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이명한 PD의 리얼 버라이어티론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대한 열광은 기존 기획된 쇼에 대한 식상함에서부터 비롯된 바가 크다. 일정한 대본과 연출의 틀 안에서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예측하면서 만들어내던 기존의 기획 프로그램들은 요즘처럼 대중화된 영상매체 속에서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내기가 어렵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조악한 영상이라도 진짜이지, 잘 만들어진 가짜가 아니다.

최근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여행이라는 아이템으로 새로운 영역을 열어가고 있는 ‘1박2일’의 이명한 PD는 최근의 이런 경향에 대해 “리얼 버라이어티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 말한다. 현장에 나가기 전까지 무언가를 잔뜩 짜서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돌발적인 상황을 발견하고 그것을 영상 속에 잡아내는 것이라는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보따리는 늘 두둑하다”
이 이명한 PD의 발견하는 리얼 영상은 ‘1박2일’이 가진 여행이란 아이템과 잘 맞아떨어진다. 여행이란 사실상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나고, 또 그 여행 속에서 실로 괴로운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돌아와 보면 풍성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물론 완벽한 준비 없이 떠나는 마음에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명한 PD는 떠나기 전에 작았던 보따리는 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늘 두둑해져 있다”고 한다.

“처음 현장에서 두둑한 보따리를 가져왔을 때는 우리가 운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두 번이 되고 또 세 번이 되면서 이제 어느새 일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단지 운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작은 계기로 시작된 어떤 일상적인 일이 때로는 엄청나게 커다란 결과를 안겨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됐죠.”

실로 충주대에서 벌어진 게릴라 콘서트나 경남 거창에서 갑자기 결정된 전국노래자랑 출전, 백령도에서 해병대와 함께 한 씨름대회 같은 것들은 여행이 가지는 의외성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누군가 툭 던진 한 마디에 본래 계획했던 코스는 지워지고, 전혀 다른 방향의 길이 열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힘을 빼면 진면목이 나온다”
따라서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오히려 “어깨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이명한 PD의 생각이다. 이것은 연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출연진들에게도 요구되는 사항이다. “처음에 팀에 합류하게 되면 대개 기존 기획된 쇼에 적응되었던 출연진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차츰 상황에 적응하면서 오히려 그간 기획된 쇼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기도 하죠.”

‘1박2일’의 캐릭터들이 자연스러운 것은 무리한 설정을 통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본래 각자가 가졌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캐릭터를 ‘발견해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즉 프로그램 기획에서부터 캐릭터들까지 모두 ‘발견’이라는 한 단어로 꿰어지는 셈이다. 따라서 은지원처럼 ‘1박2일’이라는 한 배를 타고서 더욱 주목받게 된 출연진들은 타 프로그램에서 발견하기 어려웠던 진짜 자기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1년이 거의 되어 가는 ‘1박2일’은 이제 시즌2의 마음으로 좀더 생활에 밀착된 이야기들을 할 것이라고 한다. 한 겨울의 혹한기가 오히려 ‘1박2일’에게 기회를 제공해줬던 만큼, 여름은 오히려 도전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문에 이명한 PD는 “날씨보다 중요한 건 자연스럽게 만나는 돌발적인 상황에 대한 대처”라며, “일단 부딪쳐보면 새로운 것이 나올 것”이라는 신념을 보여주었다. 하긴 봄여름가을겨울 어느 계절이나 하나같이 우리에게 새롭지 않은 것은 없지 않은가.

‘1박2일’이라는 하룻밤의 여행은 우리에게 그 일상 속에서의 새로움을 상기시키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영상은 이제 생활이고 그 생활 속에서는 사실 조명되지 않은 수많은 이야깃거리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잡아내고 발견해내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연기하지 않는 것이 진짜 연기’라는 말이 있듯이, 이명한 PD는 ‘연출하지 않는 것이 진짜 연출’이란 말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일상이 된 리얼 버라이어티쇼, 생활을 담아야 성공한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무한도전’은 매회 다른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청자들을 찾는다. 이것은 프로그램 제목처럼 실제로 대단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매번 성공하는 아이템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창기에 ‘무한도전’이 한 이 수많은 시도들이 지금의 리얼 버라이어티쇼 전성시대의 밑거름이 된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1박2일’이나 ‘우리 결혼했어요’는 물론이고, 새롭게 속속 탄생하고 있는 ‘패밀리가 떴다’나 ‘이 맛에 산다’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은 ‘무한도전’의 이 ‘도전들’ 속에 포함되었던 아이디어들을 보다 집중시키고 극대화시킨 결과들이다. 적어도 그것은 ‘무한도전’이 가져온 형식 위에서 가능했던 아이디어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넓이의 도전에서 깊이의 도전으로
하지만 정작 이 모든 가능성들을 만든 ‘무한도전’이 현재 좀 힘겨운 상황에 처해있는 이유는 무얼까. 나들이가 많아지는 시기적인 요인이 분명 그 어려움을 일정부분 만든 것은 맞지만, 같은 상황에도 타 프로그램들이 약진하고 있는 것은 이유를 그 탓으로만 보기 어렵게 만든다.

그것은 오히려 무한히 새로운 아이템을 끄집어내야 하는 ‘무한도전’의 형식이 피곤해진 반면, 그 토대 위에서 한 가지 아이템을 파고든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시청자들에게 더 신선하게 다가갔다는데 있다. 그 사이 ‘무한도전’의 ‘넓이의 도전’은 보다 집중력을 만들어주는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의 ‘깊이의 도전’으로 변모하게 됐다.

이처럼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한 우물을 파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그 아이템이 여행이나 체험 혹은 결혼 같은 생활 밀착형 아이템들이기 때문이다. 생활 속의 아이템이란 일회적인 이벤트성의 소재가 아니라, 꾸준히 발굴되고 변주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비일상적 도전에서 일상적인 도전으로
게다가 이 생활의 아이템들은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더욱 리얼하게 만들어준다. 적어도 리얼리티 요소로서 창작동요제나 지구특공대 같은 아이템보다는 월드컵 응원전이나 댄스스포츠 같은 것들이 더 현실감이 있다. 그것은 실제 일반인들이 할 수도 있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무한도전’팀만이 가능한 생활에서 유리된 비일상적인 도전들은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리얼리티가 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무한도전’의 달라진 위상은 이 비일상적인 도전을 더욱 가속화시키는데 이것은 자칫 시청자들에게는 비호감이 될 우려가 있다. 과거 ‘무한도전’이 말 그대로 아무런 힘이 없는 평균 이하의 캐릭터로 존재할 수 있었을 때는 그들의 어떤 도전이든, 시행착오든 그것은 호감으로 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무한도전’은 그 자체가 권력이 되었다. ‘이산’같은 사극에 출연해 화제가 될 정도의 영향력을 과시하게 되었고, 비록 무산되었지만 ‘청와대 특집’을 생각할 정도의 힘이 생겼다. 특히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힘있는 자들의 비일상적인 도전’은 그 자체가 공감을 얻기가 어려워진다.

‘무한도전’, 초심보다는 변화해야 한다
최근 방영된 ‘돈을 갖고 튀어라’편은 지난 ‘경주 보물찾기’편에서 전조를 보였던 그 스릴러적인 긴박감을 부여해 그간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분위기를 쇄신한 점이 있다. 하지만 이 수작의 아이템에도 불구하고 ‘정준하 기차사건’ 같은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 것은 이미 최고가 된 ‘무한도전’을 대하는 시청자들의 시선이 과거의 그것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무한도전’은 이제 좀더 보통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내려와야 한다. 이것은 현재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발맞추기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무한도전’의 높아진 위상을 다시 서민들의 눈높이로 낮추려는 시도가 어떤 식으로든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은 저 스스로 만들어낸 리얼 버라이어티쇼 전성시대가 가져온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지금 ‘무한도전’이 필요한 것은 단지 초심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식객’의 기본기, 물리지 않는 담담한 맛

누군가 정성 들여 만들어놓은 음식을 처음으로 맛보는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새로이 월화의 밥상에 올려진 ‘식객’이란 요리의 첫 맛은 담담하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극적 구성은 연출되지 않았지만, 또 그렇다고 흥미진진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허영만 화백의 원작 ‘식객’이 가진 특징이기도 하다.

똑같은 음식을 소재로 하지만, 우리네 ‘식객’은 중국의 ‘식신’같은 영화와는 차별화 된다. ‘식객’이란 원작만화의 첫 시작으로 제시되는 요리가 밥이라는 사실은, ‘식신’의 화려한 요리들보다는 기본기에 충실한 서민적인 요리에 손을 들어주는 ‘식객’의 맛의 철학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드라마 ‘식객’이 담담한 첫 맛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성찬(김래원)은 운암정 후계자 자리를 두고 요리대결을 벌일 봉주(권오중)와는 물론이고 심지어 오숙수와도 맛에 대한 철학이 다르다. 똑같은 생태를 가지고 요리를 하더라도, 오숙수는 최고의 재료를 구하는 것이 요리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라 생각하고, 봉주는 요리도 장사이기에 일단 수지가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성찬은 싸고 흔한 재료라도 노력을 통해 최고의 맛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숙수가 요리에 있어서 이상을 꿈꾼다면 봉주는 현실적이며, 성찬은 그 사이에서 화해를 모색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성찬이 버려지는 동태들을 싼 가격에 사서 끝끝내 맛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앞으로 이 드라마가 선사할 맛이 산해진미가 아닌 바로 서민의 맛을 향해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물론 이상을 꿈꾸지만 그렇게 어렵게 구한 재료로 끓여낸 생태탕을 꽁보리밥과 함께 내주면서 고향의 맛, 어머니가 해주던 맛을 선사하는 오숙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돈이라는 현실의 차원을 넘어서 추억을 떠올려주는 맛을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바로 이 부분은 ‘식객’이 그저 화려한 음식이나 대결구도만의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식객’은 음식의 의미를 찾아가는 드라마다. 드라마 첫 시작에서 순종에게 마지막 수라를 올리는 대령숙수가 납평전골을 만들어 그 의미(다시 나라를 되찾아 빼앗긴 사냥터에서 다시 꿩과 멧돼지를 잡아 요리를 올릴 수 있게 해달라)를 전하는 것은 음식이 그저 입만을 즐겁게 해주는 것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운암정 후계자를 두고 벌인 첫 번째 요리대결에서 성찬이 우승한 이유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지키는 그 기본기를 지켰기 때문이다. 드라마 ‘식객’이 성찬의 기본기를 닮기를 바란다. 듣도 보도 못한 화려한 음식들의 상찬으로 만들어내는 자극적인 맛보다는, 청국장이나 김치찌개 같은 평범하고 담담하지만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맛을 내는 드라마가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은 허영만 화백 원작 ‘식객’이 가진 기본기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드라마, 초반 시선을 잡아야 성공한다

영화에 ‘5분의 법칙’이 있다면 드라마에는 ‘첫 회의 법칙’이 있다. 첫 회에서 시선을 잡아끌지 못하면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따라서 드라마 속 하이라이트 부분을 맨 앞에서 먼저 보여줘 시선을 잡아끈 다음, 회상 신으로 돌아가 극을 전개시키는 방식은 하나의 전형이 되었다. 멜로드라마에서 해외로케를 통해 이국적인 풍광을 보여주고, 사극에서 스펙터클한 액션장면을 보여주거나,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서 충격적인 사건이나 긴장감 넘치는 상황을 첫 회에 제시하는 건 그 때문이다.

사극의 첫 회, 지붕 위를 걷다
‘일지매’는 첫 회에서 갑의를 착용한 일지매(이준기)가 전각지붕 위를 바람처럼 달려나가고 왕실의 보물창고인 내수고에 침입해 보물을 훔치는 장면을 말 그대로 스펙터클하게 보여주었다. 일지매가 담을 넘어 탈출하면서 매화나무 아래 안착한 후 카메라가 일지매의 눈으로 쑥 들어가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것은 첫 번째 시선을 잡아끄는데 성공한 ‘일지매’의 면면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제 시청자들은 그 붙잡힌 시선에 이끌려 이 멋진 일지매가 되기까지의 과정, 즉 겸이에서 용이가 되고 용이에서 일지매가 되는 그 과정을 보게 된다.

궁을 배경으로 한 액션 신으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사극의 첫 회 공식처럼 자리잡았다. ‘이산’에서 궁중연회 도중 갑자기 영조(이순재)를 향해 총을 쏘는 군졸들에 의해 아수라장이 된 연회장을 빠져나가 도망치는 영조 앞을 사도세자가 가로막는 장면은 물론 영조의 꿈이지만 시청자들의 눈을 빼앗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것은 저 ‘대왕 세종’의 첫 회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자객들의 궁궐 침입 시퀀스와 유사하다. 이 장면 역시 실제 상황이 아닌 궁궐 내의 훈련 상황이었던 점을 보면, 이런 첫 회의 액션 신들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송 드라마의 첫 회, 방송의 이면을 보다
최근 한 트렌드처럼 등장하고 있는 이른바 ‘방송 드라마’들이 첫 회에서 보여주는 것은 방송의 이면이다. ‘스포트라이트’는 첫 방에서 남편의 불륜사실을 알게된 앵커가 방송도중 눈물을 흘려 자칫 방송사고가 될 뻔한 상황을 보여준다. 우리가 뉴스를 볼 때 봐왔던 수면 위의 장면들, 그 아래 숨겨진 숨가쁜 발놀림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 아찔한 상황 속에서 서우진(손예진) 기자는 순발력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캐릭터 선보인다.

각종 시상식은 방송 드라마의 볼거리 중 하나이다. ‘온에어’의 첫 회가 시상식의 이면을 잡아내면서 나눠주기식 시상식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그려냈던 것처럼, ‘태양의 여자’는 상해에서 벌어진 아시안TV페스티벌에서 ‘원더우먼쇼’로 상을 받는 아나운서 신도영(김지수)에 대한 장면부터 시작한다. 이 시상식이라는 시퀀스는 일단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장면과 동시에 그 이면이라는 낯선 그림을 통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점이 있다. ‘태양의 여자’는 이 첫 회를 통해 해외로케와 시상식이라는 볼거리를 보여주면서 앞으로 벌어질 신도영의 상황, 즉 ‘원더우먼’으로서 잘 나가는 아나운서이지만, 무언가 내면적인 문제가 있는 그 정황을 모두 잡아낸다.

첫 회에 대한 집착, 문제는 없나
이 밖에도 가족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대개 문제를 내포한 가족들의 면면을 일상을 훑어가며 보여준다. ‘엄마가 뿔났다’의 첫 회가 영수(신은경)와 종원(류진)이 함께 침대에서 깨어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것은 장면 자체가 갖는 시선 끌기의 목적도 있지만 앞으로 벌어질 이 드라마 속의 갈등상황(이 사실을 안 엄마가 뿔나는)을 예고해준다. ‘행복합니다’의 첫 회 장면은 이질적인 두 집안을 병치해서 보여주는데, 준수(이훈)네 집은 침입한 도둑을 쫓는 에피소드로 우스꽝스럽게 연출된 반면, 그와 결혼할 재벌집 서윤(김효진)네 집은 연말을 보내기 위해 홍콩으로 떠나는 화려함을 대비시킨다. 이것은 후에 벌어질 계층 갈등 상황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첫 회에 대한 드라마들의 집착은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드라마들 속에서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당연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문제점도 양산한다. 최근 월화극에 대한 편성전쟁으로 그 첫 회가 월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방영되게 된 것은, 바로 이 첫 회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가된다. 게다가 이 초반부에 눈길을 잡아야 승부를 낼 수 있다는 강박관념은 자칫 하이라이트를 너무 앞으로 배치해 중반부터 긴장감이 풀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물론 앞으로 어떤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나올 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초반에 연쇄살인범 장진규 에피소드라는 초강수를 쓰면서 오히려 새로운 에피소드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게 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 즉 하이라이트를 앞으로 빼놓아 드라마 중반이 허전해지는 상황은 최근 드라마의 한 경향처럼 반복되고 있다. ‘일지매’도 초반부 강력한 액션 신으로 한껏 기대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만큼 다음 에피소드들의 소소함에 부담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대왕 세종’ 역시 초반의 화려한 볼거리에서 중반의 대사 중심의 정치 이야기로 들어서면서 시청률이 하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대왕 세종’은 이제 대마도 정벌이라는 아이템으로 볼거리를 잡아내려 노력하고 있다. ‘드라마 첫 회의 법칙’은 분명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드라마의 한 경향으로 자리잡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첫 회에 대한 지나친 집착 또한 드라마에는 독이 될 것이다. 첫 회가 매력적이어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그만큼 중반 진행과 후반 마무리도 중요하다는 것이 간과되지는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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