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의 전광렬, <옥중화>의 전광렬

 

전광렬은 아마도 요즘 가장 바쁜 연기자가 아닐까.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두 편의 사극에 출연하고 있다. SBS 월화사극 <대박>MBC 주말사극 <옥중화>가 그 작품들이다. 겹치기 출연이 만들어내는 혼동은 이런 선택이 과연 괜찮은 것인가를 묻게 하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건 두 사극이 전광렬을 활용하는 방식이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다.

 

'대박(사진출처:SBS)'

전광렬이 이렇게 무리해서까지 동시에 두 작품을 소화하는 까닭은 이 작품의 작가나 PD와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전광렬은 <대박>의 권순규 작가가 쓴 <무사 백동수>, <불의 여신 정이>에 모두 출연했다. 물론 <옥중화>를 만들고 있는 이병훈 감독과 최완규 작가와는 꽤 많은 작품들을 해왔다. 최완규 작가의 데뷔작인 <종합병원>에서부터 최근 <빛과 그림자>까지 전광렬은 출연해왔고 <허준>처럼 이병훈-최완규 콤비가 해낸 사극에도 출연했었다.

 

전광렬의 연기자로서의 색깔은 독특하다. 물론 젊은 시절에 그는 연기도 출중했지만 훈남의 외모로도 어필하던 스타였다. 그래서 주연이 당연했지만 차츰 나이가 들어 중견의 자리에 오면서 존재감 강한 조연의 역할을 맡아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전광렬은 조연 자리에 있으면서도 주연 못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빛과 그림자>에서 그는 악역이었지만 장철환을 미친 존재감으로 만들며 주역인 안재욱을 압도하기도 했다. <왕과 나>에서도 주인공인 김처선(오만석)보다 내시부 수장인 조치겸(전광렬)이 주목받는 아이러니를 만들기도 했다.

 

물론 조연이 주연보다 주목받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시각은 양갈래로 갈라진다. 요즘처럼 주조연의 구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진 시대에 그건 미친 존재감으로 칭찬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드라마가 균형 있게 흘러가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대박>에서 전광렬이 연기하는 이인좌라는 인물은 역사 속에 이인좌의 난으로 유명한 실존인물이다. <대박>은 전면에 대길(장근석)과 연잉군(여진구)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인좌와 숙종(최민수)의 대결구도가 더 팽팽한 사극이 되었다. 대길과 연잉군이 연합하고 그들이 형제인 사실을 알게 되는 등 출생의 비밀에 얽힌 이야기들이 등장하지만 이 모든 걸 조종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이인좌와 숙종이다.

 

문제는 이인좌라는 인물의 존재감이 거의 한 나라의 왕인 숙종과 대결할 정도로 크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물론 <대박>이라는 사극이 허구를 덧대 만들어낸 대결구도라고 하지만 이런 정도의 상상력을 지금의 시청자들이 납득하기는 쉽지 않다. 이인좌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대길과 연잉군이 주변으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은 <대박>이 가진 최대 약점이 되었다. 좀더 명쾌한 주인공들의 활약상이 그려지기보다는 이미 이인좌의 손에서 그려진 대로 흘러가는 듯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반면 <옥중화>에서 전광렬이 연기하는 박태수라는 무술고수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전옥서의 비밀감옥에 오랜 세월 갇혀 있으면서 주인공인 옥녀(진세연)에게 무술을 가르쳐주는 인물이다. 역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가상인물이지만 사극의 이야기와 잘 어우러져 있다. 무엇보다 이 인물은 확실한 자기 존재감을 가지면서도 그것을 온전히 옥녀라는 캐릭터에 힘을 보태주는 역할이기도 하다. <옥중화>가 활용하고 있는 전광렬의 연기는 과하지 않고 적절하다. 이런 점들은 아마도 이 사극이 훨씬 안정된 느낌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전광렬이라는 배우를 활용하는 방식은 <대박><옥중화>가 사뭇 다르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들이 쓰고 있는 이인좌라는 캐릭터와 박태수라는 캐릭터의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캐릭터 활용이 주인공을 그림자로 덮어버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빛나게도 하는 건 너무나 큰 결과의 차이가 아닐까. 공교롭게도 사극이라는 장르에 겹쳐져 출연하고 있는 전광렬이라는 배우의 활용법은 그래서 주조연이라는 역할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에릭, 서현진의 인생작 된 <또 오해영>

 

서현진이 이렇게 예뻤던가. 에릭이 이렇게 멋있었나. 아마도 tvN <또 오해영>을 보면서 시청자들의 느낌은 비슷할 게다. 드라마가 좋으면 배우들은 더더욱 반짝반짝 빛난다. <또 오해영>이란 작품 속에서 그냥 오해영을 연기하는 서현진이 그렇고, 깐깐하게 소리를 듣고 모으는 박도경을 연기하는 에릭이 그렇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또 오해영>은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웃음이 충만한 드라마지만, 또한 금수저 흙수저를 달리 해석한 듯한 1급수와 3급수의 사랑 이야기로 한편으로는 짠하고 한편으로는 통쾌함을 안겨주는 그런 드라마다. 1급수에서 그들끼리 만나고 사랑해온 예쁜 오해영(전혜빈)’3급수에서 살아온 그냥 오해영은 박도경이라는 인물을 사이에 두고 급수를 뛰어넘는 사랑을 시도한다.

 

1급수와 3급수의 비교는 그냥 오해영이 항상 괴로워했던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의 예쁜 오해영이 늘 주변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사랑받는 모습을 보이고, 반대로 그냥 오해영은 항상 비교되면서 무시되는 모습을 보일수록 시청자들의 마음은 드라마와는 정반대로 움직인다. 박도경이 그런 느낌을 갖는 것처럼 한없이 그냥 오해영이 짠하게 다가오고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

 

사실 어떤 면으로 보면 전혜빈이 연기하는 예쁜 오해영은 여성 시청자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일 수 있다. 늘 여성스러움을 드러내며 예쁜 척하는 듯한 그 모습이 그렇다. 반면 그냥 오해영은 여성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캐릭터다. 털털하고 솔직하며 한편으로는 동정이 가기도 하는 그런 캐릭터. 그러니 드라마 속에서 그냥 오해영예쁜 오해영이 처한 상황은 그걸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거꾸로 느껴지게 된다. ‘그냥 오해영이 더 예쁜 존재로 다가오는 것. 이것은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가 만들어낸 마법 같은 장치다.

 

물론 예쁜 오해영역시 나쁜 의도를 가진 존재는 아니다. 그녀가 도경을 결혼식 날 바람 맞춘 데는 그만한 남모를 사연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연이 드러나는 순간 도경은 두 오해영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도경의 캐릭터다. 그는 과연 그냥 오해영이 말하듯 1급수에 살아가면서 그들끼리 사랑하는 그런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는 건 도경이 가진 직업에서 드러난다. 도경은 소리를 찾고 모으는 일에 그 누구보다 깊게 빠져 있다. 그는 창문을 열면 들어오는 빛에도 소리가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와 지나가는 찻소리 등이 겹쳐지면 그 빛의 소리가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 하다못해 분노한 여자가 찬 깡통 소리도 경쾌한 소리와 화난 소리로 구분해내는 인물이 도경이다.

 

굳이 이 드라마가 도경에게 이런 직업을 부여한 이유는 뭘까. 그건 아마도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소리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귀 기울이는 캐릭터를 그려내려 한 게 아닐까. ‘그냥 오해영이 말하듯 도경은 현실적으로는 1급수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수 있지만 그는 저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그런 인물이다. 스스로를 3급수라 표현하는 그냥 오해영이 점점 그의 눈에 들어오는 건 그래서일 게다.

 

하지만 그냥 오해영이 말하는 1급수와 3급수의 세상은 어찌 보면 그녀가 가진 오해이자 편견일 수 있다. 그녀 스스로도 나는 나고 너는 너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러니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하려는 이야기는 급수를 뛰어넘는 사랑이 아니라 애초에 사랑에는 급수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어찌 보면 가볍게 느껴질 수 있는 장르에 이토록 촘촘히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면서 그것을 또한 두 오해영 캐릭터와 도경이라는 인물로 그려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나 균형 있게 그려지고 있어 캐릭터들이 그토록 빛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서현진과 에릭, 그리고 나아가 전혜빈까지 이 작품이 인생작이 될 거라는 기시감은 아마도 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판타스틱 듀오>, 콜라보를 통해 할 수 있는 것들

 

음악예능은 너무 많이 나왔고 그래서 식상해진 면이 있다. 특히 가창력 대결을 벌이는 음악 예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미 MBC <나는 가수다>를 통해 노래 신들의 무대를 봤던 이들이라면 가창력 하나를 두고 벌이는 노래 대결이 그리 신선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경험할 건 다 해봤던 느낌들이기 때문이다.

 

'판타스틱 듀오(사진출처:SBS)'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예능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SBS <판타스틱 듀오>에서 에일리가 판듀 후보로 오른 세 명의 청춘들과 함께 보여줄게를 부르는 순간이 그렇고, 신승훈이 고인이 된 유재하와 김현식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담아 가리워진 길을 함께 부르는 순간이 그렇다. 그것은 가창력 대결과는 무관한 함께 한다는 의미, 즉 오롯이 콜라보레이션이 주는 소통의 묘미가 담길 때다.

 

에일리는 왜 자신의 노래인 보여줄게를 많은 팬들을 보며 눈물을 참지 못했을까. 그것은 감사한 마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에게서 자신의 청춘을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 또한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래 불렀던 청춘의 시절이 있었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마치 그 때의 자신을 그대로 환기시켰을 것이다.

 

에일리와 함께 무대에 오른 세 명의 청춘들, 부산뱅크녀, 북한산 민물장어녀, 아차산 아이스크림녀들은 각자 저마다의 고단한 청춘을 살아내는 이들이었지만 그토록 밝은 에너지가 넘칠 수가 없었다. ‘당당한 나를 드러낼 것을 다짐하는 가사를 담은 보여줄게라는 노래는 그래서 에일리와 이 세 청춘들이 함께 부르자 몇 배는 더 커진 의미로 다가왔다. 남녀 간의 이야기를 넘어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청춘의 의미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고인이 된 두 사람, 유재하가 만들고 김현식이 부른 가리워진 길을 함께 부른 신승훈은 111일에 얽힌 기막힌 사연을 소개했다. 그 날은 신승훈의 데뷔일이면서 두 고인의 기일이었던 것. 이제 고인이 된 김현식의 목소리에 얹어진 신승훈의 노래는 그래서 단지 노래로만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생전에 꼭 현식이형이라고 부르고 싶었다는 신승훈의 마음을 전하는 메시지였다.

 

<판타스틱 듀오>는 물론 일반인과 기성가수가 듀오를 이뤄 가창력 대결을 벌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음악 예능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결보다는 콜라보레이션이 갖는 그 화음과 협력에 더 집중하고 있고, 가창력을 물론 조명하지만 그 노래 속에 담긴 마음과 마음의 소통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래도 음악 예능이 식상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왔고, 그 형식도 비슷비슷하며 거기 출연하는 가수들 또한 겹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순간들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판타스틱 듀오>가 어떤 감흥을 주는 순간은 놀라운 가창력의 소유자가 등장했을 때가 아니다. 그들이 타인과 노래를 통해 어떻게 연결되고 마음을 전하는가 하는 그 지점이 대중들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질 바로 그 때다.

송혜교에 대한 찬사와 설현 지민에 대한 비난 사이

 

사실 눈물이 났다. 근로정신대 양금덕 할머니가 미쓰비시자동차 광고 제의를 거절한 송혜교에게 쓴 감사의 편지의 한 구절. “우리나라 대통령도 못한 훌륭한 일을 송 선생님이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눈물이 나고 가슴에 박힌 큰 대못이 다 빠져나간 듯이 기뻤다. 날개가 달렸으면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얼마나 할머니의 힘겨운 삶에 관심을 주고 또 그 고통의 역사를 함께 인식해주며 행동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이토록 절절한 감사의 마음을 표할까.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하지만 정 반대의 일로 눈물을 쏟는 이들도 있다. 걸 그룹 AOA의 설현과 지민이 그들이다. 그녀들은 케이블채널 온스타일 <채널 AOA>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맞추는 퀴즈에서 긴또깡이라고 답해 대중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상식일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상식이 아닐 수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 순간 대중들은 분노했다.

 

그렇지만 그 분노는 온전히 설현과 지민에게 쏟아내는 분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다 우리네 역사에 이토록 무지해져버린 현실이 되었는가에 대한 분노가 더욱 크다. 역사가 그저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단답식 퀴즈 맞히기의 소재 정도로 활용되는 현실. 비뚤어진 교육 현실 속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역사교육. 그리고 그것이 별 문제도 아닌 것인 양 방치하는 교육 부처들.

 

역사교육은 문제 맞히기가 아니다. 그것은 관점이고 시각을 갖는 교육이다. 역사는 하나의 팩트라기보다는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을 포괄한다. 그러니 그것은 얼굴 하나 내놓고 누구냐고 맞히는 식으로는 절대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여러 입장과 관점들이 있고 시각들이 존재한다는 걸 이해한 후 스스로 역사 인식을 갖는 그 과정이 역사교육이 가야하는 길이다.

 

아이돌 그룹이라는 특성상 교육의 문제는 더 일천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단답화 되어 있는 역사교육은 근본적으로 보면 설현과 지민의 문제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때때로 <무한도전>이나 <12>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역사교육보다 훨씬 더 깊이 있게 역사의 한 지점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무한도전>이 들려준 가슴 아픈 하시마섬의 진실이나 우토로 마을 이야기가 그렇고, <12>이 하얼빈까지 가서 들려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발자취 이야기가 그렇다.

 

이러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역사를 제대로 재조명해 드러낼 때마다 시청자들은 깊은 감명의 뜻을 전하곤 한다. 그것은 실제로 우리를 울린다. 하지만 그 눈물의 뒤안길을 들여다보면 어쩌다 역사를 예능에서 더 배우고 있는 우리네 현실에 대한 씁쓸함 또한 묻어난다. 이러니 도대체 누굴 탓할 것인가!

 

송혜교의 행보에 쏟아지는 찬사와 지민과 설현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그래서 너무 다른 양극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역사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우리네 현실에 대한 분노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상식이 사라진 세상에 남는 건 몰상식과 무개념뿐이다. 어쩌다 우리는 이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그 답답한 현실에 또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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