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스>의 질문, 미래를 위해 과거를 덮어도 될까?

 

모든 진실이 드러났다. 유혜정(박신혜)의 할머니 강말순(김영애)의 죽음은 분명 진명훈(엄효섭)의 과실이 있었다. 진명훈도 그걸 인정했고 유혜정에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유혜정은 더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과라는 것이 단 한 톨의 진심도 들어가 있지 않은 말뿐인 사과였기 때문이다.

 

'닥터스(사진출처:SBS)'

하지만 뒤늦게 드러난 진실로는 법적으로 진명훈을 단죄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이미 시효가 모두 지나버린 사건들이고, 당시 유혜정의 아버지가 합의금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런 과실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뜻도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진실이 밝혀졌지만 합당한 처벌이나 진심어린 사과가 이어지지 않는 현실. 유혜정은 그 앞에서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멜로라는 색깔을 전면에 갖고 있는 드라마지만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가 현실에 던지고 있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네 법 정의의 현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료사고에 있어서 피해자인 환자 가족들이 병원이라는 거대한 조직과 맞서 싸워 이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법을 오히려 악용해 약자인 환자 가족들이 끝까지 싸울 수 없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렇게 진실을 규명해낸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집안이 몰락하고 가족들의 미래가 파괴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닥터스>의 유혜정에게 그녀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홍지홍(김래원)그만하면 안돼냐고 묻는 건 그래서다. 그 현실을 아니까. 유혜정은 과거 할머니가 수술 중 사망했을 때 합의가 아니라 싸웠어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홍지홍은 만일 그녀가 그랬다면 지금 현재의 그녀는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 싸움이 그녀의 미래까지 파괴했을 거라고. 아픈 이야기지만 이게 우리네 현실이 아닌가.

 

<닥터스>에는 왜 우리네 현실에서 잘못을 저지른 자들은 더 잘 살아가고 피해자들은 더 어렵게 살아가게 되는가에 대한 날카로운 현실인식이 들어있다. 그것은 법 정의가 가진 자들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없는 이들은 그걸 실현하려 해도 없기 때문에 자신의 삶 자체를 오히려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그 사람의 미래를 위해 과거를 덮어도 되는 것일까.

 

유혜정이 하려는 일은 복수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규명이고 그녀가 바라는 건 처단이 아니라 진심어린 사과. 그러니 마치 유혜정이 하려는 것을 복수에 눈이 멀어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로 보는 건 잘못된 일이다. 그걸 홍지홍도 알고 있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그는 그녀가 진실규명을 위해 나섰다 다시 상처를 받는 걸 원치 않는다. 그건 아마도 이런 상황에 처한 보통 사람들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잘못된 일을 들춰 바로잡으려 하는 일을 복수라는 잘못된 욕망으로 치부하며, ‘참고 사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일이고, 내가 잘 되는 것이 진정한 복수라는 식의 체념적 사고는 어찌 보면 우리네 사회에 끊이지 않고 반복해서 터져 나오는 사건 사고들의 근본적 원인이 아닐까. 이처럼 진실규명을 하는 것이 그 사람의 미래까지 걸어야 하는 현실에서 잘못은 고쳐지기 보다는 덮여질 테니. 가진 자들의 돈과 권력으로.

 

<닥터스>의 유혜정이 하려는 진실규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못내 궁금해지는 건 이처럼 이 사안이 우리네 현실의 중차대한 문제들을 끄집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과연 바라는 대로의 진실규명과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낼 수 있을까. 자신을 파괴하지 않고도. 과연?

<굿와이프>, 불륜 미화인가 미러링 효과인가

 

제목은 <굿와이프>인데 불륜은 무슨 의미일까. tvN <굿와이프>의 선택은 자못 도발적이다. 이 드라마는 우리네 정서에 통상적으로 좋은 아내라면 떠올리는 그런 이미지에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는 듯하다. 김혜경(전도연)이 바로 그 장본인이다. 그녀는 남편의 성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자신의 조사관인 김단(나나)과 남편이 과거 관계를 맺은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결국 참지 못한다. 남편과 별거를 선언하고 호감을 갖고 있던 서중원(윤계상)과 마음을 나누고 불륜까지 감행한다.

 

'굿와이프(사진출처:tvN)'

그것은 분명 불륜이지만 시청자들은 김혜경의 이런 선택에 대한 공감이 적지 않다. 그녀가 사실 할 만큼 했다는 반응이다. 정치적 야심을 갖고 심지어 아내의 좋은 이미지를 이용하려는 남편이지만 그 남편을 위해 기꺼이 그 옆자리에 서서 손을 잡아주었던 그녀다. 그런 선택은 물론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가정만은 꼭 지키고 싶은 마음에 남편 이태준(유지태)한번 실수라고 한 말을 믿고자 했던 것. 하지만 김단과의 관계를 알고 난 그녀는 그것이 단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더 이상 남편에게 휘둘리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이렇게 달라진 관점으로 드라마를 다시 들여다보면 이 드라마가 굳이 <굿와이프>라는 제목을 통해 그리려는 게 통상적인 좋은 아내상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결국 이태준도 그를 뒤에서 후원하는 정치세력도 김혜경의 좋은 아내이미지를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김혜경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일이다. 다만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걸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좋은 아내란 결국 이미지이고 허상일 뿐이다. 솔직한 내면으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희생되고 희생을 강요받는 한 여성의 불행한 삶이 보인다.

 

이것은 어찌 보면 우리네 사회에서 늘 좋은 아내라는 금과옥조로 강요되던 삶처럼 보인다. 물론 미드의 리메이크인지라 그 정서적 격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미드에서라면 김혜경 같은 선택을 하는 인물이 훨씬 바람직하고 쿨한 여성상으로 받아들여질 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네 정서에서는 사뭇 다르다. 여전히 이유야 어떻든 아내가 가정이 아닌 개인의 선택을 추구할 때 이를 보는 사회의 시선은 냉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혜경의 선택은 우리네 사회가 갖고 있는 좋은 아내라는 이미지에 던지는 선전포고처럼 다가온다. 그것은 어쩌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왜 남편이 바람을 펴도 그걸 용서해주는 아내만이 좋은아내가 될 수 있는가. 그걸 용서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여성상은 왜 좋은사람이 아닌 것처럼 백안시할까.

 

물론 그렇다고 불륜이 용인되는 건 아니지만, <굿와이프>의 이런 파격적인 설정은 좋은 아내라는 말 속에 은연 중에 담겨져 있는 남성 중심적 시각을 뒤집는 일종의 미러링효과를 주고 있다. 남성의 불륜은 한 번 실수라고 용인되는 사회. 그걸 받아들이고 나아가 희생함으로써 좋은 아내이미지조차 남편의 성공을 위해 내조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듯 요구되는 사회. 불륜 미화라는 논쟁점이 남지만 그래도 <굿와이프>의 강요된 좋은 아내이미지 깨기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청춘시대>, 풋풋하면서도 먹먹한 이 느낌은 뭘까

 

이 청춘은 어째서 이렇게 고통스런 삶을 버텨내며 살아가게 된 걸까.

 

'청춘시대(사진출처:JTBC)'

JTBC <청춘시대>의 윤진명(한예리)에게 청춘의 꽃길 따위는 없다. 알바에서 알바로 새벽까지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는 듯한 하루하루. 엄마가 호흡기에 의지해 살고 있는 동생의 안부조차 묻지 않는다고 하자 그녀는 누가 죽은 사람의 안부를 묻냐고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그녀에겐 자신의 삶이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다. 행복은 누구나 꿈꿀 권리가 있다지만 그녀에게 행복이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은 그런 그녀에게 무례하다. 절박한 그녀의 손을 잡아주기보다는 그 절박함을 미끼로 함부로 명령하고 함부로 폭력을 행사한다. 물론 물리적인 폭력은 아니지만 권력의 힘으로 제 멋대로 상대방에게 손을 뻗치는 행동들은 추행이자 폭력이 분명하다. 레스토랑 매니저라는 알량한 권력을 가진 자(민성욱)는 마치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는 듯 접근해 일자리를 제안하며 은근슬쩍 그녀를 추행하려 한다.

 

생각해보면 나랑 그렇게 다른 사람도 아닌데 이상하게 겁먹고. 마치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뒤늦게 사태를 깨닫고 정신을 차린 윤진명은 그렇게 말하며 매니저로부터 도망치듯 그 집을 빠져나온다. 그런 그녀에게 매니저가 던지는 덜 절박하구나라는 말은 가난하고 어떻게든 일자리를 얻어야 하는 위치에 놓여진 청춘들을 대하는 현실의 냉혹함을 잘 보여준다.

 

사랑 따윈 사치처럼 되어버린 삶을 살아가는 윤진명은 정말 기적처럼 다가온 박재완(윤박)을 밀어낸다. 자신을 좋아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반복할수록 윤진명의 마음 속에 박재완이 얼마나 깊게 자리하고 있는가가 드러난다. 그녀는 그저 보통사람들처럼 박재완을 사랑하고 싶지만 그녀를 둘러싼 현실의 무게들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청춘시대>에는 선배인 윤종열(신현수)과 유은재(박혜수)가 만들어가는 풋풋한 사랑이야기도 있다. 물론 그녀 역시 죽은 아빠와 관련해 어딘가 숨겨진 아픔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누군가를 자신이 죽였다는 혼잣말과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문득 문득 차가워지는 그녀에게서 무언가 비밀스런 과거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도 유은재의 사랑은 우리가 청춘에 기대하는 그 첫사랑의 면면들이 묻어난다.

 

그런가 하면 처절한 현실을 부정하고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강이나(류화영) 같은 청춘도 있다. 대학생이라 속이고 제 몸을 팔아 스폰서 받는 편한(?) 삶을 선택한 그녀. 스스로 쉬운 삶이고 자신을 창녀라고 말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삶일까. 그녀가 그런 삶을 선택하게 된 데는 과거 죽을 뻔 했던 사고에서 그녀의 말대로 운이 좋아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에 지켜야할 것을 지키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되묻는다.

 

셰어하우스에 모인 다섯 명의 청춘들의 제각기 다른 현실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청춘시대>는 청춘을 한 가지 얼굴로만 내밀지 않는다. 그들이 대하고 있는 청춘이란 윤진명이나 강이나처럼 혹독하기도 하지만 유은재처럼 달달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배경과 상황 속에서 때론 갈등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로를 토닥이고 안아준다. 박재완을 애써 밀어내고 돌아와 그 아픔에 오열하는 윤진명을 송지원(박은빈)이 꼭 끌어안아주는 것처럼.

 

이것은 <청춘시대>가 가진 현실을 다루는 좋은 균형감각이다. <청춘시대>는 청춘이라는 그 지점이 가진 낯설음과 설렘을 내포하지만 그것을 두려움과 처절함으로까지 만들어내는 현실을 또한 외면하지 않는다. 보통의 청춘 멜로로서는 기대하기 힘든 무게감과 진중함이 유쾌한 청춘들의 이야기와 잘 어우러지게 된 건 이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작금의 청춘들을 섬세하게 드라마가 들여다보고 그 균형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현실의 무게 때문에 힘겨워 하고 있지만 그들이 서로를 위로해주고 도와주는 모습은 <청춘시대>가 진짜 그리고 있는 청춘의 판타지다. 남녀 간의 달달하고 강렬한 사랑만큼 지금의 청춘들에게 필요해진 것이 위로가 됐다는 건 어쩐지 슬픈 일이다. <청춘시대>의 셰어하우스에 함께 살아가는 다섯 청춘들의 이야기가 풋풋하면서도 먹먹해지는 건 그래서다.

<함부로 애틋하게>가 진짜 하려던 이야기

 

KBS <함부로 애틋하게>는 왜 진짜 하려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하지 않았을까.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틀에, 가난하다 못해 처절한 여주인공과 최고의 위치에 선 한류스타, 게다가 시한부 설정까지 들어 있으니 이 드라마가 하려던 이야기를 그저 그런 틀에 박힌 멜로 심지어 신파로까지 여기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혹자는 우리네 드라마 시청자가 첫 회만 보면 그 끝을 쉽게 예측할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니 <함부로 애틋하게>의 초반부는 함부로그저 그런 멜로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다.

 

'함부로 애틋하게(사진출처:KBS)'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함부로 애틋하게>가 하려던 진짜 이야기들이 조금씩 고개를 든다. 너무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이경희 작가가 왜 틀에 박힌 설정들과 이야기들을 끌어왔고, 그것을 어떻게 뒤집으려 하는가 하는 의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건 드라마가 오해되는 게 못내 안타까워 제작사가 나서서 그 본래 의도로서 얘기했던 염치없는 세상에 대한 비판의식이다.

 

드라마는 지나치게 명쾌하게 어른들의 세상과 청춘들을 분리해 놓았다. 어른들의 세상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최현준 검사(유오성). 그는 정의로운 척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자신의 개인적 영달을 위해 갖가지 부조리와 부정을 저지른 인물이다. 법을 운운하며 공명정대한 것처럼 자신을 위장하지만 법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걸 모른다. 그러니 법을 수호한다기보다는 법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게 그의 추악한 진면목이다.

 

그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하나는 그에게서 자란 최지태(임주환)고 다른 하나는 그도 모르게 태어나 자라 스타가 된 신준영(김우빈)이다. 신준영은 엄마인 신영옥(진경)의 소원처럼 최현준 같은 검사가 되려 노력하지만 노을(수지)의 아버지의 죽음을 덮어버리고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최현준의 진면목을 보고는 흔들린다. 결국 아버지의 비리를 덮어주려다 노을을 죽일 뻔한 일을 저지르고는 검사의 길을 포기한다.

 

신준영은 아버지 최현준과는 달리 염치 있는 인간이다.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지만 바로 그렇게 저지른 실수 때문에 영원히 검사 자격 따위는 없다며 꿈을 포기한다. 그는 대신 한류스타가 되지만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꿈을 포기한 일은 그에게도 혹독한 벌을 내린다. 엄마인 신영옥이 그를 더 이상 아들로서 대하지 않는 형벌.

 

최현준의 또 한 명의 아들 최지태 역시 염치 있는 인간이다. 그는 아버지의 잘못을 알고는 노을의 키다리 아저씨로 살아온다. 그것이 자신이 대신 사죄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는 후반부에 이르러 최현준이라는 어른과 최지태, 신준영이라는 청춘이 본격적으로 대립하는 이야기로 들어간다. 염치없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최현준 같은 어른(그의 아내도 마찬가지다)과 그로 인해 처절한 삶에 내몰린 노을(그녀가 영원히 을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다), 그리고 그 부끄러운 어른을 아버지로 둔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대신 사죄하려는 최지태, 신준영이라는 청춘들.

 

여전히 최현준에 대한 환상을 저버리지 못하는 신영옥에게 아들 신준영은 그 실체를 고발한다. 그가 노을의 집안을 어떻게 풍비박산냈고 그로 인해 그들이 지금도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털어놓는다. 신영옥은 그제서야 충격에 빠진다. 평생을 기대왔던 믿음이 무너지는 충격.

 

최지태는 쫓겨나게 된 노점상들에게 그건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강변하는 아버지 최현준에게 정면으로 맞서며 법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런 최지태의 말을 최현준은 그런 경험조차 없는 그가 던지는 값싼 동정심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최지태는 최현준의 어머니 역시 노점상이었다며 그런 경험조차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그를 오히려 비판한다. 신준영은 과거 노을의 아버지 뺑소니 사건 수사를 덮으라는 최현준의 명령을 불복해 불이익을 받은 최변호사(류승수)를 찾아가 그 과거의 진실을 다시 밝히려고 한다.

 

최지태와 신준영이 최현준과 맞서는 이유는 노을에 대한 애틋한마음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에 대한 사랑이면서 연민이면서 동시에 동정이다. 그녀의 처절한 아픔과 고통을 도무지 저버릴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최소한의 염치 있는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본래 하려던 이야기가 바로 이런 염치에 대한 것이란 걸 염두에 두고 바라보면 <함부로 애틋하게>가 왜 전형적인 신파 멜로의 틀과 상투적 설정들을 가져왔을까 하는 것이 일면 이해되기도 한다. 신파 멜로의 틀이란 어찌 보면 기성세대들의 사고관이다. 기성세대가 어떤 아픔과 고통을 주고 그것에 저항하기보다는 내면화할 때 신파 멜로의 틀이 생겨난다. 고부갈등은 대표적이다. 그러니 이 기성세대의 사고관을 대변하는 전형적 신파 멜로의 틀을 가져오되 그것을 내재화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뒤집어 적극적으로 청춘들이 항변하고 저항하는 이야기를 담는 건 꽤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닐까.

 

물론 <함부로 애틋하게>의 이런 전략은 결과적으로 보면 실패했다. 그것은 요즘의 시청자들이 너무 많은 드라마들을 접하고 있고 그래서 좀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간과했기 때문이다. 진짜 하려던 이야기를 뒤에 숨겨놓는 전략은 그래서 별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도 중반 이후를 통해 드러난 <함부로 애틋하게>가 본래 하려던 이야기는 나름의 재미와 가치를 갖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건 부끄러움을 모르는 함부로 무치한사회에 대한 애틋한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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