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1988>, 이 소소한 가족의 이야기에 끌리는 까닭

 

1988년은 역시 88올림픽이 떠오르는 해다. 그러니 <응답하라1988>의 첫 회 부제인 손에 손잡고가 떠올리는 것 역시 당시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울려 퍼지던 코리아나의 그 노래다. 하지만 <응답하라1988>88올림픽이라는 시대적 이벤트보다 주목하는 건 쌍문동 골목에서 소소하게 살아가는 가족들의 이야기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물론 덕선(혜리)이 올림픽 피켓걸로 뽑혀 마다가스카르 피켓을 들기로 되어 있었지만 해당국이 불참하는 바람에 빠지는 줄 알았다가 운 좋게도 우간다 피켓을 들게 된 사연은 88올림픽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이야기다. 하지만 그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건 그런 덕선의 사정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한 가족에 대한 그녀의 서운한 마음이다.

 

그녀는 늘 자기는 별로 챙기지 않는 듯한 가족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그런 서운함을 알게된 아버지 성동일은 따로 그녀를 불러내 다독인다. 사실 대단할 것도 없는 사건이다. 하지만 가장 모든 걸 다 알 것 같은 가족이 사실은 더 잘 모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 손잡고걸어 나가는 것이 가족이라고 말하는 이 드라마는 그 소소함이 오히려 따뜻한 느낌을 준다.

 

말이 없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아들 때문에 속이 상한 라미란이 아들에게 얘기를 해달라고 말하고 어색하게 안아주는 장면도 그렇고, 믿고 있던 아들의 방에서 담배갑이 나와 충격을 먹은 쌍문동 엄친아 선우 엄마가 먼저 간 아빠의 부재를 얘기하는 장면도 그렇다.

 

대단하거나 충격적인 사건 따위는 없지만 가족 간의 그 소소한 이야기가 의외로 먹먹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지지고 볶는 삶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가족의 삶이기 때문이 아닐까. 저녁 때가 되면 서로 서로 반찬을 갖다 주고 나눠주는 이웃의 풍경도 그렇고, 골목 한 켠에 놓여진 평상에서 아줌마들이 함께 콩나물을 다듬거나 만두를 빚는 풍경도 그렇다.

 

그래봐야 골목에서 나누는 수다에 불과할 수 있지만 아파트 층간소음으로 이웃 간의 불미스런 사건까지 벌어지는 요즘과 비교해보면 그 장면이 주는 정감은 그 무엇보다 강하게 다가온다. 결국 복고란 현재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응답하라1988>이 우리에게 감성적으로 전해주는 건 바로 현재에는 사라져버린 가족과 이웃 사이의 훈훈한 정 같은 것이 아닐까.

 

최근 드라마들은 한없이 독해져 있다. 심지어 가족 간에도 음모가 난무하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하며 복수한다. 그래서 막장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살벌해진 드라마들 틈바구니에서 <응답하라1988>의 이 소소함은 너무나 가녀리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의 소소함이 더욱 빛나는 것일 게다. 조금은 촌스럽고 심지어는 별 일이 하나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덤덤하지만 그래서 그 안에서 오히려 발견하게 되는 진정한 가족의 풍경을 발견할 수 있으니.



왜 나영석 PD처럼 신원호 PD도 내려놨다 말하는 걸까

 

솔직히 <응답하라 1994>보다 잘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응답하라1988>의 기자간담회에서 신원호 PD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두 번째까지 잘 되다가 세 번째 폭망하는 현상이 재밌을 것이다. 망할 거란 생각이 나도 든다. 이번 시리즈의 성공을 장담하지 않고, 기대도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왜 망한다고 말할까. 여기서 떠오르는 인물과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나영석 PD<삼시세끼>. <삼시세끼>에 대해서 나영석 PD는 방영 전 만난 필자에게 이번에는 진짜 망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망했다는 얘기는 실제 방송에서도 여러 차례 나오기도 했
. 이서진이 그랬고 게스트로 온 윤여정이 그랬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 <삼시세끼>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다면 이런 놀라운 성공을 거둔 프로그램에 왜 그들은 망했다고 말하는 걸까. 그것은 통상적인 프로그램의 룰에서 보면 자신들의 시도가 망할 수 있는 요건들을 갖추고 있다는 표현이다. 이를테면 시골에서 시커먼 남자 둘이 농작물을 키우고 밥을 해먹는 아이템은 사실 기존 예능의 불문율로 보면 해서는 안되는 아이템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그 공식 안에서는 망했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 새로운 작품이 공식 안에서 만들어질까. 결국은 공식 바깥으로 나왔기 때문에 새로운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신원호 PD망할 것이라는 말이 오히려 기대를 갖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 말은 이미 <응답하라> 시리즈의 연속 성공으로 한껏 올라 있는 기대감을 눌러 놓는 것이면서 또한 그런 기대감 때문에 오버하지 않는다는 자기 결심이기도 하다. 성공을 위해 시청률을 만들어낼 법한 코드들을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더 담담하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건네겠다는 것이다.

 

<응답하라 1988>은 제목에서 묻어나듯 1988년을 시대상으로 다룬다. 물론 시대는 배경일 뿐이고 그 시대의 공기가 제공하는 가족적인 이웃의 이야기가 진짜 알맹이다. <한 지붕 세 가족>2015년 판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86년부터 94년까지 방영된 <한 지붕 세 가족>은 지금에는 찾아보기가 힘든 골목을 사이에 두고 있는 다세대주택의 이웃사촌들이 엮어가는 정이 넘치는 드라마였다. <한 지붕 세 가족>이 방영되던 그 중간지점으로서의 1988년을 신원호 PD가 굳이 소환한 건 당대가 그나마 이러한 이웃 간의 가족이야기가 가능한 시점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2015년에 1988년 이웃사촌들의 이야기는 어딘지 생뚱맞아 보일 수 있다. 세련됨과는 정반대로 가는 것이고 지금의 개인화된 도회적 삶과도 한참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맨땅의 헤딩같은 시도에 신원호 PD가 스스로 폭망이라는 표현까지 쓰는 것일 게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어쩌면 우리가 <응답하라> 시리즈에 바라는 것일 수 있다. TV만 틀면 쏟아져 나오는 다 비슷해 보이는 코드화된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담담해도 우리의 감성을 적셔줄 수 있는 그런 이야기.

 

물론 시청률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다. 하지만 시청률을 떠나서 1988년을 중심으로 한 80년대의 가족적인 이야기들과 당대를 단박에 회고시키는 음악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과연 망했다고 했던 <삼시세끼>처럼 <응답하라 1988>도 의외의 지점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아마도.



아이유의 ‘zeze’ 불편하지만, 출판사의 과잉도 불편하다

 

아이유의 노래 ‘zeze’의 가사에는 불편한 구석이 분명히 있다. ‘교활이라는 표현도 있고 더러워라는 다소 거친 해석도 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읽었던 독자로서 이 가사가 등장인물인 아이 제제에 대한 아이유의 직접적인 평가이자 해석이라면 불편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갑작스레 불거진 이 논란에서 많은 대중들이 그토록 날선 비판을 하는 것일 게다.

 


'아이유 앨범(사진출처:로엔트리)'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사 측인 동녘이 직접 나서서 페이스북을 통해 아이유님. 제제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라며 올린 글이 적절한가는 다른 문제다. 동녘측이 제기한 아이유가 제제를 성적 대상으로 봤다는 논리에는 비약이 들어있다. 그 첫 번째 이유로 든 인터뷰 내용에 대한 과잉 해석이 그렇다.

 

“zeze는 소설 속 라임오렌지나무인 밍기뉴의 관점에서 만들었고 제제는 순수하면서 어떤 부분에선 잔인하다. 캐릭터만 봤을 때 모순점을 많이 가진 캐릭터다. 그렇기 때문에 매력있고 섹시하다고 느꼈다.” 아이유의 이 인터뷰에서 동녘측이 주목하는 건 섹시하다라는 단어 하나인 듯하다. 그런데 섹시하다라는 표현이 반드시 성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섹시하다는 표현은 멋있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아이유는 인터뷰 내용에도 들어있지만 제제라는 아이 자체가 섹시하다는 의미로 말한 건 아니다. 오히려 순수하면서도 잔인한모순점을 많이 가졌다는 점, 그런 특성이 섹시하다고 말한 것. 이 모순점에 대한 매료는 이번 아이유의 음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스물셋이란 곡에서도 아이유는 다분히 상반된 이미지들을 나열하며 자신의 진짜 모습이 뭐냐고 대중들에게 질문하고 있다. 자신이 한 이미지로 해석되기보다는 다양한 이미지를 가진 존재로서 모순점 자체도 그대로 내보이는 것. 아이유는 지금 스물 셋의 나이에 이런 점에 매료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동녘의 아이유의 곡 ‘zeze’에 대한 해석은 그래서 일단 이 인터뷰 내용을 섹시하다라는 하나의 글자 그대로 해석함으로써 아이유가 제제를 성적 대상으로 봤다고 단언해버린 경향이 있다. 그리고 나서 동녘은 가사를 문제 삼는다. ‘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잎사귀에 입을 맞춰 장난치면 못써 나무를 아프게 하면 못써. 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여기서 제일 어린 잎을 가져가. 넌 아주 순진해 그러나 분명 교활하지 어린아이처럼 투명한 듯 해도 어딘가는 더러워 그 안에 무엇이 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앞부분에 섹시하다라는 표현을 통해 아이유가 제제를 성적대상으로 봤다고 단언해버리자 가사들도 그런 뉘앙스로 읽히게 된다. 상징적인 표현들은 다양한 해석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또 그래야만 그것이 상징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녘이 오히려 한 가지 관점으로만 몰아세우고 있기 때문에 아이유의 곡 ‘zeze’는 다른 해석이 용납되지 않는 곡이 되어버렸다.

 

아이유의 곡에 나오는 제제라는 인물은 물론 그 모티브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 나온 것이지만 반드시 그 인물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모티브란 말 그대로 모티브일 뿐 거기에 대한 해석은 확장되기 마련이고 다분히 가사를 쓰는 이의 개입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유의 ‘zeze’에 들어있는 제제는 저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의 제제 그대로라기보다는 그 캐릭터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유 자신일 가능성이 높다. 순진하지만 교활하고 투명한 듯 해도 어딘가는 더럽다는 건 제제를 지칭하기보다는 그 제제를 바라보고 있는 화자즉 아이유의 상태를 말해주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창작과 해석의 자유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학대로 인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다섯살 제제를 성적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부분입니다.’ 동녘은 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도 창작과 해석의 자유는 있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이 출판사는 아이유의 곡 ‘zeze’다섯 살 제제를 성적대상으로삼은 곡으로 단언하고 있다.

 

그리고 제제가 순수하면서도 심한 행동을 많이 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는 것도 결국은 심각한 학대에 따른 반발심과 애정결핍에 따른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닌 학대라고 하는 후천적 요인에서 나온 것이죠. 이를 두고 제제를 잔인하고 교활하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 생각이 듭니다.’

 

동녘의 이런 지나치게 친절한 작품에 대한 해석과 타인의 작품에 대한 지나친 단정은 과연 올바른 일일까. 다시 말하지만 아이유의 곡 ‘zeze’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노래다. 거기에는 당연히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입장은 대중들이 느끼는 불편함에 공감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동녘의 이런 단정들과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나간 작품이 반드시 작가의 의도대로만 읽혀야 한다는 식의 관점이 더욱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국정교과서에 대해 그토록 거센 비판들이 쏟아지고 있는 건 그것이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관점들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팩트를 말하지만 팩트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승자들에게 팩트일 수 있는 것이 패자들에게는 팩트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팩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관점이다. 소수라도 그 다양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사회라면 그것은 폭력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물론 취향에는 맞지 않을 수 있어도 아이유의 곡 ‘zeze’는 나름의 자신의 관점을 투영시킨 자신만의 해석을 담고 있다. 그녀 역시 노래를 내놓는 순간 그것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이미 대중들의 것이 된다. 그러니 대중들이 그 노래를 불편하게 여기는 것도 자유다. 이것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도 마찬가지다. 출판사가 나서서 타인의 작품을 맘대로 해석하고 단정하고 자신들의 작품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 못내 불편하게 여겨지는 건 그래서다.



최시원을 위한 최시원에 의한 최시원의 '그녀는 예뻤다'

 

알고 보니 진짜 주인공은 최시원? MBC <그녀는 예뻤다>에서 똘기자 신혁(최시원)의 정체는 진성매거진 회장 아들이 아니라 소설가 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신혁의 정체로서 소설가 텐의 등장은 사전에 아무런 복선이 깔려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너무 갑작스러운 느낌을 준다. 애초에 계획된 내용이라기보다는 새롭게 끼워 넣어진 듯한 인상을 주는 것.

 


'그녀는 예뻤다(사진출처:MBC)'

소설가 텐은 14회에 갑자기 그 이름이 등장한다. 즉 더 모스트지가 인터뷰하기로 했던 레너드 킴이 약속을 취소하면서 그 대체인터뷰 인물을 거론하면서 나온 이름이 소설가 텐이다. 모스트지의 피처 디렉터인 김풍호(안세하)는 소설가 텐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텐이라는 세계적인 익명의 소설가가 최근에 한국인이라는 게 밝혀졌다 이 말이지. 그리고 메모리 신간도 초 대박이 터져버렸고. 이거보다 핫한 사람이 또 어디 있노.”

 

드라마는 이 한 마디로 소설가 텐이 모스트지의 구세주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회장 아들의 정체와 소설가 텐의 정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놓은 후 마지막에 그 텐의 정체가 최시원임을 밝혀준다. 물론 회장 아들은 김풍호라는 반전도 끼워 넣는다. 그동안 덥수룩했던 수염을 말끔히 밀어내고 놀라는 지성준(박서준)에게 손을 내미는 신혁의 모습. 이러니 그 역할을 맡은 최시원이 주목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사실상 이 드라마의 구원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아무도 몰랐던 김혜진(황정음)의 진가를 발견해준 인물이고 그녀의 주변에서 우정을 가장한 사랑을 해온 인물이며 그러다 그녀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는 걸 알고는 그녀를 보내준 인물이다. 게다가 이제는 모스트지를 구원해낼 인물로서 등장하고 있다.

 

이 정도 되면 <그녀는 예뻤다>가 얼마나 최시원에게 최적화된 드라마인가를 알 수 있다. 일단 신혁이란 캐릭터와 우리가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봐왔던 최시원의 이미지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이것은 아마도 예능 작가 출신들이 갖는 장점 중 하나로 보인다. 캐릭터와 출연자의 이미지를 최적화시키는 능력. 그래서 최시원은 <그녀는 예뻤다>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 또한 신혁이라는 인물과 동일시될 정도로 대중들의 호감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예뻤다>는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어도 로맨틱 코미디에서 남녀 간의 사랑 문제를 일찌감치 해결해버렸고 그 나머지 공백을 모스트지의 생존과 연결된 일의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갈등 없는 사랑이야기가 조금은 밋밋해져 갈 때 오히려 드라마의 분위기를 쇄신한 인물은 결국 최시원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여전히 김혜진의 옆에서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그녀와의 데이트 같은 장면들로 드라마에 웃음을 주는 존재가 됐다. 그 장면들은 이 드라마의 흐름이라기보다는 따로 떼어낸 시트콤의 하나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청자들의 시선이 알콩달콩한 김혜진과 지성준에게서 조금씩 신혁이라는 인물로 쏠리게 된 것은 드라마의 흐름이 그에 대한 몰입을 더욱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갖가지 엔딩에 대한 추측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 신혁이 소설가 텐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심지어 이 모든 것이 신혁의 소설 혹은 상상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니 최시원이 사실은 숨은 주인공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밖에. 실로 <그녀는 예뻤다>는 최시원을 위한, 최시원에 의한, 최시원의 드라마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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