 어색함마저 설렘으로 바꿔놓았다.

 

좋은 작품은 연기자들 또한 성장시킨다. <닥터스>는 그래서 연기자로서의 박신혜와 김래원의 성장점이 될 만한 작품이다. <닥터스>가 보여줬던 그 따뜻함과 유쾌함과 진지함이 모두 연기자들이 잘 소화해낸 캐릭터들로부터 나왔다는 것이 그걸 증명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좋은 작품이었고 좋은 캐릭터였으며 좋은 연기자들이었다

<닥터스>, 박신혜와 이성경의 변화가 의미하는 것

 

이제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는 종영을 앞두고 있다. 20%를 넘긴 최고시청률. 최근 지상파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그 능선을 <닥터스>는 어떻게 넘었던 걸까. 흔한 의학드라마처럼 보였지만, 또 달달한 멜로드라마처럼 보였지만 <닥터스>는 여타의 의학드라마와도 또 멜로드라마와도 다른 결을 보여줬다. 그건 관계를 통한 인물의 변화와 성장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닥터스(사진출처:SBS)'

<닥터스>의 여자주인공인 유혜정(박신혜)과 그녀와 대립적 위치에 서 있던 진서우(이성경)의 변화와 성장은 이 드라마의 색다른 주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 때문에 불량하게 살아가던 유혜정은 할머니인 강말순(김영애)과 선생님 홍지홍(김래원)을 만나 좋은 영향을 받으며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 좋은 영향에는 친구였던 진서우 또한 일조한 면이 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던 선생님 홍지홍과 유혜정이 가까워진 것을 본 진서우는 그 질시가 그녀를 엇나가게 만든다.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유혜정의 비극(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현실과 마주하게 된)은 그녀가 의사가 되게 한 원동력이 된다. 드라마는 좋은 영향뿐만 아니라 나쁜 영향도 어떤 면에서는 그 사람에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게 의사가 된 유혜정은 진서우의 아버지인 진명훈(엄효섭)에 대한 복수를 꿈꾸게 되면서 본인도 고통스러워진다. 그런 그녀를 다시 되돌리는 건 다름 아닌 홍지홍의 사랑이다. 홍지홍은 복수가 그녀 자신도 파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끝내는 건 진서우의 변화다. 늘 대립하는 위치에 서 있으면서도 친구로서의 관계 또한 유지해온 진서우는 유혜정을 통해 아버지의 잘못을 알게 되고 결국 그녀에게 사죄한다. 진서우라는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유혜정 역시 변화하고 성장하게 됐다는 것.

 

사실 이런 화해적인 결말이 조금은 미진함을 남길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봐왔던 많은 드라마들 속에서 악역의 최후나 몰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닥터스>가 본래 드라마를 통해 하려던 이야기는 복수극이 아니다. 그건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영향을 받고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걸 뉘우치면서 성장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극적 갈등이 드라마의 관건이라고 얘기되는 현실에서 이 같은 화해적인 선택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닥터스>는 극으로 치닫는 이야기보다는 그래도 희망적인 화해를 담는 이야기를 선택했다. 그래서 <닥터스>가 얻어낸 것은 특유의 따뜻함이다. 아마도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쳤던 건 바로 그 위로와 위안의 느낌이 충분했던 따뜻함이 아닐까.

 

무엇보다 연기자로서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박신혜와 어깨에 힘을 뺌으로써 훨씬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 김래원의 공이 크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 윤균상과 이성경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의학드라마지만 의술 그 자체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지는 관계의 치유를 보여주었고, 멜로드라마지만 남녀 간의 사랑만큼 인간과 인간의 휴머니즘을 보여준 하명희 작가의 따뜻한 대본의 힘은 힘겨운 현실을 마주한 서민들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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