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누나’, 길해연 같은 뻔한 나쁜 엄마 클리셰보다 중요한 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엄마 해도 너무 한다.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예쁜 누나 윤진아(손예진)의 엄마 김미연(길해연) 얘기다. 제 아무리 자기 성에 차지 않는다고 서준희(정해인)를 반대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 집을 굳이 급습해 딸의 머리채라도 잡으려는 그 모습이 볼썽사납다. 

자식 같이, 가족 같이 생각한다면서 서준희가 완강하게 윤진아와의 관계를 지켜나갈 것이라는 걸 드러내자, 이제 대놓고 속내를 드러낸다. 너는 한참 자기 기준에 모자란다고. 그러면서 누구는 그런 자신을 속물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단다. 더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만나길 원하는 건 모든 부모의 숨겨진 바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엄마에게 그 가족들은 모두 실망감을 느낀다. 대놓고 남편을 무시하면서 서준희 같은 아이가 윤진아를 넘보는 것이 남편이 잘 못나가서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윤진아의 의향은 물어보지도 않고 선 자리를 마련해 무조건 나가보라고 등을 떠민다. 그런 아내에게 남편조차 “교양 없는 사람”이라며 화를 낸다. 

어찌 보면 김미연 같은 ‘결혼 반대하는 엄마’의 모습은 우리가 드라마 속에서 너무나 많이 봐온 캐릭터다. 그래서인지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전형적인 클리셰가 여전히 드라마에서 활용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이 남는다. 다른 작품이라면 모르겠지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같은 대중적 관심을 갖게 만들고, 또 나아가 현 세대의 정서까지도 아우르는 작품이 그 갈등 코드로서 너무 쉬운 선택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이 드라마만이 갖고 있는 ‘일상성’의 디테일이 만들어내는 일과 사랑의 이야기가 특별한 감흥을 주는 게 사실이지만 최근 몇 회 동안의 이야기는 그래서 너무 틀에 박힌 갈등구조로 굴러가는 느낌이다. 물론 실제 현실 속에서는 김미연 같은 엄마들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드라마가 담는 그런 엄마들의 클리셰는 너무 흔하고 그 이야기도 뻔하기 때문이다. 

김미연이 서준희를 어르고 달래고 또 화를 내가며 구슬리는 장면이나, 서준희의 누나, 서경선(장소연)을 만나 이건 안 된다고 정색하는 장면, 그리고 엄마에게 등 떠밀려 굳이 선 자리에 나왔다가 마침 그 자리에서 만난 서경선이 화를 내는 장면들은 그래서 새로움이 없다. 물론 이 작품은 그러한 클리셰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를 드러내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요즘에 저런 엄마가 존재할까 싶은 그런 캐릭터는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워낙 좋은 느낌을 갖게 만드는 드라마여서 김미연 같은 클리셰가 더더욱 아쉽게 다가오는 것일 게다. 너무 그 갈등을 쥐고 질질 끌기보다는 윤진아가 회사에서 처하게 되는 상황과 현실 속에서 ‘미운 엄마의 착각(제 자식만 귀한 줄 아는)’이 어서 깨지기를 바라게 된다. 그 와중에 그 윤진아를 계속해서 “예쁘다”고 말해주고 지켜주는 서준희의 존재가 얼마나 ‘훌륭한가’가 드러나기를.(사진:JTBC)

‘비긴어게인2’, 음악이라는 감정의 언어를 발견하게 해주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어느 분위기 좋은 루프탑 카페에서 로이킴과 윤건이 영화 <라라랜드>의 ‘City of Stars’를 부른다. 프로건 아마추어건 상관없이 원하면 사전에 얘기하고 누구나 오를 수 있는 무대. 노래 부르는 그들의 뒤편으로 어둠 속에 점점이 박힌 따뜻한 도시의 불빛들이 별빛처럼 부드럽게 노래 부르는 그들을 감싼다. 윤건의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와 로이킴의 분위기 가득한 음색이 어우러져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JTBC 예능 <비긴어게인2>가 어느 루프탑 카페에서 보여준 무대는 마치 영화 <비긴어게인>의 한 장면을 재연하는 것처럼 보였다. 함께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무심한 듯 로이킴이 무대에 올라 자기 소개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러자 식사를 하던 손님들이 그 노래에 빠져든다. 그의 노래가 끝나고 윤건이 함께 무대에 올라 피아노 연주에 맞춰 ‘City of Stars’를 부르면서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는다. 영화 <비긴어게인>에서 싱어송라이터인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가 어느 카페에서 노래를 하게 됐을 때 댄(마크 러팔로)이 마침 그 노래를 듣는 그 장면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비긴어게인2>의 진면목은 그런 영화 같은 장면이 아니었다. 김윤아와 이선규가 무대에 올라 부르는 자우림의 명곡들이 그 진짜 무대의 시작이었다. 김윤아 특유의 서정적인 정서가 묻어나는 ‘봄이 오면’은 의외로 낯선 외국인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로이킴 역시 촬영 당시에는 미발표곡이었던 ‘그 때 헤어지면 돼’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나서 한 여성 관객은 “한국어로 노래하는 게 듣기 좋았다”고 말했다. 

이번 <비긴어게인2>에서 주로 팝송 커버곡을 많이 불렀던 로이킴은 그 경험이 특별했었던 것 같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한국어라서 알아듣지 못할까봐 걱정했다”며 “그래서 팝송을 더 커버하려고 했는데 굳이 언어의 장벽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러 버스킹에서도 행인들이 더 집중한 건 그들에게 익숙한 팝송보다는 낯설 수도 있는 우리 가요들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언어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줬을까. 그건 음악만의 특별한 ‘감정의 언어’가 가진 힘이 아닐까. 물론 가사는 그 의미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음악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것 이전에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감정이 그대로 듣는 사람의 가슴에 와 닿는 그런 경험들이 이번 <비긴어게인2>에서는 그 프로그램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보여지게 됐다. 낯선 이국에서 낯선 언어로 부르는 노래가 그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발견하게 해줬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비긴어게인2>의 첫 번째 버스킹에서 김윤아가 세월호 추모곡이었던 ‘강’을 불렀을 때 이미 드러난 부분이었다. 그들에게는 가사내용이 들리지 않았을 그 곡에 그들이 감동을 느꼈던 건 바로 그 감정의 언어가 전달된 덕분이었을 것이다. 깊은 슬픔과 추모의 감정들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음색 속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과 표정으로 전해졌을 테니. 

루프탑에서 노래를 듣던 한 외국인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노래하는 건 이상적인 프로젝트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이 이상적이라고 하는 걸까. 그건 어쩌면 음악이 가진 본연의 힘을 거기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음률과 목소리와 감정만으로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 음악이 가진 힘이라는 걸.(사진:JTBC)

지상파 드라마, 시청자들의 디테일 요구에 부합한가

최근 지상파 드라마들을 보다보면 어딘가 ‘현실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한 때는 ‘드라마니까’ 라며 대충 넘어가던 것들이 이젠 ‘드라마라도’ 저건 좀 비현실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를테면 KBS <우리가 만난 기적>에서 송현철(김명민)이 일하는 은행풍경이 그렇다. 물론 코미디적인 접근을 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는 극화된 면이 있지만 그래도 은행이라는 직종에 걸맞은 현실감 나는 이야기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은행이 배경으로 등장할 뿐이다. 

물론 단 1년 전만해도 드라마에서 이런 디테일까지 요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비지상파, 즉 tvN이나 JTBC가 내놓는 드라마들이 사건의 배경이 되는 일터의 상당한 디테일들을 담아내기 시작하면서 시청자들의 눈이 높아졌다. 예를 들어 tvN <나의 아저씨> 같은 드라마의 박동훈(이선균)이 일하는 삼안E&C라는 회사는 건물의 안전진단을 하는 곳으로 현장에서 드론을 써서 건물 외벽의 균열을 검사하는 장면까지 등장했다. 또 tvN <라이브>는 홍일지구대라는 공간과 그 곳에서 일하는 경찰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제목처럼 ‘생생하게’ 담아냈다.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또 어떤가. 커피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일하는 윤진아(손예진)가 슈퍼바이저로서 회사 측과 가맹점 사이에서 겪는 곤혹을 이 드라마는 안판석 감독 특유의 디테일로 잡아내고 있다. 

이러한 일터의 디테일들이 드라마에서 빛을 발했던 건 tvN <미생>에서부터였다. 당시 <미생>은 종합상사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촘촘하게 담아냈다. 물론 이것이 가능했던 건 워낙 원작이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실제 사례들을 소재로 담고 있어서다. 그 후로 <시그널> 같은 판타지가 들어간 작품에서조차 그려지는 일터의 풍경들은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밑그림에 공을 들인 달까.

그런데 일터에 담겨지는 디테일은 그저 밑그림으로서의 배경 그 이상이다. 그건 공간에서 일하는 인물들의 캐릭터에 중대한 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이 일하는 곳이 굳이 삼안E&C이고 그의 직업이 건축구조기술사라는 건 의미심장한 설정이다. 무너질 수도 있는 건물의 안전을 진단하고 그걸 미연에 막기 위한 직업이라는 점에서, 이 직업과 공간은 부조리와 적폐로 흔들리는 우리 사회라는 건물을 그대로 표징하는 면이 있다. 박동훈은 그 적폐세력들과 대비되는 존재로 그려진다. 직업과 일터의 공간이 굳이 디테일하게 담겨지는 이유다.

<라이브>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했던 경찰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깨겠다는 기획의도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당연하게 경찰들이 실제 겪는 일들이 그 드라마의 핵심적인 소재이자 내용이고 메시지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죽음을 사건 속에서 계속 마주하는 현장의 경찰들이 집단 트라우마를 겪는 그런 에피소드는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형사물과는 다른 현실적인 디테일을 보여준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윤진아가 일하는 곳이 커피 프랜차이즈 회사인 것은 그의 일이 본사와 지점 사이에 놓여져 결코 만만찮은 스트레스를 주는 직업이라는 걸 드러낸다. 일상적인 느낌이지만 직업인으로서의 힘겨움은 윤진아가 서준희(정해인)라는 그의 가치를 알아주는 인물과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된다. 

그렇다면 다시 지상파 드라마들로 눈을 돌려보자. 상대적으로 비지상파 드라마들이 담고 있는 치열한 디테일들과 사뭇 비교되는 걸 느낄 수 있다. 물론 이건 제작비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미 비지상파들이 디테일의 세계를 보여준 지금,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는 사실이다. 

드라마에서 인물의 행동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성은 물론 중요하다. 그래서 계속해서 어떤 욕망과 좌절에 의해 인물이 움직이는 그 동력은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이는 중요한 힘이 된다. 하지만 그 이야기성만큼 그 배경을 촘촘히 채워주는 디테일 또한 더더욱 요구되고 있다. 그것은 이야기성과 함께 ‘리얼리티’의 요구 또한 깊은 몰입도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사진:tvN)

‘라이브’가 집단 트라우마를 겪는 경찰을 담은 까닭

우리는 흔한 형사물에서 사건현장에 끔찍하게 살해된 사체를 아무런 감흥도 없이 들여다보고 심지어는 손을 넣어 만져보기까지 하는 베테랑 형사와 그걸 보는 신참 형사가 막 도망치듯 달려가 토를 하는 장면을 흔한 클리셰로 볼 수 있다.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 장면이지만 그건 현실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게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다. 

바로 눈앞에서 사제총에 맞고 쓰러져 죽은 동료와, 계속해서 총을 쏴대는 범인과 대치하며 벌벌 떠는 경찰들. 그리고 가까스로 범인을 제압했지만 그 죽음을 목격한 충격 때문에 지구대 전체가 일종의 ‘집단 트라우마’를 보이는 그런 모습이 진짜다. 사람의 죽음은 익숙해질 수가 없다. 베테랑 경찰인 오양촌(배성우) 같은 인물조차 그렇다.

그러니 신참 경찰들인 한정오(정유미)나 송혜리(이주영) 그리고 염상수(이광수) 같은 이들이 온전할 리가 없다. “우리 모두 죽는 줄 알았다”며 눈물 흘리는 한정오는 그간 자신이 사건 현장에서 봤던 끔찍한 사체들을 떠올린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사건들을 눈으로 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암담하게 다가왔을 게다.

자칫 잘못했으면 자신이 그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 그래서 강남일(이시언) 같은 그래도 경험이 있는 선임 경찰 또한 “가족들의 얼굴이 생각났다”며 펑펑 눈물을 흘리게 된다. 선임들은 괜스레 그 충격을 잊고자 술이라도 마시자고 나선다. 하지만 잊혀지지 않는 그 순간의 기억은 내내 그들을 멍하게 만들어놓는다.

굉장히 강인해 보이는 오양촌도 예외일 수 없다. 그는 아내 안장미(배종옥)에게 가장 힘든 게 “내가 안죽어 다행이다. 우리 지구대 애들이 죽은 게 아니라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그나마 위안 삼는 건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이제 퇴직을 앞둔 이삼보(이얼)에게 기한솔(성동일) 지구대장이 사건에 잘 대처한 일에 대해 “잘하셨다”며 “안 다치신 건 더더 잘 하셨다”고 말하는 건 그래서다.

신참으로 들어온 송혜리나 한정오는 아마도 자신들이 선택한 경찰 일이 이런 것이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을 게다. 어디서도 그 실상이 보여지기 보다는 그 막연한 이미지들만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실상을 마주한 그들은 흔들린다. 계속 이 지구대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만두려고도 마음먹고 국비유학으로 해외에 나갔다 돌아와 다른 곳에서 일하고도 싶어진다. 

영화에서나 보던 액션 히어로 경찰? 그런 건 없다.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죽음을 가까이서 계속 보게 되는 이들은 트라우마에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이삼보가 말하듯, “그래도 어쩌겠어. 경찰인데 사건 사고 나면 가야지”라고 말하며 현장으로 뛰어간다. 아기가 유기되었다는 제보를 듣고 그토록 힘들어 도망치고픈 현장을 뛰고 또 뛰는 모습을 통해 한정오는 어떤 의문을 느낀다. 그건 단지 직업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생명을 구하겠다는 마음이 더 앞서 나오는 행동이 그 트라우마조차 이겨내게 한다는 걸 보여준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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