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시대>, 때 되면 돌아오는 낭만주먹에 대한 향수

 

다시 낭만 주먹이다. 정치주먹 유지광과 이정재를 다뤘던 <무풍지대(1989)>, 거지 왕 김춘삼을 다뤘던 <왕초(1999)>, 김두한을 중심으로 당대의 주먹들을 다뤄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야인시대(2002)>에 이어 이번에는 시라소니를 모델로 한 <감격시대>.

 

'감격시대(사진출처:KBS)'

정치주먹이 등장하는 <무풍지대>는 시대적으로 후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지만, <왕초><야인시대>는 그래서 <감격시대>와 함께 같은 시대를 다루기 때문에 등장인물들도 겹칠 수밖에 없다. 이들 작품에는 서 모두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등장하며 그 외에도 이미 한 몫씩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는 반가운 주먹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왕초>의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주인공인 차인표가 연기한 김춘삼은 물론이고 최고의 캐릭터라 찬사를 받은 맨발 윤태영, 섬뜩한 악역을 선보인 발가락 허준호가 주목을 받았다. 거지왕 김춘삼을 주인공을 삼았기 때문에 김두한과 시라소니는 주변인물로 처리되었다. 김두한 역할은 이훈이 연기했고 시라소니는 액션영화에 많이 등장했지만 잘 알려지진 않은 배우 차룡이 연기했다. 시라소니는 그다지 주목되는 역할이 아니었다.

 

<야인시대>에서 시라소니는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독특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조상구가 연기했다. <야인시대>에서는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만나는 흥미로운 장면이 들어 있는데, 이 두 사람이 마치 대결을 벌일 듯한 장면에서 시청률이 폭등했다고 한다. 그만큼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싸우면 누가 이길 것인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물론 <야인시대>에서 두 사람은 대결하지 않는데 이것은 실제로도 그랬다고 한다. 이미 자리를 잡은 김두한이 화통하게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모시면서 양자가 모두 사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조직을 갖고 있는 김두한이 늘 혼자 다니는 시라소니와 대결해서 얻을 게 없었다는 판단이다. 무리를 데리고 다니는 사자와 홀로 다니는 호랑이로 비교되던 이 두 사람의 대결은 그래서 후에도 두고두고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시라소니는 물론 영화에서 다뤄진 적이 있지만 김두한에 비해 그다지 재미를 보진 못했던 소재였다. 물론 1985년 신문에 연재됐던 방학기 원작의 동명의 만화는 큰 화제가 되었다. 이것은 방학기 특유의 흥미진진한 스토리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방학기는 최영의를 소재로 다룬 <바람의 파이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격투기 자체에 대한 세세한 묘사로 대결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다.

 

이번 <감격시대>에서 시라소니를 모델로 한 신정태(김현중)가 도비패에 들어가 하는 첫 번째 미션으로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고 뛰어내리는 장면은 방학기 원작의 만화에서도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열차에서 뛰어내리면서 그 관성을 이겨내기 위해 거의 바닥에 몸이 닿을 정도로 몸을 뒤로 젖히고 발로 바닥을 두드리면서 차츰 몸이 세워지면 달리는 동작은 물론 만화적인 각색이 들어간 것이겠지만 시라소니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단박에 만들어낸 장면이기도 하다. 물론 드라마 <감격시대>에서 이런 세세한 연출을 보여줄 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1930년대 이북 지역을 평정하고 상하이까지 이름을 날렸다는 전설적인 주먹 시라소니의 이야기는 이미 여러 차례 드라마에 등장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조연의 역할이었지 이번처럼 주연인 경우는 <감격시대>가 거의 유일하다. 이렇게 된 데는 낭만 주먹에서부터 정치로까지 이어지는 김두한의 이야기에 비해 시라소니의 이야기가 다소 단순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홀로 다니는 시라소니의 이야기는 김두한처럼 무수한 매력적인 주변 인물들이 없기 마련이다.

 

<감격시대>가 시라소니를 다루면서도 신정태라는 새로운 인물을 재창조한 데는 이런 한계점들을 상상력을 통해 보완하기 위함일 것이다. 낭만 주먹을 다루는 것이니 주먹들의 일 대 일 대결은 가장 남성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 아무리 남성 드라마를 주창한다고 해도 드라마에서 여성 시청자를 도외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감격시대>가 주먹 이야기 이외에도 멜로를 동시에 집어넣고, 액션에도 잘 어울리지만 멜로 또한 괜찮은 그림을 만들어내는 김현중을 세운 데는 그런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김두한의 이야기가 훨씬 드라마틱하지만 시라소니의 이야기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두한 이야기는 너무 많이 다뤄졌다. <감격시대><야인시대>의 리메이크 정도로 인식하는 시청자들이 있을 정도다. 그러니 김두한만큼 주목을 끄는 인물인 시라소니를 소재로 가져오면서 그 인물에 상상력을 덧댄 팩션으로 승부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 여겼을 게다.

 

여담이지만 김두한의 이야기는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부분이 있다. 김두한은 훗날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국회 분뇨 투척 사건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일을 촉발시킨 사카린 밀수사건에는 당시 정부와 기업 사이의 유착관계가 들어 있었다. 당시 관련 기사들을 보면 김두한은 국회에 분뇨를 뿌리며 신랄하게 재벌과 정권을 비판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과거 <야인시대>에서도 다뤄졌던 장면이기도 하다.

 

어쨌든 요즘처럼 남성들이 위축되는 시기에 낭만 주먹에 대한 향수는 더 깊어진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TV 드라마에서도 거의가 여성 시청자들에 맞춰진 콘텐츠들이 대부분이다. 남자들은 드라마에서 뒷방 늙은이 취급 받거나 아니면 예능에서 여성들의 역할을 체험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마치 주도적인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가 여성들의 판타지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시기에 <감격시대> 같은 남자 냄새 물씬 나는 드라마에 대한 남성들의 판타지가 없을 수 없다. 물론 <별에서 온 그대> 같은 여성 시청자들을 넉 다운 시키는 판타지가 더 클 수밖에 없겠지만.

'로필3', 김소연의 로맨스에 빠져드는 까닭

 

왜 이 드라마는 대놓고 로맨스가 필요하다고 외쳤을까. 아마도 그것은 지금 현대 여성들의 욕망으로서의 로맨스를 드라마 전면에 내세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있어서 로맨스는 아마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중요한 요인일 테니 말이다.

 

'로맨스가 필요해3(사진출처:tvN)'

하지만 로맨스가 필요해라고 외쳤다는 것은 어딘지 로맨스 부재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에 부대끼면서 워킹우먼들이나 워킹맘들에게 로맨스란 사치처럼 여겨지는 어떤 것이다. 그래서일까. 여주인공 주연(김소연)은 약육강식의 직장생활에 서서히 적응하면서 생겨난 마음의 굳은살로 진실된 마음이나 감정에서는 점점 멀어져가는 인물이다.

 

남자와 헤어지는 일에 울고불고 하지 않을 정도로 무덤덤해진 그녀의 감각을 다시 깨우는 인물이 바로 앨런(성준)이라는 가명으로 불리는 주완이다. 그는 어린 시절 주연의 집에서 자라며 그녀에게 배운 감성으로 세계적인 작곡가가 된 인물. 따라서 그에게 주연은 여전히 감성의 한 부분을 건드려주는 싱싱으로 자리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앨런이 주완이라는 걸 모르는 주연에게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주완은 어린 시절의 잔상으로 남은 못생긴 고구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난 앨런은 이상하게도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사실은 설레게 하는) 그런 남자다. 어떻게 동일인물에 대해 이토록 다른 감정을 갖는 게 가능해질까.

 

이것은 이 드라마가 말하는 로맨스의 정체다. 로맨스란 특정한 대상이 갑자기 나타나서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라, 똑같은 대상이라도 어떻게 다가가거나 느끼게 되느냐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감정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로맨스가 필요한 인물은 주연이지만 그것을 막고 있는 것 역시 주연 자신이다. 물론 앨런이 그 역할을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기폭제일 뿐, 실제 로맨스를 만드는 건 주연의 마음에 달린 일이다.

 

결국 이 드라마가 보여주려는 것은 현실에 마모되어버린 주연이라는 인물에게 앨런이라는 로맨스를 자극하는 인물을 엮어 나타나는 그 화학반응이다. 그래서 주연이 잊고 있었던 과거의 싱싱을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가 <로맨스가 필요해3>. 어찌 보면 단순해보이지만 여성 시청자들이라면 한 번쯤 꿈꿀만한 판타지다.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주연에 빙의되어 그녀의 변화를 똑같이 느끼고 겪게 된다면 어쩌면 자신 속에 잊혀졌던 저마다의 싱싱을 찾게 될 지도.

 

바로 이 지점이 김소연의 로맨스에 우리가 빠져드는 이유다. 이제는 약육강식의 사회생활에 적응되어 살아가는 워킹우먼들이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 혹은 마음 한 구석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워버렸던 것. 그것을 김소연은 주연이라는 캐릭터가 싱싱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끄집어내려 한다.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텨내게 해주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그것은 감성을 지워버리고 데드마스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로맨스가 필요해라고 다시 말하는 것이 아닐까.

송강호, 그가 있어 가능했던 '변호인' 천 만

 

<변호인>이 천 만 관객을 넘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했다는 것 때문에 개봉 전부터 근거 없는 비아냥과 평점 테러까지 받았던 영화. 그런 영화가 천 만 관객을 넘겼다는 것은 반전 중의 반전이다.

 

사진출처:영화'변호인'

무수한 분석이 나온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성향을 보이기보다는 보편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이념과 상관없이 누구나 볼 수 있는 영화로 만들었다는 점,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으로 내 편 없는 세상에 기꺼이 내 편이 되어준 서민들의 대변인을 그렸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송강호, 김영애, 곽도원 심지어 임시완까지 보여준 놀라운 호연까지.

 

하지만 이 모든 분석들 중에서도 단연 설득력을 갖는 건 송강호라는 배우다. 그가 연기 잘한다는 것은 이미 공인된 사실이지만 이번 <변호인>을 통해 발견한 것은 그가 연기력 그 이상을 가진 배우라는 점이었다.

 

그는 늘 서민들의 옆 자리에 서 있던, 마치 피곤한 일상에 영화라는 잠시 간의 여행을 떠난 관객의 믿음직한 친구이자 동료이자 가이드 같은 배우였다. <넘버3>미친 존재감이라는 서민들의 가치를 끄집어냈고, 좋은 놈도 나쁜 놈도 아닌 (소외된 서민들로서는 이상한 놈이 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이상한 놈으로서 어딘지 악당 같은 삐딱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이 가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던 배우.

 

그가 <변호인>에서 연기한 송우석이라는 캐릭터에서는 그래서 영화 <밀양>의 종찬처럼 비극에 빠진 여주인공의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비춰주던 ‘secret sunshine’ 같은 존재가 보이고, <설국열차>의 남궁민수처럼 잘못된 시스템의 옆구리에 폭탄을 터트림으로써 관성화 된 정신을 깨우는 존재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송강호의 가장 큰 장점은 그 거창할 수 있는 일들을 지극히 인간적인 일로 바꿔놓는다는 점이다. <변호인>의 송우석이 만약 시대적 소명을 전면에 내세우는 인물이었다면 아마도 천만 관객의 발길이 영화관을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게 될 그런 보편적인 정서를, 내세우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것은 지금껏 송강호가 해왔던 특별한 연기의 세계다. 똑같은 역할이라도 그가 하면 다르게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그는 <우아한 세계>에서 조폭의 상스러움과 가장의 성스러움을 동시에 보여주었고, <괴물>에서 바보스러움과 가슴 찡함을 동시에 선사했으며, <박쥐>에서도 기괴함에 해학까지 보여주기도 했다.

 

즉 그는 역할의 균형을 잘 맞추는 배우라는 점이다. 그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과장된 캐릭터라도 그 속에서 정 반대의 모습을 끄집어낼 줄 안다. 이것은 마치 관객이 그런 거짓말이 어딨어?’하고 물을 때 화답하듯 슬쩍 속내를 꺼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당신과 똑같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속물적인 속내를 슬쩍 끄집어냄으로써 관객을 안심시키는 그런 배우.

 

흥미로운 건 올 한 해 단 6개월 만에 무려 3천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 괴물 같은 배우가 서 있는 위치다. 그는 이상하게도 주연으로 서 있으면서도 늘 우리 주변에 있는 인물로 각인되어 있다. 꼭대기가 아니라 늘 아래 서 있고,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 머물러 있는, 그렇지만 그 곳에서 늘 따뜻한 볕을 보내주는 ‘secret sunshine’ 같은 존재. 이것은 송강호의 진정한 힘이면서,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신드롬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이 시대의 서민들이 바라는 인물상인지도 모른다.

왜 하필 지금 '정도전'일까

 

왜 하필 정도전이었을까. 여말선초 이 난세만큼 사극이 사랑한 시기도 없을 게다. 거기에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라는 인물이 있다. <조선왕조 500>은 물론이고 <용의 눈물>, <대풍수> 같은 사극이 이성계라는 난세의 영웅을 소재로 다뤘다. 변방을 지키던 무장이 왕이 되는 과정이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특히 대선이라는 정치적 변혁기를 매 번 치르게 되는 우리에게 이 인물은 그 때마다 상징적인 의미가 덧붙여진 채 재해석되었다.

 

'정도전(사진출처:KBS)'

그런데 이 시기를 다루면서도 KBS가 정통사극의 부활을 알리며 가져온 인물은 이성계가 아니라 정도전이다. 물론 <정도전>이라는 제목을 붙여놓았지만 이 사극에서 이성계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사극의 첫 시작부터가 정도전(조재현)이 이성계(유동근)를 찾아가는 장면이다. 결국 정도전의 정치력과 이성계의 힘이 만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니, 정도전을 다루면서 이성계가 빠질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드라마적인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훨씬 효과적인 인물은 이성계다. 무장으로서 원에 쫓겨 고려로 들어온 홍건적을 물리치며 화려하게 등장해서는 원나라 나하추의 군대를 대파하면서 고려민들의 구세주로 떠오른 인물. 그의 연전연승 이야기는 조선 건국의 정치적인 이야기와 맞물려 훨씬 다이내믹한 장면들을 보여줄 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도전은 다르다. 그가 이성계와 함께 새로운 나라를 꿈꾸고 세운 것은 맞지만 그것은 끊임없는 정치적인 투쟁의 결과다. 즉 정도전을 다루는 사극은 결국 본격 정치를 다룰 수밖에 없고, 그것은 칼이 보여주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말로써 벌어지는 정치 대결이 사극의 주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극 <정도전>은 고려 말 이색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정도전과 정몽주(임호)를 위시한 신진사대부들과 고려 말 원나라와 결탁해 권력을 잡은 권문세가의 대표 이인임(박영규)과의 정치대결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쇠퇴해가는 북원의 끝자락을 잡고 고려 말의 권세를 계속 유지하려는 이인임과 북원과의 고리를 끊고 새롭게 등장하는 명나라와의 관계를 통해 새 세상을 꿈꾸는 정도전의 대결. 여기에 최영(서인석) 같은 고려의 충신과 공민왕이 시해당한 후 수렴청정을 한 명덕태후(이덕희), 그리고 왕실외척세력인 경복흥(김진태)의 힘겨루기가 들어가면서 정치대결은 더 복잡한 양상을 만들어간다.

 

정치적 이상과 포부가 큰 정도전이지만 적 아니면 도구로만 상대를 생각하는 현실 정치 9단 이인임을 이겨낼 수는 없다. 자신을 제거하려는 이인임에 맞서 정도전이 유학자들의 성지인 대성전으로 들어가 단식투쟁을 벌이자 이인임이 최영의 힘을 빌려 무력 진압 해버리는 현재의 정치에서도 낯설지 않아 보이는 장면은 그의 만만찮은 정치력을 보여준다. 정도전은 결국 이인임과의 수차례 대결에서 패배한 연후에야 이상과 현실 정치의 봉합을 꾀하게 되는 셈이다.

 

정도전은 이처럼 그 정치적 성장담이 흥미롭지 않은 건 아니나 그래도 TV 사극으로서는 다루기가 쉽지 않은 인물인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계가 아닌 정도전을 다루는 데는 그만한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정도전이 꿈꾸던 새로운 세상과 관련이 있다. 정도전은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닌 재상이 통치하는 나라를 꿈꾸었다. 즉 왕에 따라서 정치가 농단되는 것을 봐온 그로서는 왕이 누가 되던 나라가 제대로 움직이는 시스템을 꿈꾸었다는 점이다.

 

수차례의 대선을 겪으면서 그 때마다 가졌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은 단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좌절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 그토록 꿈꾸었던 민생경제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박근혜 대통령이 얘기했던 양극화 해소 역시 지난 1년 동안 아무런 해결점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정치가 바로 서고 나라가 제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이제 믿기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왕이 아닌 시스템의 개혁을 꿈꾼 정도전이 사극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건 지금 현재 대중들이 느끼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정서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대선에 대한 누적된 실망감은 이제 표상되는 대표자의 얼굴이 아닌 실제적인 현실 정치 시스템의 변화로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것이 <정도전>이라는 쉽지 않지만 좀체 눈을 떼기 힘든 본격 정치 사극에 마음이 움직이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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