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신데렐라, 그 변주는 어디까지?

주말극을 신데렐라가 장악했다. 저녁 8시부터 11시까지 쏟아져 나오는 드라마들은 저마다 신데렐라를 내세우며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잡아놓고 있다. 그 시청자의 대부분은 아줌마. 그래서일까. 신데렐라도 아줌마의 눈높이에 맞춘 버전으로 변주되는 양상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끌어올리는 정도를 넘어 아예 신데렐라의 남녀 구도를 역전시킨 ‘행복합니다’에서부터, 이혼녀 워킹맘으로 일상이 고통이지만 그 일상을 이해해주는 능력 있는 남자들에 의해 사랑받는 워킹맘 신데렐라, ‘천하일색 박정금’, 역시 이혼녀에 조기폐경 진단까지 받으며 악다구니를 쓰며 살지만 톱스타와 스캔들에 빠지는 억척맘의 신데렐라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까지. 도대체 이 변주된 신데렐라의 어떤 점이 우리네 아줌마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는 걸까.

‘행복합니다’- 신데렐라, 되기보다는 키운다
‘행복합니다’에서 박서윤(김효진)은 재벌집 딸. 그와 사랑에 빠진 이준수(이훈)는 그녀에 의해 천거된 남자다. 기존 신데렐라 이야기를 뒤집은 이 드라마의 스토리에서 주목해야할 인물은 이 맹랑할 정도로 당당한 박서윤이란 캐릭터다. 트렌디 드라마의 고질적인 수동적 여성 캐릭터와 비교한다면 정 반대에 서 있는 이 캐릭터는 뭐든 자기 스스로 능동적으로 상황을 헤쳐나간다. 반대하는 엄마를 굴복시키기 위해 저 스스로 언론에 열애설을 배포하고, 그것도 모자라 더 반대하면 아예 임신설을 퍼뜨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게다가 그녀의 이런 막가파식 행동은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재벌그룹 자제와의 결혼설로 올라갔던 회사의 주가가 서민적인 남자, 이준수와의 열애설로 떨어질 것이라 고심하는 가족들에게 그녀는 오히려 이런 발표가 기업의 서민적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설파한다. 이런 합리적인(?) 설명은 결국 그녀가 자기 회사를 위해 재벌과 결혼시키려는 엄마와 다를 것 없이 결혼이 사랑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도 활용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지만, 어쨌든 그녀의 이런 설득은 영리한 면이 있다.

과거 트렌디 드라마에서 늘 당하고, 울고, 그러면서 참고, 결국에는 남성에게 매달리던 수동적 캐릭터는 이 여성에게서는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준수에게 오히려 거꾸로 프로포즈를 하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성 역할만 바꾼 트렌디 드라마를 연상케 만든다. 여성들은 이제 수동적으로 신데렐라가 되는 입장보다는 신데렐라를 키우는 걸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여성의 위치는 이미 남성이 끌어 올려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높거나 그 이상이라는 것. 이것은 현실에서 적어도 심적으로는(물론 사회 시스템은 다를 수 있다) 여성들이 남성과 놓여졌을 때 느끼는 동등함 혹은 그 이상의 우월감을 말해주기도 한다.

‘천하일색 박정금’ - 이해 받고 싶은 신데렐라
‘천하일색 박정금’이 특이한 것은 남녀 간의 성 역할 구분이 희미해진 세계를 이미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정금(배종옥)이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관습적으로 활용되었던 마초적인 남성 형사라는 틀을 깨는 배려 깊은 여성 형사라는 점은 주목해봐야 할 문제다. 물론 ‘히트’같은 드라마를 통해서도 이러한 여성성을 가진 여형사가 등장했지만, 박정금은 워킹맘으로서의 일상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 구체적이다. 게다가 그녀는 자식을 잃어버린 엄마다. 그러니 그녀가 일하는 형사라는 칼부림의 현장 속에서도 모성이라는 여성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박정금이 남성들의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와서도 여성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남녀 성 역할 구분에 있어서 그만큼 유연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박정금과 대척점에 서 있는 불량주부(?) 정용두(박준규)의 설정은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다. 물론 그만큼 극단화되어 있지 않지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두 남자, 한경수(김민종)와 정용준(손창민) 역시 여성성을 가진 남성들이다. 한경수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려진 인물로 아이를 잃어버린 아픔을 가진 박정금과 동병상련을 갖고 있다. 그의 캐릭터는 ‘떠나지 못하는’ 인물로 상정되어 있는데 여기서 ‘떠나지 못한다’는 말은 ‘상처주지 못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이것이 한경수를 여성성에 머물게 하는 이유다. 정용준 역시 의사로서 돈을 벌기보다는 약자를 위해 봉사하고 거기서 기쁨을 얻는 인물로 상처를 보듬어주는 한경수의 캐릭터와 유사한 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에서 신데렐라는 어디서 발생할까. 이 드라마는 빈부 격차에서 벌어지는 신데렐라는 없다. 막연히 형사라는 직업과 의사, 변호사라는 직업 사이의 간극이 느껴질 뿐이다. 그 능력 있는 남성들이 이제 나이 들고 집 안팎으로 힘겨워하고 있는 워킹맘 박정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사랑해준다는 점에서 신데렐라는 등장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상 요즘처럼 능력 있는 여성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는 돈보다 더 강한 환타지를 제공한다. 이해 받고 싶은 것이다.

신데렐라의 변주, 트렌디의 역할 바꾸기?
아무리 통속적인 작품이라 할 지라도 그 속에는 사회적 모순 같은 것들이 담겨져 있기 마련이다. 주말극을 장악한 신데렐라의 변주는 그런 점에서 지금 시대를 바라보는데 의미가 있다. 지금의 신데렐라들이 과거의 신데렐라를 거부하고 새로운 신데렐라를 꿈꾸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틀 안에서의 이야기에 머물 뿐이다. ‘행복합니다’나 ‘천하일색 박정금’이나 이 시대의 달라진 모습을 포착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신데렐라 콤플렉스 속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공공연히 신데렐라의 아줌마 버전이라 자처하고 있는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이제 이 신데렐라의 변주가 하나의 장르적 재미의 틀로 안착하는 징후로 읽혀진다.

주말극을 장악한 신데렐라에 대한 열광은 그만큼 양극화된 사회 속에서 과거와는 다르게 사회에 진출해 살아가는 여성들의 욕구와 좌절을 에둘러 말해준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러한 새로운 신데렐라가 어쩌면 젊은 시청층이 뉴미디어로 점점 빠져나간 자리에 들어서는 또 다른 중년 트렌디의 시작인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달라진 신데렐라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속의 새로운 의미에 천착하지 않고 여전한 공식 속에서 단지 트렌디의 역할 바꾸기에만 골몰할 때, 그것은 저 몰락한 트렌디 드라마의 뒤를 고스란히 따라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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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게임’, 이 시대의 진정한 소통이란

인터뷰라는 단어는 대충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째 고용주와 지원자 사이의 대면, 둘째, 기자가 기사 대상을 두고 하는 면담, 셋째, 그런 정보를 가진 기사 혹은 방송. 하지만 이제 이 단어에는 한 가지 의미가 더 덧붙여져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진정한 소통’이다. SBS의 ‘인터뷰 게임’은 이른바 정보통신의 시대라는 현재, 오히려 더욱더 단절되어있는 그 소통의 물꼬를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풀어보려는 프로그램이다. 이른바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할 때 그 한 길 사람 속을 파고드는 프로그램.

40세의 김진영씨가 인터뷰를 통해 알고싶은 것은 아내의 마음이다. 그는 아내와의 깊은 갈등 끝에 이제 파국의 벼랑 앞에 서 있다. 그는 어눌하지만 카메라 앞에 서서 날 것 그대로의 마음을 전한다. 한 때는 그렇게 살가웠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는 아내와 자신이 왜 이렇게 끝자락에 서 있는 지, 그는 진정 알고싶다. 그래서 그가 인터뷰하는 것은 아내 주변의 인물들이다. 그것은 아내의 선배이기도 하고 직장상사이기도 하며 아내의 친구, 부모 혹은 아내가 찾아간 한의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아내에 대해 질문을 해온 김진영씨가 알게된 사실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내가 왜 그런가’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로 알게된 것은 바로 오히려 몰랐던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다.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내에게는 상처가 되고 있었고, 아내는 때론 그 상처를 갖고서도 남편을 두둔하고 있었다. 아내는 남편이 술 마시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지만, 정작 장모가 그녀에게 불만조로 남편이 술을 끊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는 오히려 남편을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인터뷰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 김진영씨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아내의 진심이 자신의 폐부를 찌른 것이다.

그것은 똑같이 김진영씨의 아내에게도 전달된다. 우습게도 그것은 이 ‘인터뷰 게임’에서 한 인터뷰의 내용, 즉 수집된 정보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아내의 진심을 알게 된 남편이 결국 아내와 대면해 몇 시간 동안 대화를 통해 얻은 것은 거의 없다. 결국 그 파국이 예상될 즈음에 남편의 한 마디가 그것을 바꾼다. 그것은 자신이 아내의 상황을 알기 위해 수 차례 인터뷰를 해왔으며, 그를 통해 “당신이 힘들었겠구나”하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단순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에 아내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결국 진심은 논리나 말에 의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터뷰 게임’은 보여준다. 그것은 오히려 그 진심을 담은 행위, 즉 남편이 아내의 마음을 알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인터뷰를 하는 그 행위 자체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인터뷰라는 형식은 그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 입증된다. 기존의 기자들이나 PD의 인터뷰가 어떤 정보라든가, 재미를 추구하는 목적이 뚜렷했기에 그 내용이 중심이었다면, ‘인터뷰 게임’이 보여주는 것은 그 형식 자체가 내용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뷰 게임’의 인터뷰 형식은 여타의 인터뷰하고는 다르다. 여타의 인터뷰가 목적하는 것이 주로 정보라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진심이다. 따라서 인터뷰 형식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적확한 정보나 재미를 전달하는 장면 위주의 편집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행위 그 자체가 된다. 프로그램이 정보전달에 있어 날려버릴 수 있는 불필요한 장면들을 빠른 장면으로 그대로 돌려 보여주거나, 사운드를 죽인 상태로 화면이라도 전달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 정보성이 없는 행위가 담긴 장면들은 보통의 인터뷰에서는 편집되는 장면이거나 버려지는 텍스트가 되겠지만 사실 말 이면의 진심을 포착하기 위해서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인터뷰 게임’은 정보통신의 시대라는 소통의 기기가 극대화된 시기에 오히려 소통 부재가 되는 현실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이 주목하는 것은 인터뷰를 하는 자나 당하는 자의 진술이 아니다. 그것은 대신 그 인터뷰를 하는 행위 속에 담긴 마음이 된다.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신 옆에서 늘 투덜대는 아내나, 늘 웃고 있는 아버지, 늘 잔소리를 하는 어머니 같은 분들에게서 그 말로서만 들었던 이야기는 진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진심은 오히려 그분들이 투덜대면서도 밥을 차리고, 웃으면서도 쉴 새없이 손을 놀리며 일을 하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늘 노심초사하는 그 행위 속에 담겨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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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에어’, 자기비판 통한 성장 이룰까

새롭게 시작한 SBS 수목드라마 ‘온에어’는 드라마에 관한 드라마다. 즉 드라마의 관계자인 PD, 작가, 배우, 매니저를 주축으로 해서 벌어지는 연예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드라마를 제작해나가는 과정이 이 드라마의 주 내용이라는 것이다. 최근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거기 출연하는 배우는 물론이고 작가나 PD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높아있는 상황이며, 제작현장은 더더욱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연예계에 대한 뒷이야기까지 포함하면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이미 반 이상은 거두고 시작한 셈이다.

우리가 TV를 통해서만 보았던 드라마의 외관이 아니라, 이른바 드라마의 속살을 본다는 리얼리티적인 요소는 드라마 자체에 관심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첫 회부터 ‘온에어’는 드라마계 혹은 연예계의 화려함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면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나눠주기식의 연말시상식에 수상거부를 선언하는 오승아(김하늘), 그를 두고도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못하는 스타권력에 휘둘리는 방송사, 배우보다는 스타가 되려는 연예인들의 세태, 키워놓은 배우 빼가는 대형기획사 등등 많은 문제제기를 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보다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드라마 제작의 현실이다. 오승아가 작가 서영은(송윤아)과 미드에 대해 나누는 대사가 흥미롭다. “미드는 그런 것 없이도 잘 되는데 왜 당신 작품엔 늘 신데렐라냐”는 오승아의 비판에 서영은은 “미드에도 신데렐라 설정은 있지만 거기에는 진짜 같이 하는 연기자들이 있다”고 맞서는 장면은 우리네 트렌디 드라마에 대한 논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첫 회를 통해 보여지는 작가와 배우 그리고 PD, 매니저까지의 면면을 보면 도대체 이런 식으로 어떻게 우리네 드라마가 만들어져왔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게 한다.

정작 작품에 대한 논의는 없고 PD와 작가, 그리고 배우들의 신경전만 난무하고, 새로운 작품에 대한 시도보다는 되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적당히 되는 소재를 잡아 넣으면 된다는 식의 제작자 마인드에, 진정한 배우의 길보다는 손쉬운 스타의 길을 찾아가는 배우들의 세태는 우리네 드라마가 왜 그 나물에 그 밥이 되어왔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또한 방송사고라 할만한 연예대상에서의 수상거부 사태에 대해서조차 시청률 잣대로 판단하는 방송사의 태도나, 서영은의 첫 작품이 낮은 시청률이지만 작품이 좋았다는 말에 오승하가 시청률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부분은 드라마에 대한 시청률 지상주의를 공공연히 드러낸다.

그런데 ‘온에어’가 이런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의 문제점들을 속속 드러내는 이유에는, 결국 이 사분오열된 제작팀들이 다시 뭉쳐 이 문제들을 넘어서는 어떤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즉 이 드라마는 어떤 면에서는 우리 드라마가 가진 문제점의 인식 위에서 그 문제를 넘어서는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좋은 의도를 가진 드라마가 그들 스스로 비판하는 트렌디의 틀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만일 몇몇 디테일들이 등장하다가 점차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트렌디한 멜로구조로 따라간다면 이 드라마는 그 자체로 자가당착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없을 것이고 또 없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걱정이 앞서는 것은 수많은 좋은 기획의도를 가진 드라마들이 중간에 가서 어떤 이유에선지 그 의도를 버리고 편안한 시청률 올리기 공식으로 돌입하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던 탓이다. 부디 이 드라마가 우리네 드라마 전체에 대한 어떤 발전적인 대안이나 상을 제시하는 드라마였으면 좋겠다. 그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시청률은 당연히 따라오지 않겠는가.

공식에 빠진 주말극, 남은 건 작가색

먼저 서로 다른 집안환경에서 자라난 남녀가 있다. 그런데 그들은 집안환경과 상관없이 서로를 사랑한다. 밖에서 연애를 할 때야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나이가 되자 문제는 복잡해진다. 결혼을 앞두자 남자 혹은 여자는 그동안 상대방에게 속여왔던 자신이 부자임이 드러나거나, 스스로 그 사실을 밝히게 된다. 공교로운 것은 대체로 그 부잣집 자제는 상대방이 다니는 회사의 회장 자제라는 점이다. 부유한 집안 부모는 결혼을 반대하고 결국 그 반대에 모멸감을 느끼던 한 쪽은 회사를 그만두거나 결혼을 포기하겠다는 통보를 한다. 혹은 그 반대의 결정을 하기도 한다.

놀랍게도 위에 적어놓은 스토리는 지금 현재 주말 드라마로 인기를 얻고 있는 김수현 작가의 ‘엄마가 뿔났다’와 김정수 작가의 ‘행복합니다’가 똑같이 가진 이야기 구조이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기 때문인지 어떨 때는 같은 날 방영하는 드라마의 내용이 거의 같게 맞아떨어질 때도 있다.

‘엄마가 뿔났다’에서 고은아(장미희)가 스스로 대사 속에서 “드라마에 나오는 편견에 가득 찬 교양 없는 시어머니 역할 하기 싫어”라며 밝힌 것처럼 그 장면은 드라마라면 어디에나 한번쯤 등장하는 시퀀스가 되어버렸다. 고은아는 자신의 대사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연인인 영미(이유리)를 불러서 모멸감을 준다. 같은 날 방영된 ‘행복합니다’에서도 역시 같은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재벌집 사모님인 이세영(이휘향)은 딸과 결혼하려는 이준수(이훈)를 불러 얼굴에 물을 끼얹는다. 다른 것이라곤 시어머니가 장모로, 그리고 며느리가 사위로 뒤바뀌어 있을 뿐이다.

이 두 부유층의 사모님들은 모두 자신의 딸 혹은 아들이 격에 맞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기를 원한다. 이 두 드라마는 서민들의 시선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 서민적인 주인공을 데려다가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거나 물을 끼얹는 장면은 자못 자극적이다. 그것은 마치 드라마를 보는 사람의 얼굴에다 물을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의 느낌을 준다.

이렇게 한 차례씩 당한 주인공들은 저마다 회사를 그만둔다. 그 회사의 회장 자제로 있는 상대방과 동등한 입장에서 만나려면 그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장면 역시 ‘엄마가 뿔났다’와 ‘행복합니다’에서 같은 날 방영되었다. 이 정도 되면 주말 가족극의 패턴은 이미 공식화되어버렸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만일 이 두 드라마를 모두 즐기는 시청자라면 같은 구조의 이야기를 같은 날 반복적으로 시청한 셈이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공식화된 이야기가 식상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 두 드라마는 저마다 색깔이 다른 느낌마저 주면서 번갈아 볼 때 역할 바꾸기(남자와 여자의)의 재미까지 선사한다. ‘엄마가 뿔났다’에서 여성의 시선을 통해 계층 갈등의 묘미를 본다면, ‘행복합니다’는 남성의 시선을 통해 그것을 즐길 수 있다. 이것은 마치 게임 같다. 공식화된 틀 속에서 다른 캐릭터들을 갖고 한 시간 동안 즐기는 게임.

이 공식화된 구조의 두 드라마가 주는 진짜 재미는 작가에게서 나온다. ‘엄마가 뿔났다’는 김수현 작가가 주는 속도감 있는 대사들의 잔치와 자잘한 일상의 디테일들을 통해 재미를 주고, 김정수 작가는 군더더기 없는 구성에 작가 특유의 서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묘미를 더한다. 만일 이 두 대작가들의 색채가 없었다면 이 두 주말 드라마는 자기만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렇게 유사한 구조의 스토리를 가지고도 비슷한 높은 시청률을 모두 거두고 있다는 점은 지금 우리가 주말 드라마를 통해 얻는 재미가 독특한 소재나 색다른 시각 혹은 주제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우리는 똑같은 구조를 어떻게 재미있게 풀어내느냐는 ‘이야기꾼’의 그 이야기 능력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재미있는 두 거장의 이야기 풀어내는 능력에 푹 빠져 있으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남는 것은. 이 거장들의 비슷비슷한 이야기는, 삶이란 결국 그렇게 독특하고 색다른 무엇이 아니라 다 같은 구조 위에 있지만 그 위에서의 사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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